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시 15:1~5 정숙희 기자가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났을까’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녀는 이 책에서 한국교회는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느 교회를 다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교회를 떠나고 또 어느 교회를 다녀야 할지 고민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교회에 실망했기 때문인데 가장 큰 이유는 목회자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교인들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교회 때문이 아니라 교인 때문입니다. 정 기자는 책을 출간한 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교회를 추천해 달라고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럴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어느 교회든 당신이 다님으로써 좋아지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 교회 밖에서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회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와 교인을 혼동합니다. 교인 때문에 실망해 놓고, 교회 때문에 실망했다고 말합니다. 교인에게 상처받고, 교회로부터 상처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인이 싫은데, 교회가 싫다며 교회를 떠납니다. 교회와 교인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인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실망시키지 않고 상처도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인 때문에 교회에 대해 마음 문을 닫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교인에게 실망했다고 교회에 대한 사랑이 식어져서도 안 됩니다. 교인에게 상처 받았다고 교회에 대한 사랑을 끝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의 몸이기에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예수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는 것은 곧 예수를 박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예수께서 이 땅에 남겨두신 그의 분신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더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향해 마음 문을 열어야 헌신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때 주의 장막에 계속하여 머무르는 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본시는 다윗이 쓴 지혜시입니다. 이 시편은 입당송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입당송은 예배자들이 성전에 들어가려 할 때 제사장에게 입당 자격을 묻고 거기에 제사장이 대답하는 형태로 된 노래입니다. 본 시는 궁극적으로 성전이 예표하는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거하게 될 자의 모습 또는 자격을 가르치기 위해 지어진 지혜시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종교적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 구절은 예배자들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여기의 장막은 성소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누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에서 예배할 수 있습니까? 다윗은 예배의식을 행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행위가 아니라고 말하며 예배자의 마음가짐과 진실한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장막에 머무르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영적으로 깊이 교제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정직히 행하여야 영국의 잭슨(Jackson)과 루이스(Lewis)는 2차 대전이 끝나자 동업하기로 하고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둘은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백동촛대를 은이라고 속였고 구리시계를 황금시계로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처음엔 짭짤한 수익을 올렸으나 그 일이 반복되자 잭슨과 루이스가 사기꾼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이보게, 이제 아무도 우리를 믿지 않게 되었네, 어쩌지?” 잭슨이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자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정직하게 장사를 해보자구. 손님들이 우리를 완벽하게 믿을 때까지만 말일세. 10년쯤이면 될까. 그래서 사람들이 완전히 믿을 때쯤 크게 한 탕 하자구.” 그 길로 잭슨과 루이스는 헤어져 정직하게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1년쯤 지난 어느 날 잭슨이 루이스를 찾아왔습니다. “이보게, 어떤가? 아직도 사람들이 날 믿으려 하지 않아. 망하기 직전이라구”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나 어쩌겠나. 멋지게 한탕 하기 위해 약속한 날까지 정직하게 장사를 해보자구” 루이스의 격려를 들은 잭슨은 돌아가 정직하게 장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10년째 되는 날, 그들은 다시 만났습니다. “루이스, 이제 사람들이 완벽하게 나를 믿게 되었어” “그거 잘 됐군. 나 역시 장사가 아주 잘 된다네”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겨우 잭슨이 말을 꺼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한탕 크게 하자고 약속한 날이지. 그런데, 나는 앞으로 계속 정직하게 일하려하네. 남을 속이지 않으니 속임수를 쓸 때보다 장사가 더 잘 된다네. 그걸 자네에게 말하려고 나왔네” 그러자 루이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괜찮아 친구, 나도 그걸 자네에게 말하려고 나온 걸세.”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정직과 신용이 생명입니다. 불황이 와도 신용이 있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지 않으면서 어찌 하나님의 성전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본문 2절입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여기의 정직은 히브리어로 ‘타밈’인데 ‘흠 없는, 완전한’이란 뜻입니다. 물론 절대적인 완전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준에서 인간이 도달해야 하는 도덕적 수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정직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향해 갖는 정직한 언행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언행은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누구도 완벽하게 완전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시편 기자가 말하는 정직한 자는 하나님이 정직하다고 인정하시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장막에 머무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입니다. 정직은 모든 것의 기초이며 기준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감동적인 말을 하더라도 정직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소음이 되고 맙니다. 잃어버린 정직을 회복하여 주의 장막에 당당하게 머무를 수 있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공의를 행하여야 랍비의 아내가 하녀와 심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귀한 그릇이 깨졌는데 랍비의 아내는 하녀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워 손해를 변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녀는 자기가 깨지 않았기에 변상을 할 수 없다고 맞서자 랍비의 아내가 소송을 걸었습니다. 재판 날이 되어 랍비의 아내가 법정에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던 랍비도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왜 옷을 갈아입느냐’고 아내가 묻자, 랍비는 자기도 함께 가려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런 일에 적합하지 않아요. 재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구요.” 그러자 랍비가 아내에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당신은 잘 알 것이오. 하지만 내가 변호를 해 주려고 하는 불쌍한 과부인 하녀는 재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오. 나밖에 그녀를 위해 변호를 해 줄 사람이 또 어디 있겠소?” 하나님 나라는 공의가 세워질 뿐 아니라 온전히 실행되는 나라입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여야만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여기의 공의는 ‘차디크’인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충실히 지키며,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도덕적인 규범을 준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으며, 모든 악을 삼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정욕이나 생각에 따라 행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서 믿음을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 있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한 공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나타내셨기에 인간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구원하는 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원리로 공의를 행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자가 하나님의 장막에 머무를 자격을 얻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허물치 아니해야 미국의 37대 대통령을 지낸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에게 정적이 있었습니다. 부통령을 지낸 허버트 험프리(Hubert H. Humphrey) 상원 의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정치의 무대에서 심각한 정적으로 서로 대통령이 되려고 다투었으며, 심한 충돌도 있었고 그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은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험프리가 죽기 사흘 전, 친구 제시 잭슨 목사에게 ‘내가 풀어야 할 문제가 있으니 닉슨을 꼭 불러주게’ 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잭슨이 닉슨에게 연락하여 두 사람이 병상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험프리가 닉슨에게 과거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내가 그때는 자네의 조그만 실수들이나 별 것도 아닌 일들을 큰 흠인 것처럼 외치고 다녔는데 나를 용서해 주게. 그래야 내가 편안히 하나님 앞에 설 것 같아” 그러자 닉슨도 “자네만 그런 게 아니야. 나도 자네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주었어. 우리 서로 용서하고 서로 용서 받기를 바라네.” 두 사람은 병상에서 서로 용서의 기도를 올리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여기의 ‘허물하지 아니하고’는 ‘라갈’인데 ‘걸어서 가다’라는 뜻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모략하기 위해 그 혀를 놀려대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점은 말하지 아니하고 허물을 드러내는 자는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격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들추어내 공격하는 일은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가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의 약점을 긍휼히 여기고 감싸주는 자이어야 합니다. 죄와 허물을 덮어주며 남의 약점을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일 하려는 사람을 방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이 나보다 잘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고 기뻐해 주어야 주의 성산에 계속 머무르는 자가 될 것입니다. 정근모 (鄭根謨) 박사는 세계적인 수재이며 원자력 기구의 의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 차례나 지낸 박식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 장로인 그는 예배를 가장 잘 드리는 성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주일 낮 예배, 저녁 예배, 수요 예배, 철야기도, 새벽기도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합니다. 설교를 들으면 아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아멘 합니다. 그를 보는 교인들마다 그 모습에 은혜를 받습니다. 목회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에 아멘으로 받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정근모 장로가 목회자보다 학식이 부족하겠습니까? 성경지식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러나 말씀을 배우려는 그 자세가 위대한 것입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자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장막에 머물러야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무조건적으로 주의 장막에 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들을 찾으시며 보호하시며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주의 장막에 머무르는 자의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주의 장막에 머무르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허물하지 아니하는 자가 되어 주의 장막에 항상 머무르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2017-02-04 16:48:46 |
'추천 설교 > 김광일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으로 말미암아-히 11:4~7 (0) | 2021.10.06 |
---|---|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마 24:36~51 (0) | 2021.10.06 |
은혜로 호위하시는 자-시 5:1~12 (0) | 2021.10.06 |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고전 4:14~21 (1) | 2021.10.06 |
여호와를 높이며 찬송하라-시 30:1~6 (0) | 2021.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