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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하러 왔노라-마 2:1~12 (성탄주일)

 

경배하러 왔노라-마 2:1~12 (성탄주일)

동화작가 레네 마이어 스쿠만츠(Lene Mayer Skumanz)꼬마여우와 아기 예수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기 예수가 세상에 오신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말과 소, 새와 양, 그리고 여우가 예수의 말구유 주변에 다가왔습니다. 살며시 눈을 뜬 아기 예수께 동물들이 자랑합니다. 말은 하나뿐인 밥통을 선물했다고 말합니다. 소는 젖을 드렸고, 새는 밤새 노래를 불러드렸다고 하고, 양은 털을 깎아 드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교활한 여우는 아기 예수께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합니다. “예수님, 저는 교활함을 드립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짐승들이 소리쳤습니다. “뭣이 어쩌구 어째. 아기 예수께 교활함을 드리겠다니. 그게 귀한 선물이 될 수 있어?” 그런데 아기 예수가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조용히 하렴. 여우를 향해 비난을 그만하렴. 말아! 너는 나에게 소중한 밥그릇을 빌려주어 고맙다. 그러나 나는 잠시만 이곳에 있을 뿐이야 그 때 다시 구유를 돌려줄 수 있겠지. 소야! 나에게 맛있는 젖을 주어 고맙구나. 그러나 내일도 네 젖은 많은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 줄거야. 새야! 나를 위해 밤새 노래를 불러주어 고맙구나. 그러나 너는 내일도 그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할 수 있지 않니. 양아! 나에게 네 소중한 털들을 깎아 주어 고맙구나. 그러나 털은 다시 자라 네 몸을 덮을거야. 그런데 저 여우에게 교활함은 여우의 모든 것이다. 여우에게 교활함이 없다면 여우는 살 수가 없지. 여우는 사실 내게 모든 것을 드린 것이 아니겠니?” 그리고 아기 예수는 손을 내밀어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자기의 것 중 일부를 주었지만 여우는 내게 모든 것을 주었단다.”

본문에 나오는 동방박사는 1250,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로마에서 북경까지 여행을 하고 저술한 동방견문록을 통해 실재적 인물들로 밝혀졌습니다. 그가 페르시아에 들렀을 때 무덤과 세 개의 비석을 보았는데, 동방박사의 무덤이었고 비석에 그들의 행적에 관한 비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대 땅 베들레헴까지 평탄한 길은 아니었지만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한 달여를 걸어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한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소유하기 전에는 만족함이 없다고 느끼면서 눈을 하늘에 돌린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던 동방박사들이야말로 참된 경배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본문의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경배하다입 맞추다는 말과 가까이 다가가다는 뜻이 합성된 단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입맞춤으로 존경심을 표하면서 왕으로 오신 이를 영접하는 태도입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에는 다른 목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바람도 없이 오로지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예수께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철저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경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동방박사의 경배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은 어떻게 아기 예수를 경배하였습니까?

첫째로 기뻐하며

2차 세계대전 당시 맥도널드(Gordon MacDonald)는 군목으로 참전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 곳에서 한 포로가 라디오를 조립하여 비밀리에 영국 BBC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전쟁 상황을 파악하여 수시로 포로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그가 맥도널드 목사를 깨우며 다급히 말했습니다. “그들이 왔어요.” 이 말은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이 왔다는 소식이 수용소에 퍼지자 포로들이 기뻐서 마당으로 뛰어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왔다, 그들이 왔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쁜 순간입니까? 포로에서 구출해 줄 연합군이 왔다는 것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독일군은 포로들의 이상한 행동에 경계를 강화하며 괴롭혔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이후 수용소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괴롭히고 힘든 일을 시켜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얼굴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곧 전쟁이 끝나 풀려날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오시는 의미를 모르는 자들에게 성탄의 소식은 아무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에게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됩니다. 예수 탄생이 큰 기쁨의 소식이 되기 바랍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여기의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의 구절을 통해 동방박사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 먼 길을 왔습니다. 곧 목적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큰 별로 친히 자기들을 인도해주시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의 기쁨과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예루살렘의 백성에게 없었습니다. 기다리던 메시야가 탄생하셨다면 당연히 기뻐해야함에도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경배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십니까? 세상 향락에 빠져 성탄의 소식을 외면하는 것은 아닙니까? 동방박사들은 메시야의 별만 보고도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은 자이기에 최고의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해야 합니다. 높은 보좌를 내어놓으시고 낮은 땅으로 오신 예수를 맞아 기뻐하며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엎드리며

한 무리의 문학가들이 런던의 클럽에 모였습니다. 빛을 남긴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만일 이 방에 실낙원의 저자 밀턴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열렬한 박수로 환영해야지요.”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만일 위대한 셰익스피어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두 일어나서 문학의 거장인 그에게 영광의 관을 씌워 드려야지요.” 그는 세 번째 물었습니다. “만일 이 방에 나사렛 예수께서 들어오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때 찰스 램(Charles Lamb)이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의 발아래 얼굴이 땅에 닿도록 엎드리어 경배를 해야 되지요.”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성탄에 찾아오시는 예수께 엎드려 무릎을 꿇고 경배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집에 들어가 이가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여기의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의 경배는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동방박사들이 헤롯이나, 요셉, 마리아에게 경배하지 않았던 이유는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직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예수만이 경배 받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께 엎드려 경배해야 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보배합을 열어 경배하였습니다. 준비한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수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들이 드린 예물들은 귀하고 값진 것들이었습니다. 예물은 경배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도 가장 값지고 귀한 예물을 드리며 예수께 경배하여야 합니다. 마음과 몸을 낮추어 경배하여야 합니다. 오직 그 분만 높이고, 엎드려 그 분께 영광 돌리며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순종하며

 

하이네 오베라우치(Heiner Oberrauch)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으나 감사하지 않고 예배도 게을리 했습니다. 그러다 어려움이 닥쳐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거액의 돈을 숨기고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교회에 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복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음을 철저히 깨닫고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좀 더 열심히 예배 생활을 잘할 걸...’ 후회하며 숨겨두었던 거액을 하나님 앞에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거액을 헌금으로 드렸다는사연을 들은 교회는 하이네의 빚쟁이들을 만나 그를 감옥에 넣지 말고 재기하도록 도와주자고 말하였습니다. 하이네는 기회를 얻어 교회에서 모아 준 성금으로 사업을 시작하였고 마침내 세계적 재벌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망하는 길에서 잘 되는 길은 하나님을 향한 경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지시하는 길을 하나님의 지시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였던 결과였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동방 박사들이 받은 계시의 내용은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헤롯은 아기를 찾거든 돌아와 고하라는 임무를 박사들에게 주었습니다. 자기도 경배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속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속셈을 알고 계셨기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지시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의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는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다른 길로 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아기 예수와 동방 박사들을 지키고, 헤롯의 살인적 계획을 무산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동방 박사들에게 헤롯의 눈길을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를 바르게 경배하는 자들은 지금까지 왔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우리도 동방 박사처럼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최고의 경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경배는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귀한 예물을 드려 경배하였다 해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저자 마태는 예수에 대해 빈약한 지식을 가지고 경배하러 왔던 동방 박사들과 성경을 잘 알면서도 예수 탄생에 냉담한 태도를 보였던 대제사장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였던 동방박사들의 모습과 소동하는 헤롯을 비롯한 유대 백성들의 모습을 대조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지식이 많다고 경배를 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권력이나 소유가 많다고 더 잘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경배는 거리가 멀거나 가까운 것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경배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의 영혼이 메시아로 오신 분에 대하여 이미 경의를 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태도가 그러하였기에 희생이 따르고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었지만 기꺼이 아기 예수 경배하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Madre Teresa)는 그 마음에 아기 예수를 모신 사람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예수를 발견했습니다. 마음에 예수가 있는 사람은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서 예수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만 마음 한가운데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경배해야 합니다. 어떻게 경배해야 합니까? 동방박사들처럼 기뻐하며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엎드려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경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변화된 삶으로 나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