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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7-11 구하라. 좋은 것을 주시리라 2014.6.14.(일)

7:7-11 2014.6.14.()

구하라. 좋은 것을 주시리라

기도와 성령의 달 6월 둘째주일입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온 나라가 메르스로 인해 홍역을 치루고 있습니다. 격리자가 4천명을 넘었고 확진자만도 100명을 넘었습니다. 사망자는 10명이나 됩니다. 이렇게 되자 전국이 발칵 뒤집혀 대부분의 학교가 휴업하고 너도 나도 메르스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작년 세월호에 이어 우리 나라에 들이닥친 두번째 국민적 고통입니다. 과연 메르스는 그토록 무서운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지나치게 무서워 하고 있는 것일까?

 

메르스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세시대의 페스트병 이야기입니다. 쥐에 의해 전염된 이 병은 14세기 당시 유럽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 무렵 한 마을에 기도하는 성자가 살았는 데 그가 아침에 기도할 때 페스트 마귀가 그 마을에 들어 들어온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침 일찍 마을 입구를 막고 서 있는 데 과연 페스트 마귀가 삼지창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성자가 앞으로 나가 손으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안되오. 이 마을에는 당신이 들어올 수 없소. 이 마을은 기도하는 마음이요. 어서 나가시요”. 싸움이 벌어졌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성자가 이겼습니다. 그런데 마을로 돌아온 성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마을사람의 태반이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페스트 마귀가 들어오지도 않았는 데 왜 사람들이 죽었을까? 이유가 있었습니다. 페스트 마귀가 마을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지레 겁이 나서 스스로 죽은 것입니다. 페스트 마귀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페스트 마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페스트병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던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메르스가 무섭다고 전 국민이 공포에 떨만큼 무서운 것입니까? 혹시 메르스보다 우리가 가진 두려움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공기로 전염되지도 않고 잠복기에도 전염이 안되고 태반이 병원에서 감염되고 이미 확진 판결받은 사람은 격리되었는 데 우리가 그렇게 두려워 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세계보건구기구조차도 큰 문제 없다고 휴업중인 학교의 재개를 권고했는 데 그렇게 많은 학교가 서둘러 문닫고 심지어 병원도 아닌 교회까지 나오는 것을 꺼리고 있으니 그렇게 메르스가 두려운 것인가요? 혹시 하나님 보다 메르스를 더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닙니까? 조심해야 하지만 우리가 정도 이상으로 너무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연히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쓴 시 한편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참으로 구할 것입니다. “위험에서 보호해달하고 기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없이 그것을 직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잠재워 달라고 간청하기 보다는 그것을 정복할 수 있는 마음을 구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담대함입니다. 그리고 믿음입니다. 아무려면 하나님이 메르스보다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없어도 메르스보다 못한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믿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기도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난 주부터 우리는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기도를 통해 은혜받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마음의 기도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6장입니다.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은밀하게”, “골방에서 하는 기도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의 내면성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7장으로 가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7:7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어떻습니까? 분위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6장에서는 진실한 기도, 마음의 기도를 가르치십니다. 7장에서는 열심있는 기도, 부르짖는 기도를 가르칩니다. 이 두 기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조용한 사람은 6장의 기도를 좋아하고 뜨거운 사람은 7장의 기도를 좋아할 것입니다. 장로교인은 아마 6장의 기도를, 순복음교인은 7장을 좋아할지 모릅니다. 지적인 사람은 6장의 기도를 좋아하고 정적인 사람은 7장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같이 가야 합니다. 6장없는 7장없고 7장없는 6장없습니다. 기도는 마음에서 나와 우리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 올려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능력있는 기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간구하는 것입니다.

7장의 기도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면 간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중 가장 큰 것이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간구는 내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간구는 모든 기도의 기본입니다. 7절을 다시 보실까요?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여기에 간구하는 기도의 세 요소를 말합니다. 첫째 구하라. 둘째 찾으라. 셋째 문을 두드리라. 세 개의 요소는 간구하는 기도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구하라”. 왜 구합니까? 없으니까 구합니다. 당장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돈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돈을 구합니다. 돈이 필요없는 사람은 돈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도 돈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돈이 없어도 필요를 느끼지 않은 사람은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돈이 없고 당장 필요해서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찾으라”. 누가 찾습니까? 잃어버린 자가 찾습니다. 내 부모가 북한에 있다. 마침 북한에서 남한 출신의 생존자 명단을 발표했다. 그러면 북에 부모를 두고 온 사람은 찾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습나까? 소중한 사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이산가족때 온 나라가 얼마나 같이 울었나요?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찾으라. 잃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것을 잃었기 때문에 찾습니다. 지금 내가 찾지 않는다면 잃은 것이 없거나 잃었어도 소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드리라”. 누가 두드립니까? 밖에 있는 사람이 두르립니다. 밖에 있어 날씨는 춥고 배가 고파 문을 두드립니다. 급히 나오느라 집에 무엇인가 두고 온 것을 가지고 가려고 문을 두드립니다. 밖에 있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두드립니다. 안에 있는 사람은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밖에 있어도 급하지 않으면 두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여고생이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오는 데 누가 뒤를 따라옵니다. 잽쌔게 달려 문을 두드립니다. “엄마. 문열어. 빨리 열어”. 여학생이 조금만 지체한다면 치한에게 당할 수도 있다면 얼마나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겠습니까? 기도는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급하게 두드리는 것입니다.

 

간구하는 기도의 특징은 시급성입니다. 상항이 급박해서 시간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필요성입니다. 그것 없이는 내가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을 가져야 합니다. 그나마 지금 당장 가져야 합니다. 절박성입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가 아닙니다. 지금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뒤로 미룰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왜 기도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이유는 다 있습니다. 그러나 딱 하나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급하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당장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소중한 것을 잃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당장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금 구할 것입니다. 반드시 찾아야 것이 있다면 지구의 끝이라도 달려갈 것입니다. 정말 다급한 일이 있다면 문을 부셔서라도 들어갈 것입니다.

 

모든 것이 시급성에 달려 있습니다. 옛날 소크라테스에게 한 제자가 찾아왔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 배우러 왔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를 데리고 바닷가로 갔습니다. 물이 허리를 찰 때까지 들어가더니 갑자기 젊은이의 머리를 물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젊은이가 놀라 발버둥 쳤으나 소크라테스는 그대로 그를 물속에 처박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둘이 백사장에 앉았습니다.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왜 저를 물에 집어 넣었습니까?” 소크라테스는 물었습니다. "물속에 있을 때 자네에게 가장 다급한 것은 무엇이었나?“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숨쉬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숨쉬고 싶었나?“ ”, 숨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지혜를 찾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공부하겠나?“ 젊은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혜도 학문도 사업도 직장도 그렇게 해야 성공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생명은 시급성입니다. 지금 간절히 필요하지 않는 데누가 주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기도해야 할 큰 제목이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기도는 안되고 뒤척 뒤척하다가 잠이 들었는 데 꿈에 자기사 산을 올라갔답니다. 그러나 산에 올라가다가 발을 잘못 디뎌 낭떨어지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람 살려하고 떨어지는 데 떨어지다가 소나무 가지 하나를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소리질렀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그랬더니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 손 하나를 놓아라”. 그래서 살려고 어쩔 수 없이 손 하나를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또 음성이 들렸습니다. “또 한 손을 놓아라”.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죽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됩니다. 그것은 못합니다하고 오히려 두 손으로 소나무를 더 세게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까 꿈입니다. 이게 무슨 꿈인가 생각하다가 깨달았답니다. “, 기도는 목숨걸고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다. 두 손으로 목숨걸고 소나무를 붙잡듯이 온 몸으로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놓으면 죽는다 하는 심정으로 붙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믿음>

기도는 간구이지만 다만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9, 10절이 그것입니다. 7:9-10, “너희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 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 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는 이유는 다만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필요해도 하나님이 안 주신다면 기도해도 무슨 수용이겠습니까?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필요로 시작하지만 결국 얻는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18장에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했습니다. 한 과부가 억울하게 자기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남편이 없다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삶의 조건이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남자없이는 농사 지을 수도 없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편 없이는 법적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이 여자는 혼자 소송할 수 밖에 없었는 데 판사는 여자라고 깔보고 그에게 재판을 차일피일 연기합니다. 이 여자가 살기 위해서한 가지 해야 할 일은 소송에서 이겨 재산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어린 자녀들은 굶어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목숨걸기로 하고 매일 법원에 나가 판사앞에서 웁니다. 여인에게 없는 것은 많았지만 한 가지 있는 것이 눈물이요 절박성이었습니다. 결국 판사는 이 여자가 목숨걸고 성가시게 하는 바람에 여인에게 재산을 돌려주기로 판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를 우리에게 적용할 때 한 가지는 맞고 다른 한 가지는 틀립니다. 한 가지는 메시지입니다. 메시지는 맞습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신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신다”. 이것이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를 위해 비유로 든 내용은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여기 나오는 과부가 나오고 재판장이 나옵니다. 과부가 가난하고 무기력하고 사람들에게 존귀히 여김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영적으로 비슷합니다. 그러나 과부와 우리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과부에게는 남편이 없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습니다. 과부에게 없는 남편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다음 재판관입니다. 여기 나오는 재판관은 악한 사람입니다. 뇌물이나 바라며 재판을 악하게 멀고 가는 불의한 재판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입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랑이 많은 재판장입니다. 75:7의 말씀을 아십니까?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이 이야기의 핵심은 하물며입니다. 남편없는 과부도 끝까지 매달려서 재산을 회복했습니다. “하물며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있지 않습니까? 남편없는 과부도 응답받았는 데 아버지가 있는 우리가 받지 못하겠습니까? 불의한 재판관도 자기를 성가시게 하는 과부의 원한을 결들어 주었습니다. “하물며”,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과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간구하는 기도의 초점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필요해서 절박하게 기도를 시작하지만 결국 응답은 믿음에서 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겠느냐는 믿음, 남편없는 과부도 소원을 이루었는 데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이 외면하시겠느냐는 믿음, 그 좋으신 하나님이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당신 자녀의 기도를 외면하기느냐는 믿음, 반드시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좋으신 아버지는 자녀가 요청할 때 반드시 두 가지를 하십니다. 하나는 주고 싶고”, 다음은 줄 수 있고”. 주고 싶어도 가난한 아버지는 줄 수 없습니다. 줄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은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언제나 주고 싶고, 언제나 줄 수 있습니다.

 

고후9:8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며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 모든이 네 번 나옵니다. 모든 은혜, 모든 은혜, 모든 일, 모든 것, 모든 착한 일, 하나님은 다 하십니다. 7:25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심이라”. 하나님은 언제나 하실 수 있습니다. 항상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3:20도 중요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아멘.

우리는 필요하기 때문에 간구하지만 또한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간구합니다. 기도의 대가들의 명언이 여기서 나옵니다. 기도의 성자 이 엠 바운즈의 말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가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신다”. 영국의 앤드류 머레이의 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내 안에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일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Prayer opens the way for God to do His work in and through me).

 

<약속>

이렇게 믿고 기도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약속입니다. 우리가 붙잡을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입니다. 모든 간구의 기도는 약속에 근거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가 몸이 아파 기도합니다. 어떤 약속이 있습니까? 103:3-4절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약속입니다. 고난과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애가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약속입니다. 우리 기도를 들으신다는 약속입니다. 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34:9-10,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앞날에 근심이 있을 때 약속입니다. 29:11,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자녀에게 문제가 있을 때 약속입니다. 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어디로 가야 할지지 모르는 사람에게 약속입니다.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제가 이 약속을 붙잡고 이스라엘에 갔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자 토머스 크랜머(Thomas Cranmer)의 말입니다. “기도는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얻게 하고, 우리에게 명한 것을 실행하게 하는 능력이다”.

 

<끈질김>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7-8절에 나오는 세 가지 기도,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지속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구하라. 언제까지? 얻을 때까지. 정말 필요한 것이 있는 데 한번 달라고 해서 안준다고 포기하겠습니까? 찾으라. 언제까지? 찾을 때까지. 아들을 잃었는 데 몇 번 찾다가 없다고 그만 두겠습니까? 문을 두드리라. 언제까지? 열릴 때까지. 내가 정말 다급해서 문을 두드렸는 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포기하겠습니까? 소중하고 필요하고 다급한만큼 계속할 것입니다. 쉬지않고 구할 것이고, 중단하지 않고 찾을 것이고,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릴 것입니다. 7-8절의 말씀은 내용상 7:9절의 말씀은 계속”, “쉬지 말고”, “끝까지를 넣어 읽는 것이 원문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쉬지 말고 구하라”, “계속해서 찾아라”, “끝까지 두드리라”.

 

한나가 성전에서 아들을 얻을 때까지 간구하지 않았습니까? 야곱이 하란에서 라헬을 얻을 때까지 일하지 않았습니까?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때까지 사울을 참지 않았습니까?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떠날 때까지 바로와 싸우지 않았습니까? 여호수아가 아얄론 골짜기에 태양이 멈출 때까지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엘리야가 머리를 무릎사이에 넣고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까지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건짐받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간구하는 기도는 끝까지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십니다.

이렇게 간구하는 자에게 주님이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11절입니다. 7:11,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서 중요한 말은 좋은 것으로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이렇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구하는 대로 주리리라”. 구하는 자에게 구하는 대로 주어야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리리라“. 왜 주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구하는 대로 준다고 하지 않고 좋은 것으로 준다고 할까?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자주 우리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느니웨로 가라고 한 하나님께 요나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다시스로 보내주소서“. 그랬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고동소리를 울립니다. 언제나 환경이 따라준다고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요나는 기도한대로 갔지만 결국 바다에 빠졌습니다. 요나에게 좋은 것이 하나님께 좋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가나안땅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롯이 땅을 선택합니다. 눈을 들어 보았더니 소돔과 고모라땅이 비옥하고 애굽땅 같이 보입니다. ”하나님, 나를 소돔, 고모라로 보내 주옵소서“. 결국 롯이 갔는데 망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좋았으나 하나님 보기에는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기도할 때 내 생각, 내 욕심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정욕대로 구한다고 말합니다. 정욕은 욕심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가 기도대로 응답했다면 우리는 충분히 망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주로 우리 욕심에 따라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최고의 은혜는 우리가 기도한대로 응답받지 않은 은혜입니다. 가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볼 때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즉각 응답합니다. 하나님 볼 때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안주시거나 좋을 때까지 연기합니다. 그래서 가끔 안주시는 것이 좋은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기준은 하나님이 보실 때 좋으냐 안 좋으냐입니다. 그것도 지금 좋으냐 나중에 좋으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어떻게든 응답하십니다.

 

작년에 세월호에 이어 이번에 메르스로 우리가 고난당합니다. 우리는 메르스가 오기를 기도하지 않았고 메르스는 우리에게 분명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중에도 좋은 것은 있습니다. 메르스는 나쁘지만 그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을 때 좋은 것이 옵니다. 고난이 올 때 우리는 고난 자체를 바라보면 안됩니다. 고난 그 넘어에 있는 좋은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대학입학에 실패한 것은 분명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좋은 것은 대학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대학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사업이 안되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업 넘어에 분명 좋은 것이 있습니다. 언제나 좋은 것은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안되는 사업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분명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다 풍랑을 만났습니다. 풍랑만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이 풍랑넘어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하나님이 그에게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27:24, “네가 가이사앞에 서야 하겠고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문제가 생길 때 당면한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평생의 사명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기도할 때 나에게 좋은 응답을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에게 좋은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메르스로 인해 고통당하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13:5,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28:20,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으리라”. 1:9,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아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아멘.

 

 

 

 

 

 

 

 

 

 

 

 

 

 

 

 

 

7:7-11 2014.6.7.()

구하라. 좋은 것을 주시리라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기도는 간구하는 것입니다.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간구하는 기도의 특징은 시급성입니다.

 

기도는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믿음>

7:9-10, “너희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 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 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75: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아버지는 언제나 주고 싶고, 언제나 줄 수 있습니다.

 

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며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심이라”.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이 엠 바운즈,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가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신다”.

 

앤드류 머레이, “기도는 하나님이 내 안에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일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약속>

몸이 아플 때

103: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고난을 겪을 때

애가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기도를 들으실 때

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

34:9-10,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앞날에 근심이 있을 때

29:11,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자녀에게 문제가 있을 때

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어디로 가야 할지지 모를 때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토머스 크랜머, “기도는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얻게 하고, 우리에게 명한 것을 실행하게 하는 능력이다”.

 

<끈질김>

 

기도하면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십니다.

7:11,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가 받은 최고의 은혜는 우리가 기도한대로 응답받지 않은 은혜입니다.

 

13:5,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28:20,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으리라”.

1:9,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아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