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미시시피 강의 추억(Life on th Mississippi)’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부자가 미시시피 강에 기선을 띄우기 위해 배를 만들게 했습니다. 돈을 많이 들여 아주 훌륭한 배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뱃고동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배가 고동을 울릴 때면 수마일 밖에서도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뱃고동을 울릴 때마다 배는 전혀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장이 기관장에게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뱃고동이 울릴 때마다 배의 모든 에너지가 기적을 울리는 데 쓰여지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울릴 때마다 석탄을 넣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이 배는 배의 기능보다 겉치레에 신경을 쓴 나머지 온전한 배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큰 건물이나 아름다운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사명과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큰 기선이 가는데 기적 소리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계속 움직여 가야 합니다. 교회는 주어진 본연의 역할을 감당할 때 자랑스러운 교회가 됩니다.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고 겉치레만 요란하고 쓸모가 없는 교회라면 자랑이기보다 부끄러운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으려는 교회였습니다. 예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예수께서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을 보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교회에 본이 되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믿는 자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모름지기 교회는 믿음과 헌신에 있어서 본을 보이며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전도여행 중에 세운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본래 규모도 작고 내세울 것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바울뿐 아니라 모든 동역자에게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소문이 퍼질 만큼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 안에 자랑스러운 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러운 교인이 결국 자랑스러운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39년 전에 이곳에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시고 세우셨습니다. 이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소문이 나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39년이 지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었습니까? 자랑스러운 교인입니까? 본문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믿음이 더욱 자라나야 영국의 찰스 스펄젼(Charles H. Spurgeon)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다가 기차표와 함께 지갑을 분실했습니다. 이 모습을 맞은편 좌석에서 보던 신사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동정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스펄젼 목사는 “저는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는 목사인데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터이니 걱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후 차표를 검사하던 차장이 왔을 때 그 신사가 몇 마디하자 차장은 정중하게 인사하더니 그냥 지나갔습니다. 스펄젼 목사는 신비스럽고도 절묘한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옆의 신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철도국장인데요, 아까 목사님께서 차표와 지갑을 잃어버리시고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터이니 걱정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차장을 돌려보냈으니, 목적지까지 편안히 가십시오.” 그 날 놀라운 체험을 한 스펄전 목사의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적인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 것이다. 계산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될까 안 될까를 계산하면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지만, 되든 안 되든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면 믿음이 역사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심하는 믿음을 버리고 더욱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여 가는데도 하나님을 자기 안에 가두고 있으면 믿음은 더 자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는 성도가 많은 교회가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은 소문이 각 처에 퍼질 정도의 믿음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 사도의 2차 전도여행 중에 설립되어진 교회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3주 정도밖에 체류하지 못한 채 떠나야 했기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매우 약한 모습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이 더욱 자랐다는 소식이 바울에게 들려 왔습니다. 믿음의 차이는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얼마만큼 신뢰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전적으로 주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그 능력을 힘입느냐, 아니면 자신이나 다른 방법을 더 신뢰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이 크게 자랐습니다. 교회는 크게 자라지는 못했으나 믿음이 크게 자라났습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그 믿음이 커갔습니다. 온갖 어려움에도 교인들이 굴복하지 않고 예수를 더욱 굳게 믿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크게 자라나서 더 큰 믿음으로 자라는 교회가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도 믿음의 역사로 인하여 모범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자라지 못했어도 믿음은 더욱 더 자라야 합니다.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그 믿음이 커져갔던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이 믿음이 날로 자라가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온갖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굳게 믿음으로 세워지는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랑하는 교회로 세워가야 합니다. 둘째로 사랑이 더욱 풍성해야 오레곤주 포틀랜드에 뉴 호프 커뮤니티(New Hope Community)교회가 있습니다. 교회에 돈나(Donna)라는 여자 교인이 간이 나빠서 고생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아들 하나밖에 없는 가난한 이혼모였습니다. 보험이 없어 진단조차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여선교회 회원들이 모금을 해서 검사를 받게 해주었습니다. 진단 결과는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의사들은 6주안에 간 이식수술을 받지 못하면 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텍사스에 있는 병원 전문의를 추천하면서 비용은 14만 달러정도 들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가난한 그녀가 수술 받을 가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여선교회로부터 소식을 들은 데일 갤러웨이(Dale Galloway) 목사는 밤잠을 설치며 기도했습니다. 당시 교회 증축으로 4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지만 그는 교회가 도와야 한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위원회를 구성하고 “나의 엄마를 살려주세요(Save My Mom)”이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모금에 들어갔습니다. 놀랍게도 첫 날에 6만 달러가 모아졌습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신문과 TV에 보도 되었습니다. 사랑의 손길이 사방에서 모여졌습니다. 불과 일주일 만에 22만 달러가 모금되었습니다. 죽어가던 한 생명과 한 아이의 엄마를 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감당한 그 교회야말로 사랑이 풍성한 자랑스러운 교회가 아닙니까? 본문 3절입니다.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사랑은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이 사랑은 목숨도 주기를 기뻐하는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십자가의 대속물로 내어주신 그 사랑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의 사랑이 풍성해졌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행하였습니다. 자랑스러운 교회는 사랑이 더욱 넘치는 교회입니다. 사랑이 풍성해지는 교회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사랑의 수고로 말미암아 자랑스러운 교회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랑은 교회가 가진 것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물질이 있으면 가치 있는 물질이 되어 교회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꾼이 되어 교회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약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자랑스러운 교회는 내가 먼저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면, 내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어 우리가 자랑하는 교회로 세워나가야 합니다. 셋째로 인내로 더욱 견디어야 16세기 이태리 조각가 미켈란젤로(Buonarroti Michelangelo)는 성경을 읽고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가까운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켈란젤로보다도 먼저 화가로 출세하고 명성을 얻게 되었으면서도 질투에 사로잡혀 미켈란젤로를 궁지에 몰아넣을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미켈란젤로 때문에 내 명성이 떨어질 거야. 저 친구를 매장시켜버려야 해.” 친구는 나쁜 마음을 먹고 미켈란젤로를 교황에게 추천하여 시스틴 성당에 천정화를 그리도록 했습니다. 천정화는 시간도 많이 걸릴 뿐 아니라,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실패하여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하고 절망하게 될 것을 계산하고 그런 일을 주선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미켈란젤로는 그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천정에 거꾸로 매달려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1년, 2년, 3년, 4년 동안 페인트를 온 몸에 뒤집어쓰면서 갖은 고생을 다했습니다. 4년 후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교황도 놀라고 그 친구도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 놀랐습니다. 불후의 대작이 천정에 드러났습니다. 미켈란젤로를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받게 만들어 준 작품은, 친구의 음모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 음모가 미켈란젤로를 성공케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하며 우리는 인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환난과 핍박 중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돌아서지도 않았습니다. 소망 중에 인내를 가졌습니다. 시련을 더욱 견디는 교회가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고난을 당해도 인내로 견디는 교인들이 있을 때 자랑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버티지 못하고 포기해도 안 됩니다.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 결코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면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싸워서 이기는 교회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견디며 인내하는 교회가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 어떤 사람이 드넓은 태평양 한가운데서 난파를 당해 황량한 무인도에서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멀리 지나가는 배를 보게 되었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손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였습니다. 결국 그를 발견한 배가 섬을 향해 다가왔습니다. 배에서 내린 선장은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질문을 했습니다. “저기 오두막이 왜 세 채나 됩니까?” “저쪽에 있는 건, 저의 집이지요.” “그럼 그 옆에 있는 건요?” “그건 제가 다니는 교회랍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옆에 있는 건요?” “아, 그건 전에 다니던 교회죠.” 여러분의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자랑하는 교회입니까? 아니면 자랑을 꺼리는 교회입니까? 자기를 내세우며 자랑하는 교회는 결코 자랑스러운 교회가 아닙니다. 자기를 버리고 예수 중심이 되어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교회가 자랑하는 교회입니다. 자랑하는 교회는 예수를 자랑하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진실한 믿음의 사람은 자기가 속한 교회를 혹평하지 아니하고 교회를 자랑하는 자입니다. 교회를 자랑하고 예수를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예수께서 영광 받으시는 교회가 될 때 비로소 자랑스러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창립 39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는 믿음이 더욱 자라는 교회가 되어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더욱 풍성해짐으로 자랑스러운 교회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인내하며 견디어 우리가 자랑하는 교회로 굳건하게 세워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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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3 21:4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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