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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7:20-26 위기를 극복하는 믿음 2015.6.28(일)

27:20-26 2015.6.28()

위기를 극복하는 믿음

메르스의 두려움이 아직도 여전한 가운데 이번 주 하나의 뉴스가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16년 동안 실종된 딸을 찾고 있는 송길용씨 이야기입니다(사진). 이 분은 잃어버린 딸 송혜희의 아버지입니다. 가끔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서울로 들어가면 서울 한남대교 북단부터 양재 나들목까지 프랑카드가 붙어 있습니다. “실종된 딸 송혜희 좀 찾아 주세요”(사진). 한 군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프랑카드를 보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잃어버린 딸을 찾는 부모는 누구인가? 참 대단하다“. 했는 데 그 아버지가 송길용씨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뉴스를 탄 것은 그가 메르스에감염되어 확진판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일만에 완쾌되었다는 것입니다.

 

송길용씨는 뇌경색과 허리 통증으로 지난 20일에서 28, 메르스 첫 환자가 발생한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러다 고열 증세가 나타나 느닷없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39번 환자로 평택굿모닝병원에 격리돼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그가 얼마나 그 딸을 헤맸는 지금까지 무려 200만장의 전단지를 뿌리고, 현수막도 전국 곳곳에 4000여장이나 걸었습니다. 그와 함께 트럭에 버너와 라면을 싣고 전국을 누비던 아내는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송씨도 4년 전 현수막을 걸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고 최근 뇌경색으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설상가상으로 메르스까지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약한 몸에 메르스가 걸렸는 데 그것을 이겨냈습니다. 어떻게 이겨냈을까?

 

저는 이번 메르스로 인해 전 국민이 위기속에 있지만 송길용씨를 통해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는 건강한 사람도 아닙니다. 이번에 사망한 분들의 대부분이 면역력이 약한 분들임을 생각할 때 그의 완쾌는 정상적인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에게 분명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나는 딸을 찾아야 한다. 내가 죽기전에 반드시 딸을 찾아야 한다”. 이 믿음이 메르스를 이기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메르스 뿐 아니라 쉴새없이 위기가 닥쳐오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얼마나 많은 위기들이 몰려 옵니까? 위기는 왜 오며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오늘 말씀에 그 위기를 만난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입니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고소를 당했고 그것을 바울이 시이저 황제에게 상소했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배를 탓는 데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여러분도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저도 오래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밧모섬으로 가기 위해 저녁에 배를 탓는 데 밤중에 배가 까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밤새 흔들립니다. 도저히 선실에 누어 있을 수 없어서 갑판으로 나왔는 데 시퍼런 파도가 배를 덮칠듯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이러다가 나도 죽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세월호에 탄 분들을 생각할 때 그래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도 그런 공포를 느꼇을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을 가끔 풍랑으로 표현합니다만 인생에는 세 가지 풍랑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초한 풍랑, 다른 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풍랑, 그리고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풍랑, 그러나 어떤 경우든 풍랑은 무섭습니다.

 

바울은 배를 탄 것은 이스라엘 가이사랴였습니다. 가이사랴는 항구였고 당시 로마 총독부가 있었습니다. 그때 탄 사람은 바울과 죄수 276, 그리고 로마의 백부장 율리오였습니다. 그들이 크레타섬에 까지 갈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크레타섬에서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는 가운데 마침 겨울도 다가오고 해서 배가 크레타 섬에서 겨울을 나고 내년 봄에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항해에 관한한 바울은 비전문가였습니다. 뿐아니라 바울은 죄수였습니다. 비전문가인데다 죄수인 바울의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그때 선장과 선주가 일어나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뵈닉스가 나오는 데 거기서 겨울을 나고 떠나자고 말하자 사람들이 선장의 말을 다 따랐습니다. 그리고 출발했는 데 이게 웬일입니까? 조용하던 바다에 풍랑이 일기 시작합니다. 유라굴라라는 유명한 풍랑이었습니다. 14, 15절을 보시겠습니까? 27:14-15, “얼마안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라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바울과 그 일행이 일생 일대의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도대체 이 위기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이겨냐야 합니까?

 

위기를 맞자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14절부터 20절을 보면 생생한 표현들이 나옵니다. “광풍이 크게 일어나더니”, “”쫓겨가다가“, ”간신히 거루를 잡아“, ”두려워 하여 그냥 쫓겨가더니“,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그리고 20, 결론입니다. 27: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희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 절망속에서 바울과 죄수 276명은 하루도 아니고 꼬박 14일을 고생했습니다.

 

왜 이런 고생을 한 것입니까? 기도하는 바울의 말보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항해전문가도 아니고 배전문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중해의 겨울바다는 춥습니다. 그 추운 바다에서 바다가 얼면 항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곧 크레타섬에 도착할텐데 거기 미항이 있다. 거기서 겨울을 나라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비전문가고 선장이 전문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27: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우리는 자주 놓치는 것이 이것입니다. 전문가가 언제나 문제 해결자인줄 압니다. 많은 사람이 지지하면 그것이 다 옳은지 압니다. 선장이 말하자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지하면 그것이 옳은지 압니다. 그러나 전문가의 지식보다 하나님의 한 마디가 언제나 옳습니다. 사람의 경험보다 기도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더 옳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지해도 하나님이 지지하지 않으면 그 의견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모세시대 가나안 정탐꾼중 10명은 가지 말자고 하고 2명만 가자고 했습니다. 만일 가지 말자는 사람이 많다고 가지 않았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까지 광야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지지하기 때문에 옳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까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삼성병원이 뚫렸습니다. 물론 삼성도 피해자입니다. 그러나 최고의 의술로도 막을 수 없는 질병이 있고 인간의 한계는 언제나 있습니다.

 

문제는 위기가 올 때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 풍랑이 치자 사람들이 하는 세 가지 반응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우왕좌왕, 둘째로 낙심, 그리고 마지막이 포기였습니다.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7:17,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그러니까 속수무책,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 저리 떠밀려 갔습니다. 그야말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낙심하기 시작했습니다. 20절 다시 볼까요? 27: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극단적인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절망에 빠지고 모든 희망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버리는 것은 희망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버리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18-19절입니다. 27:18-19,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이런 상황에서 바울과 276명은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휘망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느냐?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세 가지를 하셨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하나님이 첫 번째로 하신 것은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밤에 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27: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어떻습니까? “내 곁에 서서란 말이 너무 좋지 않습니까? 고난가운데 곁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이 곁에만 있다면 풍랑이면 어떻고 폭풍이면 어떻습니까?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에게 세 번이나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에서 전도라며 고난을 겪을 때 행18:9-10, “밤에 주께서 환상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 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공회에 붙잡혀 재판받을 때 행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나님이 바울에게 두려워 말라한 것은 그가 인생 풍랑가운데 있을 때라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일단 바울에게 한 것은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대책이 나오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두려워 하지 않은 것입니다.

 

두려움의 문제는 두려움의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두려움 자체만 두려워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대부분의 두려움은 소리만 큰 공포탄인 경우가 많습니다. 두려운 감정은 있으나 두려움의 실체는 없습니다. 하나 하나 바나나 벗기듯 벗겨보면 실체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윈 맥마너스라는 목사님이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의 실체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의 40퍼센트는 실제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30퍼센트는 두려워 해봐야 소용없는 과거의 일이랍니다. 12퍼센트는 쓸데없는 두려움이고, 10퍼센트는 지극히 사소한 두려움이랍니다. 정말로 두려워할 만한 것은 8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한번 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100%니까 어렵지 8% 정도 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실체없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체있는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믿음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먹는 문제 때문에 두려워 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을 아십니까?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 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여기서 주님은 우리의 두려움의 문제는 두려워 할 실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엄마, 아빠가 옆에 있는 데 두려워 할 아이가 있습니까? 세상을 창조하시고 소유한 주인이 있는 물질 때문에 두려워하는 분이 있습니까? 인간의 몸을 지으시고 고치시는 분이 있는 데 건강을 두려워 분이 있습니까? 영원한 천국을 믿는다면서 내일의 희망을 포기하고 사는 분이 있습니까? 두려움은 믿음없어서 생깁니다. 그래서 5세기 교부 어거스틴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두렵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어떤 사람이 꿈에 우물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밧줄을 붑잡았습니다. 이렇게 내려다 보니 우물물이 시퍼렇게 깊습니다. 무섭고 두려운데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밧줄을 놓아라”. 어떻게 합니까? 밧줄을 놓으면 떨어지는 데. 그래도 밧줄을 놓아라소리가 들려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놓았더니 뜻밖에 우물물은 깊지 않았습니다. 밧줄과 우물사이는 불과 30센티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물물이 깊어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두려운 것입니다. 믿고 줄을 놓으면 30센티밖에 안 됩니다. 산산이 부서질 만큼 깊은 바닥이란 인생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추락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밑바닥은 그렇게 깊지 않습니다. 이번 메르스도 그렇습니다. 메르스가 무섭다 무섭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더 많이 죽는 것은 자동차 사고와 흡연입니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죽는 사람이 결핵이 약 2500, 독감이 2500, 자동차 사고가 약 4000, 그리고 답배 흡연으로 죽는 사람이 3만명입니다. 우리가 무서워 해야 할 것은 정작 다른 데 있는 것입니다. 메르스로 인해 죽은 생명들이 아깝다면 흡연으로 인해 죽은 생명은 얼마나 더 아깝습니까? 흡연으로 인해 죽는 것은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 왜 메르스는 두려워 합니까?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두려워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네가 할 일이 있다

위기속에 있는 바울에게 하나님이 하신 두 번째 일이 있습니다. 27:24절입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이 주신 두 번째는 바울에게 사명을 확인시켜주는 일이었습니다. “바울, 네가 지금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고생하지만 너에게는 할 일이 있다. 내가 네가 위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네가 이 배에 탄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가이사를 만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사명은 내가 만난 풍랑보다 훨씬 큰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바울에 대한 비전을 바울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고난보다 크게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보다 더 큰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계획은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보다 훨씬 큽니다. 우리가 위기에 있을 때 우리가 이루어야 할 삶의 목적보다 우리가 당하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위기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위기를 당할 때 위기 자체만 보지 말고 그 위기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오신 컬럼비아 신학교의 브렌넨 브리드 교수는 미국에서 촉망받는 젊은 신학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월터 부르그만의 제자입니다. 월터 부르그만은 세계적인 구약학자입니다. 그가 쓴 글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제목은 길 건너편에서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하실지 알아냈다고 생각할 즈음 주님은 길 건너편에서 나타나 저희를 놀라게 하십니다. 약속으로 혹은 위협으로, 뒤에서 혹은 앞에서 주님은 저희에게 나타나십니다. 주님과 겨루려 할 때마다 주님은 저희를 이기십니다“(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부르그만은 우리가 당하는 순간 순간의 위기가 하나닙이 우리에게 주신 신비한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위기가 우리에게 오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일도 하나님의 목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위기를 당하면 당황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뜻이 있는가? 이 일은 하나님의 어떤 계획에서 나왔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23절을 보십시오. 27: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여기에 밤이란 말이 나옵니다. 왜 하필 하나님은 밤에 바울에게 나타났겠습니까? 밤은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그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남들은 다 죽겠다고 소리칠 때 바울은 부릎꿇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 어두운 밤 바다를 보십니까? 276명이나 되는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이유없이 죽어야 합니까? 저는 무엇입니까? 저도 아무 뜻 없이 이 바다에서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 도와 주옵소서. 살려주옵소서그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그의 곁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씀했습니다.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고난은 언제나 살아 있는 기도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고난을 이기는 것입니다. 안드류 머레이가 쓴 <나를 버려야 예수가 산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머레이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려고 한다면 한 손으로는 그 사람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다른 것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머레이의 이 말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 그냥 뛰어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 다 죽게 됩습니다. 뛰어들 때 무엇인가를 붑잡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기도는 한 손으로 세상을 향해 내밀고 다른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주는 만큼 내가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기도의 가장 큰 유익은 마술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고를 바꾸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생각, 내 상식으로 위기를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의 눈으로 위기를 보게 됩니다. 문제 자체보다는 문제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갖게 됩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우리가 왜 메르스가 생겼는가 하고 묻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메르스를 통해 우리에게 무슨 뜻이 있는가를 묻게 됩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메르스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면 메르스가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메르스 때문에 우리가 낙심합니다. 기도하면 메르스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메르스가 우리를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면 메르스가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메르스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기도하면 메르스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메르스가 재앙인 줄 압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메르스는 이 민족을 향한 새로운 희망입니다. 29:11절 말씀과 같습니다. “여호아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이니라”.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오늘의 문제를 이깁니다. 기도하면 이깁니다.

 

안심하라. 잘 되리라

풍랑의 위기속에 바울에게 나타난 하나님이 주신 세 번째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25절입니다. 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네게 말씀하신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위기속에 있는 바울에게 사명을 말씀하신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바울에게 약속했습니다. “안심하라. 모든 일이 내가 말한대로 잘 되리라”. 이 구절은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위기를 당할 때 항상 붙잡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합니다. 한번 말씀하면 변개함이 없습니다.

 

환경을 붙잡는 사람이 있고 약속을 붙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환경의 세계는 우리가 손으로 만지는 세계요 약속의 세계는 우리가 보는 하늘의 세계입니다. 믿음은 환경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약속을 붙잡습니다. 모세는 홍해바다의 환경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의 난공불락의 환경앞에서 그 성이 무너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언제나 환경보다 약속이 강합니다. 네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난 희아 엄마는 희아가 뱃속에 있을 때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희아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더 크게 믿었습니다. 결국 희아는 다섯 손가락을 가진 정상아도 할 수 없는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환경이 아니라 좋은 믿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성가중에 영국의 줄리안이 있습니다. 줄리안은 134212, 영국 노리치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시대는 아마도 인류 역사중 가장 나쁜 시대였습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민생이 파탄되고 흑사병으로 유럽의 3분의 1 인구가 죽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이 계속되었고 교황은 아비뇽에 유수당했습니다. 그위기의 시대에 쥴리안이 하니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너무 많은 고통과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그렇게 십수년을 기도했는 데 어느날 주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너는 나 하나로 만족하느냐?”. 줄리안이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주님이 이렇게 세 마디를 했습니다.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다. 모든 종류의 것은 다 잘 될 것이다”.

 

그 어려운 시대에도 주님이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면 잘 안될 시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전쟁으로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시대에도 잘 될 것이다했다면, 풍랑속에서 고생하는 바울일행에게 안심하라. 내 말한 대로 되리라했다면, 메르스로 인해 고난당하는 이 민족을 향햐서도 주님이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메르스는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위기속에서 고난받는 바울일행에게 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읍시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우리 민족은 할 일이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모든 일은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27:20-26 2015.6.28()

위기를 극복하는 믿음

송길용씨 이야기(사진).

 

실종된 딸 송혜희 좀 찾아 주세요”(사진).

 

27:14-15, “얼마안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라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27: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7: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27:17,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27: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7:18-19,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두려워 하지 말라

27: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18:9-10, “밤에 주께서 환상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 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 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거스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두렵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네가 할 일이 있다

27:24“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월터 부르그만, “길 건너편에서

주님이 어떻게 하실지 알아냈다고 생각할 즈음 주님은 길 건너편에서 나타나 저희를 놀라게 하십니다. 약속으로 혹은 위협으로, 뒤에서 혹은 앞에서 주님은 저희에게 나타나십니다. 주님과 겨루려 할 때마다 주님은 저희를 이기십니다“.

 

27: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기도는 한 손으로 세상을 향해 내밀고 다른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우리가 왜 메르스가 생겼는가 하고 묻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메르스를 통해 우리에게 무슨 뜻이 있는가를 묻습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메르스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면 메르스가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메르스 때문에 우리가 낙심합니다. 기도하면 메르스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메르스가 우리를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면 메르스가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메르스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기도하면 메르스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메르스가 재앙인 줄 압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메르스는 이 민족을 향한 새로운 희망입니다.

 

29:11, “여호아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이니라”.

 

안심하라. 잘 되리라

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네게 말씀하신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메시지 성경) “그러니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다. 모든 종류의 것은 다 잘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