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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숙(3) (행8:29-40) 2015.10.18(일)성경: 거룩한 독서

영적성숙(3) (8:29-40) 2015.10.18()

 

성경: 거룩한 독서

가을을 가르켜 독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등화가친의 계절이라고도 합니다. 독서하기 좋은 때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책을 읽으십니까? 초대교회 한 수도원에 강도가 들어왔습니다. 강도는 수도원 원장을 꽁꽁 묶은 채 이것 저것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막 방문을 나서려고 하는 데 수도원장이 말했습니다. “잠깐, 한 가지 안 가져간 것이 있소”. 강도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때 원장이 눈으로 책상을 가리켰습니다. 그 위에는 성경 한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강도는 성경을 자루에 넣고 도망갔습니다.

 

그 뒤 10, 한 사람이 수도원에 들어왔습니다. 그가 원장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원장님은 저를 몰라 보시겠지요? 저는 10년전 이곳에 와서 물건을 훔친 강도입니다. 그 뒤 저는 계속 나쁜 짓만 하다가 감옥에 잡혀 갔죠. 그런데 감옥에서 원장님이 준 성경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책을 읽고 회개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저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무엇이 강도를 변화시켰습니까? 성경입니다.

 

제가 심방할 때마다 가정에 주는 선물이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심방가서 간단히 설교하고 성경을 써 줍니다. 오래전에 어떤 가정을 심방했는 데 연세가 든 권사님이 말합니다. “목사님, 오늘 말씀을 잘 기억하도록 써 주세요”. 그때부터 제가 말씀카드를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가정을 심방하면 두 장, 세 장, 어떤 집은 일곱 장, 여덞 장까지 있습니다. 그 말씀카드를 벽이나 찬장, 그리고 어떤 집은 아예 코팅해서 걸어놓았습니다(사진1). 얼마나 보기 좋은지 그 말씀을 붑잡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손미영 권사님이 계십니다. 병원에 계시는 데 면역력이 약해서 자주 갈 수 없습니다. 장로님이 그럽니다. “목사님, 손권사 상태가 안 좋아 직접 오시지 말고 매일 말씀 한 구절씩만 보내 주세요”.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매일 아침 그 말씀을 읽어주면 손권사가 귀를 쫑끗하고 듣는 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힘으로 회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모든 신앙의 힘과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길의 빛이요 우리 삶의 좌표이며 우리 생명의 양식임을 믿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능력있는지를 가르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두 사람의 만남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빌립과 에티오피아에서 내시의 만남입니다. 여러분은 빌립을 아시나요? 이 사람은 행7장에서 7집사중 하나로 나옵니다. 성경은 그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사마리아로 갑니다. 거기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믿고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또 명합니다. 29, “에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로 가라“. ”가사는 지금 이스라엘 가자지역입니다. 이스라엘 남쪽, 이집트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왜 이곳으로 가라고 하나 하고 빌립이 갔더니 한 사람이 수레를 타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29절입니다. ”수레로 가까이 가라“. 빌립이 순종해서 수레로 갔더니 와, 한 사람이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하고 보았더니 에티오피아에서 온 내시입니다. 내시는 왕을 상대하는 사람 아닙니까? 성경은 그를 왕의 국고 맡은 관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청와대 경제수석쯤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이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빌립을 만났고 빌립을 통해 은혜를 받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가 에티오피아 내시처럼 성경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 만나고 어떻게 능력있는 삶을 살 것인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과 관련하여 내시가 했던 첫 번째는 성경을 읽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7,28절을 보실까요? 8:27-28, “일어나 가서 보니 에티오피아 사람 곧 에치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내시가 했던 가장 좋은 일은 성경을 읽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좋은 것의 시작은 성경읽기입니다. 영적 성장의 기본은 성경입니다. 그 중에서도 기본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장 좋은 영적 성장의 시작은 성경읽기입니다. 그래서 탈무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말씀을 백 번 읽는 것과 백 한 번 읽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만일 성경을 공부하되 반복해서 읽지 않으면 씨는 뿌리고 거두지 않는 농부와 같다”. 성경을 잘 연구하고 안하고가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한 번 더 읽고 안 읽는 것이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유대교 랍비들은 제자들에게 자주 성경을 읽으라고 가르쳤을 뿐아니라 소리를 내서 읽으라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을 단순하게 읽어라. 반복해서 읽어라. 소리내서 읽어라. 그리고 마음판에 새기라”. 소리를 내서 읽으면 기억력도 좋아지고 졸음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당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성경읽는 소리가 크게 납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가면 두 시간 이상 예배드리는 데 그 중에 1시간 가까이 성경을 읽습니다. 이스라엘이나 한국이나 옛날로 갈수록 더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쇄술이 없어서 성경을 써서 들고 다니거나 돈이 없어서 성경을 구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스펙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자기가 어떤 일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준비하는 일종의 자격증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스펙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스펙은 학원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얻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네 가지 유익한 영적 SPEC을 얻습니다.

 

첫째. S. Sin. 죄를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표준입니다. 저는 옛날에 세상에서 잘못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말할 때 굉장히 시험받았습니다. “아니 내가 죄인이라고? 내가 무슨 잘못을 범했는데 내가 지존파같이 살인을 했나 내가 성폭행범이나 사깃꾼인가? 내가 왜 죄인이지?”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죄는 나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6:5절입니다. “여호아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노아시대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간의 성적인 범죄가 관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죄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악한 생각, 악한 계획이 죄라고 말합니다. 행위이전에 마음으로 죄를 지은 것입니다. 사사시대의 죄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죄가 있었습니다.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아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아를 잊어 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자기들의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것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 더 큰 죄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S. sin, 죄가 무엇인지 가르칩니다.

스펙의 PPromise 약속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약속의 책임을 믿습니까? 성경은 수많은 약속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성경에는 7,487가지 약속이 있다고 합니다. 구약은 예수님 오신다는 약속, 신약은 예수님 오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아픈 사람에게는 병고쳐주겠다는 약속, 연약한 사람에게는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힘없는 사람에게는 너를 도와주겠다는 약속, 불의한 자에게는 심판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시겠다는 약속, 믿으면 구원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수표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사인한 수표, 언제나 사용하면 현금이 되는 수표, 그 위대한 수표가 성경에 7487개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입니다.

 

스펙은 eencourage, 격려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반드시 위로 받고 격려받습니다.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라”. 107절입니다. 119: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아픈 사람은 고쳐서 위로합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병들었습니다.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8:8, 13, “주여,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백부장의 하인을 고쳤습니다. 벵겔이라는 주석가가 말했습니다. “백부장은 군인에게 명할 수는 있었으나, 병에게는 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에게 명했고 그 순간 병은 나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107:20입니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말씀은 우리를 고칩니다. 그래서 encourage, 격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대해서는 겸손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을 가르쳐 서로 격려하게 합니다. 어떤 어부가 이런 시를 썻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제게 은혜를 베푸소서. 바다는 너무 넓고 저의 배는 너무 작습니다”. 성경읽으면 이렇게 겸손해 집니다. 성경을 읽으면 다른 사람을 불쌍히 보는 은혜를 받습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나는 부족하고 다른 사람은 사랑스러워집니다. 헨리 나우엔이라는 영성가의 기도중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을 불쾌한 존재가 아니라 목마른 존재로 볼 수 있도록 도우소서.” 그렇습니다. 모두가 다 목마릅니다. 내가 목마르듯이 남도 목마릅니다. 나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목마른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성경은 C, commmandment,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명령합니다. 딤후3:16,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크게 네 가지입니다. 교훈의 말씀, 그렇게 행하라는 명령입니다. 책망의 말씀, 그렇게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브르게 함, 그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의로 교육함“, ”가되 반드시 올바른 길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세 명령하고 지시합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순종입니다.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거룩한 spec이 생깁니다. 이 축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 에티오피아내시는 단지 성경을 읽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읽다보니 잘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침 빌립이 수레로 다가가 물었습니다. 30, “읽은 것은 깨닫느냐?” 그랬더니 내시가 말합니다. 8: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느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깨닫는 것입니다. 읽는 것이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있다면 깨닫는 것은 성경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찾기 위해 있습니다. 내가 성경에서 은혜를 받지 않아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와 성경이 구체적인 관계를 가질 때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성경을 여러분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습니까?

 

17세기 영국에 어스킨이라는 유명한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부인이 그의 명성을 듣고 그의 설교를 들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먼 거리를 달려와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점점 이 부인이 안보입니다. 수요일날 안 보이더니 주일날도 안 보입니다. 그래서 어스킨이 심방을 갔습니다. “부인, 부인이 왜 예배에 자주 빠지시나요?” 부인이 솔직히 말했습니다. “처음엔 설교 때문에 갔는 데 요즘은 은혜가 잘 안됩니다”. 어스킨이 말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부인은 처음에 제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설교가 사람의 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설교자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제가 누구라고 여러분이 주일날마다 제 말을 듣겠습니까? 제가 대단한 웅변가입니까? 탁월한 문학가입니까? 저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메시지를 가진 사람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항상 은혜받는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설교를 설교자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말씀하신다면 은혜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어떤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8:8-9절에 그 순서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크게 세 가지 과정입니다. 먼저 낭독, 읽습니다. 다음 해석,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적용, 삶에 실천해야 합니다.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읽기 해석 적용

 

그런데 해석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성령의 감동입니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을 믿습니까? 딤후3:16,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감동이란 말은 하나님이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숨을 내쉬며 생기를 우리에게 불어 넣어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의 말입니다. 50:4-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성령님이 우리 귀를 열어 주셔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다른 번역에는 귀를 열어주셨다는 이 말을 귀를 파주셨다고 번역했습니다. 송곳이나 꽃챙이로 우리의 막힌 귀를 파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하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다음은 묵상입니다.

묵상은 되새김질입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한번 읽어서 깨달아지는 말씀은 없습니다. 마치 딱딱한 음식처럼 씹고 또 씹어야 합니다. 이것을 묵상이라고 합니다. 10:9-10,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성경은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입니다. 구약의 에레미아도 그랬고 에스겔도 그랬습니다. 23:28-29입니다. “여호아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할 것이라.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여호아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같이 아니하냐”. 에레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 가지로 비유합니다. , 방망, 그리고 알곡입니다.

 

불 방망이 알곡

 

왜 하나님의 말씀이 불이겠습니까? 불은 태우는 것입니다. 죄의 쭉정이를 태우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되면 방망이로 내려칩니다. 무딘 심정, 딱딱한 돌작밭을 방망이로 내려쳐 부드럽게 합니다. 그리고 부드러워지면 알곡, 밀이 됩니다. 그러면 그 밀로 양식으로 먹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읽고 읽고 또 읽어 묵상하면 거기에서 생명의 만나가 나옵니다. 단지 읽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단순히 성경을 읽는 것과 묵상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중세의 귀고라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묵상 없이 읽기만 하면 건조하며, 읽지 않고 묵상만 하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묵상없이 기도하면 뿌리없는 나무와 같고, 기도없이 묵상하면 열매없는 나무와 같다”. 또한 묵상할 중요한 것은 분석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본회퍼 목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분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분석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 이것이 묵상이다”. 그렇습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말을 빌리면 말씀을 사용하지 말고 수용하라하는 것입니다. 사용은 성경을 내 목적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고 수용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이다

성경을 묵상할 때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또 있습니다. 예수님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내시가 그랬습니다. 그가 혼자 이사야 성경을 읽고 있다가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33절에서 어린양이 나오고 도살자가 나오고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일까? 그때 빌립이 그에게 말씀을 풀었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내시가 대답했습니다. 8: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그때 빌립이 어떻게 했습니까? 35절이 중요합니다.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은 성경을 읽고도 깨닫지 못하는 내시에게 예수님을 가르쳤습니다.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이 글은 이사야입니다. 성경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가르쳤습니다. 내시는 성경을 읽고 있었고 빌립은 그 성경에서 예수님을 거르쳤습니다. 그때 내시의 눈이 열려 말씀의 뜻이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인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 자신의 말입니다.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한 것이라”. 예수님 당시 성경은 구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말씀이 예수님 자신을 위한 말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이 그렇다면 신약은 오죽 하겠습니까?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관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에서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에게서 모든 성경을 보라”. 다시 정리합시다. , 우리가 성경을 읽어요. 그러면 그 중심에 예수님이 계세요. 그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이 나와요.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이렇게 표시할 수 있어요.

 

성경 예수님 복음

 

성경에 나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까? 그 성경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심을 믿습니까? 그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를 살리는 복음이 나오는 것을 믿습니까?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 에티오피아의 내시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자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먼저 36절을 보겠습니다. 8:36, “길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먼저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발견한 내시에게 주신 첫 번째 변화는 세례였습니다. 왜 내시는 성경을 읽고 세례를 받았습니까? 세례는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표시입니다. 세례받았기 때문에 예수님 영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영접했기 때문에 세례받은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고 정결해졌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시가 스스로 세례받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빌립이 강권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 자청했습니다. “내가 예수님 영접했고 물이 있는 데 세례받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 세례받겠습니다. 세례주세요”.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세례입니다. 억지로 받지 말고 스스로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했고 복음에 확신을 가지면 누구나 세례받을 조건이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38-39절입니다. 8:38-39, “이에 명하여 수례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여기서 중요한 말은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입니다. 이 변화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8:26절에 처음 등장한 내시에게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유대인으로 멀리 에티오피아에 디아스포라로 살고 있던 내시는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디에 살든지 매년 세 번은 예루살렘에 올라와 에배드려야 했습니다. 유월절, 맥추절, 장막절입니다. 아마 이 내시도 자기 모국인 예루살렘에 와서 그렇게 예배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7, 8, 그렇게 절기를 지키고 예배를 드려도 기쁨은 없었습니다. 항상 하는 일로서 그날도 터덕거리며 광야를 지나 자기 나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야에서 성경을 읽다가 뜻밖에 빌립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풀어 주었고 예수님을 소개받았고 그를 영접하고 세레를 받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마음에 놀라운 기쁨이 생겼습니다. 비록 가는 길이 멀고 험하지만 마음에 확신이 생기자 기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시 39,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왜 우리 가는 길이 행복하지 않습니까? 길이 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기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안 기쁩니까? 마음의 확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있고 그가 길을 인도하면 기쁘게 길을 갈 수 있습니다. 119: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이 길을 인도합니다. 예수님이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길의 빛이요 등입니다. 16세기 스페인의 십자가의 요한이 이런 글을 썻습니다. , 주님 제 영혼이 바짝 야위었습니다. 당신을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의 힘이 없어서 힘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결국 이 내시가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성경은 그 뒤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역사는 그 뒤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내시가 고국으로 돌아간지 수년후 이 나라가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황제이하 모든 백성이 예수믿어 이스라엘 밖에서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에서 2세기 3세기에 아프리카에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수도원운동이 나오고 4세기 말에는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납니다. 누구의 영향일까요? 한 사람, 내시의 영향이었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어느날 우연히 방문한 예루살렘 길에 만난 전도자 빌립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을 배우고 복음을 받아들인 한 사람, 내시가 한 권의 책, 성경을 통해 기독교 역사에 놀라운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성경, 최고의 책입니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적인 양식입니다. 읽고 묵상하여 내 삶에 적용하면 우리의 길의 빛이요 우리 삶의 안내자입니다.

 

 

 

 

 

 

 

 

 

 

 

 

 

 

 

영적성숙(3) (8:29-40) 2015.10.18()

 

성경: 거룩한 독서

말씀카드(사진1).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8:27-28, “일어나 가서 보니 에티오피아 사람 곧 에치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탈무드, “말씀을 백 번 읽는 것과 백 한 번 읽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만일 성경을 공부하되 반복해서 읽지 않으면 씨는 뿌리고 거두지 않는 농부와 같다”.

 

영혼의 SPEC

* S(Sin).

6:5, “여호아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아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아를 잊어 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 P(Promise). 약속

 

* E(Encourage). 격려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라”.

119: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8:8, 13, “주여,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107:20,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사랑의 하나님, 제게 은혜를 베푸소서. 바다는 너무 넓고 저의 배는 너무 작습니다”(어떤 어부)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을 불쾌한 존재가 아니라 목마른 존재로 볼 수 있도록 도우소서.”(헨리 나우엔)

 

C(Commmandment). 명령

딤후3:16,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성경을 깨달아야 합니다.

8: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느냐”.

8:8-9,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읽기 해석 적용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

* 성령의 감동

딤후3:16,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50:4-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 묵상

10:9-10,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23:28-29, “여호아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할 것이라.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여호아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같이 아니하냐”.

 

불 방망이 알곡

 

귀고, “묵상 없이 읽기만 하면 건조하며, 읽지 않고 묵상만 하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묵상없이 기도하면 뿌리없는 나무와 같고, 기도없이 묵상하면 열매없는 나무와 같다”.

 

본회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분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분석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 이것이 묵상이다”.

 

유진 피터슨, “말씀을 사용하지 말고 수용하라

 

* 예수님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한 것이라”.

 

성경 예수님 복음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 세례

8:36, “길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

8:38-39, “이에 명하여 수례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십자가의 요한, “, 주님 제 영혼이 바짝 야위었습니다. 당신을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