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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에게 본받을 점/삿 6:19-24

기드온에게 본받을 점/삿 6:19-24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이분은 사람에게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고, 정신분석이라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그 무의식의 세계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임상적으로도 수많은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의 문제를 찾아주었고, 그 문제를 해결할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심장 고동이 불규칙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당장 흡연을 중단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는 잠시 중단했지만 담배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턱뼈 암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고 마침내 아래턱을 완전히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도 계속되는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끊지 못해 그렇게 담배와의 싸움에서 참담하게 패한 채 인생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전쟁입니다. 자신과의 싸움, 죄와의 싸움, 적과의 싸움, 원수 마귀와의 싸움... 끝없는 전쟁의 연속입니다. 이런 전쟁에서 승리해야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전쟁을 치러낼 힘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전쟁의 본질을 알고, 적을 알고, 이길 수 있는 길을 안다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프로이드처럼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알아도 능력이 없으면 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문제에 대해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 모든 전쟁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하는 그 놀라운 능력이 우리를 승리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인생길에서 만나게 되는 그 많은 전쟁을 다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주시면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그것도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문제의 본질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가 문제의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느냐?”가 문제의 본질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 인생의 문제와 씨름해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의 힘으로만 우리 인생의 문제와 싸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기드온은 우리에게 주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인생의 문제와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살고 있을 때, 미디안 족속이 쳐들어와서 7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때로는 아말렉 족속과 동방 사람까지 합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했습니다. 토지 소산을 멸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양식을 남겨두지 않았고,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을 피해서 산으로 가서 굴과 산성을 만들어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저들이 쳐들어올 때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메뚜기 떼”같이 쳐들어왔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저들이 미디안에게 시달림을 받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큰 용사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셔서 미디안을 물리치게 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드온은 원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큰 용사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국가적 전쟁을 수행할 만한 영웅도 장수도 아니었습니다.

 

6:11을 보면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워서 몰래 숨어서 밀농사를 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밀 타작을 포도주 틀 속에 숨어서 할 수 밖에 없었던 소심하고 평범했던 농사꾼이었습니다.

 

6:15을 보면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자기는 감히 다른 사람들 앞에 서서 지도자로 일 할 그릇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드온은 정말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소심하고 겁이 많던 사람이었습니다. 지도자의 꿈도 꾸어본 일이 없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큰 용사가 되어 대 사사로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6:12을 보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6:16을 보면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주시면 그 무지막지한 수많은 미디안 군사들도 한 사람 상대하듯 쉽게 싸워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드온이 하나님께 계속해서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비결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샬롬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가 전해 준 하나님의 언약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표징을 구했습니다.

먼저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무교 전병과 고기 담은 소쿠리와 국을 담은 양푼을 준비해서 여호와의 사자에게 가져왔습니다. 그 때 여호와의 사자가 고기와 전병을 바위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고 명했습니다. 그대로 하고 지팡이로 그 위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솟아나 그 전병과 고기를 태웠습니다. 표징을 본 것입니다.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한 것이 너무 두려워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셨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24절을 보면 기드온이 거기에 여호와께 단을 쌓고 그 제단을 “여호와 샬롬”이라 불렀습니다.

 

기드온은 이 사건을 통해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됐습니다.

 

우선 기드온은 당시 다른 여느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됐습니다. 여기 기드온이 “여호와 샬롬”이라고 이름 붙인 제단을 쌓은 곳 상수리나무 아래는 저들이 우상을 섬기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 기드온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샬롬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가 쓴 [은혜의 전부]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목사님이 가난한 부인의 딱한 소식을 듣고 얼마의 돈을 마련해서 찾아갔습니다. 그 부인 집 문을 두드렸을 때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몇 차례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답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목사님은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온 그 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댁을 방문했는데 계시지 않더군요. 어디 다녀오셨나 보죠?” 부인이 물었습니다. “몇 시에 오셨었는데요?” “아마 정오 쯤일 겁니다.” “그 때 집에 있었는데 집 주인이 세를 받으러 온 줄 알고 일부러 인기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를 받으러 오시지 않습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려고 오십니다. 우리가 그 분을 담대하게 맞아들이면 우리는 그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오셔도 피하여 숨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참 좋은 관계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모든 선물을 남김 없이 받아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후 동산 나무 밑에 숨게 된 뒤에 더 이상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그 관계를 잘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샬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을 선물로 받고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룹바알

이제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첫 번째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종 열과 함께 밤중에 바알 제단을 무너뜨렸고, 아세라 상을 찍어버렸습니다. 아침에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주범이 기드온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

다.

 

사람들이 기드온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 때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지혜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기드온이 바알 신상을 무너뜨렸으니 바알이 직접 기드온과 맞서게 하자는 것입니다. 바알이 참 신이면 바알이 직접 그 제단을 무너뜨린 사람에게 저주를 내릴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드온에게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룹바알입니다.

 

여룹바알이란 글자 그대로 하면 “바알로 하여금 맞서게 하자”라는 뜻입니다.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을 부수며 바알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으니 당연히 바알이 기드온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맞선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바알의 저주가 내려서 농사를 망치게 되고 심할 경우 죽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바알에게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바알을 미워했고, 바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바알과 맞섰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바알과 싸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과 달리 바알은 침묵할 따름이었습니다. 기드온에 의해서 자기 제단이 무너지고 기드온에 의해 바알 종교가 훼파되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이 참 신이 아님을 깨닫게 됐습니다. 모두가 바알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기드온은 여룹바알로 더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삼상 12:11을 보면 사무엘은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후손들이 기드온의 여룹바알의 신앙 때문에 그 땅에 바알 제단이 무너지게 된 것을 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에는 독특한 풍습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신구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구간이란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 간을 가리킵니다. 바로 지금이 신구간 기간입니다. 이 신구간은 신구세관이 교체하는 과도기라서 모든 신들이 하늘에 올라가 버려 이 땅에는 귀신이 없는 기간이라고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옥황상제의 임명을 받아 내려왔던 신들은 임기가 끝나 하늘로 올라가고 새로 임명 받은 신은 아직 착임하지 않은 이른바 신간과 구간이 교체되는 공백 기간인 셈입니다.

 

바로 이 기간에 이사를 하거나 집을 고쳐도 아무런 탈이 없지만 평상시 이런 일을 했다가는 동티가 나고 액운을 면치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주도에는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이사 비용도 평소보다 훨씬 비싸고 전세 계약 기간도 아예 이 신구간에서 다음 신구간까지 정해 놓았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영적으로 무지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이런 일을 자행합니다. 귀신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이사를 하면 귀신에게 고사를 지내고, 집을 지을 때도 고사를 지냅니다. 심지어 영화를 새로 찍을 때도 고사를 지내고 야구 시즌을 개막하면서도 고사를 지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신을 두려워 그 앞에 제사를 지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룹바알 신앙은 바로 이런 것을 과감하게 떨쳐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풍습을 없애고 이런 미신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호와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그 능력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300 용사

드디어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미디안이 아말렉과 동방의 여러 족속과 연합하여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이 때 모인 군사 수가 무려 135000명 정도입니다.

 

기드온이 연통을 돌려 모은 이스라엘 군사의 수는 32000 정도입니다. 이것만해도 1/4 밖에 안 되는 어림없는 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수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은 수가 300명입니다. 이제 300명의 군사가 135000과 전쟁을 치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저들이 한 밤중에 기습 공격을 감행합니다. 한 손에 횃불을 항아리 속에 담아 들고, 다른 손에 나팔을 들고 적 진 깊숙이 침입했습니다. 갑자기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밝히니 적들이 자다가 놀라 나오며 서로 싸웠는데 이 때 자중지란으로 12만 명이 죽었고 15000이 도망쳤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입니다. 300명이 135000과 전쟁하겠다고 나선 것 이것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무기도 없이 나팔과 횃불만 들고 적진 깊숙이 침입해 들어가는 것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마치 골리앗 앞에 물맷돌 5개를 들고 선 다윗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 믿음이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옵니다.

 

사실 300명 군사는 전쟁 중에 한 일이 없습니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뿐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 뒤쫓아 오던 바로의 군사가 물속에 수장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입니다. 저 기드온 300명 용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내 인생의 문제 속으로 끌어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인생의 전쟁 속에 오셔서 싸우십니다. 우리는 그저 지켜보고만 있으면 됩니다.

 

기드온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여호와 샬롬의 교훈, 여룹바알의 교훈, 300명 용사의 교훈입니다. 우리가 이 교훈을 본받으면 우리 역시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