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1) 막4:26-29, 골2:6-7 2015.10.4(일)
성숙: 큰 나무로 자라기
추석은 잘 보내셨습니까? 지난 주 고향에 다녀 오시면서 누렇게 익은 황금벌판을 보셨습니까? 얼마나 풍성하고 넉넉한 풍경입니까? 저의 시골집에도 감나무가 몇그루 있는 데 항상 이때쯤 빨간 감이 주렁 주렁 매달립니다. 어릴 때 그 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먹곤 했는 데 이번에 가보니까 빨간 감이 소쿠리에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땃느냐고 물었더니 아버님이 땃답니다. 여러분, 90 노인이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제가 그 감을 먹으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만일 고향에 내려 갔는데 들에 곡식은 태풍을 만나 다 쓰러지고 과일은 바람에 떨어져 하나도 먹을 수 없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농부들은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더 속상하고 마음이 아픈 것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제때 제때 자라지 않고 성장이 멈춘 것입니다. 저도 이번에 알았는 데 “프로제리아”라는 병이 있답니다. 이 병은 사람이 나이는 먹는 데 염색체 이상으로 빨리 늙는 병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10대 소년도 80대처럼 늙어갑니다. 이 병은 수백만 명 중 하나가 걸릴까 말까하는 희귀병입니다. 미국의 애슐리 헤기라는 여자 아이가 이 병에 걸렸습니다(사진1). 유튜브 영상을 통하여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애슐리는 이 병으로 1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 이 아이의 모습을 잠깐 보시죠. 생후 3일 째 모습입니다(사진2). 여느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3개월의 모습입니다(사진3). 아직까지도 차이를 못 느낍니다. 6개월입니다(사진4). 조금씩 병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첫 돌을 맞아 생일케익을 자르고 있습니다(사진5). 2년째 모습입니다(사진6). 4살때 모습입니다(사진7). 정상인보다 10배 이상의 급속적인 노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결국 1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습니다. 이 모습을 우리가 봐도 마음이 아픈 데 부모는 얼마나 아팟겠습니까? 다행히도 이 아이로 인해 조로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그 어머니가 같은 질병을 가진 사람을 위해 재단을 설립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 몸이 제 때 제 때 안자라도 마음이 아픈 데 그것이 우리 영혼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영혼도 몸과 같이 생명이기 때문에 때가 되면 자라야 하는 데 안자란다면 어떻겠습니까? 교회 다닌지 10년이 지났는 데 아직도 성경 한 번 읽지 않았습니다. 직분은 집사고 권사인데 기도만 시키면 교회를 안 나옵니다. 분명히 이름은 그 교회 집사인데 교회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자가 교회마다 쌓였습니다. 연말이 되면 목회자들이 묻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할까요?” 그래서 “왜 그래?”하면 “목사님, 이 분이 3년동안 딱 3번 나왔어요.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왜?” 하면 “이 분이 3년간 딱 만원 헌금했어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연말만 되면 교회들이 고민입니다.
만일 우리가 농사를 그렇게 지었다면 큰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몸에 그런 일이 있다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갑니다. 당장 죽는 것 아니니까 그냥 내 버려 둡니다. 그러다 망합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면서 발견한 몇 가지 깨달음이 있습니다. “교회 다닌 연조가 늘어간다고 믿음이 자동적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교회 직분을 받았다고 그 직분이 자동적으로 우리 믿음을 자라게 하지 않는다”. “3대, 4대가 믿는 집에서 태어났다고 내 믿음이 자동적으로 자라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항상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자라고 있는가?” “내가 교회 다닌지 몇 년 되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자라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내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받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성장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자라고 있습니까? 작년보다는 나아졌습니까? 10년전보다는 많이 자랐습니까? 전에 다른 교회다닌 분들, 전의 교회보다 나아졌습니까? 직분을 받으신 분들, 어떻습니까? 집사된 다음에 조금 나아졌습니까? 권사님 되신 후 집사때 보다 나아졌습니까? 무엇이 나아졌습니까? 예배? 기도? 봉사? 말이 달라졌습니까? 더 친절해졌습니까? 안하던 헌금을 합니까? 안하던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까? 우리가 교회 생활하면서 항상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자라고 있는가?”(다같이). 문제는 세 가지입니다. 나는 반드시 자라겠다는 마음, 자라는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 길을 바로 따라 걷겠다는 결심, 이 세 가지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가을이 여러분 인생의 최고의 가을이 되기 위해 한번 결심해 보시겠습니까? “나는 어떤 경우에도 자라겠다. 나는 말씀을 통해 내가 자라는 길을 알겠다. 내가 그 길을 알면 반드시 즉시 실천하겠다”. 이렇게 다짐합니까? 이 다짐을 하는 여러분에게 이번 가을이 여러분 인생의 최고의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우리의 영적 성장에 대하여 보여준 상징이 나무의 상징입니다. 여러분은 나무를 좋아합니까? 저도 나무를 좋아합니다. 성경은 많은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 감람나무, 포도나무, 로뎀나무, 에셀나무, 백향목, 종려나무, 버드나무, 이 모든 나무들은 그냥 나무가 아닙니다. 각 나무마다 특징이 있고 상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나무든 공통된 목적이 있습니다. 잘 자라는 것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장에는 원리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큰 나무처럼 영적 성숙을 위해서 세 가지 원리를 말합니다.
씨: 예수님의 생명을 심어라
첫째 원리는 씨입니다. 같이 읽어 볼까요? 막4:26-29,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슴이니라.” 여기 생명이 자라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생명은 씨에서 출발합니다. 씨에서 싹, 싹에서 이삭이 납니다. 그 이삭이 자라면 열매가 맺힙니다. 이것이 모든 식물들의 공통된 성장과정입니다. 씨없이 자라는 식물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씨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모든 생명은 씨로부터 시작합니다. 씨속에는 생명의 “유전인자”가 있습니다. 그곳에 자생하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심으면 저절로 자랍니다. 여기 28절에 “스스로 열매를 맺되” 했습니다. 이“스스로”란 말이 헬라어로 “아우토마테”. 이 말에서 영어 automatic이 나왔습니다. 생명은 심으면 스스로 나옵니다. 농부의 손길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돌봐야 합니다. 그러나 농부가 돌보기 때문에 싹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씨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싹이 나옵니다. 모든 씨에는 자생하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씨가 얼마나 위대한지 수박씨에 대해 읽은 것이 생각납니다. 농부가 수박씨를 심으면 때가 되면 밖으로 싹이 납니다. 그런데 땅이 얼마나 무거우냐 하면 수박씨보다 20만배가 더 무겁답니다. 그런데 그 20만배의 무거운 흙을 뚫고 씨가 싹을 냅니다. “와, 씨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지”. 제가 그것을 읽고 그때부터 수박씨를 함부로 밷지 못합니다. 수박씨를 볼 때마다 “아, 대단한 수박씨여” 하고 감탄을 합니다. 제가 이번에 애틀란타에 갔는 데 한 대학 정문에 무슨 씨 하나가 동상처럼 세워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도토리씨”였습니다. 그래서 “왜 대학앞에 도토리씨가 있습니까?” 했더니 원래 이 대학이 있던 곳이 도토리 나무숲이었답니다. 그 도토리나무 숲에 대학을 세우고 창립자가 꿈꿨답니다. “지금은 도토리처럼 작지만 주여, 앞으로 여기서 세계를 움직이는 큰 인물들이 나오게 하옵소서“. 후에 그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이 되었습니다. 도토리같이 작은 학교가 큰 대학이 된 것은 거기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우리가 영적인 성장, 성숙을 위해 나아갈 때 반드시 기억할 첫 번째는 우리의 어떤 노력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씨가 우리 성장과 성숙의 첫번째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생명의 씨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엡4:15-16절이 참 중요합니다.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16절,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여기서 중요한 말이 “그에게서”, “그에게까지”입니다. From him, To him.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바울은 몸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성장의 원리를 말합니다. 성장의 원리는 From him, “그로부터”, To him. “그에게 까지”입니다. “그로부터”는 모든 성장의 근원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성장의 근원입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공급해야 우리가 자랍니다. “그에게까지”는 성장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다른 데를 향하는 성장을 목표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장했는 데 거기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장해서 보니까 거기 예수님이 계신다. 이것이 영적 성장입니다. 그로부터 시작하고 그에게로 갑니다. 예수님이 우리 성장의 출발이고 목표입니다.
다시 16절을 보실까요?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그러면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생명은 어떻게 자랄까요? 세 방향으로 자랍니다. 먼저 안으로 자랍니다. 안으로 자라는 것은 내적 성품의 성장입니다. 항상 성숙은 먼저 자기안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이 생물학적 원리입니다. 동물이 새끼를 낳습니다. 사람이 자식을 낳습니다. 딱 하나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속으로 자랐기 때문에 자기 밖으로 자랍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자가 번식이 이루어져야 타가 번식이 일어납니다. 내적 성숙이 먼저입니다. 안으로 자라면 다음 위로 자랍니다. 모든 식물은 위로 자랍니다. 나무는 키가 커집니다. 위로 자라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성장입니다. 우리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계속 공급되면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행복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밖으로” 자랍니다. 위로 자란 생명은 반드시 밖으로 자랍니다. 이것이 열매입니다. 사랑이고 섬김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영향력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중의 하나인 시카코 윌로우크릭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 담임목사인 빌 하이벨스 목사가 몇 년전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 책이 입니다. 이 책에서 빌 하이벨스는 자기 교회가 실패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숫자로는 성공을 했는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왜 실패했다고 했는가 하면 그 교회는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서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일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예배, 성경공부, 소그룹, 봉사, 전도, 교인들은 열심히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교회는 날로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도표입니다(도표1). 이 교회는 교인들이 교회 일에 열심히 참여하면 영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있다 보니까 교인들이 교회일에 열심히 참여했지만(도표2) 정말로 예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빌 하이벨스같은 실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을 교회 일로 열심히 붙잡아 놓으면 영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중에 시험들고 힘들어 하고 교회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교회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서 일만 많이 하는 교인은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일, 프로그램, 마케팅, 이벤트가 교회를 살리지 않습니다. 벧후3:18입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다같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립니다. 오직 에수님의 생명만이 교회를 살립니다. 이것이 영적 성숙의 첫 번째 원리입니다.
2. 공급: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고 교훈받으라
두 번째 원리가 있습니다. 공급입니다. 골2:6절을 보실까요?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바울은 완료형으로 쓰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까? 이것이 영적 성장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돼야 다음이 됩니다. 그러면 다음이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영적 성숙의 두 번째 원리는 내가 하는 일입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고 교훈을 받고”.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하면 공급받는 것입니다. 가짓수는 세 가지지만 결국은 하나입니다. 7절, “그 안에” 했으니 “그”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공급을 받는 것입니다. 세 가지 이미지와 방법으로 예수님의 공급을 받는 것입니다. “뿌리를 박고”. 나무의 이미지입니다. 나무 심는 원리로 뿌리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생수를 공급받는 것입니다. “세움을 받아”. 건축의 이미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반석입니다. 우리는 그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교훈을 받은대로”. 교사의 이미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생님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뿌리를 박고“, 생수이신 예수님, ”세움을 받아“, 반석이신 예수님, ”교훈을 받은대로“, 말씀이신 예수님. 뿌리에 생수를 공급받아,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굳게 세워져, ”교훈을 받은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먼저 “뿌리를 박고”를 생각해 봅시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광야에 가장 많이 자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싯딤나무”입니다. (사진7). 성경은 이것을 “조각목”으로 번역합니다. 별 모양도 없고 볼품도 없으며 그렇다고 무슨 열매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봐도 재목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나무가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행진할 때 이 나무로 성막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 볼품없는 이런 나무를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했을까?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뿌리를 깊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의 키는 불과 6-7미터 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뿌리는 30미터, 50미터, 깊은 것은 100미터까지 내린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깊히 뿌리를 내렸을까? 물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광야에 물이 없기 때문에 물을 찾아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깊히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광야의 다른 나무들이 조금 뿌리를 내리다 마는 것과 달리 이 나무는 50미터, 100미터까지 뿌리를 내립니다. 그러니까 광야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나무로 법궤, 떡상, 성막을 만들라 하는 이유는 그 자체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성막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면 자연스럽게 이 나무를 봅니다. 이 나무를 보면서 배웁니다. “아, 저 나무는 척박한 광야에 살면서 생수의 근원을 찾아 깊히 뿌리를 내렸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구나. 나도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그때 읽는 말씀이 시42:1-2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글을 뵈올까”. 싯딤나무는 하나님을 갈망하며 사는 신앙적 삶의 표상입니다.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누가 오래 견딜까요? 예수님의 생수에 존재의 뿌리를 댄 사람입니다. 누가 광야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까요? 잘 생긴 사람? 좋은 대학 나온 사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 아닙니다. 하늘의 생수를 많이 마신 사람입니다. 생수의 근원에 뿌리를 댄 사람입니다. 영적 성장은 누가 얼마나 생수의 공급을 많이 받느냐로 결정됩니다.
다음 “세움을 받아” 했습니다. “세움받았다”는 말을 자세히 보면 능동형이 아니고 수동형입니다. 내가 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세우는 것입니다. 어디위에 세웁니까? 굳건한 반석위에 세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반석이심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모퉁이 돌이요 반석이며 흰돌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자신을 스스로 세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음의 반석위에 세운 사람들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랬습니다. 모세가 그렜습니다. 다윗,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가 그랬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반석위에서 서야 합니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교훈을 받은대로”, 했습니다. 교사이신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거름과 같습니다. 나무에는 계속 거름을 주고 물줘야 자랍니다. 말씀은 거름과 같고 기도는 물과 같습니다.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움받았습니다. 19세기 미국을 복음으로 변화시킨 무디는 거듭난 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살기로 서약했습니다. 그러나 늘 넘어지고 쓰러졌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무디는 산으로 들어가 기도하기도 하고 부흥회도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한 달을 못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성경을 폈는 데 롬10:16-17절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 말씀을 읽을 때, 무디는 마음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것은 말씀이 믿음을 붙잡아 준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영적 성숙의 길을 찾은 무디는 그날부터 매일 새벽마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무디는 세계를 바꾼 믿음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벧전2:2, “갖난 아이같이 신령하고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이로써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니라” 했습니다. 점검합시다. 믿음의 뿌리를 깊히 내려 끊임없이 예수님의 생수를 마십니까? 흔들리는 세상에 자신을 세우지 않고 반석이신 예수님께 자신을 세웁니까? 신령하고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교훈을 받습니까?
3. 믿음: 지속하고 감사하라
영적 성숙으로 가는 한 가지 원리가 더 있습니다. 7절을 다시 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다같이 “믿음에 굳게 서서”. “믿음에 굳게 서서”라는 말은 영적 성숙을 위해 쉬지 않고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영적인 성숙을 위해 믿음에 굳게 서야 할까요? 쉬우면 굳게 설까요? 한번에 되면 굳게 설까요? 시작하자마자 된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 유명한 목사님이 주일날 설교를 은혜롭게 했습니다. 신자중의 하나가 감동받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은혜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동안 준비하셨어요?”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60년 준비했습니다”. 목사님의 나이가 60세였습니다. 설교는 자료는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찾기 어렵습니다. 홍수때 기근이라고 물은 많은 데 마실 물은 없습니다. 자료는 많지만 설교자가 먼저 깨닫고 은혜받고 나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태어나자 마자 성자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다 어린아이로 테어납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 33년을 이 땅에 사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갈만한 길에 지름길은 없다”. 그렇습니다. 길이 좋을수록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도 단번에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광야를 지나야 했고 그나마 다 들어기지도 못했습니다.
<천로역정>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 크리스쳔이 어떤 집에 들어갔더니 한 사람이 그를 데리고 캄캄한 방으로 인도합니다. 방 안에는 한 남자가 철창에 갇혀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되리라고 상상도 못했던 사람이죠”. “어떤 분이셨는데요?” “믿음에 관해서라면 남못지 않게 자신했던 사람이죠. 매일 성경 읽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죠”. “지금은 어떤데요?” “이제는 자포자기 상태예요. 절망감이 철창처럼 나를 에워싸고 있죠.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되었죠?” 남자가 말했습니다. “자신만만했죠. 나는 조금 놀아도 된다고 생각했죠. 자만했죠. 그리고 얼마 지나니까 욕심이 슬며시 들어어더라구요. 그래서 세상에 나가 세상식으로 살았죠”. <천로역정>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세력은 밖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자만심과 게으름이 우리를 방해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연민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급증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쉽게 포기하기 경향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우리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벌레들입니다. 이것들 앞에서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자만심과 싸워야 합니다. 게으름, 조급증, 불순종과 싸워야 합니다.
“내가 누군데 그것을 해? 왕년에 기도 안해 봤나? 성경안읽어 봤나? 성경통독, 중보기도, 전도, 새벽기도 안해본 사람있나?” 그런 소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대로 했다면 그렇게 될 리 없습니다. 중국에 가면 “모소”라는 대나무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ㅂ보았습니다. 이 나무는 심으면 곧 자라지 않습니다. 한 해가 지나도 자라지 않습니다. 두 번째 해, 세 번째 해가 지나도 에도 아무 것도 올라오지 않습니다. 네 번째 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대나무를 심은 사람은 4년씩이나 물주고 거름줘도 자랄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뽑아버릴까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한 해만 더 가꿔보자 하고 물주고 거름줍니다. 그러면 다섯 번째 해가 되자마자 뭔가 뾰족이 올라오다가 불과 6주만에 15미터나 자라고 맙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겉으로 볼 때 아무 것도 없지만 속에서는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4-5년동안 물주고 거름주면 속으로 깊히 뿌리가 뻗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면 밖으로 확 올라옵니다.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라 땅속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믿음에 굳게 서서 쉽게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속으로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거름주고 물주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면 언젠가 큰 나무가 됩니다. 믿음의 나무도 하루 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하루 살이는 하루만에 자라고 꽃은 1년만에 자라고 소나무는 6년만에 자라고 참나무는 60년만에 자랍니다. 야구 선수 이승엽이는 하루에 5천번 이상 배팅 연습을 하고 골프 선수 최경주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골프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의사선생님은 자기가 하는 수술을 1300번이나 했다고 말합니다. 훌륭한 선수, 훌흉한 의사, 훌륭한 믿음의 사람은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끝까지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위대한 비전에 초대합니다. 큰 나무가 되는 비전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나무가 되시겠습니까? 하늘높히 솟은 종려나무? 성전대들보가 된 백향목? 성막의 재료가 되었던 광야의 싯딤나무? 아니면 우리 나라의 소나무? 어떤 나무가 되시겠습니까? 이상 하나님이 이 땅에 우리를 심었는 데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의 그늘이 되고 열매가 되고 생수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큰 나무가 됩시다. 영적 성숙은 하나님안에서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성숙(1) 막4:26-29, 골2:6-7 2015.10.4(일)
성숙: 큰 나무로 자라기
애슐리 헤기(사진1). 생후 3일(사진2). 3개월(사진3). 6개월(사진4). 첫 돌(사진5). 2년(사진6). 4살(사진7).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항상 물어야 할 질문은 나는 지금 자라고 있는가입니다.
씨: 예수님의 생명을 심어라
막4:26-29,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슴이니라.” 엡4:15-16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16절,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그로부터” = 성장의 근원
“그에게까지” = 성장의 목표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빌 하이벨스, , “우리는 숫자로는 성공을 했는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도표1)
(도표2)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2. 공급: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고 교훈받으라
골2:6,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뿌리를 박고”(나무의 이미지).
싯딤나무(사진7).
시42: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글을 뵈올까”.
“세움을 받아”(건물의 이미지)
“교훈을 받은대로”(교사의 이미지)
벧전2:2, “갖난 아이같이 신령하고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이로써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함이니라”
3. 믿음: 지속하고 감사하라
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천로역정>(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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