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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주 안에 서라-빌 4:1~7

주 안에 서라-빌 4:1~7


이화여자대학교 앞이 하얀 배꽃으로 온통 뒤덮인 날이 있었습니다
. 1970212일입니다. 배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화여대생 모두가 배꽃처럼 하얀 소복을 차려입었기 때문입니다. 총장을 지냈던 김활란(金活蘭) 박사의 관을 들고 발인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장엄하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옷깃을 여민 채, 기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광경은 김활란 박사의 관을 따라가며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슬픈 조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에 나오는 할렐루야를 합창하였습니다. 김 박사는 평소에 자신의 유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이란 영원불멸하는 것임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대로 더 좋은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살았다. 육체와 환경에 얽매인 것을 극복하면서 나름대로 승리의 길을 걸어오느라고 힘썼다. 흙에 속한 육체의 기능이 퇴폐하여 심장의 고동이 그친다고 내가 죽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육체가 없어졌다고 나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고 장례식 해주는 것은 절대로 싫다. 만일 친척이나 친구나 동지들이 원한다면, 세상에서 체험할 수 없었던 더 풍성한 생명의 길로 또 더 화려한 승리의 길로 나를 보내는 환송예배로 장례식을 대신 해주기 바란다. 또한 거기에 적합하게 승리와 영광과 생명의 노래로 엮은 웅장하고 신나는 음악회가 되기를 원한다.” 그녀의 유언대로 장례는 향을 피우는 대신 조문객들이 카네이션 한 송이씩 영전에 바쳤고, 생전의 육성을 들으며 고별형식으로 치러졌습니다. 장례 절차도 고인의 뜻대로 승리의 길을 가는 음악예배로 진행되었습니다. 종래의 음울하고 슬픈 장례식과는 전혀 다른 장례식이었습니다. 본래 첩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믿음으로 모든 환난과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부지런히 서양의 문물을 깨우쳐 배우고 익힌 것을 한국의 여성들에게 아낌없이 쏟아주었습니다. 자기가 겪었던 수모를 다른 사람들이 겪도록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3세에 이화여대 총장직에서 물러난 그녀는 신학교에 들어가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전국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복음 전하는 일에 여생을 바쳤습니다. 그녀의 묘비에는 화려한 경력이나 학력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무덤 앞에 돌로 만든 성경책이 놓여있을 뿐인데 그곳에 이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김활란 박사, 그녀야말로 주 안에 서서 살았던 아름다운 믿음의 모습이 아닙니까?

빌립보 교회는 의견의 불일치로 인한 분쟁으로 교회가 흔들리고 교인들의 믿음이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에 갈등이 생겼고, 편이 갈려 분열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복음의 진리와 일치되는 행동을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여기의 서라는 원어로 스테케테입니다. 초소를 포기하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초소를 지키고 서있는 군인의 태도를 가리키는 군사적용어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러한 믿음의 태도를 가지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절대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요구한 것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위치해야 합니다. 가서는 안 될 자리에 서 있으면 곧 실족하게 됩니다. 반드시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잊어버린다면 불행을 겪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서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서는 결코 안 됩니다. 때로는 힘들고 괴로워도 언제나 주 안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어려움을 이기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주 안에 서라는 어떠한 태도를 의미합니까? 그리고 주 안에 서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같은 마음이어야
이솝의 우화(Aesop's Fables)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붉은 소, 검은 소, 그리고 얼룩소는 언제나 함께 다녔습니다. 사자는 그 소들을 잡아먹고 싶어 매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 마리의 소는 항상 같이 다니면서 사자가 덤벼들면 셋이 함께 대항했기에 잡아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얼룩소가 풀밭에 따로 떨어져 혼자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자가 얼룩소에게 가까이 다가가 친근한 목소리로 붉은 소가 자기가 가장 힘이 세다고 뽐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얼룩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사자가 붉은 소와 검은 소를 찾아가서 얼룩소가 자기가 제일 기운이 세다고 자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두 마리 소는 얼룩소가 건방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 특히 붉은 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얼룩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얼룩소도 붉은 소가 자기가 제일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화가 나서 있는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검은 소가 싸우지 말라고 말렸지만 두 마리 소는 뿔이 빠지도록 싸웠습니다. 그 날부터 세 마리의 소는 같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자는 이때다 하며 소들을 차례로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한 마음이 되지 못하면 피차에 망한다는 교훈입니다. 서로 같은 마음을 품어야 살게 될 것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여기의 같은 마음토 아우토 프로네인인데 주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서로 다투었던 유오디아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순두게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마음이 일치될 것이므로 다툼이 사그라질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고집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절로 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주 안에 서는 자는 언제나 예수를 생각하며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같지 아니하면, 다툼이나 허영에 의한 일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또한 주의 일이라고 해도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되기에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에게 신실한 조력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힘든 짐을 서로의 앞에 내려놓고 같은 마음으로 섬길 때 주 안에 더욱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항상 기뻐하여야
철학자 클레이 폴(Clay Paul) 교수는 양 팔과 양 다리가 없는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몸뚱이만 가지고 사는 그녀인데도 너무나 쾌활하고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폴 교수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내가 당신의 처지라면 나는 못 견딜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은 그 몸으로 어찌 그리 기쁘게 살고 있느냐?” “내게 팔 다리는 없어도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입이 있고, 좋은 명작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고, 가족의 사랑이 있고, 친구의 사랑이 있습니다. 더구나 내게 예수께서 계십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데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녀는 믿음으로 인하여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쁨은 삶의 외적 조건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 거할 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기의 기뻐하라카이레테인데 현재 능동태 명령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상황에도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뻐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이루어야 할 덕목은 기쁨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고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교인들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우리도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통해 역사하시리라 믿고 언제나 기뻐하여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주 안에 서 있는 자들의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경험하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환난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임재와 위로를 통해 얻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영어단어로 “JOY”입니다. JJesus(예수), OOthers(이웃) 그리고 YYou(당신)을 가리킵니다. 예수가 맨 앞에 오고 그 다음에 이웃, 마지막에 자신이 위치할 때 비로소 기쁨이 완성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앞세우고 언제나 주 안에 서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다만 기도하여야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이라는 책은 링컨(Abraham Lincoln)의 전기입니다. 그는 기도로 대통령이 되었고 기도로 대통령직을 감당하였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백악관은 기도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기도의 사람 링컨은 백악관을 기도하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기도하는 정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로 인정받았습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링컨은 1863430일 목요일을 금식 기도일로 선포하고 온 국민의 동참을 호소했었습니다. 한번은 배우 제임스 머독이 링컨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머물다 링컨의 기도소리에 새벽잠을 깬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링컨은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전쟁터를 찾았는데 그때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시간이면 사령부 막사에 하얀 손수건이 걸리곤 했습니다. 링컨은 전쟁이 끝난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로버트 리같은 명장이 없었음이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기도할 때만이 주 안에 서는 것이 가능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6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기의 다만알라인데 오직이라는 뜻의 접속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취할 자세는 염려대신 오직 기도와 간구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만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이심을 믿고 기도하라고 강조합니다. 염려가 언제 생깁니까? 세상으로 눈을 돌릴 때 생깁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주 안에 서서 염려를 물리쳐야 합니다.
삶의 위협을 느낄 때 해결 방법을 세상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염려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찾는다면 기도와 간구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 결과 염려는 패배로 나타나고, 기도와 간구는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며 주 안에 더욱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 (Henri Nouwen)의 말입니다. “기쁨과 행복은 다릅니다. 행복해야만 기쁜 것은 아닙니다. 또 기쁘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많은 일에 불행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 속에 여전히 기쁨이 있는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불행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그 사람이 바로 행복한 자입니다. 신앙에 병이 들고 문제가 생겼다면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주일성수하지 않는 것, 헌금생활 하지 않는 것, 봉사하지 않는 것이 어디로부터 생긴 문제입니까? 교회에 대한 불만입니까? 목회자에 대한 불만입니까? 성도 간에 일어난 불화의 문제입니까?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외부적인 문제들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문제입니다. 주 안에 굳게 서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과 불신앙적인 말만 쏟아놓고 있습니까? 주 안에 굳게 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굳게 서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예수를 믿은 일이다라는 송자 교수의 책은 사회에서 명성이 있는 열여섯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 한 일은 다름 아닌 예수를 주로 받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강원대 총장을 지낸 문선재 박사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순간 나는 너무 가슴이 벅차서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이장호 영화감독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갑자기 기도 응답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느낌이 즉각적으로 왔고, 너무 감사했다. 그 이후 하나님과 손잡고 다니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또 판사였고 서울시장을 지냈던 김상철 장로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굴속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목 놓아 통곡했다. 오랜 울부짖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죄를 통회 자복했다.” 어찌 이들뿐이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 일을 말하라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 안에 서 있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대적 원수 마귀는 언제나 집요하게 교회와 성도들을 흔들려고 획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와 간구로 주 안에 더 굳게 세워져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02-25 19:5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