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고전 4:14~21 1889년 역사에 남을 만한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사교 생활에 흥미를 느껴 나다니기만 했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아이를 알코올 중독자 숙모에게 맡기고 달아났습니다. 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연명하다가 독일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후, 그는 정치계에 투신하여 극렬분자가 되었습니다. 반란 음모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어 정치계에 나서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출옥의 혜택을 받았으나 더욱 맹렬히 정치 활동을 했고, 마침내 1933년 독일 국민의 절대 영도자 총통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이며, 그로 인해 독일과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다른 아이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부모는 농촌생활이 아이의 신앙교육에 유익하리라 생각하고 캔자스 농촌으로 이사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훈을 전해 주었고, 가족 모두 교회의 적극적인 봉사자로서 이름이 높았습니다. 아이는 성장해서도 어머니의 두 팔에 안겨 간곡하게 기도하던 매일 저녁의 일과를 기억하였습니다. 군대에 흥미를 느끼고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D. Eisenhower)이며 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하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44년 동갑내기 두 사람은 전투에서 대면하였습니다. 11개월에 걸쳐 히틀러는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와 싸웠습니다. 그러나 패전한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 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는 갈채를 보냈습니다. 한편 아이젠하워는 히틀러보다 25년을 더 살았고,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으며, 그의 죽음을 전 세계가 애석해 했습니다. 동갑내기 이들의 삶은 부모의 가르침이 자녀에게 미친 영향의 얼마나 큰 가를 역사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두 번째 전도여행을 하며 고린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믿는 자들이 생기고 고린도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정성을 다하여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 있는 동안 고린도 교회에 시기와 갈등으로 분쟁이 가득하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권면을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에게 권면한 것입니다. 우리는 충고할 때마다 상대방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잘못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불평은 문제를 지적하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라면,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그 잘못 속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하려는 자들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권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권하여야 합니까? 첫째로 복음으로 권하라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가 열 세 살 때에 혈우병을 앓아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중 수혈이 잘못되어 후천성 면역 결핍증 에이즈(AIDS)에 걸려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모나 형제도 의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밝은 웃음을 보였고, 모두에게 친절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며 날마다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해졌을 때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라이언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명 인사들이 찾아와 병문안을 했습니다. 대통령 레이건도 친히 방문했고, 가수 마이클 잭슨도 소년을 찾아와 위로하였습니다. 소년은 5년을 더 살다가 18세에 죽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어 가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무 것도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그러자 아들은 대답합니다. "아니요. 저는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아빠가 주신 선물을 준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아빠는 저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었고, 예수를 믿게 해 주었고, 그의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보다 위대한 선물은 다시 없을거에요.” 아버지는 복음으로 아들에게 권한 것이었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여기서 ‘스승’은 후견인 혹은 가정교사를 가리키는데, 당시 노예들이 이런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들을 지도하기는 했으나 장래를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스승과 비교하여, 자신을 ‘아버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산고를 겪으며 낳은 복음의 자식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자신을 말씀의 지식만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해산의 고통을 통해 영혼을 낳은 아버지로 비유한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을 거듭나게 하여야 합니다. 머리로만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성숙해 가도록 복음으로 권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해산의 고통과 더불어 양육을 위한 수고가 요청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자들의 사명은 영혼을 복음으로 권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가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본이 되어 권하라 폴 워커(Paul L. Walker) 목사는 구원의 경험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제가 자라는 동안 교회학교 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오직 한 분이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해병대 출신으로 몸집이 크고 얼굴이 붉었는데, 좋은 교수 방법이나 규칙은 하나도 따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우리들을 매우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자’면서 큰 팔로 우리들을 끌어안고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중에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의 본을 닮다 보니 무려 일곱 명이, 그 반 전체가 목회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폴 워커 목사의 스승은 단순히 가르치는데 그치는 스승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는 본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여기의 ‘나를 본받는 자기 되라’는 권면은 복음의 자식들을 향한 극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 의미는 부질없는 사소한 것들에 의해 흔들리지 말고 오직 복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기를 힘써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리고, 헐벗고 매 맞으면서도 온갖 핍박과 고통을 참으면서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권위로 사도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을 통해 사도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수고를 다해 부끄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 바울은 계속해서 본을 보이며 살겠다는 다짐의 뜻이었습니다. 우리도 본을 보이며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완벽한 교육입니다. 배우는 자들은 본 대로 따라 합니다. 혼탁한 시대에 바울 같은 힘 있고 강력한 권고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자의 언행이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사랑으로 권하라 히틀러 독재정권에 반기를 들고 앞장섰던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는 히틀러의 전쟁과 유대인 학살에 대하여 단호하게 비판하고 저항하였습니다. “만약 미친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대로로 간다면 자기는 목사로서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이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 즉시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미친 사람으로부터 차의 핸들을 빼앗아 버리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나치정권 전복을 계획하며 히틀러를 혹독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런 연유로 감옥에 끌려가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회퍼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는 평생 히틀러를 비판만 했지, 그의 영혼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본회퍼는 자신의 사랑 없는 항쟁운동을 깊이 회개하였다고 그의 일기를 통하여 고백하였습니다. 삶의 현실에서 우리도 과연 사랑으로 풀어가고 있는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인권운동의 선구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은 ‘사랑 없는 권력은 무모할 뿐이다’라고 경고하였습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이는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안타깝게 여기고 타이르는 모습입니다. 이는 진실한 하나님의 종이 성도들을 절절이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의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깊으신 사랑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타이르고 매를 쳐서 꾸짖습니다. 그러나 꾸짖는 것이 벌이 목적이라면 아들이 아니라 종입니다. 온전케 하려는 사랑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의 동기로 인한 가르침이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위한다고 모두 다 해주는 사랑은 삶을 망치고 말 것이지만 사랑으로 고치려할 때 그들을 파멸에서 구해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이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권하여야 할 것입니다. 복음성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부릅니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헬렌 켈러(Helen A. Keller)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통에 시달렸습니다. 7살이 되던 1887년 3월 3일, 앤 설리반(Anne Sullivan) 교사를 만나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헬렌 켈러가 설리반을 만나기 전까지 짐승처럼 난폭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내하며 가르쳐 주던 설리반에 의해 삼중고를 이기고 빅토리아여왕으로부터 훈장까지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가르쳤던 설리반 역시 불행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하였고, 안질이 심해 맹인이 되었다가 개안수술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보스톤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가 간호사의 사랑으로 치료를 받던 그녀는 바아바라 목사를 통해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불행한 이웃을 위해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 후 자원하여 헬렌 켈러를 48년간 돌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는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좋은 교사는 머리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교사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함께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자들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르치려는 사람들을 보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긍휼로 그들을 보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머물러야 하고,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들을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이해하고, 더 희생하고, 더 섬기게 될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들은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복음으로 권하며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본을 보이며 권하여 가르치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권하며 가르쳐 진정한 제자를 만들어가는 복된 교사들과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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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1 15:5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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