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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용수목사/에덴동산! (창 2:8-17)

지용수목사/에덴동산! (창 2:8-17)


서부 영화에는 주인공이 아슬아슬한 위기를 만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 아슬아슬한 장면을 보면 관객들은 놀라지만 감독은 놀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코스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죽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계획 안에 있는 이 세상 무대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 양곡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지용수는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절대로 그냥 쓰러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감독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힘차게 걸음을 내딛기 바랍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힘들고 고독할 때가 언제인지 설문 조사를 했더니 대부분이 대답하기를, 집에 가서 “엄마!”하고 불렀는데 엄마의 대답이 없을 때라고 했답니다. 시험을 못 친 때도, 배고픈 때도, 몸이 아픈 때도 아니라 사랑하는 엄마의 대답이 없을 때 가장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배부르고 건강하고 돈이 있어도, 실력이 있어도, 5만, 6만 명의 사원을 둔 재벌이 되어도 사랑이 채워지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특별히 아기들은 꿈과 사랑을 먹고 사는 꿈나무요 사랑나무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안아 주어야 합니다. 
각계 각 분야에서 대성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았더니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듬뿍 받으며 산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성품도 좋고 어려움도 이기고 긍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 외손자와 사랑에 빠져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처음 제 아내와 사랑에 빠졌을 때도 좋았지만, 그 때는 불안했습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으니 언제 변할지 몰라 참 불안했습니다. 실제로 제 아내가 마음이 변해 결혼하지 않으려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빠져 있는 사랑은 그럴 걱정이 없는 사랑입니다. 저도 그 아이를 좋아하고, 그 아이도 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몹시 바쁜 와중에도 그 아이만 생각하면 얼마나 좋은지 웃음이 막 나옵니다.
제가 미국에서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머니도 아내도 저를 반겼지만, 정말 열광적으로 저를 반겨 준 사람은 외손자 준이였습니다. 준이가 저를 보는 순간 흥분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얼굴이 붉어지고 “우리 아빠! 우리 아빠! 우리 아빠!”하며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그 아이가 저를 보고 아빠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제 옆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저를 보고 흥분해서 “우리 아빠! 우리 아빠!”라고 할 때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며칠 전에는 집에 조금 일찍 들어갔더니 아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준이가 밥을 먹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도 걱정이 되어서  ‘주여,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기도하는 중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거실에 누워 있는 아이에게 가서 떠오른 아이디어대로 “왕자님, 왕자님. 즐거운 식사 시간이 다가왔습니다.”라고 하며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먹이니 아이가 씨익 웃으며 받아먹었습니다. 그렇게 한 그릇을 다 먹였습니다. 어젯밤에는 제가 집에 들어서니, 아이가 먼저 “아빠, ‘왕자님, 식사 시간 왔습니다.’ 해 봐.”라고 해서 또 그렇게 하여 밥 한 그릇을 다 먹였습니다. 아!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제 사랑을 듬뿍듬뿍 받고, 자기 부모의 사랑도 듬뿍 받는 그 아이는 크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다른 어떤 사람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은 혹 변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할아버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랑이 지속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니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어머니가 해 주는 밥과 옷도 사랑이요, 어머니의 매질도 사랑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이 다 사랑입니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요한일서 3장 1절에 말씀하십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도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하늘의 별, 뭉게구름, 무지개, 꽃, 벌과 나비, 오곡백과도 다 우리를 위해 지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데 그것으로 부족하셔서, 첫 사람 아담과 이브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지만, 신랑 신부를 위해 신방을 꾸미듯이 아담과 이브를 위해 더 좋은 것으로 에덴동산을 꾸며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의 뜻은 ‘큰 즐거움’입니다. ‘에덴동산’은 ‘큰 즐거움이 있는 삶의 터’입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그 생명수 강이 하나만 흘러도 좋은데 네 개나 흐릅니다. 그 네 강의 이름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 비손은 축복이 흐른다는 뜻입니다. 비손 강은 풍성한 축복이 흐르고 그 바닥에는 금, 진주, 보석이 깔렸습니다. 기혼은 축복이, 은혜가 가득 차게 흐른다는 뜻이고, 힛데겔은 화살처럼 시원하고 빠르게 흐른다는 뜻이며, 유브라데는 달콤하고 시원하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그 유브라데 강에서 식수를 길어다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에덴동산은 한 마디로 아름답고 즐겁고 모든 것이 갖추어진 지상 최고의 곳이었습니다. 70인 역에 보면 낙원(The Paradis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땅을 우리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나타내는 도수, 척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뿐인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도 주셨습니다. 이 세상 삶이 끝나면 우리는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할렐루야!
에덴동산도 매우 아름답고 살기 좋아 낙원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낙원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할렐루야!
이 세상 삶이 끝나면 우리는 바로 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납니까?
따라 합시다.
“야! 신난다.”
우리가 천국의 즐거움을 안다면 지금 죽고 싶을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저도 아버지와 함께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버지와 함께 가면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가 어찌 원망할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마냥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그 은혜를 갚으면서 살아야되는 것입니다.
한 분이 천국에 가서 천사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성도들의 기도를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그 곳의 천사들도 바빴습니다. 그 곳의 천사들은 성도들이 기도한 대로 기도 응답을 포장해서 성도들에게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곳에 가니 천사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다른 곳의 천사들은 바쁜데 그 곳의 천사들은 왜 그렇게 한가한지 물으니 기도 응답의 신고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기도 응답을 해 주었으니 기도 응답에 대한 신고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신고가 들어오지 않아 그렇게 한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응답에 대한 감사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픈 일입니까?
우리 양곡교회의 가족들은 기도도 잘 하고 응답도 잘 받고 신고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엄청난 우주를 주시고도 더 주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보다 더 큰 천국까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천국을 생각하면 씨익 웃음이 나는 것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갈 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천국을 주목하면서 이 세상을 승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에덴은 최고로 좋은 환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누리기에 최고로 좋은 환경을 주셨습니다.
은혜가 있으면 비록 환경이 좋지 않아도, 환경이 열악해도 승리합니다.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감옥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할렐루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은혜가 넘치면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천국을 누릴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환경을 가꾸어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아무 데서나 살아가게 하지 않으시고 아름다운 낙원을 만들어 주셔서 살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가족이 사는 집을 가꾸어야 됩니다. 셋방은 셋방대로 자기 집은 자기 집대로 아름답게 정리하고 가꾸어야 됩니다.
교회도 아름답게 가꾸어야 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 강단을 에덴동산처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를 지을 때, 강단에 돌과 흙을 채우고 나무를 가득 심고 싶었습니다. 한 주간 아스팔트를 밝고 기계와 싸우다 오신 우리 교우들이 시원한 나무를 보고 ‘아, 숲속에 온 것 같구나.’하며 즐거워 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부탁했더니 그러면 하중을 많이 받아 예배당이 무너진다고 해서 못했지만 교회 환경에 제가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모릅니다. 말씀의 환경에는 더욱 신경을 씁니다. 제가 아기들을 정말 사랑하고 축복하지만, 말씀의 환경을 흐트러뜨릴까 봐,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들은 유아실이나 중집회실에서 예배를 드리게 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여기에서 한 아이가 뛰어다니고 저기에서도 한 아이가 뛰어다니면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커피가 아무리 향기로워도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아 화장실 앞에서 마시면 제대로 커피 맛이 나겠습니까? 커피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찻잔에 담아 사랑하는 사람과 음악을 들으면서 마시면 더 향기로운 것입니다. 환경이 중합니다.
부부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는 화장을 해야 됩니다. 아무리 얼굴에 자신 있는 여자라도 메이크업을 해야 됩니다. 화장하지 않은 여자는 매력이 없습니다.
따라 합시다.
“살짝 그리자.”
그리고 남편 가까이에 갈 때는 부엌에서 일할 때 입었던 옷은 갈아입어야 합니다. 생선 비린내가 나는 옷을 입고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공부할 때도 환경과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불은 밝게, 방은 조금 서늘하게 해 주어야 공부가 잘 됩니다. 그리고 누드 사진 같은 것이 있으면 다 찢어서 버려야 합니다. 중장년들도 누드 사진에 눈이 가는데, 예민한 사춘기 때이니 오죽하겠습니까? 그리고 컴퓨터는 공부방에 두지 말고 거실에 두어야 합니다. 컴퓨터에 들어가면 재미있는 놀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컴퓨터가 옆에 있는데 공부가 되겠습니까? 미국은 명문 사립학교일수록 담배나 마약, 술, 거짓말, 남의 것을 베껴 쓴 리포트를 철저히 금합니다. 만약 이것을 어기면 퇴학을 시킵니다. 철저하게 공부만 하는 분위기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학의 도시 보스턴에서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보면 대부분의 승객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명문대학은 그 분위기가 면한 분위기이고 도서관에는 빈자리가 항상 없습니다.
제 아들의 친구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명문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 학생들이 노는 것을 보고 ‘아이쿠! 이러다 내가 망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답니다.
“나 이러다가 망하겠다. 나 좀 도와주라. 내가 수업을 마치면 너희 학교에 갈 테니 도서관에서 너와 함께 공부할 수 있게 해 주라.”
그래서 제 아들이 어렵게 그런 길을 열어 주었답니다. 그 친구는 강의만 끝나면 옆도 돌아보지 않고, 친구도 사귀지 않고 곧바로 제 아들 학교 도서관에 와서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 친구가 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그 학교에서 세 번째로 고시에 합격한 학생이랍니다. 분위기가 중합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는 예배 분위기가 좋지만 우리가 새 성전을 아름답게 지어 예배를 드린다면 그 분위기는 얼마나 좋겠습니까? 새로 지을 성전에는 교육관, 체육관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교육 분위기는 또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도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또 우리는 주변 환경의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 동사무소와 파출소, 안기부 앞의 공원까지 우리가 다 청소합니다. 잔디도 우리가 깎습니다.
기독교인은 환경을 잘 가꾸고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내 집, 내 교회, 내 회사 주변의 분위기를 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특별히 영적 분위기는 더 중요합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아내와 함께 창곡에 사시는 한 집사님 집에 심방을 갔더니 집사님께서 “목사님, 참 희한한 일이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집사님의 앞집에 정신이 조금 이상한 남자분이 이사를 왔는데 하루종일 쉬지 않고 같은 노래만 부른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려오는 ‘타향살이 몇 해던고’라는 노랫소리 때문에 집사님이 스트레스가 쌓여 얼마나 힘든지 몰랐답니다. 그래서 ‘어쩌다 우리 앞집에 저런 이상한 남자가 이사와서 이렇게 어렵게 하나?’하며 불평했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집사님이 자기도 모르게 ‘타향살이 몇 해던고’하면서 같이 그 노래를 부르고 있더랍니다. 빨래하면서도 ‘타향살이……’ 하고 있더랍니다.
우리는 영적 분위기를 위해서도 원칙을 세워놓고 살아야 합니다.
‘내 차에서는 찬송과 말씀만 듣는다. 우리 집 부엌에는 찬송소리만 들리게 한다.’
이런 원칙을 세워놓고 그 원칙대로 살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 양곡교회에 들어오면 언제나 찬송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한 번은 제 아내가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는데 운전기사분이 그 다섯 시간 동안 계속해서 찬송가를 들려주시더랍니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제 아내가 은혜를 받고 영이 뜨거워졌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버스를 운전하면 버스에, 식당을 경영하시면 식당에, 호텔을 경영하면 호텔 전체에 찬송이 흐르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 좋은 음악이 흐른다.’하며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셔서 여러분을 더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분위기와 환경을 잘 가꾸어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는 일이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동산을 다스리라는 말씀은 통치자로서 다스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to work it and take care of it.’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듯이 동산을 가꾸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낙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일을 주셨습니다. 왜입니까? 일을 하지 않고는 행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노숙자에게 “행복하십니까?” 하고 물어보십시오. “기쁨이 있습니까?”하고 물어보십시오. “보람이 있습니까? 정신적인 만족이 있습니까?”하고 물어보십시오. 다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일이 없으면 얻는 것이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그래서 초라합니다.
땅콩을 뽑으면 수십 개의 땅콩이 줄기째 딸려 나옵니다. 고구마 뽑아도, 감자를 뽑아도 한 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몇 개씩 딸려 나옵니다. 이렇듯 일하면 기쁨, 보람, 축복, 물질이 다 따라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 17절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형상도 하나님의 형상이고 우리 모양도 하나님의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예수님께서도 일하시니 우리도 일해야 됩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올 때도 기쁨으로 와야 되지만 회사에 출근할 때도 기쁨으로 출근해야 됩니다. ‘아, 일이 축복이지. 에덴에도 일을 주셨지. 감사합니다.’하며 열심히 일해야 됩니다. 학생은 학교에 갈 때 기뻐야 됩니다. 기쁘게 가서 기쁘게 공부해야 됩니다. 거기에 따라오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저는 늘 고3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고3처럼 열심히 사니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기쁨을 제가 얼마나 많이 누리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실력을 쌓아나가면 겁날 것이 없고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점점 진보할 때 세상일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누가 싫어합니까? 빈둥빈둥 농땡이 치니 싫어하는 것입니다. “일에 시달리면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는다.”라고 하신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일에 시달릴 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왜 싫어하겠습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귀히 여김 받습니다. 일을 게을리 하니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인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굶어 죽게 하라.’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열심히 일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는 선악과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먹지 말라 하셔서 사람을 죄 짓게 하셨나? 하나님이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하는데, 우리의 이 작은 머리로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로봇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아내가 로봇이면 어떻겠습니까? 집에 가면 녹음테이프를 켜 놓은 것처럼 아내가 늘 같은 음성으로 “어서 오세요. 저는 당신만 사랑합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루 이틀은 재미있겠지만 10년, 20년 계속해서 어떻게 그 기계와 살겠습니까? 로봇이 아닌 우리는 선악과를 따 먹을 수 있는데,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선악과를 따 먹고 싶은데 “나는 주님을 사랑해.”하며 주님 때문에 따 먹지 않을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어떤 죄는 정말 달콤해 보입니다. 정말 따 먹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때문에 “아니야, 나는 못 먹어.”하며 절개를 지킬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망한다는 것은 선악과에 독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먹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제쳐놓고 자기 멋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그래서 낙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안다는 것은 선과 악을 분별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혼자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전에는 “하나님, 이것이 선입니까? 이것이 악입니까?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했는데, 이제는 자기가 하나님처럼 판단해서 자기가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웰링턴 장군과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싸운 워털루 전쟁이 있는 날 아침, 나폴레옹 황제가 사령관 레이 장군에게 말했습니다.
“장군, 보병들은 저쪽으로, 기마병들은 이쪽으로, 포병들은 반대쪽에 다 배치하시오. 오늘 오후가 되면 영국은 프랑스에 굴복하고 웰링턴은 내 포로가 될 것이오.”
그때 신앙 깊은 레이 장군이 말했습니다.
“황제 폐하,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그 일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장군! 명심해요. 이 계획은 내가 세웠고 이 일의 승패는 내게 달렸소.”
당시 프랑스의 최고 시인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나폴레옹 황제가 그 말을 입 밖으로 쏟았을 때부터 그는 패배하기 시작했다.”
그날 하나님께서 우박을 쏟아 부어주셔서 나폴레옹 군대는 전쟁을 해보지도 못하고 오후에 영국에 굴복하고 나폴레옹은 웰링턴 장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것은 선장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 선장은 타이타닉 호가 출발하는 날 아침에 “이 배는 너무 견고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침몰시키지 못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기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침몰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바벨탑이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둘 다 거부였고 같이 출발했지만, 선악과를 먹지 않고 하나님만 주목한 아브라함은 갈수록 번영했고, 선악과를 따 먹은 롯은 패망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천대까지 은혜를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한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을 제쳐두고 살았던 에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항상 하나님을 찾은 야곱은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해도 최고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같은 왕이지만 하나님을 제쳐두고 자기가 해 보겠다던 사울 왕은 그 아들과 함께 한 날에 죽지만,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 앞에 엎드린 다윗은 끝까지, 끝까지 자자손손 장구합니다.
어차피 사람이 높아지고 낮아지고, 되고 안 되고, 살고 죽고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할렐루야!
시간의 선악과인 주일을 따 먹고, 물질의 선악과인 십일조를 따 먹고, 좋아 보이는 죄도 슬쩍슬쩍 지으면 결국 무너집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싶어도 따 먹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킬 때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분 중 한 분이 카터 전(前) 대통령입니다. 그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이 땅의 의인입니다. 그의 손자 잭의 결혼식 때 수많은 하객들이 축하 연회에 참석했습니다. 정계, 재계, 학계의 많은 사람들과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가득한 가운데  카터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손자 잭과 손부 주디를 위해 제가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간절한 기도의 한 부분이 지금도 제 가슴을 때립니다.
“오! 하나님, 제 아내와 제가 오늘까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많은 행복을 누렸습니다. 하나님,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 사랑하는 손자 잭과 주디도 저희가 누린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얼마나 가슴을 진동시키는 기도입니까? 우리는 과연 우리 아들, 딸, 손자 결혼식에서 “하나님, 제가 누린, 우리 부부가 누린 복을 저들도 누리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신앙의 절개를 지키면 행복도 있고, 보람도 있고, 다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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