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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믿는 신앙인의 특권과 삶/벧전1:3-8

부활을 믿는 신앙인의 특권과 삶/벧전1:3-8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죽음의 죽음을 선포한 절기입니다. 나라적으로는 총선이 있는 주간입니다. 16대 국회가 많은 일을 하였지만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만큼 잘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도자가 국민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일해야 할텐데 당리 당략과 자신의 선거 당선을 위해 초점을 맞추어 일한다면 좋은 지도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16대 국회의원 273명 중에 기독교인이 111명이나 되었습니다. 장로 14명, 권사 3명 집사 44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대동 소이했습니다. 16대 국회가 뇌물 수수로 검찰에 기소된 사람은 26명입니다. 이들이 받은 돈은 무려 1315억원입니다. 52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되었고 12명이 의원직을 상실하였습니다. 1인당 4년 동안 16억 3천 만원을 지원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4년 동안 근무시간은 하루 8시간으로 할 때 152일 근무했다고 합니다. 자녀 병역 면제율이 23.5%로 일반인의 10배 가량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 무엇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도자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 지도자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 되면 안됩니다. 특권을 주었으면 그 특권을 가지고 특권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특권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면 안됩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본문에서 신앙인의 특권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이 주어진 특권과 부활을 믿는 신앙인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활로 주어지는 특권이 무엇입니까?
Ⅰ. 그리스도의 부활로 주어진 신앙인의 특권(3-5)
1. 거듭남(3)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첫 번째 누리는 특권은 거듭남, 중생, 새 생명 즉 죽지 않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3절을 현대어 번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헤아릴 길 없는 자비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거듭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되어 영원한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벧전 1:3)" 다시 살아 나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거듭나는 특권을 주셨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7)"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어 보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살겟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거듭난 특권,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의 특권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십니까?

2. 산 소망(3)
죽음으로 끝나는 소망이 아니라 언제나 살아서 계속되는 산 소망, 생명있는 소망을 우리는 특권으로 받았습니다. 부활을 통해 죽음으로 끝나는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부활한다는 소망, 이 땅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누리는 영생의 소망을 우리는 가지게 된 것입니다.

3. 기업(4)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는 천국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5절에 나온 것처럼 이 기업은 예비된 것입니다. 하나님나라, 천국입니다. 이 기업은 (1)썩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부패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침략자들에 의하여 황폐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2)더럽히지 않습니다. 정결하다는 말입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3)쇠하지 않습니다. 시들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영원히 그 아름다움을 보존된다는 말입니다. (4)하늘에 간직한 것입니다. (5)성도만을 위하여 보장된 것입니다.

4. 능력으로 보호(5)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철저히 보호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완전히 얻을 때까지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부활을 믿는 다는 한 가지 이유로 고향에서 쫓겨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잡혀 죽임을 당하던 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베드로 전서가 기록될 당시 로마 황제들의 심각한 박해가 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네로 황제 때에는 기독교인들을 불태워 정원을 밝힐 정도였다고 합니다. 박해의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1)그리스도인은 식인종-내 몸, 내살, 내피를 마신다고 가르쳤음으로-성찬식에 대한 오해
(2)부도덕한 무리-아가페 사랑, 성적으로 부도덕하다고 했습니다.
(3)상업을 방해한다고 했습니다.-에베소 교회 은장색 파동(행19:21-24)
(4)가족 파괴주의자들이라고 했습니다.-신앙의 형제 중요시
(5)노예 도둑이라고 했습니다.-노예가 그리스도화
(6)반정부주의자 무정부주의자라고 했습니다.-황제 숭배 반대, 로마시를 불사른 사람들이라고 오해를 받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카타콤에 숨어 예배를 드려야 할 때였습니다. 지금과 같이 자유롭게 예배드릴 때가 아닙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자기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할 때였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은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거듬남, 죽은 이 땅의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 나라의 소망, 비록 이 땅에서 부활을 믿음으로 집을 잃고 기업을 잃고 고난을 당하지만 영원한 기업 천국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확실하게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환란과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Ⅱ.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신앙인의 삶(6-8)

1. 크게 기뻐하는 삶(6,8)
부활을 믿는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불로 연단하는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7). 믿음의 시련입니다. 시련은 순금과 가짜 금을 구별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당시 의대생이 치르는 시험을 "시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이미지를 통해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당한 고통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6절 이하를 보십시오. 현대어 번역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어떤 사람들은 조소당하고 매맞고, 다른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돌에 맞아 죽로, 어떤 사람은 톱에 두 동강으로 잘려 죽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고 풀려나기보다는 칼에 맞아 죽는 편을 택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변장을 하고 광야와 산을 방황하였고 동굴이나 토굴에서 숨어 살며 굶주림과 병과 학대에 시달려야 하였습니다. (히 11:36-38)
그런데 이런 박해 가운데 그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오히려 크게 기뻐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잠깐 근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영생과 산소망, 영원한 천국, 확신한 보호의 특권을 분명히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늘 나라 상급을 받는 테스트로 생각했습니다. 금을 정련할 때 격는 과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당할 때 오히려 크게 기뻐했습니다. 불신자들은 절망하고 비관하고 자살하거나 운명에 맡기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기뻐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오히려 교만과 허영과 명예욕, 정욕, 탐욕, 이기심, 세속의 욕심들이 제거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우리 번역에는 빠져 있지만 그것으로 기뻐합니다. 그것은 곧 구원입니다.
결국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7절에 보십시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 설 때 인류 역사의 대단원이 내리는 날 그리스도 앞에서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런 즐거움으로 기뻐하였습니다(8). 잠깐 있다 없어지는 말초신경적 쾌락보다 영원한 영혼의 즐거움 영광스런 즐거움을 누려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시련을 유익하게 만든 사람들입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이분들은 많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으로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으로 오히려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신앙이라고 시련이 비켜가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이 다른 것은 시련을 당하되 그 시련을 유익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시련을 겪으면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욥은 얼마나 어려운 시련을 만났습니까?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시련을 받습니다. 그는 시련의 과정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고 고백했습니다.

2. 예수를 사랑하는 삶(8)
그들은 갖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예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면 두려움이 제거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8)" 제가 편집장 할 때 망우리 공동 묘지로 작품 사진을 찍으러 간 때가 있었습니다. 어둠과 밝음이 교차되는 시점을 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이 몰려오는 시각에 청춘 남녀가 그 공동묘지에서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그것을 찍었습니다. 홀로라면 갔겠습니까? 사랑하니까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자꾸 사랑하니까 문제가 복잡해 지고 두려워 지는 것입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예수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삶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사랑했기 때문에 흩어져 나그네가 되었지만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집을 잃었다고 자녀를 순교의 제물로 바쳤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뜨겁게 사랑하였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자신들을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사랑이 고난의 강을 건너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베드로가 배신하고 다시 어부로 돌아갔을 때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십시오. 세 번이나 사랑을 물어 보시면서 사랑의 동기를 회복시켜 부활의 증인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들은 그렇게 그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원형 극장에 기독교인들을 잡아다놓고 굶주린 사자들을 풀어놓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찬송을 부릅니다. 그러나 달려오는 사자 떼들의 포효 앞에서 찬송 소리는 작아지고 무참히 사자의 밥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한 여인이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마구 입을 벌리고 달려오는 사자를 보자 어린아이는 무서워 웁니다. 어머니는 이 아이에게 말합니다. “얘야, 잠깐만 참아라. 곧 밝아질 것이다”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활의 소망을 품고 죽음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허파에 산소가 필요하듯이 우리 신앙인을 생동적으로 살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3. 보지 못하나 믿는 삶(8)
핍박을 받으나 믿음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이 결국 이기는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히브리서를 보십시오. 그 모진 핍박 가운데 이긴 것이 무엇입니까?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히 11:33)"
청교도 신학자 Thomas Watson이 말하듯이, "이성이 걸어갈 수 없는 곳에서도 믿음은 헤엄쳐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서는 받는 흩어진 나그네 같이 사는 교인들은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는 줄 확실히 알았습니다(9) 그래서 어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값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권력으로 그 어떤 것으로도 영원의 구원을 받지 못하지만 이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의 부활로 주어진 특권을 이 땅에서 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 델리마쿠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로마에는 검투가 유행했습니다. 그는 검투사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잔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는 신앙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검투를 끝장내야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검투장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잔악 무도한 검투는 끝낼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는 가슴을 찔려 죽으면서 외칩니다.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잔악 무도한 검투는 끝낼지어다." 그의 죽어가는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에 흥분이 사라졌습니다. 한 사람 두사람 떠나갔습니다. 그후 로마에서 검투 경기 살아졌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은 한 시대의 난제를 끝냈던 것입니다. 로마의 권력이 이긴 것같았지만 결국 로마 사람 1/5이 예수를 믿게되었습니다. 천년의 중세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런 신앙을 가진 그들의 모습을 보면사 베드로는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편지를 쓰면서 첫 번째 찬송을 외치고 있습니다. 도망다니는 인생,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직장도 나갈 수 없고 부활을 믿는 것 때문에 이 땅에 즐겨할 인생의 모든 것을 포기한 인생을 사는데 무엇이 그렇게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산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확실한 구원을 얻도록 보장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부활절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까? 영원한 천국을 특권으로 받았습니까? 확신이 없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영생, 썩지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은 산 소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기업을 특권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 나라를 바라보면 고난 중에서도 찬송하는 삶(3)을 살 수 있습니다. 박해 중에서도 크게 기뻐하는 삶(6,8)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랑하다 절망하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사랑하는 삶(8)으로 활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 지키기 힘든 유혹의 세상에서 믿음의 삶(8)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의 특권과 삶/김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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