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김광일목사

처음 사랑을 찾으라-계 2:1~7

처음 사랑을 찾으라-계 2:1~7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코(三浦 綾子)는 수필집 사랑한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은 생활이 습관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처음의 순수한 마음과 감동이 사라져 버린 것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말합니다. 미우라 아야코가 13년 동안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무조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입원을 오래하면서 문병오는 사람들이 들고 오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먹을 것이나 꽃을 사오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책이나 위로금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찾아오는 사람이 반갑기도 하였지만 어떤 선물을 가져 왔는가에 마음이 더 쓰였습니다. 한 번은 몇 년 만에 반가운 친구가 문병을 왔습니다. 그런데 병실을 들어오는 친구의 손에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쩌면 문병 오는데 빈손으로 오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렇지. 아마 친구가 시간이 없어서 봉투를 가지고 왔나보다생각하였는데 인사만 하고 그냥 가는 것이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마 친구가 깜박 잊어버렸겠지. 조금 후 다시 올거야라고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어쩌면 몇 년 만에 오면서 빈손으로 올 수가 있어. 참 시시한 친구네라고 중얼거리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몸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병들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두려워 떨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내 안에 순수한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덧 고등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에게 사랑 받는 일, 선물 받는 일에 습관화되어 버렸습니까?” 습관화된 거지 근성을 발견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찾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격했던 처음 사랑의 마음을 잊어버린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가 책망을 면치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처음 사랑을 버렸기때문입니다. 4절의 너의 처음 사랑의 원어는 아가펜 수 텐 프로텐인데 너의 그 첫 사랑으로 번역됩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회의 지금의 행위와 교회가 세워질 당시의 처음 행위를 대조하면서,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마음,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과 열정들이 이단들과의 오랜 투쟁으로 모두 소모되었다고 말합니다. 수고와 인내로 표상되는 행위로 칭찬을 받았지만 그 행위들은 모두 사랑이 없는 행위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행위라도 사랑이 빠지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에베소 교회에 요구되는 것은 신학적인 정통 교리가 아니라 바로 처음 사랑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될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신앙생활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자기만족을 위해서나 습관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 없는 인내는 짜증만 날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예배는 지루할 뿐이요, 사랑이 없는 봉사는 지겨울 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원망과 피곤과 짜증과 불평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모든 행위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처음 고백하였을 때의 체험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의 감격과 감동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마음은 점점 냉랭해져가고 형식적인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배도, 기도도, 찬송도, 말씀도, 봉사도 타성에 젖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책망 받은 에베소 교회처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에 해당되는 모습은 아닙니까? 처음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첫째로 생각하라

로마의 황제가 그리스도인이 자꾸 늘어나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신하들을 불러 그리스도인들을 없앨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황제가 먼저 로마의 법을 강화시켜 그리스도인들을 무조건 죽이는 법을 만들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신하가 황제의 의견에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자들을 죽여 순교자로 만들면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순교자들을 추앙하기 때문에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죽이지 말고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가 예수쟁이들은 고문을 받기만 하면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고 좋아합니다. 또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늘의 상급이 더 많아진다고 기뻐하며 오히려 고문의 흔적을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 방법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없앨 수 없습니다라며 반대했습니다. 그때 구석에 있던 한 신하가 조용히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편안하게 즐기고 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간단합니다. 그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죄를 지을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는 있어도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없애는 가장 무서운 요인은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내부의 타락과 부패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사랑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대상이 물질이 될 수 있고 명예, 권세, 세상 쾌락일 수 있습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님과의 사랑을 멀어지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이 식어지고 점점 둔해지기 시작합니다. 나태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여기의 생각하라는 원어로 므네모뉴에이며 현재 명령형입니다. ‘마음에 간직하다, 기억하다(remember)’라는 의미입니다. 일시적으로 생각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자신의 상태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본래의 자리가 어디쯤인지 생각하여야 합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왜 사랑이 식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의 각박한 상황과 처음의 뜨거웠던 사랑의 모습을 비교해야 합니다. 무슨 까닭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형편과 영적 생활의 현주소를 찾아야 합니다. 정확한 진단이 있으면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거듭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회개하라

평신도 전도자 데닝 (Denning) 여사는 복음을 전하며 일생을 바친 분입니다. 그녀가 런던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유명한 옷가게에 아름다운 미모의 한 여성이 일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찾아갔습니다. 데닝 여사는 아름다운 드레스 한 벌을 사서, 그녀에게 다시 돌려주며 말했습니다. “이 옷을 가져다 입으세요. 그리고 다 낡아 헤어져서 쓰지 못하게 되면, 저에게 보내 주세요.” 이 말을 들은 그 여성은 깜짝 놀라며, “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는 이 옷을 파는 사람인데요?” 그러자 데닝 여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보혈로 당신을 사셨는데, 당신은 다 헤어져 못쓰게 되어서야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이 말을 들은 여성이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젊어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여기의 회개하여는 원어로 메타노에손입니다. ‘후에 마음을 돌이키다라는 뜻으로 부정 과거 명령형입니다. 즉각적 회개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죄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함으로 철저한 회개로 나아가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로 나와야 합니다. 잘못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있음을 고백하고 그 잘못에서 돌이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처음 사랑이 식어진 것을 깨닫게 되면 즉각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뒤로 미룹니다. ‘다음에 하라는 것은 사탄의 전략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진보가 나타나지 않고 믿음의 모양만 가지고 있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이 행한 모든 행위를 회개해야 합니다.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회개하며 처음 사랑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회복하라

프리셉트 성경연구원 창설자 케이 아더(Kay Arthur)의 간증입니다. 그녀에게는 결혼의 아픈 상처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 못하다 별거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남편은 합치기를 원했고, 요청을 들어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고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하는 두려운 마음에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자살을 하였고,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것을 잊고자 방탕한 길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영혼의 고통을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처를 싸매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녀는 고백합니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상처, 남편과의 별거로 인하여 두 아들에게 준 상처, 그리고 그 후 계속 정결치 못한 삶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준 더 큰 상처, 그 수많은 죄와 상처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녀는 그 후 말씀 사역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회복되도록 돕는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녀 역시 모든 상처, 아픔, 문제들을 하나님께 돌아감으로 해결하고 회복을 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여기의 가지라는 원어로 포이에손인데 만들다, 행동하다라는 뜻입니다. 회개의 결과가 즉각적인 행위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회개의 증거는 변화된 행동이요, 새로워진 삶으로 보여야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랑을 가지고 행하는 회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회복이 중요합니다. 처음 주님을 믿을 때 가졌던 사랑, 처음에 하였던 헌신들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듯이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자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사명 감당하던 자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국제구호 활동을 하는 작가 한비야(韓飛野)그건 사랑이었네라는 저서를 통해 나는 저렇게는 늙지 말아야지 하는 모습에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내가 왕년에는하며 옛날이야기를 하며 자기 생각과 경험이 진리라고 믿는 사람인데 대개 사랑이 식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잘 합니다. 둘째는 손에 있는 것을 쥐고만 있는 사람으로 나이가 들수록 베풀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입니다.” 한비야는 자신이 가진 경험, 물질, 시간, 에너지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주자학파가 되겠다고 주장합니다.

교회가 당면한 위기는 무엇입니까? 사랑이 메말라가는 것입니다. 기름이 없는 기계처럼 소리만 나고 능률이 오르지 않는 상태에 처음 사랑을 찾아서 부어야 합니다. 처음의 순수한 신앙상태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반가워해야 합니다. 처음 일할 때처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찾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이 임할 것입니다.

부디 처음 사랑을 찾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다가 어떻게 사랑이 떨어졌는지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곳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처음 신앙으로 돌아가는 회복을 통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