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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이윤재목사

마6:5-8 마음의 기도 2015.6.7.(일)

6:5-8 2015.6.7.()

마음의 기도

이번 주로 100일동안 계속된 기도를 마쳤습니다. 3월 초에 시작된 기도가 마치고 6월이 시작되었습니다. 6월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절기 일 뿐 아니라 교회력으로는 성령 강림절이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오순절에 120명이 모여 기도하다 성령이 임했고 그 결과 위대한 사도행전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기도가 우리 자신과 교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어느 조용한 미국 마을에 어느날 나이트 클럽이 들어왔습니다. 나이트 클럽이 들어오자 교인들이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한 마을에 나쁜 문화가 들어와 사람들을 문란하게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이트클럽이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이트 클럽이 장사가 안되더니 결국 망했습니다. 화가 난 사장은 곧 교회를 향해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판사가 양측을 불렀습니다. 먼저 나이트 클럽 사장에게 물었습니다. “왜 소송했습니까?” 사장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망한 것은 다른 것 때문이겠습니까? 교회가 망하라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판사가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랬더니 교인들이 말합니다. “아니, 판사님, 말도 안됩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은 맞지만 기도한다고 나이트클럽이 망합니까? 다른 이유 때문에 망한 거예요. 기도 핑계대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몇 주후에 판사가 양측을 불러 놓고 이렇게 판결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은 나이트클럽, 믿음 있슴. 기도해놓고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은 교회, 믿음없슴”.

 

어떻습니까? 가끔 우리도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실컿 기도해놓고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기도한다고 그렇게 됩니까? 그것은 기도안해도 될 일이예요”. 기도안하는 불신자들은 오히려 기도의 능력을 믿는 데 교인들은 정작 기도해놓고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번 100일 기간에도 교인중에 그런 분이 있습니다. 어디를 여행하는 데 차가 삐끗하다가 가드레일을 받고 큰 사고가 날 뻔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는 데 친정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야, 이번에 무슨 일 없었어?” 걱정할까봐 말 안하고 있었는 데 어머니가 전화해서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 이상하게 내가 불안해서 교회에 가서 너를 위해 기도했다. 다행이구나. 하나님이 도우셨다하더랍니다. 이 세상에 우연한 일이 있습니까? 우연한 일 없습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막아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은혜는 기도하는 은혜요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의 도우시는 축복입니다. 100일 기도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그러나 100일 기도의 진정한 의미는 기도의 훈련과 습관화를 통해 그 이후에도 계속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100기도 이후에도 계속 기도하겠습니까?

 

계속적인 기도를 위하여 기도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산상수훈에는 네 가지 기도가 나타납니다. 순서대로 말하면 먼저 마6:5-8, 은밀히 기도하라. 골방기도입니다. 다음, 6:9-15, 이렇게 기도하라. 주기도입니다. 6:16-18, 금식기도입니다. 영적인 기도입니. 마지막으로 마7:7-12, 구하라. 주실 것이요. 부르짖는 간구의 기도입니다. 이것을 도표로 보실까요?

 

6:5-8 6:9-15 6:16-18 7:7-12

은밀히 기도하라 이렇게 기도하라 금식으로 기도하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마음의 기도 주의 뜻대로 기도 목숨걸고 기도 부르짖어 기도

교제 거룩 싸움 간구

commuincation consecration combat cry

 

5장에서 7장까지의 짧은 예수님 말씀에서 이렇게 네 가지 기도가 나타나다니 놀랍습니다. 이 기도를 이 순서로 하겠습니다.

 

1. 오늘 마6:5-8, 마음의 기도

2. 다음 주 마7:7-12 부르짖는 기도

3. 세 번째 주 마6:9-15, 주기도

4. 마지막, 6:16-18, 금식 기도

 

이번 6월에 성령의 은혜안에 산상수훈에 나타난 네 가지 기도를 통해 우리의 영적 생활이 더 풍성해 지기기 바랍니다. 오늘은 그 첫째 시간으로 은밀한 기도, 마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첫 번째 기도가 6절 보시겠습니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이 가르친 첫 번째 기도는 은밀한 기도입니다. 골방기도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드리는 마음의 기도입니다. 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 기도를 가장 먼저 가르쳤을까요? 유대인의 기도에 대한 성찰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기도에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는 성전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이라”. 여기 만민의 기도하는 집성전입니다. 과거 성전에 있던 시절, 유대인은 아무데서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고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다가 성전이 무너지자 그 장소는 가정과 회당으로 이어졌습니다. 5절 보실까요?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렇게 기도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다 보니까 기도의 자세가 중요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엎드려 기도하고, 얼굴을 무릎에 넣기도 하고 했지만 주로는 서로 손을 벌리고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기도하다 보니 기도할 때 무슨 옷을 입고 하느냐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입는 옷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탈리트라고 합니다. 제가 지난번 이스라엘에 가서 한 벌 사왔습니다. 보시다 싶이 크기가 가로 1.5미터, 세로 0.6미터 정도의 직사각형 형태로 된 천입니다. 주로 무명이나 모로 만듭니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마다 이것을 어깨를 두르고 기도합니다. 이미 민15:37-41절에는 이 기도복에 히브리어로 찌찌드라고 하는 옷술을 달도록 규정하고 있는 데 이것이 옷술입니다. 그런데 이 옷술은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다섯 번 매듭하고 여덟 가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5 다하기 8하면 13입니다. “옷술이라는 찌찌드를 히브리어를 수로 표시하면 600입니다. 그리고 여기다 13하면 613이 됩니다. 그런데 이 613은 구약에 나오는 모든 율법의 수입니다. 옷술이 네 귀퉁이에 매달리는 것은 동서남북 전 세상을 의미하고 색깔이 청색인 것은 하늘 곧 영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올이 모두 613개인 것은 구약에 나오는 모든 율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 색깔이 둘 있습니다. 까만색은 하지 말라는 율법수 365줄입니다. 하얀색은 하라는 말씀 248개입니다. 그 숫자를 실의 올 수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이 옷을 입으면 그 자체로 율법 전체를 몸에 두르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옷에 신경쓸 뿐 아니라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기도할 것이냐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기도책입니다. 주후 6세기 이후에 편집된 시두르 테필라라는 책입니다. 뜻은 글자 그대로 기도 책이란 뜻입니다. 이 책에는 유대인이 1년간 드릴 모든 공중 기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안식일마다, 모든 절기마다, 그리고 매일 드리는 기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이면 이 책을 읽습니다.

러니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기도복을 입고 기도책을 들고 큰 소리로 기도문을 읽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5절 말씀의 배경입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그림이 보이십니까?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좋습니다. 문제는 그 기도가 하나님앞에서 드리는 기도인지 사람앞에서 드리는 기도인지 혼동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하나님께만 기도하려고 애쓰지만 공중석상이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기도가 때로 형식이 되고 예식이 될 때가 있습니다. 6:1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조심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유대인이 기도할 때 빠질 수 있는 함정은 형식주의의 함정입니다. 기도의 형식이 필요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앞에서는 기도하지 말고 개인적으로만 기도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앞에서 기도할 수 있지만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의 고백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도의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기도자 테오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며 그것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고 적게 하고 소리를 크게 하고 적게 하는 것은 다음 문제입니다. 우선 하나님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해야 합니다.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찾는 것이 기도입니다. 종이 상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같이, 여종이 주모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같이, 젖뗀 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같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무슨 기도를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 앞에 서 있느냐입니다. 내 앞에 계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명심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기독교만 기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모든 종교가 기도합니다. 문제는 누구를 대상으로 기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교인들은 부처앞에서 천배, 3천배 절합니다. 달마대사는 벽을 보고 8년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성철스님은 해인사에서 35년간을 두문불출하고 앉아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기도가 누구를 향했느냐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회당에 가면 그 강대상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네가 지금 누구앞에 있는지 알아라“. 누구앞에 있습니까? 하나님앞에 있습니다.

 

마음 중심으로

기도는 하나님앞에 설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서는 것입니다. 6:6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여기에 은밀하다는 말이 두 번 나오고 골방이란 말이 한 번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골방은 꼭 눈에 보이는 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집에는 골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골방은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은 조용하고 작은 방을 말하는 데 이 방은 눈에 보이는 방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방을 말합니다. 몇 년전 어느 교회 목사 취임식에 갔더니 권면을 맡은 목사님이 이렇게 권면합니다. 목사에게는 세 가지 방이 있어야 하고 세 가지 방이 없어야 한답니다. 있어야 할 방은 책방, 골방, 심방입니다. 책방에서 성경읽고 골방에서 기도하고 심방을 통해 성도를 만납니다. 이중표 목사님은 방 하나를 더 이야기했습니다. 사방입니다. 죽는 방입니다. 그런가 하면 없어야 방도 있답니다. 안방, 다방, 노래방이랍니다. 안방은 필요하지만 안방에만 틀어 밖혀 있으면 안됩니다. 다방에 가서 쓸데 없는 사람만나서는 안됩니다. 스트레스푼다고 노래방 가서는 안됩니다. 요즘은 가지 말아야 할 방이 더 생겼습니다. P.C, 채팅방, 안마방, 소주방, 찜질방은 여러분 마음대로 하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골방은 공간의 방이 아니라 마음의 골방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앞에 서는 것이지만 마음중심으로 서야 합니다.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26:9절입니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기도는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합니다. 영성가 리챠드 포스터는 이것을 마음 중심의 기도라고 불렀습니다. 마음 중심의 기도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할 수 없을 만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나에게 있어야 할 것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지금 있는 것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 아름답고 멋진 말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넷째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지금 기도하는 줄도 모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직 마음으로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여신도 헌신예배가 있었답니다. 부동산중개소를 하는 여신도회장이 하도 바쁘게 사는 나머지 그 날이 여신도 헌신예배인지도 모르고 나왔습니다. 들어보니까 헌신예배라 놀라서 갑자기 단상에 올라가 사회를 봅니다. 간신히 묵도를 마치고 찬송을 부르는 시간입니다. 이때 여신도 회장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같이 1121003호를 부르겠습니다”. 평소에 기도는 안하고 부동산만 하다 와서 찬송가를 아파트 홋수로 착각한 것입니다. 다음에 여신도 총무가 기도를 시작하는 데 뭔가 부시럭 부기럭합니다. 깨알같이 써온 것을 주머니에서 꺼내 더듬거리고 읽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나님, 날아갔습니다합니다. 교인들이 눈을 뜨고 보니까 뒤에 있던 선풍기 바람에 종이가 날아간 것입니다. 그때 예배도 날아가고 기도도 날아가고 은혜도 날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마음의 중심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써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쓰는 과정에서 준비가 되고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대표기도할 분은 주보에 자기 이름이 나왔으면 적어도 일 주일 전부터 기도하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쓴 유명한 이 엠. 바운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중기도는 짧을수록 좋고 개인기도는 길수록 좋다”. 쓰지 않고 더듬거리는 것보다 써서 잘 읽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쓰나 안 쓰나 그 속에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마음의 기도는 진심의 기도입니다. 마음에 없이 청산유수로 기도하는 것보다 더듬거리더라도 진심으로 하는 기도가 낫습니다. 마음의 기도는 단순한 기도입니다. 내 모습 그대로 있는 그대로 마음음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라”. 마음의 골방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들으신다.

예수님이 가르친 마음의 기도의 세 번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들으시고 아버지가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6절을 볼까요?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여기서 네 아버지께”, “네 아버지께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왜 이 말씀이 중요합니까?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저희 집에 전기가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아무리 만져도 안됩니다. 저는 전기과를 나온 것이 아니라 신학과 나왔습니다. 그래서 전기과를 나온 사람을 오라고 해서 스위치를 만지게 했더니 금방 불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제가 단상에 있을 때 저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저는 그가 전기 고칠 때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피장파장입니다. 스위치가 그렇게 중요한지 처음 알았습니다. 스위치가 고장나니까 일체 전기가 안 들어옵니다. 그가 간 후에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스위치가 전기를 가져왔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스위치는 전기가 들어오게 하는 통로였습니다. 스위치는 전기 자체가 아니라 전구를 동력원과 연결시켜 주는 장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스위치가 없었다면 전기도 안 들어왔지만 그렇다고 스위치가 전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스위치가 기도라고 믿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능력의 원천은 전기자체에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기도 자체가 능력은 아닙니다. 기도는 하늘의 능력을 끌어오는 영적 스위치입니다. 능력은 언제나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6절에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했습니다.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언제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열심히 기도하는 나보다 열심히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의 열심을 믿는 것보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언제나 기도할 때 초조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혹시 못 주면 어떻습니까? 65:24입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의 말이 마치기 전에 내가 들으리라”. 여러분은 이 말씀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까?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그뿐 아니라 풍성한 아버지입니다. 그는 언제나 줄 수 있는 풍성한 아버지요 언제나 주려고 준비하는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고 응답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기도만 하십시오. 여러분은 언제나 받게 되어 있습니다.

 

7-8절도 보실까요? 6:7-8,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여기에 중언부언이란 말이 나옵니다. 중언부언은 많은 말이라는 뜻입니다. 기도할 때 많은 말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유대인들의 기도의 단점은 길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시모네 에스레라는 기도입니다. 이 말은 “18”을 의미하는 데 기도의 가짓수가 18가지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기도처럼 가정에서 회당에서 예배가 마칠 때마다 드리는 데 주기도문의 18배 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기도문의 18배나 긴 기도를 매일 하니 얼마나 길겠습니까? 문제는 길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길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7-8절의 키워드는 듣는다는 말입니다. 6:7,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말을 많이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말을 줄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쓴 유명한 이 엠. 바운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중기도는 짧을수록 좋고 개인기도는 길수록 좋다”. 내가 말할 수 있지만 그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서론으로 하는 말입니다. 내 말이 본론이 아닙니다. 내 말은 하나님의 말을 듣기 위한 준비일 뿐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도하고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기도를 내 말만 하고 마는 것으로 아느냐 내가 말한 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느냐에 따라 기도가 달라집니다. 내 맑만 하는 것을 주문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음성까지 듣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주문이 염불입니다. 어릴 때 스님들이 염불하는 것 많이 보았는 데 그들은 자기 말만 하고 맙니다. 염불한 후 조용히 침묵하며 무엇인가 듣는 스님들이 없습니다.

 

우리도 내 말은 너무 길게 하고 하나님의 말은 안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듣든 말든 열심히 쏟아붓고 때가 되면 일어납니다. 일종의 최후 통첩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사업 어려워요. 알았죠? 당신이 알아서 해주세요. 다음에 봐요. ”. “하나님, 내 아들 장가가야 해요. 알았죠? 며느리감 찾아 놓으세요. 지금 버스 떠나요. ”. 이것이 중언부언입니다. 자기 말만 하고 안 듣는 것, 이것을 성경을 중언부언이라고 합니다. 에드먼드 클라우니가 말했습니다. “성경은 기도는 인간이 어떻게 기도했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기도를 어떻게 들으셨는가를 보여준다”. 기도는 듣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듣고 나중에는 내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를 묵상이라고 합니다. 19:14,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님의 눈에 들게 하소서”. 묵상은 내 말을 하나님께 쏟아붓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기도입니다. 리쳐드 포스터는 그 묵상의 기도를 몇 단계로 추천합니다. 첫째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를 정하라. 둘째 성경을 펴고 짧은 본문을 여러번 읽으라. 경을 많이 그리고 빨리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화하며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성경을 읽을 때 분석하거나 연구하지 말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라. 프란시스 드 살레의 말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분석하기 위해 읽지 않고 사랑하기 위해 읽을 때 그것을 묵상이라고 한다”. 필립 얀시는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말했습니다. “묵상은 성경을 사용하기 위해 읽지 않고 수용하기 위해 읽는 것이다”. 성경을 수용하는 것, 마음에 담는 것,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그것이 묵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수용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옥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흙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수용성, 잘 받아들이고, 부식성, 잘 썩고, 흡수성, 잘 빨아들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씨를 뿌리면 30, 60, 100배의 열매가 납니다. 내가 길고 하고 짧게 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듣는 것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인도의 테레사 수녀가 그랬다고 합니다. 테레사 수녀는 하루 24시간 기도했답니다. 교인 하나가 물었습니다. “수녀님, 얼마나 하실 말씀이 많아서 24시간이나 기도합니까?” 테레사가 말했습니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지요“. ”그러면 하나님도 말씀을 많이 합니까?" 테레사가 말했습니다. “하나님도 듣지요”. 그렇습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내가 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고 가장 좋은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음성을 내가 듣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앞에 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앞에 서는 것입니다. 한번만 서는 것이 아니라 평생 서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 너희는 은밀히 기도하라. 골방에서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서 들으시리라“.

 

 

 

 

 

 

 

 

 

 

 

 

 

 

 

 

 

 

 

 

 

 

 

 

 

 

6:5-8 2015.6.7.()

마음의 기도

 

6:5-8 6:9-15 6:16-18 7:7-12

은밀히 기도하라 이렇게 기도하라 금식으로 기도하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마음의 기도 주의 뜻대로 기도 목숨걸고 기도 부르짖어 기도

교제 거룩 싸움 간구

1. 6:5-8, 마음의 기도

2. 7:7-12 부르짖는 기도

3. 6:9-15, 주기도

4. 6:16-18, 금식 기도

 

하나님앞에서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이라”.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탈리트

 

시두르 테필라”(사진)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조심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테오판, “기도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며 그것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마음 중심으로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26: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리챠드 포스터, “마음 중심의 기도의 특징

(1) 내가 할 수 없을 만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기도하는 것이다.

(2) 나에게 있어야 할 것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지금 있는 것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3) 아름답고 멋진 말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4) 내가 지금 기도하는 줄도 모르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 엠. 바운즈, “공중기도는 짧을수록 좋고 개인기도는 길수록 좋다”.

 

아버지께서 들으신다.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스위치가 없다면 전기도 안 들어오지만 그렇다고 스위치가 전기는 아니다. 능력의 원천은 전기자체에 있다.

 

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의 말이 마치기 전에 내가 들으리라”.

6:7-8,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6:7,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19:14,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님의 눈에 들게 하소서”.

 

묵상의 기도의 단계

(1)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를 정하라.

(2) 성경을 펴고 짧은 본문을 여러번 읽으라.

(3) 성경을 읽을 때 분석하거나 연구하지 말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라.

 

프란시스 드 살레, “성경을 읽을 때 분석하기 위해 읽지 않고 사랑하기 위해 읽을 때 그것을 묵상이라고 한다”.

 

필립 얀시, “묵상은 성경을 사용하기 위해 읽지 않고 수용하기 위해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