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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10:1-13, 18-19 하나님의 어루만지는 손길 2015.3.8(일)

10:1-13, 18-19 2015.3.8()

하나님의 어루만지는 손길

 

3월 둘째 주일, 여러분은 성공을 좋아하십니까? 그러면 성공의 가장 큰 원리가 무엇일까요? 성공학의 대명사 지글러가 쓴 <세계의 지혜>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는 왕이 세상의 현자들을 모아 세상의 모든 지혜를 정리해 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현자들은 세상의 지혜를 다 모아 12권의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왕이 읽기에 너무 많아 분량을 줄여 오라고 했습니다. 현자들은 고심한 끝에 1권으로 줄였습니다. 왕은 이것도 많으니 더 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줄여서 한 페이지로 줄이고 마지막에는 한 마디로 줄였습니다. 그것은 공짜는 없다였습니다. 사람에 따라 성공의 개념도 다르고 성공의 내용도 다릅니다. 그러나 어떤 성공이든 공통된 원리가 있습니다. “성공에는 공짜가 없다”. 그렇습니다. 성공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서 양속담에 갈만한 길 중에 지름길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일중에 그냥 되는 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영적인 생활에도 같은 원리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영적 생활에 대한 개념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지만 두 가지는 분명합니다. 모든 영적 생활은 기도와 관련됩니다. 그리고 기도에는 공짜는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받는 유혹이 많습니다만,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니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아시지 않을까? 다른 말로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지 않을까? 하는 것과 설령 우리가 기도해서 어떤 응답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은 기도 안해도 일어날 일이 아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기도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기도하지 않았는 데 응답되는 경우는 없다. 기도하지 않아도 우연한 일이 일어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임한다”. 우연과 응답은 다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우연한 일은 일어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응답이 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삽니다(아멘).

 

성경에서 기도하다가 응답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있다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한 마디로 혼란과 고난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주전 605, 중동의 패권의 장악한 강력한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다니엘은 세 친구와 함께 바벨론에 끌려 갑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끌려간 이유는 그가 귀족의 아들이었고 또한 이스라엘의 엘리트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끌려간 다니엘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포로중에서 포로를 지도하는 관리를 뽑는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응시했는 데 합격했습니다. 다니엘은 비록 적국이지만 관리가 되어 한편으로는 왕을 섬기며 한편으로는 포로를 돌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다니엘의 관심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조국 이스라엘이 어쩌다 바벨론에 붙잡혀 포로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속히 해방과 자유를 맛보도록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장에 보실까요? 다니엘은 기도하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1:8절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3장에서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한다는 말을 들은 왕은 그를 보통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집어넣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한 말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3:17절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불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리이다“. 다니엘은 이 믿음으로 거기서도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기도하니까 이번에는 왕이 사자굴에 집어 넣었습니다. 6장입니다. 다니엘의 기도의 모습을 보시겠습니까?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어떻습니까? 여러분같으면 이런 상황에서도 기도하시겠습니까? 참으로 다니엘은 불굴의 기도의 용사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드디어 응답이 임했습니다. 9장입니다. 그 응답은 에레미아의 말씀을 읽다가 임했습니다. 9:2절입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기도 응답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옵니다. 환상가운데 오는 방법, 세미한 음성으로 오는 방법, 마음의 기쁨으로 오는 방법, 환경의 변화를 통하여 오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는 에레미아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왔습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은 포로된지 70년만에 해방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응답을 받고 다니엘은 얼마나 기뻣겠습니까? 올해가 우리 나라 해방 70주년이 아닙니까? 우리 나라도 이스라엘처럼 해방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10장으로 옵니다. 2절입니다. 10:2, “그때에 다니엘이 세 이레동안 슬퍼하며”. 왜 다니엘은 슬퍼한 것일까요? 그렇게 사랑하는 조국이 70년이 지나면 해방되리라는 응답을 받았으면 정말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다니엘은 슬퍼할 뿐 아니라 식사도 안합니다. 3절입니다. 10:3,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왜 이렇게 다니엘은 식음을 전폐하며 슬퍼하는 것일까요? 9장에 이유가 나옵니다. 92절에서 응답은 받아 좋았는 데 그 해방은 완전한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9:25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완전한 해방은 그 이후에도 70이레가 더 지나야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성소는 무너지고 나라는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70이레는 70주입니다. 70주면 70x7=490입니다. 70이 뭘까? 학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이 70, 490일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입니다.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90일이 490년이라고 해도 주전 60년입니다. 그때도 이스라엘은 완전히 해방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를 거쳐 주호 70년에 말해 1949년에나 독립되었습니다. 도대체 70주가 무엇이냐? 490이 무엇이냐? 다니엘은 정말 낙심했습니다. 70년이 지나서 해방되었도 될까 말까 한데그 후에도 밑도 끝도 없이 70주나 더 있어야 완전한 해방이라고 하니까 다니엘이 절망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언제 시작됩니까? 우리 힘으로 안될 때 시작됩니다. 우리 힘으로 잘되면 기도하겠습니까? 우리가 절망할 때 기도는 시작됩니다. “우리의 절망이 곧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인간의 곤경이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우리 생각대로 잘 될 때까지 기도하면 그는 정말 좋은 기도자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안될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끝이 곧 하나님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나님앞에 나갑니다. 4절입니다. 10:4, “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가에 있었는 데”. 힛데겔은 바베론에 있던 한 강이었습니다. 바벨론 강가에 앉아 민족의 슬픈 역사를 생각하며 하나님앞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이 우리의 기도를 듣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도를 시작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4-5절입니다. 10:4-5, “정월 이십 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무슨 장면입니까?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기도를 막 시작했는 데 하늘이 열려 하나님의 아들이 보인 것입니까? 기도를 오래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열리더니 황홀한 장면이 보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나타났는 데 그가 세마포를 입었고 또 허리에는 금으로 띠를 띤 것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나타난 사람이 또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1:13, ”초대 사이에 인자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같으면 그의 눈은 불꽃같고“. 두 사람이 똑같습니다. 모두 다 흰 옷을 입었습니다. 순금 허리띠를 둘렀습니다. 눈은 불꽃같고 피부는 주석같으며 목소리는 표호하는 사자 목소리와 같습니다. 손에는 일곱 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굴은 해같이 빛납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의 시대는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에 주전 6세기라면 요한계시록은 주후 1세기입니다. 700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그래도 똑같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왜 다니엘이 아직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하늘이 열린 것입니까? 기도하는 사람보다 응답하는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보다 중요한 분은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자주 잊어 버리는 것은 누구에게 기도하느냐입니다. 누구에게 기도하느냐를 잊어 버리면 어떻게 기도할 것이냐만 남습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러시아가 공산화되기 이전에 20년 동안이나 교회에서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던 한 사제가 있었습니다. 그가 하도 밤이나 낮이나 기도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기도의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그가 기도하는 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무 아무개야. 내가 네 기도를 들었노라”. 이 사제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20년이나 기도를 해왔지만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었다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합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이 하나님을 성경은 영광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는 다른 분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영광이란 입니다. 하나님과 불가운데 계십니다. 불은 흠과 티는 없는 순수한 상태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불가운데 좌정하신 분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이 영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19:17-18,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아께서 불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이사야가 이 하나님을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6:3-4,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아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 데 일찍이 죽음을 당한 것 겉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영이더라”.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세상을 통치하시는 데 예수님은 그 옆에 서 계시고 그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뿔이 의미하는 것은 입니다. “이 의미하는 것은 지식입니다. 그나마 일곱뿔과 일곱 눈입니다. 따라서 일곱 뿔은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강력한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모든 것은 아시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with all power, 모든 능력과 with all knowledge, 모든 지식으로 세상을 통치합니다. 우리는 그 분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모든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우리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아십니다.

 

5:12을 보시겠습니까?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6절에서 말한 두 가지가 7가지로 확대됩니다.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 능력, power, , wealth, 지혜, wisdom, , strength, 존귀 honor, 영광 glory 그리고 찬송 praise입니다. 이 놀라운 분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데 우리가 무엇을 염려하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이든 기도하면 들으실 능력과 마음이 있는 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 하겠습니까? 우리의 열심 때문에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능력과 은혜 때문에 응답받는 데 우리가 무엇을 기도하지 못하겠습니다. 요일5:15절 말씀대로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다니엘을 세 번 어루만지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하자 하나님이 그를 세 번이나 어루만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그 백성을 어루만진 것은 알지만 세 번이나 어루만진 것은 알지 못합니다. 엘리야를 두 번 어루만진 것은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니엘을 세 번 어루만지셨습니다. 첫 번째 어루만진 이야기를 볼까요? 10-11절입니다. 10:10-11,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내게 이르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12절에 두려워 말라말합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한번 떠올려 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 힛데겔 강가에서 다니엘이 기도합니다. 기도는 시작했지만 그렇게 행복한 상태는 아닙니다. 낙심속에서 풀이 죽어서 거의 땅에 엎드려져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더니 손을 내밉니다. 그리고 넘어져 있는 다니엘의 무릎과 손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은총을 받은 다니엘아, 두려워 말라. 그리고 일어서라”. 저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너무 좋습니다. “은총을 받은 자여”. 이것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손길은 은총의 손길이었습니다. 왜 우리에게 은총이 필요합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지금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뱌벨론 포로 70년만에 민족이 해방을 맞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완전한 해방이 아닙니다. 그 후에도 민족은 파괴되어 황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니엘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도 이번 100일 기도회에 은총이 필요합니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사실 많지 않지 않습니까? 지금 되는 일이 안돼서 넘어져 있지 않습니까? 남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사실은 포기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다니엘처럼 거의 땅에 쓰러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은총을 받은 다니엘아, 두려워 말라. 그리고 일어서라”.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 위로를 저는 이번 100일 기도회때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히브리어를 연구하면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히브리어 하눈이란 말과 라쿰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눈이란 말은 compassion, “동정이란 말이고 라쿰mercy, “자비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두 말은 반드시 사람을 대상으로는 쓰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대상으로만 씁니다. 구약성경에 사람이 긍휼이 많다”. 사람이 자비롭다”. 그런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만 긍휼이 많고 하나님만 자비롭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이나 긍휼히 여기는 자비는 하나님이 갖는 독특한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다 만난 하나님이 이 하나님입니다. “은총을 받은 다니엘아,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노라.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푸노라”.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 우리가 기도하다가 만나는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어루만진 이야기를 볼까요? 16절입니다. 10:16,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섰는 자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주여 이 이상을 인하여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이 장면이 너무 중요합니다. 은총을 받고 두려움이 사라진 다니엘에게 하나님이 두 번째로 오셔서 이번에는 입술을 만집니다. 그랬더니 내가 곧 입이 열려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다가 입술이 열리는 것을 우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앞에 감히 누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 손으로 우리 입술을 만지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셨을 때 다니엘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17절입니다. 10:17,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로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막상 말하려 하니 말이 안 나왔습니다. 기도는 반드시 청산유수같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앞에 서면 감히 할 말이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옷은 흰 옷을 입고 띠는 순금띠를 두르고 눈은 불꽃같고 목소리는 사자같은 분앞에 서 보십시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더듬 더듬 몇 마디 하다가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유창한 말은 성공적인 기도의 조건이 아닙니다. 마음의 진심이 성공적인 기도의 요소입니다. 하나님이 기도의 말을 주십니다.

 

세 번째 어루만짐을 봅시다. 18-19절입니다. 10:18-19,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로 강건케 하여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세 번째 하나님이 어루만지면서 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이세 마디가 하나님과의 관계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없으면 우리는 늘 두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평안하지 않습니다. 강건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우리는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평안해 집니다. 강건해 집니다. 강건하라는 두 번이나 나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9, “내가 힘이 나서 가뢰되 네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기도를 시작할 때 다니엘의 모습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힘이 없고 낙심해서 땅에 푹 주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습니까?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세 번의 어루만지심을 표로 볼까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 팔 입술 몸

은총 말 힘

 

두려워 말고 일어서라 아무 말도 못하겠습니다 힘이 나게 하시니 말씀하옵소서

흐름을 보십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으로 먼저 은총을 받으면 두려움을 딛고 그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우리 입술을 만져 말하게 하시면 우리가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앞에 더듬거리고 말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우리온 몸을 만지시면 그때 힘이 나서 주께 말합니다. “주께서 힘을 주시오니 주여, 이제 말씀하옵소서”.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셔서 두려움을 이기고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깨닫게 하셔서 죄인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힘주셔서 그의 말씀을 듣게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 은혜를 이번 100일 기도회에 받겠습니까? 이번 100일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의 어루만짐을 받기 원합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작정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의 일이지만 우리가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작정하고 꾸준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세 번이나 경험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21일간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볼까요? 10:12-13,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국군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중요한 것은 기도는 영적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13절 다시 보시면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응답은 다니엘에게 생각보다 쉽게 임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하기로 결심할 때 이미 응답이 떨어졌습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도 아닙니다. 하나님앞에 스스로 겸비케되어 마음에 결심하던 첫날 바로 하늘의 응답이 임했습니다. 문제는 방해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방해꾼이 바사군입니다. 바사군은 페르시야 군대라는 뜻인데 이 말은 상징적인 말입니다. 당시는 바벨론 시대입니다. 그런데 바벨론보다 강하고 나중에 바벨론을 정복한 나라가 페르시야입니다. 실제 페르시아 군대가 하늘에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강력한 영적 군대가 다니엘의 기도 응답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21일간 지속적으로 기도하지 않았으면 기도 응답은 못 받을 뻔 했습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지속성입니다. 다니엘은 세 이레 즉 3주를 집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3주가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해서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지려면 3, 21일이 걸린다는 가설을 내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성형외과 의사인 맥스웰 몰츠(Maxwell Maltz)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손이나 발이 절단된 환자가 자신의 신체 부위를 잃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는 데 약 21일이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리 적어도 21일은 지나야 자기 신체의 변화에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대로 된 좋은 습관에는 21일이 더 걸립니다. 2009<유럽 사회심리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에 실린 논문을 보면 어떤 특정한 삶이 습관이 되도록 반복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 보았더니 평균 12주 걸렸습니다. 먹고, 마시고, 걷고 하는 일상적 삶이 습관이 되려면 적어도 12주는 반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험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 기간은 다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기 위해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배든 기도든 우리가 갖는 잘못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느낌이 좋아야 좋은 예배고 감동이 와야 좋은 기도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좋은 예배가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느낌이 좋아야 좋은 예배도 아닙니다. 좋은 기도가 언제나 감동적인 것도 아닙니다. 감동적이어야 좋은 기도도 아닙니다. 처음과 같이 계속 감동을 받아야 계속기도하겠다 하면 기도는 오래 못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도는 시들해질 수 있고 메마를 수 있고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감동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열정도 점점 식습니다. “열정체감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열정과 감동에 초점을 두면 기도는 결코 오래 할 수 없습니다. 기도할수록 힘들고 감동은 줄고 응답의 확신도 없고 기쁨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 고비를 넘어야 지속적인 기도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습관이 됩니다. 기도하다 보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옵니다. 12번은 이겨내야 합니다. 바쁜 일도 생깁니다. 바쁜 일도 제쳐야 합니다. 다음으로 미루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미루지 말아야 것도 합니다. 그때 어떻게 됩니까? 13절 뒷 부분,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미가엘은 군대 천사입니다. 천사가 기도를 돕습니다.

 

앤서니 라빈스란 사람이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기도의 성공자와 실패자의 두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기도의 성공자는 지금 시작한다. 기도의 실패자는 차차 시작한다. 성공적인 기도자는 응답받을 때까지 한다. 그러나 실패하는 기도자는 응답 오기 전에 그만 둔다. 이 두 가지 차이가 기도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의 기도가 성공적인 기도였던 것이 그는 지금 시작해서 꿑까지 기도했기 떄문입니다. 기도의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다가 보면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100일 기도, 오늘부터 시작돱니다. 우리에게도 다니엘처럼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도 외롭고 힘듭니다. 하나님의 만져주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이번 기도를 통해 여러분에게 기적과 축복과 은혜베푸시기를 원합니까? 작년에도 많은 기적과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올해에도 여러분에게 다니엘같은 축복이 임하시기 바랍니다.

 

 

 

 

 

 

 

 

 

 

 

 

 

 

 

 

 

 

 

 

 

 

 

 

 

 

 

10:1-13, 18-19 2015.3.8()

하나님의 어루만지는 손길

기도하지 않았는 데 응답되는 경우는 없다. 기도하지 않아도 우연한 일이 일어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임한다”.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3: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불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리이다“.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9: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10:2, “그때에 다니엘이 세 이레동안 슬퍼하며”.

10:3,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우리 힘으로 안될 때 기도가 시작된다.

 

10:4, “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가에 있었는 데”.

 

보좌에 앉으신 분이 우리의 기도를 듣습니다.

10:4-5, “정월 이십 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1:13, ”초대 사이에 인자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같으면 그의 눈은 불꽃같고“.

기도보다 중요한 분은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다.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9:17-18,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아께서 불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6:3-4,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아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 데 일찍이 죽음을 당한 것 겉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영이더라”.

5:12“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요일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하나님은 다니엘을 세 번 어루만지셨습니다.

 

(1) 10:10-11,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내게 이르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2) 10:16,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섰는 자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주여 이 이상을 인하여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10:17,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로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3) 10:18-19,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로 강건케 하여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 팔 입술 몸

은총 말 힘

두려워 말고 일어서라 아무 말도 못하겠습니다 힘이 나게 하시니 말씀하옵소서

우리가 할 일은 작정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0:12-13,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국군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예배와 기도에 대하여 우리가 갖는 오해는 느낌이 좋아야 좋은 예배고 감동이 와야 좋은 기도라는 생각이다.

 

앤서니 라빈스, “기도의 성공자와 실패자의 두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기도의 성공자는 지금 시작한다. 기도의 실패자는 차차 시작한다. 성공적인 기도자는 응답받을 때까지 한다. 그러나 실패하는 기도자는 응답 오기 전에 그만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