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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요 21:15~23 이름 김광일목사

시카고 무디 성경학교의 교장이었던 조지 스위팅 (George Sweeting)목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설교를 많이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삶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스위팅 목사는 주디(judy)라는 여자에 대해 말합니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랑받고 싶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가 넷이나 생겼으나 여전히 만족스러운 사랑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옆집 아주머니가 주디를 성경공부에 초대했습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 사랑에 대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평생 동안 찾았던 사랑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주신 분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사랑이 무엇인지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새로 찾은 사랑에 기쁨이 넘쳤으나 하나님을 떠나 있는 남편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신시킬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그녀에게 지혜를 주었습니다. 남편한테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말해 줄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기 삶에 바꿔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걸핏하면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했던 그녀에게 성령께서 혀를 절제하는 법과 말할 때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집안일에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식사 준비를 세심하게 했고, 몸도 가꾸어 날씬해졌습니다. 남편이 출근하면 잠을 잤으나 그 뒤로는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시간을 이용해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주디를 녹이고 변화시키자, 남편과 아이들을 향한 사랑도 저절로 표현이 되었고 차츰 가정 전체를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문밖으로 나섰다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주디를 안아주었습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얼마 후 주디가 다섯 살 난 아이를 침대에 누이려는데 아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나는 우리 집이 참 좋아. 예수님을 사랑하게 돼서 그런 것 같아. 그치?” 이 말을 듣고 주디는 감격하여 울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줄 가족들에게 보여진 것이 너무도 기뻤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이 질문으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자신은 그동안 예수를 사랑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기를 위해 예수를 따랐다는 사실을, 자신의 욕심에 매달리면서 예수를 좇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를 향한 진실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베드로의 태도가 변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고백이 아닌 실천입니다. 과거에 했던 것, 앞으로 할 것이 아니라 현재 해야 하는 행동들입니다. 실천이 없는 사랑의 말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면서부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무너졌습니다. 감히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대답한 주님을 사랑하는 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를 표현한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다함께 부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시몬아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사랑의 고백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동기로 하는 일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입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즉 사랑의 실천을 나타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줄에 대한 모습을 베드로는 어떻게 보였습니까?

첫째로 사명을 감당하리라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중 1위로 선정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Oprah Gail Winfrey)의 이야기입니다. 빈민가의 흑인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9세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14세 때 미혼모가 되었습니다. 마약 복용으로 수감되기도 하면서 혼혈아로 인한 아픔 속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삶이 달라졌습니다. 구약의 모세가 자신의 모델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과거가 미래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서 가난도, 부유도, 꿈도, 근심도 부딪쳐오는 모든 것들을 사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명이다라는 자서전에서 그녀는 인생철학을 이렇게 말합니다.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보다 더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보다 더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짐이나 문제가 아니라 사명이다.” 윈프리는 단지 사명에 충성하였더니 오늘의 그녀가 되었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주님 사랑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인생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외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의 시몬을 향한 첫 번째 말씀입니다. 사랑의 고백을 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양을 먹이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능력으로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양을 맡기시면서 요구하신 것은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만 주님은 사람이 아닌 사랑을 묻고 계십니다. 사랑이 있어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질문으로 사랑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양들을 사랑하되 자신을 소모하기까지 양을 치라는 사명이었습니다. 사명 감당하는 능력은 주님 사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오로지 사명을 지배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순간부터 사명을 바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고난을 극복하리라

김일권 목사의 일어나라 내 딸아라는 책은 뇌성마미 딸을 일으켜 세운 감동적 수기입니다. 태어난 지 3일 만에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각오하라는 의료진의 말에 그는 좌절하지 않고 기도로 마음을 다졌습니다. 하지만 장애아를 갖게 된 부모들의 고통처럼 김목사 부부에게도 문제가 생겼고, 교인들은 목회자가 뇌성마비 딸을 낳았다고 정죄어린 시선을 보내어 교회마저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사랑으로 극복하였습니다. 굳어지는 딸의 근육을 사랑의 손길로 풀어주었습니다. 선진 물리치료법도 배우고 발끝의 촉감을 느끼게 해주려고 자갈길을 걸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에 수백 번씩 언어 훈련을 시켜 다섯 살 되던 해 드디어 엄마, 아빠를 부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도하며 우리는 승이를 사랑한다. 예수님은 승이를 더욱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밤마다 딸의 상상력과 지능개발을 위하여 동화를 들려주었습니다. 결국 다소 장애는 남았지만 정상에 가깝게 딸은 성장했으며, 의료진 모두가 기적이라고 환호하였습니다. 그 후 김일권 목사는 동화 작가로 데뷔하였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특수교육연구소를 설립하여 불행에 처한 뇌성마비, 자폐증, 정신지체, 다운증후군, 학습장애 등의 아이와 부모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남들은 애물단지로 여길지 몰라도 승이는 태어날 때부터 보물단지였고 결국 내게 보물을 안겨준 셈입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다소 굼뜬 동작과 학업 부진으로 딸이 힘겨워할 때 가슴이 쓰라렸지만 주님을 사랑하기에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부활하신 주님의 시몬을 향한 두 번째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앞으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베드로는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기에 고난 앞에서 비굴하지 아니하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저절로 부흥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역으로 인한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사역의 위치에 따라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난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난을 극복할 것입니까?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고난을 극복할 수 없다면 주님을 사랑하는 일부터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주님의 사랑을 얼마나 받았는지 계수부터 하여야 합니다. 주님과 사랑을 확인할 때 비로소 고난을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끝까지 따라가리라

파키스탄의 샤바즈 바티(Shahbaz Bhatti) 장관이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201132일 암살을 당했습니다. 그는 소수 민족부 수장으로서 신성 모독법 폐지 등 소수민족과 종교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앞장서 왔었습니다. 그리고 내각 내의 유일한 기독교 신자로서 이슬람 과격 세력으로부터 여러 차례 살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피격당하기 얼마 전 미국 LA의 한 한인교회를 방문해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최초의 그리스도인 장관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하심과 핍박 받는 파키스탄의 기독교인들 그리고 형제들의 기도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장관으로 세우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이라고 믿습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도인을 예수를 따르는 사람” (Follower of Jesus)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죽기 전 에 작성한 비디오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독교인과 소수 종교인들의 권리를 방어하기 위해 활동하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샤바즈 바티, 그는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는 참된 제자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부활하신 주님의 시몬을 향한 세 번째 말씀입니다. 사랑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이나 지식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지식적으로 알았고, 메시야로 깨달아 아는 은혜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깨닫고 고백하는 차원으로는 결코 주님의 뒤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더욱 주님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베드로에게 묻는 사랑의 여부는 과거에 네가 나를 사랑했느냐라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를 사랑할 것이냐고 묻는 미래적 사랑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확인하는 사랑은 현재적 사랑입니다. 그 현재적 사랑만이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게 만드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한완상(韓完相) 교수는 사회학 학자이자 기독교인으로서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담을 하면서 사회학책보다 신학책을 더 많이 읽었던 감동적 이유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수는 말을 10을 하셨다면 삶으로 100 이상을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어느 종교 창시자가 자신이 말한 것보다 삶으로 더 많은 것을 실천한 사람이 있습니까? 대체적으로 말은 100을 하면서 실천은 10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죽이면서까지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사랑을 가르치기보다 사랑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를 좋아하고 그 분을 나의 주님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에게 사랑은 말이 아닌 실천이었습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닌 동사입니다. 사랑의 말이 많은 곳이 행복한 곳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 이뤄지는 곳이 행복한 곳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주님의 사랑을 무한히 받은 자들입니다. 과거에도 현재도 앞으로도 사랑을 넘치게 받을 자입니다. 그 사랑을 통하여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 사랑하는 줄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부디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으로 그 사랑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잘 극복하여 주님 사랑하는 줄로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주를 따라가는 모습이 되어 주님 사랑하는 줄이 나타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04-02 17:3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