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본처의 이복형제들은 소년을 구박하였습니다. “너는 기생의 아들이지. 우리하고 근본이 다르다” 라며 조롱했습니다. 소년은 기생의 아들이라는 말이 듣기 싫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을까?” 늘 원망스러웠습니다. 나이가 들었을 즈음 어느 날, 양지바른 곳에서 하늘을 보고 있는데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어 보니 핏덩이였습니다. 진찰결과 폐병 3기였습니다. 그러나 소년을 치료해 줄 사람이 없고 치료비도 없었습니다. 소망이 없이 하루하루 죽어가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북치는 소리와 함께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라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소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들어 나가보았습니다. 그곳에는 구세군 전도대가 북을 치며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나 같은 기생의 아들도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럼요!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어요” “저, 그럼 예수 믿을래요.” 그 날부터 믿기 시작한 소년은 성경을 읽고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예배도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믿는다고 폐병이 나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차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폐병으로 죽을 거야! 그렇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자. 예수의 가르침대로 한번 살아 보자!” 짐을 리어카에 싣고 다리 밑 빈민굴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움막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몸을 파는 늙은 여인들, 넝마주이들, 폐병환자,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년은 그들과 함께 살면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진물을 닦아주고, 목욕시켜주고, 말씀도 전하고, 대화하고, 섬겼습니다. 소년은 죽지 않았습니다. 70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많은 책도 남겼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일본의 성자라고 불리는 가가와 도요히꼬 (賀川豊彦)입니다. 기생의 아들이었고 폐병 중기 환자였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믿었을 때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절망의 삶이 아니라 희망의 삶이 되었습니다. 좌절의 삶이 아니라 확신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가운데 큰 은혜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하나님 자녀 삼아주신 은혜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됨은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께 빚진 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흠과 티가 없는 모습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흠이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원망이 없어지는 삶 어떤 목사가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교인 댁에 기거하셨는데 한번은 그집 부부와 함께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먼저 가고, 목사는 부인 집사와 시간에 맞춰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여자집사가 옷을 차려입고 나왔는데 가슴에 멋진 목걸이가 번쩍번쩍했습니다. 그래서 농담한다고 던진 말이 “그 목걸이 꼭 진짜 같네요”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이 입에서 나간 순간, 실수했다 싶으셨습니다. “목사가 이런 농담하면 안 되는데...진짜 같다는 얘기는 그 목걸이가 가짜라는 얘기밖에 안 되는데.” 그런데 뜻밖에도 집사가 화를 안내고 웃었습니다. “목사님, 가짜인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남편이 사준 값진 보석은 외출할 때 안 한다고 했습니다. 진짜 보석은 집에 그냥 두고, 나갈 때 하는 것들은 다 가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진짜를 가진 자는 상처받지 않는구나.” 신앙생활하면서 주고받는 말에 상처 받는다면 아직 내가 진짜가 아닌 것입니다. 내 안에 보배이신 예수가 담겨 있음을 깨닫는다면 도대체 무슨 말이 상처를 줄 수 있겠습니까? 누구, 무엇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인 사실을 믿고 당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우선 강조된 것은 “모든 일”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 부딪치는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원망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단어이고, 시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원망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시비는 사람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원망과 시비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파멸시킵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낙담시킵니다. 하나님의 자녀 이름에 불명예를 입힙니다. 그러므로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원망과 시비를 피하여야 합니다. 원망이 없어지려면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십니다. 악에게 시험 받지 아니하시고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십니다. 무자비하거나 부당한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며 관심을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모든 원망과 시비가 없어지며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빛들로 나타나는 삶 ‘카이로의 넝마주이’라고 불리는 엠마뉘엘 수녀(soeur Emmanuelle)가 81세부터 96세가 되기까지 썼던 책 ‘아듀’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어느 날 엠마뉘엘은 중증 정신 장애자들을 보호하고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한 여성의 안내로 병원을 둘러보다가 도무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얼굴의 한 남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흉측했고 비뚤어진 입에서는 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여성 안내자는 두 팔을 덜렁거리고 있는 그 환자의 긴 몸뚱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두 팔로 안아 일으켜 가슴에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깨 위에 간신히 걸쳐 있는 그 남자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바싹 갖다 대고 환한 미소를 보냈습니다. 어느 순간 초점 없이 두리번거리던 남자의 두 눈동자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입에서 새어나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뭔가 생명의 섬광 같은 것이 그의 둔한 얼굴선 위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안내자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어머!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지금 느꼈나 봐요!” 그녀는 품에 안은 남자의 몸을 자신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해주면서 오랫동안 그와 시선을 맞추었습니다. 남자의 표정이 차츰 밝아졌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아주 부드럽게 속삭였습니다. “세상에! 이제 잘생긴 귀공자가 되었네!” 잠시 후 그 안내자는 엠마뉘엘에게 말했습니다. “난 내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이 없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모두가 내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입을 벌리고 있는 남자는 침이 아닌 빛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엠마뉘엘은 그 광경은 세상을 초월한 장면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장면이 오랫동안 엠마뉘엘의 삶을 비추는 빛이 된 것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존재 때문에 어두움에 감추어진 일들이 드러나야 합니다. 삶이 엉망이고 비도덕적임이 폭로되어야 합니다. 뻔뻔스러움과 교만함을 나타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세대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세상의 추한 모습을 폭로시키고 책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말과 악의 일들을 경책하고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빛을 나타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당하면서도 빛을 발하는 자가 되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인 하나님의 자녀가 행해야 할 일들입니다. 세상이 낮처럼 밝다면 빛이 필요 없습니다. 어둡기 때문에 빛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밤하늘에 비취는 별들처럼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희생을 기뻐하는 삶 1920년대 미국 사회는 살인과 약탈의 갱단 문화로 암흑시대를 살던 시대였습니다. 저녁마다 갱들이 총을 들고 나오는데 사회와 거리가 온전하겠습니까? 은행들은 전부 문을 닫았습니다. 이러한 처지를 바라보던 한 독실한 크리스천이 있었습니다. 제네럴 모타스의 존 제이콥 래스콥(John Jacob Raskob)이 그 사람입니다. 그가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청교도의 땅이 죽음의 땅으로 변했습니까? 죽어가는 나라에 빛을 보여주옵소서.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희망을 넣어주는 빛을 보게 하옵소서.” 그는 뉴욕 중심가에 희망의 탑을 건설하기로 결심하고 그 날부터 그 일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맨해튼 중심가에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의 탑을 세울 것을 계획한 것입니다. 그는 기초를 놓고 1층, 2층을 건축합니다. 그리고 설명합니다. “여러분, 이 탑은 희망의 탑니다. 어두운 뉴욕의 빛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꿈이 될 것입니다. 투자해 주십시오.” 설득력이 있는 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습니다. 10층이 올라가고 20층이 되고 40층이 되었습니다. 뉴욕 시민들은 날마다 올라가는 빌딩을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건물은 70층이 되고 90층이 되더니 마침내 세계 건축물 가운데 가장 높은 381m, 102층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으로 세워졌습니다. 메이플라워호 최초 승선인원이 102명이라서 102층으로 설계하였다고 합니다. 빌딩이 완공되던 1931년 3월 17일, 뉴욕 시민들이 그 앞에 모였습니다. “이것은 뉴욕의 희망이요 미국의 꿈이다.” 그 날부터 뉴욕은 세계의 관심거리가 되고 미국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뉴욕 맨해튼이 세계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나 때문에 미국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면 나는 전제와 같이 되어도 좋습니다”라는 래스콥의 소원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바울은 자신의 몸을 전제로, 제물의 기름으로 뿌려진다 하더라도 기뻐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이웃을 위해 자신의 피까지도 바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을 순교적 섬김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웃을 위해 자신을 관제로 드리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면합니다. 주님이 보여 주신 것처럼 자신을 내어 주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주인이라면, 그리스도처럼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기뻐한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쁨에는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웃을 위해 자기를 내어놓는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섬김의 희생적 자세가 바울의 기쁨이었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기쁨이었습니다. 욕심과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느끼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세상의 기쁨을 원하십니까? 더 가진다고 되는 세속적 기쁨이 아니라, 주고 섬기는데서 누릴 수 있는 영적 기쁨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 주님처럼 이웃을 위해 내어주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머지않아 피를 흘리며 순교하게 될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피가, 그리고 그 피로 마감하는 삶이 제물과 함께 부어지는 포도주처럼 하나님께 바쳐지는 향기로운 전제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캘커타에서 평생을 섬겼던 마더 테레사(Madre Teresa) 수녀의 말을 기억하십니까? “남들에게 섬김을 받고 대접을 받을 때, 거기에는 인간적인 기쁨이 있다. 그러나 내가 이웃을 섬길 때, 거기에는 신적인 기쁨이 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고 대접해 줄 때는 인간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섬길 때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기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죽기까지 섬기기 위해 자신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주님을 본받아 섬기는 기쁨을 가지시지 않으렵니까?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다툼과 시비를 버리고 순종하며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원망이 없어져야 합니다. 세상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의 기쁨을 통하여 하나님의 흠이 없고 순전한 자녀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