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살전 2:1~12
“당신은 구원받으셨습니까? 만약 오늘 밤 당신이 죽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Excuse me Sir, Are you saved? If you died tonight, Are you going to Heaven?) 이 말은 호주 시드니 조지 스트리트에서 40년간 노방전도를 하였던 프랭크 제너(Frank A. Jenner)가 한 말입니다. 제너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당신을 통해 주님을 영접했어요”라는 말을 듣지 못해 자신이 행한 전도가 열매가 없는 열심이었다고 회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영국 런던의 침례교 목사에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전 예배를 마치려는데 낯선 사람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잠깐 간증해도 됩니까?” 허락을 받은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합니다. “친척을 만나려고 호주 시드니 조지 스트리트를 걷고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실례합니다. 구원받으셨습니까? 오늘밤 죽으면 천국가십니까?’ 저는 그 말이 계속 신경 쓰였고,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증에 목사는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 후 침례교 목사는 미국 LA와 호주의 퍼스에서 설교를 하였는데, 똑같은 간증을 두 번 들었습니다. 런던에서도 말씀을 전하는데 네 사람의 노인이 찾아와 말합니다. “우리도 각각, 25년, 35년 전에 시드니에 갔다가 그 노인에게 같은 질문을 받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캐러비안 선교대회에 참석하여 이 간증을 나누었더니 3명의 선교사 역시 “우리도 각각 15년, 25년 전에 그 노인을 통해 예수를 영접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조지아에서 해군 군목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는데 군목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탄 군함이 호주 시드니에 정박하였을 때, 술에 취해 조지 스트리트를 지나가고 있는데 흰 머리 노인이 다가와 “당신이 예수 믿으면, 오늘 죽더라도 천국에 갈 것입니다”라는데 갑자기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였고 그 충격으로 예수를 영접하고 군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6개월 후, 인도에서 선교사 집회를 마치고 식사를 하다가 인도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었습니까?” 그러자 인도인이 말하길 “호주 시드니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 아이들 장난감을 사주려고 조지 스트리트를 걷는데 노인이 다가와 “실례합니다. 구원 받으셨습니까? 오늘밤 죽으면 천국에 가십니까?”라는 말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8개월 후 호주 시드니에서 말씀을 전하던 침례교 목사는 “혹시 이곳 조지 스트리트에서 전도를 하는 흰 머리 노인을 아십니까?” 라며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예, 그는 제너인데 지금은 연세가 많아 전도하지 못합니다.” 침례교 목사는 제너가 사는 아파트로 찾아가 최근 3년 동안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제너가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정리하고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갚기 위해 하루 10명에게 전도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40년 동안 전도를 하였으나 열매가 없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까 가슴 아파하고 있었는데 내가 전한 복음으로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제너는 이 만남이 있은 지 2주 후에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 후 침례교 목사가 확인한 결과 146,000명이 노인에 의해 전도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제너는 하나님 나라에서 유명한 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바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 당시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은 본서를 통하여 복음전파 사역은 하나님을 힘입어 이루어진 일이며, 그 동기는 하나님께서 증거하셨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자신은 복음전파를 위하여 보내심 받은 자이며, 복음을 위한 일꾼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전파 사역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복음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임으로 복음 자체에 흠이 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선교초기에 당했던 박해를 회고하면서 그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한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기쁘시게 하기에
1839년부터 오직 인도복음화에 일생을 바친 와일더 (R. R Wilder) 목사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좋은 조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선교사로 들어갔습니다. 30년 이상을 복음을 전하며 3,000마을 이상을 돌아다녔습니다. 그가 뿌린 전도지만도 300만장에 달했습니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3,300명의 아이들을 교회로 끌어 들였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그가 전하는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30년간 전도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던 까닭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영국의 웰츠(Von Welz) 남작 이야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를 만난 후 귀족으로서 섬김 받는 위치에서 내려와 섬기는 그리스도를 본받겠다며 남작의 직위를 버리고 재산을 포기하고 오직 복음을 전하며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해 일하였습니다. 주의 종이 되었는데 섬기는 것 외에 무엇이 있느냐며 주님 발아래 모든 것을 바치고 복음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도 그를 본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목숨을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임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함이라.”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를 가리킵니다. 여기의 ‘기쁘게 하다’는 원어로 ‘아레스콘테스’ 인데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고대 헬라세계에서 공공의 복지를 위해 공을 세운 자들의 묘비에 새겨지던 단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를 사용한 바울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사람들을 의식하고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였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명성을 드러내려는 동기가 없으며, 오직 듣는 자들의 유익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전도자의 복음을 전하는 목적과 동기를 정확히 아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바울이기에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품을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로 사랑을 보이기에
15년 동안 아프리카 54개 나라 중 33개 나라를 다니며 한센인 선교사역을 하는 신인환 선교사 부부가 있습니다. 신 선교사는 군복무시절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힘든 지역에 가서 섬기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는 서원대로 군복무를 마치고 2001년 2월,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파송받았습니다. 아프리카로 가기 전에 가족들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내가 택한 내 백성 가운데 가난과 질병으로 가장 고통당하며 탄식하는 백성이 아프리카 한센인들이다. 그들에게 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후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며 한센인들을 섬겼습니다. 사역하는 동안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 간암과 갑상선암 수술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암 투병 중에도 아프리카로 돌아가 한센인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사의 고비 때마다 음성을 주셨습니다. ‘너는 나에게 더 온유하고 겸손하라. 나를 더 사랑하고 의지하라. 네게 맡겨진 아프리카 한센인들을 나의 마음과 가슴으로 사랑하라.’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아프리카 한센인 사역지에 처음 갔을 때 몸이 썩는 냄새로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후각을 막아 이 냄새를 맡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한센인 가슴에 주님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한 영혼, 한 생명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선교사가 되보니 선교는 사명 받은 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십자가 사랑을 붙들고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섬기다가 아프리카 땅에 뼈를 묻을 것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됨이라.” 여기의 ‘사랑하는 자’는 ‘아가페토이’로서 ‘이기적 욕망이 아닌 이타적 사랑을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의 자신의 사랑은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적 사랑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목숨을 내놓고 전도한 동기 역시 사랑이라고 강조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로의 사랑을 체험한 자들이 그 사랑으로 다른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먼저 보여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잡힌바 되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에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증명되어야 하며 마땅히 보여야 합니다.
셋째로 합당하게 하기에
러시아의 문호이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은 대학을 다닐 때, 러시아 공산당 혁명사를 전공하고 수 백권의 책을 낼 정도로 박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미국에 건너와 1984년 템플턴 대학에서 이런 강연을 했습니다. “러시아 공산당 혁명이 일어나서 반세기동안 6천명이 넘는 인명이 죽어갔습니다. 가난에 시달리며, 비참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 악마와 같은 공산주의 혁명이 왜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공산당의 비극이 왔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 전도입니다. 전도야말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만드는 역사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시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합당’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악시오스’인데 ‘누구에게 자신의 가치가 증명되다’라는 뜻입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그것을 행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존재 의미가 증명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도록 만들기 위해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미국의 봅 그레이(Bob Gray) 박사는 전도에 관심을 가지고 아침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구원할 영혼을 붙여 주옵소서.” 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젊은이가 손을 들고 태워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저기 너의 사람이 있다”고 음성을 주셨습니다. 박사는 차를 멈추고 그를 태우며 물었습니다. “어디까지 갑니까?” “시내로 갑니다” “아니. 오늘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하여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휴게소에서 잠시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봅 그레이는 휴게소에 차를 멈추고 성경구절을 찾아 주었습니다. 구원의 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눈물을 닦으며 가슴에서 총을 꺼내며 말합니다. “제가 차를 멈추게 할 때 결심한 것이 있었습니다. 멈추는 차의 운전자를 죽이고 차를 빼앗아 다른 주로 가서 묻어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구원의 도리를 전하여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죽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봅 그레이 박사는 섬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복음도 전하고 생명의 보상을 받은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복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의 복음을 전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본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핍박과 훼방에도 굴하지 않고 전하였습니다. 아무런 사욕도 갖지 않고 오직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고 보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전도는 영혼을 변화시켜 하나님께 합당하게 하는 일이기에 더 미루지 말고 행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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