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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무릎을 꿇고 간구하노니-엡 3:14~19

 무릎을 꿇고 간구하노니-엡 3:14~19


 




허드슨 테일러 (James Hudson Taylor) 선교사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중국 대륙에 들어가 역사에 전무후무한 선교업적을 남겼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James Hudson Taylor) 선교사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중국 대륙에 들어가 역사에 전무후무한 선교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오직 기도하는 일에 전력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해가 떠오를 때면 언제든지 테일러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테일러 선교사를 찾아와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선교사님이 선교사역에 성공하실 수 있었던 비결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러자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오직 기도로 사람들을 움직였을 따름입니다.” 그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움직이시도록 하였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힘으로 사람을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자녀를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면서 허드슨 테일러는 이런 말로 우리에게 도전을 주었습니다. “어떤 반대를 만나더라도 그때마다 무릎의 힘으로 이기십시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고문과 박해로 인해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가누기도 어려웠지만 차가운 감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바울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기의 앞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는 친근한 사람과 마주보고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당시 유대인의 전통은 서서 기도하는 것이었으나 바울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는 간절한 마음과 복종을 나타내는 태도였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마주보는 심정으로 바울은 에베소의 교우들을 위하여 중보하며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유대인이었고 바리새인으로서 당대 최고의 랍비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로서 자신의 뜻을 펼치는데 당당했고 자신만만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부활의 예수를 만난 후 한없이 낮아졌습니다.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제나 이제나 무릎을 꿇고 간구할 때 귀를 기울이시며 응답하여 주십니다.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바울이 무릎을 꿇고 드린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릎 꿇고 드릴 간구는 어떠한 기도여야 합니까?
 

첫째로 속사람이 강건하도록

존 낙스(John Knox)가 스코틀랜드에서 복음을 전할 당시 통치자였던 메리 여왕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존 낙스는 서재에 들어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저에게 주십시오. 아니면, 저를 죽여 주십시오그가 기도하던 방의 창문으로 메리 여왕이 있는 궁전이 보였는데 그곳을 바라보며 같은 기도를 몇 시간씩 되풀이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리 여왕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여왕은 죽기 전에 존 낙스 한사람의 기도가 백만 대군보다 무섭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존 낙스의 무릎 꿇는 기도를 통해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마귀가 치를 떨고 두려워하는 기도입니다. 한번은 메리 여왕이 존 낙스가 설교하던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중풍에 걸린 낙스는 겨우 부축을 받고 강단에 서서 어눌한 말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메리는 설교 한 마디 한 마디에 반응을 하였습니다. 낙스가 죄를 지적하면 공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 되시기도 하지 않느냐며 매달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을 보였습니다. 비록 중풍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였지만 존 낙스는 세상을 호령하던 메리 여왕을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능력과 권위가 속사람에게 있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도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어야 합니다. 속 사람의 강건이 없으면 어떤 영향력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속 사람은 인간의 영, 마음, 인격을 가리키킵니다. 겉 사람과 대조를 이룹니다. 겉 사람은 육체에 속하여 세상적인 것을 즐거워하는 육적인 자아를 가리키는 반면에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영적 자아로 거듭난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속 사람은 성령을 통한 능력으로 강건해집니다. 여기의 성령은 오순절에 임한 은사적 성령이 아니라 내주하시어 역사하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나의 속 사람은 강건합니까? 아니면 약해져 있습니까? 겉 사람에 끌려 나약한 모습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 속 사람이 더욱 강건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허락하시사 속 사람이 날마다 강건하게 되도록 오로지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마음에 계시도록

브라이언 카바노프 (Brian Cavanaugh)꿈꾸는 씨앗이라는 저서에서 마음은 마치 정원과 같다고 말합니다. 정원에는 잡초가 나기도 하고 좋은 꽃이 자라기도 합니다. 그런데 잡초는 심지 아니하여도 잘 나고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지만 좋은 씨는 심어도 꽃이 잘 피지 않고 자라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잡초와 함께 있으면 무성해는 잡초의 기운으로 꽃은 시들시들 죽어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잡초를 제거하고 김을 매주어야만 양분을 흡수하여 꽃이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정원 역시 못된 생각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무성하게 잘 자랍니다. 그러나 좋은 생각이나 착한 마음은 아무리 보전하려고 애를 써도 어느 사이에 시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화를 내며 불평하고 시기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그리스도가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다스리지 못한다면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 붙들리는 마음이 되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예수가 계시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낭패와 실패를 당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의 무의미함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내주를 경험해야 합니다. 여기의 내주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항상 함께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곳이 바로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거처가 되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이 좋아 보이는 교인들에게 교훈합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예수께서 너희 안에 계신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하라.” 이 시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계십니까?” 마음은 인격의 중심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곳이기에 그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도록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사랑을 깨닫도록

프레드릭 레만(Frederick M. Lehman) 목사는 1948하나님의 사랑의 뒷이야기(History of the Song, The Love of God)’라는 책에서 304장 찬송시를 만든 배경을 이렇게 말합니다. “1917, 노스웨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시골교회에서 어렵게 목회를 하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치즈 공장에서 일하였는데 어느 날 부인이 도시락에 시를 적어 넣어주었다. 그 시는 11세기 랍비가 쓴 하다무트(Hadamut)라는 히브리시였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은 말로 다 할 수 없도다. 하늘 전체를 양피지로 삼고, 땅위의 모든 초목을 꺽어 펜을 삼아, 온 세상의 물을 다 잉크로 하여, 온 인류가 필기사가 되어 죽을 때까지 써도 다 쓸 수 없도다나는 이 시를 읽는 순간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다. 레몬상자에 걸터앉은 나는 벽에 기대어 몽당연필로 첫째 연과 둘째 연과 후렴을 작사하였고, 셋째 연은 히브리시를 운율에 맞추어 고쳤다. 그것이 바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찬송이 되었다.” 레만 목사는 이 시를 통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만큼 채워져 있습니까?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메마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메말라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더 풍성하신 사랑 안에 거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9절입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우리 지식의 한계로는 광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단순한 지식적인 이해가 아니라 인격적인 지식을 통해 깨달아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풍요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의 근거라고 말합니다. 무릎 꿇고 드리는 기도의 절정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충만함으로 성장하여, 그 사랑 가운데 뿌리를 박고 그 사랑 위에 터가 굳어지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깨닫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 비로소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욱 충만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 그리고 그 사랑을 깨닫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그 사랑 위에 세워졌습니까?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충만한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오로지 무릎을 꿇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목사가 건축을 하는 동안 극심한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그 때 친구 목사가 이런 말을 적어 보냈습니다. “그저 무릎만 꿇으소서!” 이 말에 감동한 목사는 눈물과 무릎으로 교회 건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저 무릎만 꿇으소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성도의 무릎 꿇음을 보시고 항상 기도를 들어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모비딕(Moby Dick)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선원들이 포경선을 타고 고래를 좇고 있습니다. 세찬 바다를 이기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젓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갑판에 앉아 조금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는 작살 잡이입니다. 그는 고래가 나타나면 결정적인 순간에 작살을 내려 꽂습니다. 작살 잡이는 비생산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때가 왔을 때 꼭 필요한 사람인 것입니다. 기도꾼은 누구입니까? 시간을 허비하는 비생산적인 사람이 아니라 결정적인 때에 가장 필요한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야기꾼이나 말쟁이가 아니라, 오로지 무릎을 꿇는 기도꾼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행복해 집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세이레 새벽 기도회를 통하여 강력한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변화된 사람만이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빌어야 합니다. 부디 속 사람의 강건을 위하여 무릎 꿇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도록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깨달아지도록 무릎을 꿇고 간구하여 넘치도록 채우시는 복을 얻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11-07 20: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