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김광일목사

예수께 잡힌 바 되라-빌 3:10~16

예수께 잡힌 바 되라-빌 3:10~16
다이히만씨, 당신은 왜 부자입니까’ (Warum sind Sie reich, Herr Deichmann)’라는 책은 탄광촌 작은 신발 수선집을 유럽 최고의 신발 기업으로 만든 다이히만사 최고경영자 하인츠 호르스트 다이히만(Heinz Horst Deichmann)의 이야기입니다. 다이히만은 독일 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뒤셀도르트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하다가 1956년 의사직을 포기하고 경영에만 매진하여 다이히만사를 유럽 최고의 신발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발을 위한 국민차로 불리는 다이히만사는 고객이 원하는 신발을 최소 이윤만 남기고 공급하는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벌 수 있는 한 최대로 벌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절약해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자라는 목표아래 수많은 지원 사역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인도에 나환자촌을 세워 물질적, 의료적으로 지원하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는 병원과 학교를 건립해 지역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과는 사막을 농지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라는 구호단체를 설립하여 독일은 물론 제3세계의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경영자의 나눔 정신을 이어받은 직원들은 자신의 월급의 일정액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하는 다이히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내게 얼마나 많은 신발을 팔았느냐고 묻지 않으실 겁니다. 그 분은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는지, 복음을 전파했는지 물으실 겁니다. 나는 그 일을 할 뿐입니다.” 독일에서 13번째 가는 부자였지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진정한 부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 사람이 바로 다이히만 (H. H. Deichmann)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쉬지 않고 달려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 역시 달리는 삶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예수에게 잡힌 바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그리스도를 위해 죽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다가 그리스도 예수에게 잡힌 바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성별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위해 달렸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달려가십니까? 무엇에 잡힌바 되어 살아갑니까? 마치 소가 코를 꿰어 끌려가는 것처럼 억지로 세상풍조에 끌려가고, 사람들에게 끌려가지는 않습니까?바울처럼 예수께 잡힌 바 되기 위하여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예수께 잡힌 바 되려고 하였습니까?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온전을 이루려고
피터 드러커(Peter F. Druker)“New Society”라는 저서에서 기업가 정신이 가장 강한나라로 한국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드러커 교수는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지배할 때 의도적으로 기업 정신과 리더십을 기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해방 후 6·25 전쟁을 통하여 나라가 잿더미가 되었지만, 한국은 잠재되어 있는 기업정신을 살려 세계 경제 강국으로 발돋음하게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드러커는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 김우중 회장을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가로 뽑았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가난이었으며 맨 주먹으로 기업을 일으켜 한국 경제적 기반을 닦은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에 맨손으로 대우그룹을 일으킨 김우중 회장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저서에서 6·25때 대구로 피난을 가서 살았던 이야기를 합니다. 14살 어린 나이로 4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신문팔이를 하였는데 하루에 100부를 팔아야 겨우 끼니를 이을 수가 있었습니다. 새벽에 신문을 받아 거리를 돌면서 신문 사세요외치며 한 부씩 팔았습니다. 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빨리, 많이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은 방천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하기 위해 도중에 신문을 사려는 사람이 있어도 팔지 않았습니다. 일일이 거스름돈을 주다 보면 손님을 빼앗길까봐 거스름돈을 하나씩 접어서 준비하였습니다. 더 좋은 방법도 생각했습니다. 더욱 속도를 높이기 위하여 사겠다는 사람들에게 우선 신문을 돌리고 신문 값은 나중에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방천시장에서 신문팔이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100부 이상을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이런 발상은 훗날에 대우기업을 일으킨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과거를 잊어버리고 온전히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앞만 보고 달렸던 것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여기의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와 같은 뜻의 단어가 앞 절에도 나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또한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바울은 같은 뜻의 말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였습니다. 온전히 얻었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잡은 줄로 알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바울은 오직 한 가지 일을 잡으려고 달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온전함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의 태도를 보십시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소극적으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잘못한 것도 잊어버렸고, 잘한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앞에 있는 것을 잡는 일에 집중한 것입니다. 새로운 각오로, 오직 한 일 즉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예수께 잡힌 바 되어 달려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푯대를 향하려고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만들어 비행에 성공한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 형제는 고등학교 중퇴 학력을 가진 평범한 자전거 기술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계획하고 노력하여 비행기를 발명하였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이들은 일찍이 예수를 영접하고 주일에 일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습니다. 비행 성공률이 높은 날씨라도 주일에는 비행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술과 담배는 물론, 도박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학벌도 시원찮은 라이트 형제의 실험을 가족 외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꿈꾸고 노력했습니다. 손재주가 비상해 자전거를 수리하고 제작해 벌어들인 돈으로 비행기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밤에는 수학, 물리학, 항공학 공부를 하며 본격적인 비행기 실험을 하던 3년 동안 아예 언덕에서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 비행기를 만들어 균형을 잡지 못하면 다시 만들고, 추락해서 산산조각이 나면 또다시 만드는 등 하루에도 20번 넘게, 석 달 동안 1,000번 넘게 글라이더를 하늘에 띄웠습니다. 당시 뉴욕 타임즈는 사람이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앞으로 천 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라며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나 19031217, 라이트 형제는 플라이어라는 이름을 가진 유인 동력 비행기를 처음으로 띄워 3m 높이로 12초 동안에 36m를 날며 비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후에 두 형제는 비행기 제작 회사를 차려 많은 돈을 벌었지만, 겸손을 잃지 않았습니다. 롤스로이스 자동차 회사 공동 창업자 롤스(C. S. Rolls)는 이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불신과 비웃음을 통한 계속적인 비난 속에서 살아왔지만 그것에 영향 받지 않았다. 대중들의 견해가 돌아서서 일약 유명해졌지만, 그들은 역시 거기에도 영향 받지 않고, 자신의 조용한 방식대로 매일의 작업을 지속했다.” 만약 이들이 현실에 안주하며 세상과 타협하였다면 절대로 비행기를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와 같이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예수께 잡힌 믿음으로 푯대를 향해 달려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14절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달려가노라.” 여기의 동사 달려가노라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했음을 밝혔습니다. 물론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였으며 확실한 푯대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해 푯대만 바라보며 달려갔습니다. 그의 믿음은 기다리는 믿음이 아니라 달려가는 믿음입니다. 끌려가는 믿음이 아니라 달려가는 믿음이었습니다.
바울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발견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져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푯대를 향하여 달렸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 성공입니까? 우리는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빈손으로 왔기에 또한 빈손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께 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감으로 온전함을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상급을 위하려고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펴낸 '내한선교사총람'에 의하면 1885년부터 한국을 찾은 외국인 선교사는 90년대 중반까지 총 2,956명이었습니다. 그중 1,529명의 선교사가 광복 이전에 한국 땅을 밟았고 10%는 질병과 사고로 한국에 뼈를 묻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기에 자녀를 잃기도 했고 배우자와 사별하는가 하면 본인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수모를 몸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루비 켄드릭(Lubye R. Kendrick) 선교사의 비문에는 내게 백 개의 목숨이 있다면 모두 다 조선을 위해 바칠 것이다라고 새겨 놓았습니다. 중국도 1900년 발생한 의화단 사건 때 189명의 선교사들과 자녀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순교했던 선교사 중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릭 리델(Eric Liddell)이 있었습니다. 선교사 자녀인 그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육상 4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올림픽의 영광을 뒤로 한 채 그리스도를 위하여 중국에서 20년을 사역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혀 가택연금을 당했고 영양부족으로 천국에 갔습니다. 그의 불꽃같은 삶은 영화 '불의 전차'에서도 소개되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의 부 때문에 주와 함께 고난당하는 것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어려움도 고난도 상급의 통로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예수께 잡힌 바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며 달리시기 바랍니다.
본문 1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동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린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며 계속하여 달렸던 것입니다.
당시 올림픽 경기 가운데 달리기 시합이 끝나면 승리한 선수의 이름이 불리어졌습니다. 그러면 시상대에 올라가 황제가 주는 상급인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달려갈 길을 마치면 하나님이 부르시고 상을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위하여 달렸습니다. 위에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발견되어지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1700년대 영국 사회가 타락했을 때 옥스퍼드 대학 기숙사에 키가 160센티도 안 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새벽 4시에 일어나 조용한 곳에서 말씀을 보고 기도했습니다. 매일 그렇게 하자 한 명씩 숫자가 늘었습니다. 숫자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그 모임을 홀리 클럽(Holy Club-거룩한 공동체)’이라고 불렀습니다. 모임은 몇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임을 이끌었던 작은 청년을 향해 메소디스트(Methodist)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방법주의자, 원칙주의자란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대로 살았습니다. 그가 바로 감리교회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John Wesley)였습니다. 웨슬리는 그 원칙을 가지고 북미 인디안 선교를 갔지만 3년동안 열매를 맺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모라비안 교도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성령의 뜨거움을 체험하였습니다. 원칙주의자에게 성령이 임하자 불같은 전도자가 되었고, 웨슬리를 통해 영국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고 감리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진 것이 부족해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께 붙잡힌바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달리십니까? 왜 달려야 하는 지 이유를 잊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께 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손봉호 박사는 오늘날의 교회는 주인을 잃어버린 개와 같다고 비유합니다.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돌팔매질을 해도, 발로 걷어차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주인이 데리고 나온 개에게는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손가락질과 비판을 받는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주인을 찾아야 합니다. 주인이신 예수의 손에 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달려야 합니다.
부디 그리스도의 온전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며 달려감으로 예수께 잡힌 바 된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10-01 18:3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