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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이윤재목사

영적성숙(2) 딤전2:1-6, 3:14 2015.10.11.(일)배움: 넘어져도 배우면 자란다

영적성숙(2) 딤전2:1-6, 3:14 2015.10.11.()

 

배움: 넘어져도 배우면 자란다

사람의 일생은 배움의 일생입니다. 우리는 배운만큼 살고 산만큼 배웁니다. 제가 태어난 지리산 자락에 마을 하나가 있습니다. 그 마을 뒷산에 오래된 절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열심 있는 목사님이 그 마을에 들어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전도했더니 많이 사람들이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할렐루야, 아멘이 아닙니까? 시간이 가자 사람들은 할렐루야에 익숙하게 되었고 심지어 절에 있는 스님들까지도 할렐루야, 아멘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이 사람들이 할렐루야, 아멘하니까 주지 스님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스님들을 불렀습니다. “요즘 교회가 생겨 너도 나도 할렐루야 아멘 하고 다니니 도대체 우리 절이 문을 닫아야 지경이 되었소.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소?” 했더니 젊은 스님 둘이 우리가 교회 목사를 찾아가 사람들이 더 이상 할렐루야를 하지 않도록 담판을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도 큰 소리 치길레 스님이 물었습니다. “정말, 당신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소?” 그랬더니 젊은 스님이 말합니다. “주지 스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다른 스님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멘”. 사람은 듣는대로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배운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스님일지라도 할렐루야많이 하면 할렐루야 하고 아멘 많이 들으면 아멘 하게 되어 있습니다. 들은 대로 말하고 배운대로 삽니다. 이것이 교육의 능력입니다.

 

최근 미국 리더십 전문가 마크 머피(Mark Murphy)가 그런 연구를 했습니다. 미국 회사에서 3년 동안 2만 명의 신입사원들을 조사했는데, 그들 중 46퍼센트가 취직한 지 1년 반만에 해고되거나 그만 두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왜 그만 두었나 하고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실력이나 업무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태도가 문제가 있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100명중 90명이 태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태도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학습 태도의 문제였습니다. 그만둔 사원의 대부분은 배우려고 하지 않았거나 배우는 데 인색했습니다. 그들은 상사, 동료, 고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내준 평가나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공부를 안해서 문제가 아니고 학점이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자기 일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없어서 문제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인생의 성공의 85프로가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능력 때문에 실패한 사람은 15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배운 사람을 채용하지 말고 배울 사람을 채용하라”. 그렇습니다. 과거에 잘 배운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배움은 어느 한 순간 배우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후 승리하는 사람은 끝까지 배우는 사람입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배우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최후 승리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배우셔야 합니다. 배움은 능력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태도와 관계됩니다. 배우려는 태도가 우리를 승리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끝까지 배워 성장하고 최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배워야 자랍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의 내용입니다. 1절 볼까요?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은혜가운데 강하고”. “내 아들아”. 바울은 일생 육신의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아들이라고 부른 사람은 제자 디모데였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내 아들아하고 부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고의 교육은 선생이 부모가 되고 제자는 자녀가 되는 것임을 아십니까? 선생은 다만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처럼 인생을 가르친 사람입니다. 선생님처럼 책으로만 가르치지 않습니다. 삶으로 가르칩니다. 자녀는 아버지로부터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배웁니다. 오늘날의 교회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학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회학교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가르치고 배우니까 학교가 맞지만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교회는 학교로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으로서 가르치고 선생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고 아버지로서 가르칩니다.

 

그런데 아버지 바울이 디모데에게 무엇이라고 가르쳤습니까? “은혜안에서 강하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늘 그것입니다. “강하라. 강해져라. 두려워 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 담대하라”.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녀에게 그렇게 가르칩니까? 문제는 어떻게 해야 강해지느냐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 강해지고 담대해집니까?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배워야 합니다. 그나마 쉬지 말고 배워야 합니다. 배움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면서 바울은 세 가지 비유로 말합니다. 첫째 군사, 둘째 선수,셋째 농부의 비유입니다. 이 세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뭔가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군인

, 군인, 전쟁을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군대갔다 온 사람은 압니다. 1년에 한번 하는 유격훈련, 56일동안 PT,시설물 극복 훈련, 화생방, 산악행군, 야간행군등 많은 훈련을 합니다. 겨울에 하는 혹한훈련, 영하 2030도에 텐트치고 자고 얼음물속에 들어갔다 나옵니다. 그때는 힘들지만 전쟁을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할 과정들입니다.

 

선수

운동선수를 아십니까?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얼마나 피나게 연습하는지.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를 보세요. 코치가 인터뷰 한 것을 보니까 보통 선수들은 자신감이 생기면 연습을 그만 하는 데 김연아는 악버리같이 연습했답니다. 트리플 악셀에서 실패하면 열 번을 더 반복했답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김연아의 발입니다(사진1). 발레리나 강수지의 발입니다(사진2). 그리고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입니다(사진3).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농부

농사는 어떻습니까? 요즘 농촌에 들어가서 농사짓겠다는 귀농자들이 많습니다. 15년 전에 비해 그 수가 40배 가량 늘었습니다. 문제는 아무 준비없이 들어가 실패한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t.v에 나오는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보거나 수입이 좋다고 하니까 막연히 들어가는 데 실제 성공률은 10%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려 90%가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실패하느냐? 배우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정착 자금도 필요하고 농사의 기술도 배워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적성도 잘 알아야 하는 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귀촌한 뒤에도 끊임없이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 데 노력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반드시 배워야 성공하는 세 종류의 사람들을 통해서 디모데에게 끊임없이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군인은 전쟁을 위해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선수는 시합을 위해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농부는 풍요로운 수확을 위해 쉬지 않고 배워야 합니다. 능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태도가 중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배웁니까?

 

세상에서 아마 가장 잘 배우려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자로 태어나서 학자가 되기 위해서 여자로 태어나서 학자의 부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도 좋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만일 생활이 궁핍하여 물건을 팔아야 한다면 금, 보석, , , 토지를 먼저 팔아라. 최후까지 팔아서 안되는 것은 책이다”. 이 정도로 책을 사랑합니다. 지금도 에루살렘에서 버스를 타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사진4). 몇 년 전 제가 직접 찍은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2013년 우리 나라 성인 1년 독서량이 9.2권입니다. 성인 한 사람이 1년동안 읽는 책이 겨우 9권입니다. 선진국은 60, 70권입니다. 우리 나라는 교육열은 있으나 자기가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 학업에 대한 열의는 있지만 부모 자신은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학교에 진학해서 학위는 잘 받지만 평소 배우려는 태도는 많지 않습니다. 배움은 학위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몇 년전 한국교회 신자에게 물었습니다. 하루에 얼마나 성경읽습니까?”. 1시간 미만이 24.5%였고 2-3시간도 13.9%나 있었지만 한번도 읽지 않는다는 무려 51.9%나 되었습니다. 교인의 절반가량이 평생 한번도 성경을 읽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은 배우는 것입니다. 11:28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은 우리를 쉬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쉬는 방법이 다릅니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나를 배우라”. 잘 배워야 잘 쉽니다. 배움은 영적 안식과 평안을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배우기를 좋아하셨습니다. 12살때 예루살렘에서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때 성경 기록입니다. 2:46-47,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예수님은 12살 때 이미 박사들과 함께 성경을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듣기만 하는 데 유대인들은 묻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묻기도 하고 듣기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잘 배우십니까? 잘 배워야 예수님 제자입니다.

 

배움의 과정

오늘 말씀은 우리가 배우는 과정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딤후3:14입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2장에서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울은 3장에서 배움의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배우라. 둘째 확신하라. 셋째 거하라. 먼저 배우라는 지적인 배움을 말합니다.

 

배우라

모든 배움의 시작은 머리로부터 시작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가끔 무시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없다. 모든 지식은 필요없다“. 이렇게 주장하다 이단이 된 초대교회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자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툭하면 영이나 성령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지식과 이성을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이단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랍비 힐렐이 말했습니다. 무식한 자는 진실로 경건할 수 없고 부끄러워 하는 자는 참으로 배울 수 없으며 성질이 급한 자는 결코 가르칠 수 없다”. 그렇습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동적으로 경건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무식해서는 절대 경건할 수 없습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는 데 어떻게 경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번에 미국에 가서 한 집사님을 만났는 데 이 분은 미국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만났는 데 아주 얼굴이 환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환하냐고 물었더니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교회에서 12주짜리 성경공부를 하거든요. 너무 은혜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재를 보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새 생명 성경공부>라고 너무 쉬운 교재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교회는 무엇인가?” 너무 쉬운 교재인 데 그 분은 그렇게 은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쉬운 교재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본래 한국에서 잘 나가던 사업가였답니다. 돈도 많고 종업원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민가서 다 잃고 어렵게 되자 누가 전도해서 어릴 때 다녔던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 나가자마자 새가족반에서 새가족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는 데 옛날 잘 나갈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니까 공부가 그렇게 은혜가 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알았습니다. “교재가 좋아야 은혜받는 것이 아니구나”. “강사가 박사여야 은혜받는 것이 아니구나. 마음이 가난해야 은혜받는구나”. 자기 마음이 갈급해 있으니까 그 쉬운 성경공부도 마음속에 쏙쏙 박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합니까? 사도행전에 베뢰야 사람들이 나옵니다. 17:11,“베뢰야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신사는 옷잘 입는 사람이 아닙니다. 공부많이 하고 젠틀한 사람이 아닙니다. 배우기를 힘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는 사람입니다. ”배우라“.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확신하라

다음은 확신하라입니다. “배우라가 머리로 하는 배움이라면 확신하라는 마음으로 하는 배움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마음에 두다”. “마음판에 새긴다고 말합니다. 32:16절에 보면 모세의 십계명 돌판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여기에 새긴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헤루트”, 끌이나 정으로 돌이나 바위에 글씨를 새긴다는 말입니다. 새길 때는 어렵지만 한번 새기면 지울 수 없습니다. 119:9에 나오는 마음에 두었다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오직 주의 말씀으로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마음에 두다는 말이 조각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마음속에 조각하듯 새기는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긴 말이 아닙니다. 단순한 한 마디, 한 구절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못을 박듯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시34:4, “내가 여호아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링컨은 이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노예를 해방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개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마틴 루터는 이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종교개혁을 성공시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23, “여호아는 나의 목자시니”, 어떤 사람은 수1:9, “너는 두려워 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저는 오랫동안 렘33:3절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네게 보이리라”. 그러다가 이중표 목사님 만나고 갈2:20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마음판에 새긴 말씀이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거하라

배움의 세 번째 단계는 거하라입니다. 거하라는 배움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배우라에서 지적으로 알았다면, “확신하라에서 마음에 새셨다면, 이제는 거해야 합니다. 거하는 것은 함께 사는 것입니다. 15:4입니다.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교사로서 잘 배우는 것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목사로서 잘 배우는 것은 설교하는 것입니다. 듣기만 해서는 잘 배울 수 없습니다. 가장 잘 배우는 방법은 그렇게 살아보는 것입니다.

4복음서중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교훈집입니다. 예수님이 가라친 설교가 크게 다섯 부분이 나옵니다. 그런데 가르칠 때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은 지켜 행하라입니다. 5-7장까지 첫 번째 가르친 내용이 나옵니다. 산상수훈이라 합니다. 다 마친 다음 마7:2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으니했습니다. 10장에서 제자도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13장에서 씨뿌리는 비유등 7개 비유를 가르치셨습니다. 18장에서 교회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22장부터 25장까지 열처녀 비유등 마지막에 될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모든 교훈을 마치신 후 마태복음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다같이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의 모든 교훈과 설교는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 배움의 목적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배운다는 것은 이 과정을 따라 갑니다.

 

배우라 확신하라 거하라

설계 건축 거주

 

배우는 과정을 건축으로 말하면 설계하는 과정입니다. 확신은 실제 건축하는 것입니다. 거하는 것은 그 집에 들어가 사는 것입니다. 성경이든 세상 진리든 인생의 교훈이든 우리가 이 과정을 따라 최선을 다해 배우겠습니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실패해도 배우면 자랍니다

문제는 배우는 방법이 책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서 배우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서 배웁니다.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서도 배웁니다. 그러나 가장 크게 배우는 것은 실수를 통해 배웁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인생의 교훈중 가장 큰 것은 실수를 통해 배운 것입니다. 유머작가인 윌 로저스란 사람이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배우는 사람이 있다. 독서로 배우는 사람이 있고, 관찰로 배우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에 오줌을 누다가 배우는 사람이다”. 유머입니다만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에 오즘 누다가 전기가 통하면 안 배울 사람이 없습니다. 전기가 무섭다 백번 말해도 모르다가 전기에 딱 감전되면 전기에 대해 제대로 배웁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대부분 유치원때부터 실수는 나쁜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실수하지마” “실수하면 안돼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실수하면 당황해서 큰일났다”. “죽었다”. “끝났다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실수한 자신을 향해 화를 내고 혹은 낙심하고 어떤 때는 실수를 숨기고 변명합니다.

 

제가 지난번 애틀란타에 가서 코카콜라 본사를 구경갔습니다. 거기서 코카콜라가 생긴 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세계에 미친 영향력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코카콜라는 실수로 만들어진 음료수라는 것입니다. 1886, 애틀랜타의 존 펨버튼이란 약사가 고객들에게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신경을 안정시키고 두통을 덜어 주는 약 하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그 일을 마치고 냉장고에 보관했는 데 조수가 실수로 그 약에 소다수를 섞었습니다. 그래서 성분이 바뀌어 더 이상 약으로는 팔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그것을 음료수로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코카콜라라고 붙였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코카콜라입니다. 만약 그때 조수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많은 약중의 하나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실수로 세계적인 음료로 태어났습니다. 사실 제가 콜라광인데 건강을 위해 오랫동안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코카콜라가 너무 사랑스러워 다시 사랑하고 있습니다. 실수로 태어난 세계적인 음료, 코카콜라. 페니실린도 실수로 태어난 약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 세균 배양에 쓰이는 접시에 있는 독감 배양균에 곰팡이를 넣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결국 그 곰팡이에서 백신이 나와 수많은 사람을 구하는 페니실린 약이 되었습니다.

 

우리 일생에 가장 크게 배운 교훈은 대부분 실수를 통해서가 아닙니까? 제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3때 연탄까스를 통해 하나님이 환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미국에 공부하러 가려고 비자신청해서 두 번이나 거절당해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로 갔을 때 하나님은 한 문을 닫으시면 반드시 또 한 문을 여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고난은 어떤 책이나 강의로 배울 수 없었던 인생의 현실과 고통을 깨닫게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한신교회에 와서 오랫동안 집도 절도 없는 외로운 시절을 보낼 때 무릎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성경의 사람들이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목회자로서 많은 실수를 하고 살지만 그래도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실수는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는 또 하나의 방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끔 제가 길을 잃고 우왕죄왕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 승리로 가는 길은 하나만 있는 건 아니며 언제나 좋은 길에는 대가가 따른 것을 배웁니다. 가끔 지치고 좌절할 때 , 지금은 달려야 할 때가 아니라 조용히 엎드려 하나님의 위로와 힘을 얻어야 할 때임을 배웁니다. 어떤 때 한 치앞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릴 때 ,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하고 그래서 날마다 기도할 수 밖에 없구나를 배웁니다. 우리 인생에 영원히 객관적인 실패도 없고 객관적인 성공도 없습니다. 실패를 통해 배우면 성공이고 성공에도 불구하고 못 배우면 실패입니다. 미국 작자 허버트가 말했습니다. “실패한 사람이란 실수했지만 그 경험을 이용하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여러분이 전도서의 말씀을 아십니까?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할지니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였느니라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했을까요? 우리에게 형통한 날만 있고 곤고한 날이 없으면 우리는 인생을 반절밖에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 배울 것이 있고 곤고한 날에 배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뻐하기만 하면 형통한 날만 있으면 되겠지만 배우기로 하면 형통한 날뿐 아니라 곤고한 날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6:4을 아십니까? “여호아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악한 사람도 지으셨습니까? 악한 사람이 있으면 세상은 더 악해지겠지만 착한 사람만 있으면 배울 교훈이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나 애브라함 링컨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히틀러나 살인마들을 통해서도 배웁니다. 왜 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했겠습니까?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배우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나 배우기 때문입니다.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 언제나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형통할 때나 역경의 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으려면 언제나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온 세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군인, 한번도 실수없이 을지문덕같는 장군이 될 수 있습니까? 선수, 김연아같은 선수가 거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죄절했겠습니까? 풍성한 수확을 거둔 농부, 한번의 시도로 그렇게 많은 수호확을 거두었겠습니까? 그들이 성공하는 비결은 끊임없이 배우는 것입니다. 실수를 통해 계속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나 물어야 할 질문은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배울까?”입니다. 오늘 읽은 것에서 무엇을 배울까? 오늘 본 것에서 무엇을 배울까? 오늘 들은 것에서 무엇을 배울까? 오늘 경험한 것에서 무엇을 배울까? 오늘 잘못한 일에서 무엇을 배울 까? 오늘 만난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울까? 오늘 이야기한 것에서 무엇을 배울까? 오늘 설교에서 무엇을 배울까? 오늘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까? 프레드 스미스란 사람이 했던 말이 핵심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보다는 우리의 성장에 더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 그렇습니다. 성장해야 성공합니다. 우리가 사는 날, 어떤 경우애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죽복입니다. 배우고 확신하고 거하여 예수님의 분량만큼 자라시기 바랍니다.

 

 

 

 

 

 

 

 

 

 

 

 

 

영적성숙(2) 딤전2:1-6, 3:14 2015.10.11.()

 

배움: 넘어져도 배우면 자란다

배운 사람을 채용하지 말고 배울 사람을 채용하라”.

 

배워야 자랍니다

딤후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은혜가운데 강하고”.

 

군인

 

선수

김연아의 발(사진1)

강수지의 발(사진2).

박지성의 발(사진3).

 

농부

 

예루살렘(사진4).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나를 배우라”.

2:46-47,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배움의 과정

딤후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배우라

17:11, “베뢰야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확신하라

32: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오직 주의 말씀으로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34:4, “내가 여호아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개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네게 보이리라”.

 

거하라

15:4,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배우라 확신하라 거하라

설계 건축 거주

 

실패해도 배우면 자랍니다

코카콜라 본사(사진5)

 

허버트, “실패한 사람이란 실수했지만 그 경험을 이용하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할지니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였느니라

16:4, “여호아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