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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약 4:6~10

최웅섭 이야기는 타문화에 까다로운 무슬림 국가 아제르바이잔에서 1999년부터 사역하면서 정부 파트너로 인정받고, 비즈니스 선교를 펼치고 있는 글로벌테크 이사장 최웅섭 선교사가 펴낸 책입니다. 그는 선교의 꿈을 품고 목사 안수를 받고 199942세의 나이로 무슬림 국가 아제르바이잔으로 갔습니다. 법적으로 선교가 금지된 나라이기에 선교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컴퓨터 학원을 세워서 운영하던 중 선교 목적이 발각되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비자 문제까지 생기면서 아제르바이잔에서 추방당할 상황에 빠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신분을 확실히 해줄 수 있는 직업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던 중 비즈니스 선교라는 아이디어를 얻어 한국 중소기업의 제품을 파는 무역상사를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순간마다 말할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도만이 살 길이었습니다. “녹록하지 않은 현실 앞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을 때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슬림 국가에서 사업하면서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밝히고 정직하게 사업을 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저는 크리스천이라서 약속한 내용을 꼭 지킵니다라고 말하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작은 중소기업 제품으로 시작한 사업은 LED 대형 전광판으로 확대되었고, 나중에 건설업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체육관, 축구장 등에 50개의 대형 LED 전광판을 설치하게 되었고, 그가 설치했던 2010년 바쿠 세계 엑스포센터 전광판은 세계 최고의 초대형 회전 전광판으로 아제르바이잔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이후 사업가로서 신뢰를 얻어 축구장, 수영장, 리조트 건설 공사까지 수주했고 바쿠에 있는 8,200만 달러 규모의 토픽 바흐라모브 스타디움 리모델링 공사도 해냈습니다. 그는 아제르바이잔 정부의 사업 파트너이자 국가 VIP가 되어서 정부고관들뿐만 아니라 대통령과도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주변 무슬림 국가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며 최웅섭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씀 하나만 갖고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시편 3410절입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모든 사업을 진행하던 순간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이 기쁨은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받은 은혜가 큰 만큼, 앞으로 더 많이 나누고 섬기며 주신 달란트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을 서겠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시련 속에 찾아옵니다. 홍수 속에서, 가뭄의 한복판에서, 학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고통스런 순간을 지날 때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때일수록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할 때 아무리 혹독한 시련의 광야에서도 은혜의 꽃은 피어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를 주목하여야 합니다. 이미 은혜를 주셨지만 더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큰 은혜는 사람이 베푸는 은혜와 다릅니다. 사람의 은혜는 어려울 때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은혜인데 반해 하나님의 은혜는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입니다. 사람이 베푼 은혜와 비교 할 수 없는 더욱 큰 은혜입니다. 이 큰 은혜를 지속적으로 주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사람은 기분과 감정에 따라 돕고 사랑하는 것이 변덕스럽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갈수록 깊어지고 풍성하며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큰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십니까?

첫째로 겸손한 자에게

스코틀랜드의 어스킨(Erskine Brantly) 목사가 주일예배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칼렛이라는 여자 성도가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다음 주일도 어스킨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어스킨 목사를 만나 스칼렛이 물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제가 큰 은혜를 받았는데 오늘은 왜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수를 만나러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즉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나를 만나기 위해, 내 설교를 들으러 왔기 때문에 은혜를 못 받았습니다.” 교만은 말씀을 가로막고, 축복을 가로막고 은혜를 가로 막아버립니다. 그러므로 더욱 더 겸손히 낮아져야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강하면서 교만한 사람들, 스스로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싫어하십니다. 겸손한자, 연약한 자를 받아주시고 그들에게 더 큰 은혜의 세계를 열어주십니다. 그러기에 교만은 은혜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더 낮아져야 합니다.

주고받는 행위에도 정해진 법칙이 있습니다. 상을 받는 사람은 상을 주는 사람 아래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공식입니다. 상을 받는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받거나 상을 주는 사람이 땅바닥에 엎드려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돈을 벌었더라도, 지식을 많이 가졌더라도, 성공을 했더라도, 그것 때문에 교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말씀을 귀로 듣기만 할 뿐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 큰 은혜를 받는 길은 낮아지는 겸손함에 있습니다.

둘째로 복종한 자에게

11세기 당시 프러시아 황제 헨리 3(Henry III)는 나라를 다스리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수도사를 동경했습니다.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평생을 기도하면서 보낼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수도원 원장 리챠드를 찾아가 황제를 그만 두고 수도원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원장이 황제를 계속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폐하! 수도원에 들어오시면 다른 수도사와 마찬가지로 수도원의 계율에 철저하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수도사들이 지켜야 할 계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율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순종입니다. 철저하게 순종해야 되는데 하실 수 있습니까?” “따르겠습니다” “폐하, 그러면 첫 번째 계율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궁궐로 돌아가 나라와 백성을 성실하게 섬겨 주십시오.” 머뭇거리던 헨리 3세는 복종하는 마음으로 궁궐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심기일전하여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묘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졌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성실하게 섬겼던 황제가 여기에 잠들다.” 복종하는 자에게 임한 은혜의 모습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여기의 복종할지어다휘포타게테(ύποτάγητε)’하나님 아래에 자신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판단을 하나님 아래 두는 것이 복종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지를 굽혀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백성이 왕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은 왕의 백성됨을 거부하는 것이며 왕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러므로 복종하는 마음으로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면서 복종하지 않고 세상 정욕에 이끌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디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더욱 큰 은혜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성결한 자에게

파스칼(Blaise Pascal)12살에 유클리드 수학을 수립하고, 16살 때 원추곡선 이론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적 수학자였습니다. 그가 발표한 확률이론은 세계 수학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위대한 이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천재파스칼을 동경했고 우러러 보았습니다. 사교계의 여인들은 파스칼과 춤추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왕족까지도 파스칼과 식사하고 악수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파스칼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천재 수학자였습니다. 그는 사교계에서 사람들과 만나 날마다 술을 마시고 파티하며 즐겼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마차가 세느강 다리에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파스칼은 굴러 떨어져 마차에 깔렸습니다.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마차를 들어주어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 날 파스칼은 마차에 깔려 있으면서 유유히 흐르는 세느강을 바라보다 영원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이 도대체 뭐냐?”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파스칼아, 도대체 죽음 앞에서 너는 무엇이냐? 천재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죽음 앞에서 명성과 젊음과 많은 기대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거듭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원 앞에서의 초라한 인간을 생각하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허랑방탕하게 지내던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그에게 수녀였던 누나가 찾아와 위로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파스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결한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신학자이며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생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성결한 자로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여기의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는 것은 내적인 생각과 동기의 순수성을 유지하라는 표현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정결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자녀다운 합당한 삶을 영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세상을 즐기려는 마음을 회개 하고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구약시대는 제사장들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에 손을 씻었습니다. 손을 씻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깨끗이 서기 원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은 마음에 정함이 없는 상태로 말씀과 자신의 생각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입니다. 그럴수록 마음의 갈등만 커져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결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두 마음이 싸우던 자리에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설교자요 저술가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 목사의 간증입니다. 텍사스 오딧사의 시골에서 자랐던 그는 열 살이 될 때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바다를 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열 살 되던 해, 삼촌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를 방문하였는데 삼촌은 태평양이 보이는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그를 데리고 갔습니다. 넓은 백사장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던 맥스는 넋을 잃었습니다. 그를 감동시켰던 것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였습니다. 그 많은 물이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지 쉬지 않고 밀려왔습니다. 맥스는 삼촌에게 어떻게 파도가 계속 밀려오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삼촌은 천 년 전에도 파도는 똑같이 밀려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삼촌은 눈이 휘둥그레진 맥스를 쳐다보며 한 마디를 더했습니다. “우리가 다 죽고 난 천 년 후에도 이 파도는 계속 밀려올 거야.” 파도의 신비함을 느낀 맥스는 온 몸에 모래를 묻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순간 밀려오는 파도가 맥스를 덮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온 몸의 모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맥스는 더 많은 모래를 묻히고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파도는 더 큰 힘으로 몸에 묻어있는 모래를 씻어주었습니다. 어릴 적 경험을 이야기하던 맥스 루케이도 목사가 잠시 침묵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예배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그때 맥스 루케이도 목사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파도와 같아서 우리가 천 번을 잘못해도 우리를 향해 다시 밀려옵니다. 은혜는 파도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파도가 씻어내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바다에 아무리 적조현상이 심각하다해도 파도가 밀려오면 깨끗이 물갈이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더욱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완벽하게 하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큰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더 겸손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더 복종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더 성결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베푸시는 더욱 큰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