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마 24:36~51
21세기 패러다임 쉬프트에 큰 영향을 주었던 스펜서 존슨(Spencer Johnson)의 ‘선물(Present)’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는 여정을 소개합니다. 그 선물은 한 위대한 노인이 들려주는 신비스런 이야기로, 노인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얘기하여 소년에게 궁금증과 기대를 심어줍니다. 그러나 소년은 매번 현실에서 장애물에 부딪칩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노인을 찾아가 선물을 찾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노인은 “그 선물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갑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선물’의 정체는 모호합니다. 일터와 가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끈질긴 탐색을 마치고 나서야 소년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 마침내 ‘소중한 선물’을 발견합니다. 삶에 안내자 역할을 했던 노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일생과 죽음은 이제 장년이 된 소년에게 마지막 깨달음을 남깁니다. 어느덧 소년은 그렇게 의지했던 노인과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주위의 다른 이들을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으로 안내하게 됩니다. 스펜서 존슨은 현재의 중요성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현재의 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지금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현재 이 순간 ‘옳은’것에만 집중하면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활력과 자신감을 얻어 그른 것도 처리할 수 있다. 현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잡념을 없앤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쏟는가에 따라 소중한 선물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 바로 지금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라.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아라.” Present라는 영어는 ‘현재’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선물이라는 뜻이 될 수 있기에 현재(Present)야 말로 가장 큰 선물(Present)임을 기억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을 의미 있게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와 미래, 모두 의미가 없어지고 맙니다.
탈무드에 보면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 세 가지가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키소, 코소, 카소-Ciso, Coso, Caso’입니다. ‘키소’는 돈 주머니란 뜻으로 돈을 어디에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코소’ 란 술잔이란 뜻인데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서 찾는지를 보면 그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카소’는 노여움이란 뜻인데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제력입니다. 어떤 일을 보고 얼마나 마음을 다스리고 절제된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키소, 코소, 카소’ 는 어떠합니까?
본문 44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께서 본 장을 통해서 종말에 관련된 비밀스러운 현상을 알려주려 하시기보다 종말을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교훈하시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은 자신의 감정이나 환경에 이끌려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전혀 예상치 않은 때에 주가 오시기에 준비하여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언제’ 주의 재림이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재림을 준비하느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날과 그 때가 아니라 어떻게 그 날을 준비할 것인가에 마음을 더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의 모습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까?
첫째로 깨닫는 자가 되어
1세기 초대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 생명력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소수의 사람들이었지만 로마를 복음화 하였고 세계를 살려냈습니다. 도대체 그 생명력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바로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 종말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침에 눈을 뜨며 ‘주여 오늘 오십니까?’라고 물었고 밤에 커텐을 닫으며 ‘이 밤에 오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늘 ‘마라나타(Marana tha)-주님께서 다시 오십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마지막에 대한 긴박감이 있었습니다. 핍박이 오고 고난이 생겨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종말이라는 희망의 빛에서 오늘의 문제를 바라보기에 늘 희망으로 넘쳐났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진지한 영적부흥과 도덕적인 각성이 일어난 시기는 한결같이 종말론적인 믿음운동이 일어나던 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말론이란 시한부 종말론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최후심판대의 관점에서 오늘의 일들을 평가하는 자세입니다.
본문 39절입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홍수 비유의 초점은 노아 시대 사람들의 준비되지 못한 모습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사는 일에 바쁜지라 홍수가 나서 죽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와 가족이 구원을 받은 것은 홍수의 때를 예측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고를 깨닫고 준비된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현실적인 것에만 마음을 쏟으며 내세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징조를 보지 못하는 것이 불행입니다. 불시에 임할 인자의 날에 멸망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자의 때는 운명이 둘로 나뉠 것입니다. 하늘나라로 데려감을 당하는 자와 버려둠을 당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하고 있는 모습에 달려 있습니다. 재림의 때는 계산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깨어 있는 자가 되어
캠벨 몰간(G. Campbell Morgan)박사의 고백입니다 “저는 2차 대전 당시 영국이 엄청난 독일의 폭격을 당할 때마다 주님의 재림이 더 가까워짐을 생각하면서, 그 고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전쟁과 폭격의 고난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런 환난 이후에, 주의 재림이 더욱 가까이 다가올 것을 생각하니, 한편으로 오히려 그것이 소망이 되었습니다. 오늘 밤에 폭탄이 집 가까이 투하되어, 자다가 어떻게 될 수도 있겠지만, 내일 아침에 고대하던 주님의 재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편안히 베개를 베고 잘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깨어 있는 자의 고백이 아닙니까?
본문 42절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평범한 일상의 모습에 도둑같이 갑자기 주가 오시니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둑의 비유는 재림의 때를 계산하려는 시도의 무익함을 보여 줍니다. 인자는 생각지 않은 때에 오기에 재림의 때를 계산하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끊임없이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재림의 징조나 시기가 아니라 오심에 따른 준비입니다. 즉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자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둔해지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방탕함과 술취함,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무디어지지 않는지, 절망과 분노, 좌절과 한숨으로 사로잡혀 있지 않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주께 초점을 맞춘 삶을 살며 항상 깨어있어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로 깨어 있는 자가 되어 주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비추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가 되어 주의 오심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셋째로 충성하는 자가 되어
조지 트루엣(George W. Truett) 박사가 텍사스에서 석유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부유한 가정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식사 후 주인이 박사에게 한껏 자랑을 합니다. “저는 25년 전에 빈손으로 이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많은 고생과 노력으로 지금 이렇게 부자가 되었습니다. 동쪽에 있는 석유공장도 제 것이고, 서쪽에 있는 유전도 제 것입니다. 남쪽에 있는 집도 제 것이고, 북쪽에 있는 빌딩도 제 것입니다” 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자랑을 합니다. 그러자 트루엇 박사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동서남북 모두 다 당신 것인데, 하늘에는 무엇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해 무엇을 쌓고 사느냐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 사역이 당신의 재미가 되고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선을 더 행하지 못해 억울하고, 세상에 매여 살다보니 교회의 일 더 열심히 못해 안타깝습니까? 저 하늘에 무엇을 쌓아 놓았습니까? 시간에 끝이 있음을 알고 기회를 선용하며 미래를 준비하는데 투자하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후회하고 잃은 것에 탄식합니다. 그러나 남은 것을 선용하며 주어진 책임에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갑니다. 세상도 갑니다. 언젠가 모두 다 갑니다. 마지막 때를 알고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45절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여기의 ‘지혜’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명확히 이해하고 상황에 적용하는 능력이라면, ‘충성’은 그 지혜가 삶으로 나타나는 형태를 의미합니다. 지혜와 충성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합니다. 충성은 정확하고 지혜로운 판단에 근거하여야 하며, 지혜는 반드시 충성스런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악한 종은 깨어 있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종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신분을 잊은 채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즐겼습니다.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재림은 돌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라는 표현은 재림의 때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준비된 모습은 단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재림의 때를 위하여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와 충성을 함께 나타내고 있는 종은 주인에게 맡은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종입니다. 누가 보나 보지 않으나 양심껏 행동하는 자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본다고 하는 척하고 보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 맡은 바 책임에 충성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보고 신앙 생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에 사람에게 괘념치 말아야 합니다. 주인이 언제 오시든 상관없이 그 날을 준비하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전도자 무디(Dwight L. Moody)는 능력 있는 설교가로 몇 만 명씩 모여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어느 날 사람들로부터 설교 능력의 비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무디가 대답합니다. “나는 설교할 때마다 이 설교가 끝나기 전에 예수께서 오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무디는 설교를 할 때마다 마지막 설교로 생각하고 말씀을 선포하다 보니 항상 능력 있는 설교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께서 오신다면 예배를 어떤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까? 졸 수 있습니까? 딴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이 오신다는 마음으로 언제나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흠과 티와 책망 받을 것이 없는 모습으로 주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모름지기 깨달음으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분주하고 무디어진 마음을 회개하며 깨어서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충성된 종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 앞에 서는 날 옳은 청지기로 인정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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