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프랑수아 밀레 (Jean François Millet)가 살던 노르망디의 그레비르 농촌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면 들판의 새들도 둥지를 찾아 날아가고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들도 석양빛에 그 날개가 황홀한 모습으로 빛이 납니다. 바다와 들판을 같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성장한 밀레는 자연스럽게 전원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밀레의 그림 솜씨는 소년기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전에는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서야 잠깐 화실로 들어갔습니다. 도회지로 나가 그림 공부를 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가정형편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4세에 후원자의 도움으로 도회지에 나가 화가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원 풍경화는 상품이 안 된다고 하는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뒤로하고 줄곧 전원 풍경화만을 그렸습니다.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살림은 언제나 궁핍했습니다. 1859년“만종”을 그리던 당시 일기장에“날씨는 추운데 땔 나무는 없고 아내는 곧 해산을 하는데”라고 쓸 만큼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형편이었지만 밀레의 믿음만은 굳건했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하나님, 언젠가는 저의 그림을 전 세계 사람들이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으로 믿습니다.” 만종을 그린 지 8년 만에 만국박람회에서 밀레의 그림이 일등을 하자 프랑스 국민은 밀레를 외치며 흥분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밀레는 “제가 그린 그림으로 자식들을 굶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 그림이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종의 그림은 멀리 예배당에서 저녁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 밀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손을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아버지는 경건한 신앙으로 모자를 벗어 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여도 그 안에 진정한 감사와 믿음이 담기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것을 상징하는 그림이었습니다. 본서가 기록된 시기는 로마의 황제 그라우디오가 유대를 통치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당시 유대 땅 전역에 기근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역시 큰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바울은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전하였고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구제 운동을 전개한 교회가 바로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초심이 식어지자 헌금을 중단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어려움을 상기시키면서 헌금을 다시 하도록 디도와 믿음의 형제를 보내어 권면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10절에서 12절입니다.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헌금을 다시 하겠다는 약속을 실행하지 못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합니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하겠다는 마음의 결여가 문제인 것을 말했습니다. 감사는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십니까? ‘내가 지금 사는 것 주님의 크신 은혜요’를 같이 찬양합니다. “내가 지금 사는 것 주님의 크신 은혜요 주를 믿게 된 것은 더욱 크신 은혜라 넘치는 주의 사랑 놀라운 주의 은혜 날마다 경험하며 주께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 고초 많으나 이길 힘을 주시니 더욱 크신 은혜라 답답할 때 기도로 쓰러질 때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니 주여 감사합니다. 하늘에는 영광이 우리에겐 기쁨이 날로 더해 가는 것 더욱 크신 은혜라 쌓여진 사랑도 감당할 길 없어서 몸과 맘 드립니다 진정 감사합니다.” 바울의 감사는 어디서 비롯되었습니까? 밖이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처한 환경이나, 건강이나, 가정이나,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나, 성공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감사는 깊은 심령 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본문 15절의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로 인하여 감사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첫째로 넘치는 은혜로 말콤 엑스(Malcolm Little)는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하지만 젊어서 인생을 비관하였습니다. 거울에 비친 검은 피부를 보며 자신을 혐오했습니다. 세제로 검은 피부를 하루 종일 닦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다고 검은 피부가 희어집니까? 마음을 움츠리고 비관하며 집에 들어앉아 두문불출하는 그에게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자신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됩니다. 자신에게 무한한 값이 부여되었고 그 안에 소중한 하나님의 의미를 담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그가 고백한 말은 “Black is beautiful!”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셨으니 검은 피부도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깊이 있는 깨달음입니까? 그는 어깨에 날개를 단 것처럼 훨훨 날아다니듯 살아가며 자신의 사상을 발표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입으면 눈이 뜨이게 됩니다. 깊이 감추어졌던 소중한 뜻과 심오한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말콤 엑스가 밝은 생각과 밝은 마음으로 책을 써서 내놓자 소망을 잃고 살아가던 수많은 흑인들이 책을 통해 희망을 찾았습니다. 예수를 만나 넘치는 은혜에 감사하는 복된 인생이 되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하나님이 능하신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은혜의 빚을 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는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하나님과 모든 것을 누리시던 분이셨지만 스스로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는 삶을 살다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어찌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남을 도우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섬기며 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농사의 비유를 통해 성도들이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넘치게 주셨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씨 뿌린 농부에게 추수 때 다음에 뿌릴 수 있는 씨와 매일의 양식과 남을 만큼의 결실을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을 더욱 풍족하게 하시는 하나님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너그런 연보로 오스트리아가 낳은 20세기의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요 작곡가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는 본래 의학을 공부하고 미술에도 남다른 조예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공부한 동기는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음악은 대중화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는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한 곡들을 작곡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했던 음악가로도 유명한 그는 돈에 대해 독특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싼 출연료를 거부했고, 비싼 음식을 대접받는 것도 사양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여유분의 돈은 언제나 교회와 사회사업기관에 아낌없이 헌금하기를 즐겨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은 언제나 최소화했으며 드리는 일과 나누는 일에 힘썼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자신에게 잠시 맡겨준 것이지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존경을 받았습니다. 주는 자로서 살고자 했지만 실상은 더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대표적 작품 '사랑의 기쁨'이나 '사랑의 슬픔'을 들으면서 그가 행한 사랑의 실천을 언제나 기억하였다고 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하나님의 은혜는 너그러움으로 재생산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측량할 수 없기에 사랑을 받은 성도들은 따지지 말고 관대함을 베풀어야 합니다. 너그러운 연보는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그러움으로 풍성한 자에게 그 이상을 보장해 주시는 일에 결코 게을리 하지 않으십니다. 너그러움의 보상은 영원토록 있습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거나 체면상 마지못해 한다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기에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활에 구애받지 않고 힘에 넘치도록 너그럽게 드릴 때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여도 은혜로 말미암아 풍부해질 것입니다. 너그러운 연보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 이르게 하며 풍성한 감사는 넉넉한 지경에 반드시 이르게 할 것입니다. 셋째로 채우는 봉사로 미국 상원의회 원목 리챠드 하버슨 (Richard Halverson)의 이야기입니다. 워싱톤의 매릴랜드 장로교회의 목사로 목회할 때 한번은 워싱톤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워싱톤 상공을 비행할 무렵입니다. 그는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창가에 앉아 보려고 했는데 비행기가 원을 그리며 방향을 틀어버려 교회가 보일 듯 보일 듯 하다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백악관이 보이고, 병원이 보이고, 국방성이 보이고, 조지타운 대학이 보였습니다. 순간 느닷없이 이러한 건물에서 일하는 교회의 형제, 자매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갑자기 무릎을 치면서 “그래 맞아 나의 교회는 저 리버 로드 선상에 있는 교회만이 아니야. 이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흩어져 일하며 봉사하는 곳이 나의 교회가 있는 곳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예배하고 말씀으로 훈련 받고 흩어져 가정, 직장, 사업장에서 복음의 빛을 발하며 사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봉사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봉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권면합니다.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받은 바 은혜를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감사의 실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자 제자들이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제자들은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무엇인가 보답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발 씻음의 은혜를 받은 너희가 서로의 발을 씻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갚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감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물론 감사의 고백을 드리고, 감사의 예물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받은 은혜를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며 봉사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른 감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교사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선물을 주시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아이들이 머뭇거리자 힌트를 주었습니다.“끝이‘다’로 끝난다.”한 아이가 금방 알아차리고 대답했습니다.“감사합니다”또 다른 아이가 대답했습니다.“고맙습니다” 이 때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일어나 이렇게 답했습니다.“뭘 이런 걸 다...” 아이들은 선물을 받고 나면 온통 선물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잊어버리고 선물 뜯어보는 일에 정신을 쏟습니다. 선물이 기대 이상으로 좋으면 그제서야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선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며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힘들고 고달픈 처지와 형편만을 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보다 불평에 익숙하여 온 것은 아닙니까? 맥추감사절을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감사절을 통하여 은혜와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너그러운 연보로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봉사로 힘껏 채워 하나님께 더욱 더 감사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