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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필곤목사

사명을 이루는 가정

사명을 이루는 가정
출2:1-10

[꿈을 가진 사람들의 세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황색의 빌 게이츠' '시애틀의 한인 억만장자'라고 불리는 폴 송의 어머니가 지은 책입니다. 폴 송은 27세의 나이로 정보시스템 컨설팅회사인 애리스 사를 만들어 10년도 못돼 연간 매출액 1억 1천만 달러를 넘는 회사로 성장시킨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로서 1968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교회를 개척하여 지금은 1천 여명이 모이는 교회를 만들었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앙으로 양육을 받았는데 어머니는 "미국 주류 사회 속에서 성공해 하나님과 한국의 이름을 빛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고 합니다. 결국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늘 마음에 새겼고 애리스 사를 돈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평생 이루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가정은 행복합니다. 좀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평생 사명을 가지고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이끌어 가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파묻혀 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 나에게 일생을 통하여 이루어야 할 사명은 있는가? 우리 가정이 이 땅에서 꼭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는가?" 진지하게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한 시대 쓰임받은 인물, 한 시대 쓰임받은 가정은 사명에 이끌리는 인물, 사명에 이끌림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을 배출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사무엘의 가정이 그랬습니다. 세례요한의 가정이 그랬습니다. 오늘 나오는 모세의 가정이 그랬습니다.

1. 사명을 이루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사명을 이루게 합니다. /은혜
하나님께서 한 시대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모세의 가정을 선택하였습니다. 모세는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명자로 태어났습니다. 행7:20에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4장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출 4:11)" 하나님께서 사명자로 부르기 위해 지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당시 시대적으로 암울한 때입니다. 희망이 없는 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였는데 이스라엘 사람의 인구가 늘어나자 잔인한 종족 말살정책을 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들을 대적할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새로운 왕은 가뭄으로 죽어갔을 때 그들을 살려준 요셉의 은혜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미 시간은 360여년이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애굽 왕은 산파들에게 아들을 낳으면 다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유아 살해 명령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인 모세의 부모에게 모세를 갔게 하였습니다. 왜그렇습니까? 모세의 가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창15:13-14절에서 400년이 지난 후 해방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 사명을 성취하는데 모세와 그 가정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 15:13-14)"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모세 가정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성경에서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메시야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한 시대 쓰임받은 다윗과 그의 가정을 보십시오. 한 갖 목동에 불과합니다. 아버지도 그가 왕감이 아니될 것으로 내어 놓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그에게 기름을 붓게 하여 왕을 세웠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성경을 보십시오.
"시편 22:9-10절에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母胎)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는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母胎)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또 시편 71:5-6절에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내가 모태(母胎)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라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모태로부터 선택함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메시야 예언을 가장 정확히 선포한 이사야를 보십시오. 이사야 49:1-3절에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胎)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腹)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경우도 예레미야 1:4-5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腹)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胎)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라는 말씀으로, 자신의 선지자로의 택함을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 즉 은혜의 선택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직접 소개하는 세례요한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1:13-16절에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 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母胎)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시대 예수님을 뜨겁게 증거하며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했던 바울을 보십시오.
갈라디아서 1:14-16절에 `내가 내 동족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胎)로부터 나를 택정(擇定)하시고 은혜(恩惠)로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이 이방의 복음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섭리로 어머니의 태(胎)로부터 예정함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의 신묘막측함입니다. 세상에 우연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필연적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진행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부부가 되게 하였고 하나님께서 사명을 이루기 위해 은혜로 가정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우리를 택해 주신 하나님께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결혼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아이 둘을 낳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들 하나를 주시길 원했습니다. 제가 불신 가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목사의 사명을 받아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목회자가 되었는데 아들을 낳아 조금 힘들고 어렵다해도 생명을 구원하는 목회자가 되었으면하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 만 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에는 저에게 아들이 없는가보다 생각하고 마음을 접고 교인둘이 "아들 하나 더 낳아야 하지 않겠어요" 물어 보면 이제 그만 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를 가진 것입니다.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저는 말한 것에 대하여 상당히 지키려고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교인들에게 거짓말을 한 꼴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아들 욕심있어 또 가졌다는 소리도 듣기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유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은혜로 낳았는데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가 기도한 것처럼 목회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아들을 주었는가 보다 은혜로 받아들이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들이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는데 어버이 날이라고 편지를 써왔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저 종성이에요. 오늘 봄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요. 엄마 아빠 감기 조심하세요. 요즘 감기 걸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아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좀 쉬었다 일하세요. 그리고 아빠 오래 사세요. 제가 누나들이랑 싸워서 속상하시죠. 누나랑 않싸우도록 노력할께요. 아빠 제가 이제 아빠 말씀을 잘 들을께요. 그리고 엄마 아빠 오래 오래 사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세요. 제가 필리핀에 있었을 때 엄마 아빠 보고 싶은 지 않보고 싶은지 잘 몰랐어요. 하지만 집에 가소 싶었던 경우가 많았어요. 엄마, 아빠 제가 커서 아빠가 좋아하시는 목사님이 될께요. 아빠 엄마 사랑해요. 종성 올림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분의 가정과 저의 가정을 선택하여 은혜를 주시고 자녀를 낳게 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부여해 주신 사명을 이루시길 원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과 저의 가정은 무엇보다 사명에 이끌리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2. 사명을 이루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상황을 통해 도와 주셔서 사명을 이루게 하십니다.
사명을 이루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여 이루어 주십니다. 모세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의하면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한 시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사명자로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살려고 태어난 사람이고 백성을 살릴려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민족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이미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가 사명자로 자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붙여 돌보와 주십니다.
모세가 낳을 때 산파들이 애굽왕의 말을 어기고 모세를 살렸습니다. 만약 발각이 되면 자신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왜 모세를 살립니까?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2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믿음 좋은 산파들을 통해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육신의 어머니를 통해 영적 생명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민족의식을 갖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깨닫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아들의 준수함을 보고 3개월 동안 몰래 집에서 기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에 보면 모세 어머니의 믿음입니다.
히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라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그 어머니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프뢰벨은 아이는 다섯 살까지 일생동안 배우는 전부를 배운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과장되기는 하였지만 그만큼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 11:24)"
바로의 딸을 통해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였습니다.
더 기를 수 없어 갈 상자에 역청을 칠해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 갈대 사이에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와 아이를 발견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당시 애굽이 얼마나 호화롭습니까? 여인들이 우유로 미용목욕을 하던 때입니다. 권력자입니다. 그런데 강으로 목욕하러 나왔습니다. 이 여인이 이렇게 한 것에 대한 이유를 다른 말로 설명할 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살리기 위한, 모세를 사명자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를 대려다 궁중 교육을 시키게 합니다. 특히 젓을 뗄 때까지 어머니 밑에서 교육을 받게 만듭니다.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아마 모세가 민족의식을 갖고 일생을 좌우할 신앙 교육을 받은 때는 바로 이 때였을 것입니다. 9절 보세요. 삯을 받고 아이젓을 먹인 것입니다. 아마 인류 역사상 자기 아이 젓을 먹이면서 월급받으면서 먹인 사람은 모세 어머니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명자를 기르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한 시대 사명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십니다.
요셉을 보세요. 형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유다가 도와 줍니다. 보디발이 그를 도와 줍니다. 얼울하게 감옥에 가서 죽지 않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이 그를 도와 줍니다. 결국 사명을 이루어 냅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은 라합이라는 여인을 가나안 땅에 세워 두셨습니다.바울과 276명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보블리오를 세워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아리마대 요셉을 세워 놓았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이방인들과 이방 임금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도들이 그를 환영하지 않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담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사람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바나바를 통해 그를 세워줍니다. 가는 곳곳 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와 사명을 이루도록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사람은 생명까지라도 바쳐 그를 도우려고 한 사람입니다.
가정의 조건을 보면서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보면서 좌절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사명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과정이라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사명을 이루시게 합니다.
모세는 죽음의 물에서 결국 건짐을 받았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물에서 건졌다는 뜻입니다. 사명자와 그 가정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결국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지만 훈련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명을 이루시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도 사명을 이루기까지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17여년 동안 피신하며 미친짓을 하였고 범죄도 하였고 갖가지 과정을 통해 왕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기도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었습니다. 야곱 얼마나 많고 험난한 과정을 거쳤습니까? 베드로 사명을 이루기까지는 부인도 하고 저주도 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너무 이상적이고 낭만적으로 생각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마치 가정은 천국이 되어야 하고 천국처럼 생각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은 죄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때로는 가장 많이 상처를 받는 곳입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최초의 가정 아담의 가정은 형제 간의 살인이 있었던 가정입니다. 제 2의 인류의 시조라고 하는 노아의 가정을 보십시오. 한 때 아버지가 자식들을 저주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받은 롯의 가정을 보십시오. 근친 상간이 이루어진 가정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의 가정을 보십시오. 아내가 둘이어 시기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결국 배달은 아들을 내어 쫓아야 만 했습니다. 다윗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아들이 반역을 합니다. 아들끼리 죽이는 골육상잔이 벌어집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이루지 못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연약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주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명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제품은 나오면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만큼 한 시대 사명자로 쓰임받기 위하여 교육이 필요하고 긴 시간이 필요한 존재는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동물들은 낳아 그대로 놓아 두어도 대부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놓아두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돌봄이 필요하고 사람답게 되기까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사명자로 기르기 위해 궁중 교육을 40년 동안 받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명자로 만들기 위해 이것으로 부족하여 광야 40년 동안 광야학교를 다니게 하였습니다. 살인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로 40년 긴긴 세월 고독의 훈련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지도자로 쓰게 되었습니다.
사명자가 걸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을 전체로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살인 사건에 얽매여 있으면 모세는 결코 민족을 구원할 사명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의 한 시점에 머물러 있으면 아니됩니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고 흘러간 바람으로 풍차를 돌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은 가정마다 사연이 있고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 바라보며 좌절해서는 아니됩니다. 그것을 통해 사명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보고 그 과정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더욱 사명을 견고히 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고 사명을 이루어 내는 단계가 되어야 합니다.
덴마크의 고독한 실존주의 철학의 창설자라 불리는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범한 두 가지 죄 때문에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그 부친이 소년 시절에 너무나도 가난하여 유틀란트의 황량한 벌판에서 양을 치면서 심한 추위와 굶주림에 못 견디어, 언덕에 올라가 그토록 가혹한 생을 주신 하나님을 저주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그 부친의 전처가 병으로 죽자 그의 하녀를 강간하여 임신하게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키에르케고르는 그 하녀가 낳은 8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형제 다섯 명이 일찍 죽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벌이라고 했습니다. 그도 34살 이전에 죽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자기 생일을 기록한 호적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는가 하고 호적을 조회해 본 사람입니다. 그가 아버지에 대하여 이런 수치스런 일을 안 것은 23살 때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가리켜 스스로 '대지진의 체험'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걷잡을 수 없는 타락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원망하고 탕아생활을 계속하던 중 죄책감에 못 견디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25세 때 '레기네 올센'이라는 16세의 미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오랜 세월의 방탕은 끝나게 되었으나 그는 그곳에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고민과 우울증에 빠지다가, 무서운 고독과 고뇌 속에서 마침내 사랑했던 그녀를 저버리고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했습니다. 그는 그에게 있는 척추병(?)이라고 추측되는 질병의 공포와 함께 아버지의 죄로 인하여 자신의 가문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집이라고 생각했던 심리적 불안으로 말미암아, 고독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인생을 과정으로 이해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를 용서하기 나를 용서하기"란 책이 있습니다. 데이빗 스툽, 제임스 매스텔러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부모에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부모를 보호하려는 강한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과거에 대한 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노력으로 "① 자신에게 어떤 상처가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② 자신의 부모에 대해 변명한다. ③ 자기 자신에게 탓을 돌린다.
④ 표면적인 용서를 한다. ⑤ 용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는 사람들을 공격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할 것 용서하고 출발하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붙들리면 안됩니다. 사명에 붙들려야 합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뮐러(George Muller)는 16살 되던 해에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었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술과 여자, 노름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뮐러가 20살 되던 해 성경 속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놀랍게도 그의 삶에는 대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의 전 재산 13만 5천 달러의 돈을 모두 이웃을 위해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쌍한 고아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이 사명에 붙들렸습니다. 그의 가정이 고아를 위한 삶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그는 한평생을 고아를 위해서 헌신하였고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모세의 가정처럼 내가 계속 기를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살인자가 되어 도망자의 신세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별의 과정을 겪어야 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 사람 사명자 모세를 기르는 과정이었습니다.

성경은 결국 모세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모세에 대하여 신명기 34장 10절에 "그후에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7장 22절의 "모세가 애굽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2장3절에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하니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이겠습니까?
나이만큼 성숙해 지고 안 만큼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생 살이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나의 의지대로 인생이 되어 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의지와는 정반대의 길로 갈 때도 있습니다. 오늘 새벽 기도회를 나오지 못했습니다. 2시 30분에 핸드폰을 맞추어 놓고 3시 50분에 전화 시계를 맞추어 놓았는데 다 듣지 못하고 잠을 잔 것입니다. 아마 일어나서 꺼놓고 잠을 잔 것같은데 그것이 기억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좌절할 것은 없습니다.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교인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토요일 도시락을 교회에 놓고 왔는데 오늘 아침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밥 굶지 말고 집에서 밥먹고 가라는 은혜인가보다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 위한 해석을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오늘 설교 안해야지, 교회 안나가야지, 목회 포기해야겠다"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든 그 과정을 통해 더욱 사명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부족하지만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고 열린 교회 창립 7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일찌기 영국의 사회 비평가 존 러스킨은 [인류역사는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가정의 역사]라고 갈파한 후 "한 나라의 수준은 그 나라의 가정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고 한 나라의 생존은 가정의 생존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한 것처럼 가정은 참으로 중요한 기관입니다. 우리 열린교회 가정들이 한 시대 사명을 이루는 가정으로 쓰임받았으면 합니다.
1. 사명을 이루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사명을 이루게 합니다.
2. 사명을 이루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상황을 통해 도와 주셔서 사명을 이루게 하십니다.
3. 하나님께서는 과정이라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사명을 이루시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