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19
이화여대 총장과 국무총리 서리를 역임한 장상(張裳) 교수는 국민일보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살아온 70년의 삶을 한약보자기에 넣고 꼭 짜면 ‘감사’라는 두 글자가 뚝뚝 떨어질 것입니다”라며 자신의 삶에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세 번의 특별한 경험을 소개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일곱 살 때 어머니와 함께 3.8선을 넘으면서 인민군에게 붙잡혔지만 천사 같은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일이었습니다. 이 일로 생명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일찌감치 감지했습니다. 두 번째는 건강을 자신하다가 뜻하지 않게 수술을 받은 일입니다. 이 경험은 인간은 흙으로 빚어진 존재여서 언제든지 깨지고 금이 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손길로 싸매어 줄 때 만이 안전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은 2002년 여름에 불어 닥친 총리청문회입니다. 이때 삶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는 듯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청문회를 겪으면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청문회 위원들이 심문할 때 대답이 궁색해 쩔쩔매고, 곤욕스럽고, 자존심이 상하고, 얼굴이 화끈 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모든 삶의 위기는 전혀 투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이었고 그로 인하여 더욱 더 감사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본 시편 기자의 고백에서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12절의 ‘내게 주신 모든 은혜’입니다. 자신의 삶에 나타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셨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6절에서 자기를 지켜주셨고, 어려울 때 구원해주셨음도 감사하며, 8절에서 영혼을 사망에서, 눈을 눈물에서 발을 넘어짐에서 건져주셨음을 계속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생명을 보존하시고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하신 은혜입니다. 사고의 위험에서 지켜 주신 은혜입니다. 간구에 응답하여 주신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 은혜를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차고 넘쳤습니다. 본문 12절을 통하여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어떠한 모습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리라고 합니까?
첫째로 이름을 부르며
‘로렐라이’로 알려진 유대 출신 독일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는 조상의 하나님을 버리고 멋대로 살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남다른 명성을 얻었지마는 말년에는 정치적 실망과 척수마비로 고통당하였으며, 한쪽 눈은 시력을 잃은데 다가 다른 한쪽 눈은 눈꺼풀이 마비되어 무엇인가 보려고 할 때마다 그것을 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하이네는 침대에 누워 거의 8년이나 고통을 겪는 중에 마지막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밀러의 ‘비너스’를 보러 갔습니다. 그리고 하이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발을 질질 끌며 루브르 박물관까지 갔다. 거기 영원히 은총 받은 미의 여신이 주춧돌 위에 서 있는 넓은 홀에 들어섰을 때 나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 나는 그녀의 발아래에 오랫동안 누워있었다. 그러고 심지어 돌들까지도 나를 동정할 정도로 비통하게 울었다. 여신이 나를 자비롭게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별로 평안을 못 느꼈다. 그 여신은 마치 ‘나는 팔이 없어서 당신을 도울 수 없다는 걸 모르세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이네는 팔 없는 비너스 상 앞에서 참 구원자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비로소 하이네는 유대인이지만 개신교인으로 거듭나고 이름도 크리스천 조안 하인리히 하이네 (Christian Johann Heinrich Heine)로 개명을 하고 구원 받은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세상의 무엇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시기에 그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고대세계에서 잔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의미합니다. 이 잔에 하나님의 축복 또는 저주가 담긴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 다윗은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 찬 자신의 인생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마셨다고 하나님의 징벌을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구원받은 성도의 도리이기에 감사의 잔을 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환경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구원의 잔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여야 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결박에서 풀어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여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높여야 합니다. 감사는 입술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표현되지 않는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받은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감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서원을 갚으며
영국 선교부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 선교할 때의 일입니다. 부둣가에서 전도를 하던 중에 선박의 노예로 팔려가는 20여명의 흑인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아이가 끼어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이 말합니다. “이 아이는 선박에서 노동하기가 불가능하니 우리에게 파세요.’ 어렵게 흥정을 해서 겨우 아이를 샀습니다. 그리고 선교부에서 청소하고 물건을 나르는 일을 시켰습니다. 3개월 후 아이가 밤마다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선교부에서 아이를 영국에 보내어 공부를 시켰습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는 신학대학까지 마쳤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임지를 결정할 시기가 닥쳐왔는데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임지를 결정하기 위한 기도 때문에 수학여행에 불참하기로 했습니다. 이틀 동안 혼자 기숙사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회상해보니 선교사들이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노예로 일을 하다가 등에 채찍자국 뿐이었을 것이며, 병들면 쇠사슬에 묶어 물에 던져 고기밥이 되었을 신세가 아닌가? 그런데 흑인으로서 할 수 없는 최고의 공부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니 ‘주여 저를 어디로 보내시렵니까? 원하신다면 고향 나이지리아로 가서 목숨을 바치겠나이다’라고 서원기도를 하게 됩니다. 마침내 그는 목사 안수를 받고 서원한대로 조국 나이지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에디 자이(Eddie Zahi) 목사입니다. 1848년 나이지리아의 부흥은 에디 자이 목사의 헌신에서 왔다고 교회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원을 갚으려는 믿음에서 나온 감사의 모습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여기의 서원은 원어로 ‘유케’인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혹은 맹세’라는 뜻입니다. 서원은 자발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서원을 하였습니다.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았으나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만 했습니다. 서원을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 속건제를 드려서 용서받아야 했습니다. 서원은 빚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본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대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공개적으로 약속했습니다. 맹세를 이행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 역시 하나님께 서원한 것들을 모두 갚아야 합니다.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갚는 것이 감사하는 자의 올바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감사제를 드리며
‘의사 전도왕’의 저자 포천 중문 의과대학 이병욱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위 수술만 1000회 이상 집도하면서 재수술이 하나도 없을 만큼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권위있는 전문의입니다. 그런데 외과 의사인 자신에게 늘 불만이 있었습니다. 힘든 수술을 하는 3D업종(Difficult , Dirty, Dangerous)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이병욱 박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은 돈을 벌어 큰 집에 살거나, 외제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과시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다’라는 패러다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감사 마인드가 되었습니다. 수술하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NEW 3D업종이라고 말합니다. New 3D란, ‘드림(Dream) 다이나믹(Dynamic), 드라마틱(Dramatic)’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일은 꿈이 있는 직업이요, 역동적인 직업이요, 죽을 사람을 수술해서 살리는 극적인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이병욱 장로는 말합니다.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어 즐겁고, 감사가 넘칩니다. 저는 감사의 삶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틈만 나면 전도하는 전도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은혜요 그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다윗은 말로만의 감사가 아니라 제물을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리라고 고백합니다. 감사제는 이미 받은 축복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제사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제사는 반드시 제물을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감사제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출애굽기 23장 15절에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출34장 20절에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나가야 했습니다. 감사의 제물을 드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제를 드린다는 것은 감사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요, 감사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감사의 삶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시켜 나가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감사의 제물과 찬송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감사로 보답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답하지 않는 자는 구원의 은혜를 진정으로 체험하지 못한 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 제물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이유’에 대한 글을 소개합니다. “지금 당신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세상에 전기의 혜택 없이 사는 2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집에 식수시설이 되어 있다면 그렇지 못해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하루 천 원 이상으로 생활하고 있다면 천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 명의 사람들보다, 하루 한 끼라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8억 명의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백만 명의 환자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한 번도 전쟁의 위험이나 수용소의 외로움, 고문의 고통, 굶주림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5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체포, 협박, 학대, 고문,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없이 교회에 나갈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30억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며, 만일 당신의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당신의 몸에 옷이 걸쳐져 있다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75%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은행에, 그리고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고, 어딘가 작은 접시에 동전을 모아 놓았다면 이 세상의 8%안에 드는,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부자다. 부모가 아직 살아계시고 지금 혼자가 아니라면 보기 드물게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 세상의 20억의 사람들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받은바 은혜는 무엇입니까?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깨달아야 비로소 여호와께서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의 고백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해야 합니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받은 구원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께 서원을 갚으며 충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제물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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