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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마태복음(송수천)

(제7강)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 (마 4:1-11)

(제7강)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 (마 4:1-11)

 

  일본의 유명한 작가 삼포능자는 '빙점'을 써서 일약 일본의 대작가가 되었고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빙점을 써서 축복을 받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는 남편이 벌어다주는 월급으로는 살기가 힘들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며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냈습니다. 정성을 다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가게는 점점 불어났고, 나중에는 트럭으로 물건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바쁘셔 남편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옆집 구멍가게들이 안 된다고 아우성입니다.
  어느 날 삼포능자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기도하면서 우리가게가 너무 잘 된다는 것이 옆 가게를 망하게 한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우리만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나는 믿어요! 우리 가게를 줄입시다. 그리고 손님을 이웃가게에게 나누어줍시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인 것 같아요'
  드디어 그들은 일부러 물건을 줄이고 사람들을 옆 가게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가게가 한산해저 갑자기 시간이 남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남는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주제로 한 빙점을 썼습니다. 그 책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는 엄청난 부를 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축복의 사다리를 놓아주십니다. 신28:2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할/ ◀제목 소개!▶
 
  ▶1-2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본문은 '그때에'로 시작합니다. 그때가 어느 때입니까? 요한의 세례를 받고 성령이 예수님에게 임한 후 그 즉시를 말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가서 40일을 금식한 때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성령을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갈5:16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또한 롬8:14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본문 1절을 보면 예수님이 친히 시험을 받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보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이런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과 친히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것을 보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시험이 있다'는 증거를 나타내신 일입니다.
  ▶시험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시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고, 다른 하나는 마귀가 주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도키마죠'라 하는데 마치 입학시험과 같은 것으로 막상 시험을 치를 때는 괴롭고 쓰리지만 일단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시험을 치릅니다. 학교시험, 입학시험, 자격시험, 면허시험,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 그런데 만일 이러한 시험이 귀찮다고 해서 그것을 피해간다면 그 사람은 사회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의 시험은 마귀가 주는 시험으로서 '페이라조'라고 합니다. 이 마귀가 주는 시험은 사람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시험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큰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이 '페이라조' 시험은 다른 말로 '유혹'이라는 말인데, 마귀가 상대방을 넘어뜨리기 위한 '유혹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믿음을 테스트해 보십니다. 옛날 아브라함도 테스트해 보셨습니다. 백세에 얻은 아들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은 그를 넘어뜨리려는 유혹이 아니고 그 신앙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보고 더 큰복을 주시려는 시험입니다.
  어째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도키마조'의 시험이든지, '페이라조'의 시험이든지 모두 다 이기고 승리해야 합니다. /아멘!/
  ▶성경은 시험에 관한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벧전1: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또 약1:2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리고 12절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할/
  그런데 우리는 본문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고 악에 빠지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에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어떻게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인 것처럼 그분이 시험을 받으신 것도 약하시거나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시험을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실로 우리의 왕이요 인류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왕이요 공중권세 잡은 사단의 세력을 꺾고 승리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께서 겪으신 이 유혹은 아담이 겪었던 유혹이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유혹과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유혹을 어떻게 이기셨는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줌으로서 우리들은 이러한 시험에서 능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할/
  ▶그 다음에 나오는 본문에서 광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광야는 전설에 의하면 여리고의 서북쪽 산이라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석회암과 자갈이 많고 칼날 같은 바위가 노출되어 있고, 들짐승들이 살고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생산성으로 볼 때는 무용 지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유용 지입니다.
  하나님은 유대광야를 메마른 곳에 하나님의 사람을 불러내어 신앙의 수련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세례요한도, 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가졌고, 그곳에서 위대한 사명을 받은 곳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세상을 광야로 비유합니다. 왜 그렇게 비유하는가? 끊임없이 사단의 유혹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광야의 정반대의 장소가 있는데 그곳은 에덴동산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모든 것이 갖추어진 낙원입니다. 이런 최고의 환경의 에덴동산에서 첫째 아담은 마귀의 시험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최악의 환경인 광야에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성공과 실패는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신앙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역경이 축복의 기회가 되며 승리의 자원이 되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믿/
  ▶그 다음에 우리 주님이 사십 일 동안 금식하셨다고 했습니다. 왜 주님은 40일간 금식하셨을까요? 한마디로 우리 주님은 육체적인 고충을 겪으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40일 금식은 영적인 싸움을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받을 때, 40일을 금식했습니다. 사역의 준비입니다. 그래요! 모든 것은 준비한 만큼 이루어집니다. 특히 영적인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 금식하면 물론 육신 적으로 고통이 큽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강해집니다. 사58:6절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한 가지 더 깊게 생각해야할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적 훈련을 받을 때, 꼭 마귀가 찾아와서 우리를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일하십니다. 그런데 마귀도 역시 정확한 때에 일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시기는 환경 적으로 가장 불평할 수 있을 때, 가장 배고팠을 때입니다. 마귀는 정확한 시간을 잡아 유혹의 손길을 펼칩니다.
  여러분! 마귀를 얕보지 마십시오, 마귀는 우리 보다 훨씬 더 영악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과 허점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 화를 내야할지 너무 잘 알고 있다가 그 순간에 화나게 만듭니다. 또 쾌락을 내밀어 시험 들게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넘어질 수 있는 그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시험받기 좋은 때를 골라서 마귀는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여기 1절의 정확한 해석은 이렇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 가셨는데 광야에 가셔서 영적인 훈련을 하고 계실 때 마귀가 찾아와서 시험을 하였다'로 보면 정확합니다.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데서 우리는 마귀의 실존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믿음이 없는 크리스천은 마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마귀를 만화에서나 나오는 뿔 달린 괴물정도로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과학시대에 무슨 마귀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분명히 마귀가 있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계신 것처럼, 마귀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어떤 존재입니까? 타락한 천사 '루시퍼'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하나님께 대적하여 반항하다가 쫓겨난 천사입니다. 마귀는 세상과 공중에 살면서 아래로는 인간을 유혹하며 위로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도전하는 세력입니다.
  ▶성경을 보면 마귀는 여러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12:10절에 '고소자'로, 계9:11절에 '파괴자'로, 마4:3절에서는 '시험하는 자'로, 엡6:6절에 '악한 자'로, 마12:27절에서는 '바알세불, 곧 더러운 존재'로, 요14:30절에서 '이 세상의 임금'으로, 엡2:2절에서 '공중권세 잡은 자'로, 엡6:12절에서 '어두움에 세상 주관자'로, 계12장에서는 '용 혹은 옛 뱀'(아담을 꼬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까? 벧전5:8-9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귀합니다. /아멘!/    이제 우리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3절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먹는 문제로 시험'하고 있습니다.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곧 40일 동안 굶주린 예수님에서 물질문제, 경제문제로 시험을 한 것입니다. 첫 번째 아담도 이 문제의 시험을 당했습니다. 아담은 이 시험에서 넘어짐으로 인간은 종신토록 수고해야 먹을 수 있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창3:17절에서 기록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본능은 뭐니뭐니해도 식욕입니다. 3일 굶으면 도둑질 안 할 사람이 없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먹어야만 관광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풍경이 있어도, 배가 고프면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름휴가나 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먹을 것을 푸짐하게 미리 미리 챙겨 놓습니다.
  왜냐하면, 배가 불러야 넉넉한 마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식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며, 이 기본욕구가 채워질 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가장 정확한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마귀의 유혹에는 함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⑴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비난을 받게 되고,

  ⑵마귀의 말대로 돌로 떡을 만든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구원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할 성령의 능력을 마귀의 시험의 대상으로 이용당하는 결과가 되어 결국 마귀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꼴이 됩니다.

  ⑶마귀에게 순종하는 꼴이 됩니다.

  ⑷세상을 구원하러 온 자가 자기하나 이기지 못한 결과가 되고

  ⑸사람이란 빵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만들고 맙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세상에 빵이면 최고인 줄 압니다. 짐승들은 먹는 것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살아야 합니다. /아멘!/
  ▶본문에서 마귀가 접근하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지난 3장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 문이 열리고 비둘기 같이 성령이 임하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여기에 도전합니다.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기막히게 무서운 도전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흩어져 있는 돌들로 떡을 만들어서 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보라'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을 더 크게 음미해보면 '무엇 때문에 십자가를 져야 하느냐?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이 여기서 지금 당장 이 돌들을 명해서 떡으로 만들면 너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쉽고 간단하게 증명 할 수 있다'는 유혹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해서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마귀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과소평가하자는 것입니다.
  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왜 40일 동안 금식해야 하며 배고파야 하며, 이런 형편없는 광야에서 살아야 하느냐? 세례요한 같은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고 반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왜 그렇게 고생을 해야 하느냐? 너는 메시아가 아니냐?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인가 잘못하고 계시'라는 논리입니다.
  본문의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말은 마27:39-40절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처형 앞에서 고통을 받고 계실 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하면서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고 조롱한 사건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방해하고자 하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요5:30절에서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고 하셨고, 요6:38절에서는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비결이 무엇인가?

 

  ▶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⑴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아담의 실패는 마귀가 시험으로 접근할 때 자기 생각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이 말씀은 사8:3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⑵떡을 주님은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떡으로만' 우리의 물질적, 육체적, 필요를 우리 주님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물질로 복을 받는 것이 절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빌4:19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할/
  다만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물질을 지배하고 다스리십시오, 문제는 말씀 없이, 믿음 없이 먹고 입고하는 물질만 쫓아가는 영혼들이 불쌍한 것입니다. 약4:13-14절을 보세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또한 주님은 마6: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멘!/
  ▶본문에서 우리는 '살 것'이라는 구절에 즉 산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산다는 것이 떡으로만 사는 것 같으나 실상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모습이 있어야 이것이 살아있는 삶이며, 생명력 있는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때를 알고 사는 삶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눅7:31-32절에 보면 예수께서 당시의 때를 분별치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 세대의 사람들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울어야 할 때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남들은 다 춤추는데, 왜 울어야 합니까? 이렇게 세월이 좋은데'라고 말합니다. 다 회개해야 할 때라고 말씀하심에도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가고, 그러면서도 별 탈이 없이 잘 살고 있는데 왜 굳이 내 더러운 죄를 들먹여야 합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이젠 그만 돌아서야 할 때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우리의 대답은 한결 같이 '하나님 다들 이리로 가고 있는데요? 지금 한참 잘 나가고 있는데 왜 돌이켜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주님을 생각해 보세요. 주님께서는 시장하시지만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려서 곧 죽게 될지라도 결단코 먹지 말아야 할 때가 있고 먹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아무 생각 없이 시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들 같으면, 내가 돌을 떡으로 만들 능력이 있다면 떡이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아도 나를 과시하고 싶어 돌을 떡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할 수 있어도 결단코 해서는 안될 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은 다른 과실로 배를 채울 수 있는 풍족한 삶 속에서도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 좋아 보여도 휩쓸리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 같아도 거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육신이 피곤해도 깨어 있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를 분별하여 사는 지혜가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믿/
  또 우리가 산다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씀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사단은 수시로 우리를 어려운 상황으로 밀어 넣어 아주 힘겹게 만듭니다. 때론 가깝고 먼 사람을 통하여, 때론 작고 큰 사건들을 가지고 극도로 절망하게 하여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고, 극도로 분하게 하여 더 이상 이성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사람이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할/ 그렇습니다. 언제든, 어떠한 상황이든, 우리가 말씀을 기억하면 참을 수 있습니다, 때가 분별되고, 이길 수 있는 힘도 생깁니다. /아멘!/

 

  ▶5-6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명예에 대한 시험입니다. 지금 마귀는 시91:11-12절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전능자가 도와주신다는 시편의 말씀을 가지고 사단이 예수님께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자기 의도대로 골라서 일부분만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단들은 이런 수법으로 접근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성경 한 구절을 가지고 그것이 전부인양, 기존 교회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그들도 성경을 가지고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단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단의 특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일'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저런 사람이 이단이구나'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교회에 다닙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 저는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계속해서 추근거리고 기존 교회를 험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열의 아홉이 이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꾸준히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내 마음 밭에 새겨야 합니다. 사단은 명예심을 자극하며 성경을 들이대며 예수님을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또 다시 말씀으로 사단을 이기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시험은 '영웅이 되고자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군중이 바라보는 앞에서 뛰어내리라고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가면 사자를 보내어 네 발이 돌에 상하지 않게 한다고 유혹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행하시는 구원의 기적을 인간의 허영심이나, 공명심으로 이용하려는 수작입니다. 우리 주님은 수없이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어떤 인기나 흥분이나 대중의 바람을 얻기 위하여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기 위해서 병든 사람을 고쳐주기 위하여 죄인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조용히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베풀 때 '나가서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7절에서 예수님은 두 번째 시험에서도 신6:16절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이 말씀은 마치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네가 만일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군중들의 소리와도 같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거뜬히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하늘의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그 주변의 악한 무리들을 순식간에 멸하셨다면, 온 인류의 구세주는 되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십자가를 통하여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예수님은 물질의 유혹뿐만 아니라, 명예의 유혹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증명해 보일 테니 잘 보라'고 했을 텐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단호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믿/ 

  ▶8-9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존귀와 영광, 즉 종교적인 시험입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그렇습니다. 마귀는 한번 공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귀는 그 방법을 계속 바꿔서 공격해 옵니다. 이것이 마귀의 특징입니다. 또 '지극히 높으신 산'이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높은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높은 곳, 높은 산으로 유혹합니다.
  그 다음 마귀는 뿌리째 흔드는 유혹으로 접근합니다. '이 천하만국의 영광을 네게 주리라' 귀가 번쩍 뜨이는 유혹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거짓을 가지고 유혹합니다. 여러분! 천하만국이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사단은 시험을 걸어옵니다. 불법과 타협해서 권세와 영광을 얻으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절대 속지 마십시오, '말이 아니면 듣지도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도 말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드디어 사단은 그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국 사단이 노리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경배할 것을 예수께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 도전장을 낸 악한 영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유혹하며 자기에게 굴복시키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단이 노리는 최후의 목적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아멘!/
  '더 이상 하나님께 경배하지 말고, 나한테 절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천하만국과 모든 영광을 네게 주겠다'는 그럴듯한 제안입니다. 부귀영광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단에게 경배하는 조건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엎드렸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하나님이 주시는 부귀영광까지 덤으로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경배의 대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혹여 사단에게 경배하여 천하 만국과 부귀영광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사단이 주는 부귀영광은 결국, 패망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으로 우리의 신앙을 빼앗으려고 유혹해도,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을 따라가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크고 넓은 길을 원합니다. 쉽고 편한 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좁은 길보다는 크고 넓은 길을 찾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가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주일날도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것입니다. 심지어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조차도 이 길 앞에서는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머뭇머뭇 할 때가 있습니다. 한번에 일확천금을 꿈꾸며 기회가 닫는다면, 체면이고 명예고 심지어 믿음마저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얼른 세상이 가져다 주는 영광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경우가 있습니다. 잠시간의 세상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 때문에 믿음을 저버리는 자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길이 협착한 곳입니다. 때로는 외롭고 고독한 길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기에 우리는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우리의 주님도 이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비록 주님을 따르는 길이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길이지만, 이 길만이 부활의 영광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기에, 우리는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믿/아멘!/
  천하 만국과 부귀영광을 주겠다는 사단의 제안 앞에서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할/
  여러분, 중요한 사실은 사단의 유혹과 시험은 우리가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계속되어집니다.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이라도 더,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릴까? 매일 그 생각만 하는 것이 사단입니다. 시대가 악해지고 주님 오실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단의 유혹과 시험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깨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는 통로입니다. 나는 비록 약하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능히 사단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위급할 때,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할/
  ▶그리고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을 이기실 때 사용한 무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으로서 사단의 계략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공격용 무기입니다. 엡6:17절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연약한 우리가 사단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할/

 

  ▶10절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신6:13절의 인용입니다. 예수님의 승리의 비결은 단호한 거절과 마귀에 대한 대적입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예수님은 우물쭈물하지도, 타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 '사단아 물러가라'는 말은 마16:23절에도 나옵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더라'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은 들으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바오냐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나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최고의 대답에 대한 최고의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아마 이때 베드로는 우쭐했을 것입니다. 이때 마귀가 또 들어온 것입니다. 최고의 고백과 최고의 헌신을 했을 때 늘 조심하십시오. 베드로를 칭찬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하리라'는 비밀을 비로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당신은 절대로 죽을 수 없나이다.'라고 하자, 예수님의 말씀이 급작스럽게 변합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최대의 고백을 했던 베드로가 졸지에 사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약4:7절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고, 벧전5:8절에서도 '근신하라 깨어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끊임없이 우리를 휩쓸 때 우리는 대적해야 합니다. '사단아 내 안에서 물러갈지어다. 더럽고 추악한 귀신들아 내게서 떠나갈지어다,' /할/
  ▶예수께서 위의 세 가지 시험을 모두 이기신 비결은 한마디로 마귀가 말할 때 무조건 '아니오, No'라고 하셨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시오! No' '성전에서 뛰어 내리시오! No' '나에게 절하시오! No' 그렇습니다. Yes와 No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무조건 Yes요, 유혹 앞에서는 무조건 No 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멘!/

 

  ▶11절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이렇게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자 '천사가 수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시험을 통하여 얻어진 결론입니다. 히2:18절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