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아-히 11:4~7 원종수 박사의 ‘너는 내 것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유명한 암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현재 목사가 되어 의료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하늘나라 가려면 성령 받아야 된다”고 하셨던 전도사와 같이 기도를 하다가 성령을 받고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원박사는 간증합니다. “그때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라는 것이었다. 눈물, 콧물 줄줄 흐르고 혀가 나와 들어가지 않았다. 방바닥을 뒹굴고 울었다. 모든 것을 회개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수야, 너는 내 것이다!’라고 음성을 주셨다.” 너무도 감사해 울고 또 울었습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생활로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며 세상적 생각으로 가득 찼는데, 성령을 받고 나니 하늘을 날듯이 기쁘고 새소리가 주님을 찬양하듯이 들렸습니다. 그 후 그는 강력한 기도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싶고,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싶고, 어머니 위해서 기도하고 싶고,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네다섯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1968년 1월 추운 겨울날, 어머니가 기도하러 가셨다가 길목에 있던 소경 거지 할아버지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데, 옷은 때로 쪄들어 냄새가 났습니다. 어머니께서 “종수야, 물을 받아가지고 할아버지 목욕 시켜드려라.”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을 시켜드렸습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 옷을 빨아 드리고 “속옷이 낡았으니 네 속옷 좀 드려라” 고 해서 하나밖에 없는 속옷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그 해 겨울에 할아버지를 모셨습니다. 앞을 못 보시니 화장실 갈 때도 부축해 드리고, 식사 할 때도 도와드렸습니다. 속으로 짜증이 났습니다. ‘아니 왜 단칸방인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가 주인처럼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는가?’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잘 섬겼고, 할아버지는 봄이 되자 집을 떠나셨습니다. 어느 날 환상 가운데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종수야,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할아버지가 오시고 일주일이 지난 후 로마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읽고 난 다음에 눈을 감으면 로마서 1장부터 끝장까지 다 보였습니다. 그 후 책을 읽기만 하면 읽은 내용이 다 들어와 눈을 감아도 책이 보였습니다. 시험 볼 때도 눈을 감으면 책이 다 보여 페이지를 넘기면서 답을 적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450명 중에 350등이었는데 성령 받고 선한 일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집중력을 주셔서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서울의대 수석 졸업, 전국 의사고시 1등을 하고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암 전문 병원을 운영하다가 노스트 웨스턴 신학대학원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의료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지금도 저의 뇌리에 기억되는 것은 어머니의 기도 소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자녀들 아버지가 길러주세요!’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은 아팠지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고생과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나는 왜 이런 팔자인가? 왜 이런 기구한 운명인가’ 하고 좌절하고 계시다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것이 진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걱정과 근심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축복의 계기로 돌려주시는 것이 믿음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나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낫다’는 말은, 양적인 의미가 아니라 질적인 의미를 뜻합니다. 히브리기자는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았던 선진들의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미래에 성취될 약속을 굳게 신뢰하던 믿음을 소개하면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박해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에게 고통스러운 일들과 시련이 장애로 가해졌지만, 그것들이 결코 그들의 믿음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연약한 죄인들이었지만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비범한 일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았 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위인들은 어떻게 행하였습니까?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첫째로 더 나은 예배를 카일 아이들먼(Kyle Idleman)이 쓴 ‘나의 끝, 예수의 시작’에 보면, 프랭크라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장례식 이야기가 나옵니다. 프랭크는 오십 대 중반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 소식을 듣고 그를 사랑하던 이들이 모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고인과 어려서부터 아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는 시간에 그들 중에 몇이서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프랭크의 대학교 시절 친구들이었는데 그가 얼마나 술을 잘 마셨는지부터 낯 뜨거운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았습니다. “이 친구는 차에 대하여는 까다로웠지만 여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만났죠.” 유족들과 교인들은 그 말에 대단히 민망하였습니다. 그 때, 프랭크의 처남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알다시피 형님은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방금 친구 분들이 말씀하신 형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죽고 난 다음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알던 그 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하는 삶입니다. 삶으로 예배하는 것은 예배 시간이 아닌 모든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시간에만 바라보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의 신앙은 예배하는 신앙이었습니다. 히브리기자는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를 받으셨고, 그 예배신앙을 의로 여기셨다고 강조합니다. 아벨은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는 믿음으로 정성어린 제사를 드렸으나 가인은 선을 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믿음과 정성이 없이 제사를 드린 까닭이었습니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이유는 바로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를 짓고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십니다. 예배의 모습과 삶이 동일해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는 경건하고 거룩한데, 삶 속에 그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위선이 될 것이며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아벨과 같이 말씀을 따라 살면서 선을 행하고, 죄를 멀리하며 경건하게 살면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형식이나 내용, 규모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석하는 자의 믿음인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처럼 더 나은 예배를 드려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더 나은 동행을 손양원(孫良源) 목사는 평생을 여수 애양원의 한센병자들과 함께한 ‘나환자의 아버지’요,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은 ‘사랑의 사도’요,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 거부로 5번이나 옥살이를 한 ‘믿음의 종’이었습니다. 그가 청주 구금소에 있을 때였습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겨울 날씨로 손과 발이 얼고 손톱과 발톱이 다 빠졌습니다. 감옥에 들어와서도 복음을 전한다고 식사량을 반으로 줄이는 바람에 시력까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도 변치 않는 믿음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네, 좋습니다. 나는 감옥에 있어도 예수와 함께 살 것이고, 밖에 나가도 예수와 함께 살 것인즉, 예수와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주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면 따르리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자신의 기쁨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믿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의 신앙은 동행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무슨 일이든지 임의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과 의논했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랐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의 삶을 기뻐하신 이유는 믿음에 있었다고 히브리기자는 말합니다. 에녹의 믿음은 300년이나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 같은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이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에녹이 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인정받은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65세 이후 무드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돌이켰습니다.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할 때 동행이 가능합니다. 에녹이 300년을 한결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변치 않는 믿음으로 더 나은 동행이 이루어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더 나은 순종을 세계 유일의 청각장애 발레리나 강진희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고난청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그녀는 보청기를 끼고 공연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며 리듬을 눈으로 느꼈습니다. 무대에서 박수 소리를 음악 소리로 착각하거나 음악이 끊긴 줄 모르고 계속 춤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그녀는 발톱 열 개가 빠져 나갈 정도로 하루 10시간씩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부산 산업대 콩쿠르 때, 음악과 무용이 맞지 않았습니다. 관중들의 분위기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고 이를 지켜본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져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워낙 뛰어났던 그녀의 무용에 심사위원들이 매료당했고 예선을 통과하고 마침내 결선에서 1등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매일 아침 어머니와 함께 읽던 성경말씀이 나를 일으켰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무용을 할 수 없는 시간은 침묵 속에서 인내하며 여리고 성을 돌았던 시절이며 머지않아 여리고 성이 무너질 날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매일 여리고 성을 도는 믿음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용을 했고, 세계에서 단 한명밖에 없는 청각장애를 가진 프리마돈나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도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상급을 베푸신 것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의 신앙은 순종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머지않아 일어날 일에 대한 실제적인 증거를 전혀 요구하지 않고 단순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주위의 조소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장기적으로 헌신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홍수의 심판 때 노아의 가족은 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를 받았으나 노아는 말씀대로 순종하여 방주를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심판을 확실히 임할 실체로 인식하였습니다. 방주를 준비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순종을 증거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설계에 따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노아는 이러한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며,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철저한 순종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더 나은 순종을 행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 목사가 회심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이 있습니다. 17세기 후반에 살았던 헨리 스쿠걸(Henry Scougal)의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스쿠걸 목사는 ‘기독교란 인간의 영혼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온 것’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선하고, 단정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속에는 힘, 권능,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을 특별하고도 독특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듭니다.” 이 책을 읽을 때까지 웨슬리는 하나님이 자기 안에 임하셨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이 목사의 아들이었고 목사이고 선교사였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열심은 있었지만, 자신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종교인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살아계실 뿐더러 내 안에 계심을 믿는 믿음입니까? 중세 어느 수도원에 입문한 젊은 수도사가 온갖 잡념에 시달리다가 수도원장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원장님, 온갖 생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수도원장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솥에 파리나 짐승이 몰리는 것은 솥이 차갑기 때문이지요. 솥이 뜨거워지면 파리뿐만 아니라 그 어떤 짐승도 가까이 다가서기 못하는 법이오.” 젊은 수도자는 기도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예수님! 예수님!”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그 수도자는 처음 맛보는 기도의 깊은 경지를 체험하게 되었고 더 나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벨도 에녹도 노아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면서 믿음의 자취를 남겼습니다. 아벨은 예배하는 믿음을 남겼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순종하는 믿음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믿음을 남기고 싶습니까? 부디 믿음으로 말미암아 더 나은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더 나은 동행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더 나은 순종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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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8 16: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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