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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공경하라-신 5:16 (어버이주일)

부모를 공경하라-신 5:16 (어버이주일)

 

 

인터넷에 올라온 감동적인 사연을 소개합니다. 연로한 어머니를 위해 엘리베이터 층수를 잘 보이게 표시한 아들의 효심에 대한 내용입니다. 네티즌들은 효심이 지극한 아들에게 박수를 보내었습니다. 사연은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엘리베이터 내부를 촬영한 사진이 올라오면서 알려졌습니다. 사진 한 장에는 종이를 덧대 1층과 5층 버튼을 돋보이게 한 장면이 있었고, 또 다른 사진에는 501호 주민이 쓴 안내문이 담겨 있었습니다. 안내문에는 죄송합니다. 저희 어머님 연세가 많으셔서 층수를 표시했읍니다.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눈이 침침한 어머니가 층수를 제대로 누를 수 있도록 1층과 5층을 돋보이게 했으니 양해해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주민이 안내문에 괜찮습니다를 적으며 호응했습니다. 아들의 효심과 주민들의 호응을 접한 네티즌들은 인터넷이 훈훈하네요” “효심 많은 아드님과 이해심 많은 주민들이라니, 저런 곳에서 살고 싶네요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네티즌은 안내문에 습니다가 아닌 읍니다로 되어있는 점으로 미루어 아드님 또한 연세가 꽤 되신 것 같네요라며 어르신의 노모 공경에 큰 감동을 받고 갑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제일 먼저 맺는 관계가 부모와의 관계라고 합니다. 이 관계를 옳게 가져야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모 공경은 사회 질서의 기초가 됩니다. 만약 이 기초가 부실하다면 사회 질서는 무너지고야 말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십계명이 기록된 두 개의 돌비에 각각 다섯 계명씩 기록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 가운데 제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로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에 속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부모는 하나님 대리자이기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단순히 부모를 존경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공경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의 공경하다카베드인데 존경하다, 가치 있게 여기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부모 공경을 하나님 섬기듯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부모 공경은 사람과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효도는 미덕이 아니라 신앙입니다. 보이는 부모를 무시하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모 공경을 통해 하나님은 경외하는 마음을 보십니다. 육신의 부모를 정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하여 스스로 결정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를 공경하여야 하는 까닭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명령에 복종하는 길이기에

유대인들은 부모 공경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르반(Corban)’이라고 외칩니다. ‘고르반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이라는 뜻입니다.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에 대해 고르반하고 외치면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부모가 있다고 할지라도 재물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놓고는 재물을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사용했습니다. 입으로는 부모를 공경한다고 말하면서 교묘하게 고르반 제도를 이용하여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전과 전통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안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나쁜 의도를 아시고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반드시 복종하여야 합니다. 어떠한 구실이나 변명,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여기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는 부모 공경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이 바로 부모임을 교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다른 이유를 붙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듣는 것에 그쳐서도 안 되고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지 않는다면 헛된 것입니다. 예배도, 기도도 헛된 것이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신약에서 바울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녀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구약 율법에도 부모를 치는 자는 돌로 죽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이 중요한 가치임을 잘 알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는 부모를 공경할 때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기에

충남 보령에 사는 72세의 이건우 할아버지는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자신을 돌보기도 벅찬 나이인데 무려 107세로 거동조차 불편한 노모를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5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어 더욱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대소변을 못 가리는 노모를 위해 더운 물을 데워 닦아주는 것은 물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 끼 따뜻한 밥을 어머니에게 먼저 드리고 자신은 뒤늦게 밥을 챙겨먹습니다. 초라한 자신의 밥상과 달리 어머니 밥상에는 빼놓지 않고 고기반찬을 올려놓습니다. 늙은 아들의 모든 삶은 오로지 어머니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의 모습에서 어떤 슬픔이나 절망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젊은 시절, 어머니에게 잘하지 못했던 마음이 회한처럼 쌓여있습니다. “어머니가 고기를 잡수실 줄 모른다고 하시기에, 그런 줄만 알았지!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나 혼자만 다 먹었어.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어. 지금 후회되는 것이 그때 고기 한 점이라도 잡숫게 나눠드릴 걸...” 그는 기자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노모가 살아온 힘겨운 삶을 아들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결혼 후 남편이 두 번째 부인을 얻자 아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아들에게는 쌀밥에 고기반찬을 먹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는 아들이 어머니를 향해 자신의 남은 생을 쏟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남에게 빌린 땅에 밤농사를 짓던 자리에 도로가 나는 바람에 생계를 위협 받는데다가, 일을 하다가도 치매로 정신이온전치 않은 어머니를 업고 집으로 돌아올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백발이 성성한 아들은 불평은 커녕 어렸을 적 어머니가 좋아하던 노래 한 자락을 부릅니다. 노래와 함께 아들은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했습니다. “어머니, 건강하시고 앞으로 오래오래 사십시오. 항상 제가 옆에서 어머니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어머니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공경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54절입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여기의 효를 행하여유세베오입니다. ‘좋은 일을 뜻하는 라는 단어와 경배하다는 뜻을 가진 세보마이의 합성어입니다. 부모를 공경해야하는 이유는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버이의 사랑과 희생으로 자녀들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여 그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고르반처럼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으니 다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형식적인 방법보다 실제적 도움을 부모에게 드려야 합니다. 나이 드신 부모는 조그마한 것에도 감동을 받습니다. 부모가 노인이 되면 돈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쓸 수 있는 용돈을 조금씩이라도 드려야 합니다. 또한 새 옷을 사 드려야 하며, 소화기능이 저하되어 있기에 무슨 음식이든 따뜻한 것을 대접해야 합니다. 마치 아이를 돌보듯이 부모에게 해야 하며, 자기 자식에게 하듯이 공경하며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복을 누리는 길이기에

한국의 그룬트비로 불리는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金容基) 교장이 자유당 시절, 흥분한 대학생들 앞에서 행한 연설의 한 부분입니다. “데모할 줄 모르는 젊은이는 희망이 없다. 그러나 불을 지르고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데모가 아니라 폭동이다. 데모를 하되 평화적 시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데모를 해야 한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은 사람은 데모할 생각을 하지 마라. 데모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 효도를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애국을 논할 수 있겠는가.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 마찬가지로 부모 없는 자식도 없다. 부모는 자식이 성장하는데 거름이 된 것을 기쁘게 여기며 죽어가는 사람이다. 세상에 큰 죄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고 두 번째가 불효이다.” 부모도 공경 못하면서 무슨 일을 잘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의 문을 스스로 닫는 행위이며 하나님도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여기의 네 생명이 길고는 단순히 생명 연장의 약속이 아니라,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삶이 복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이 삶을 책임져 주시며, 하나님이 주신 복을 오래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래 살아도 행복하지 못한 삶이 있지만 구원받은 백성이 땅에서 복을 누리며 오래 사는 것은 실로 귀한 복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복의 전제조건이기에 부모공경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약속이 없다 할지라도 해야 할 일이 부모공경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 부모를 공경한다면, 이기적인 목적으로 부모를 섬기게 됩니다. 계산적으로 부모를 섬기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손으로 하는 일에 복 주시고 오래 살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모 공경은 자식의 몫입니다.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철이 들어 효도할라치면 이미 부모는 떠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적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찾아뵙지 못하면 전화라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 부모 공경하다가 복 받은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룻이라는 여인입니다. 룻기에 보면 그녀는 시어머니를 잘 모신 여인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결과 복된 생애로 바뀐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모는 하나님 다음으로 큰 존재입니다. 부모를 크게 생각할 때 자녀도 크게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영육이 잘 됩니다. 그러나 부모를 경히 여기면 저주받는 길이 되며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행동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여 부모 공경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동화작가 정채봉의 멀리 가는 향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간혹 다투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년이 들을세라, 할머니가 들을 세라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하며 토닥거렸습니다. 그러나 차츰 날이 감에 따라 부부싸움 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소년도 듣게 되고, 할머니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신 어머닌 비위생적이어서 함께 못살겠어요.” “오늘 신경정신과에 다녀왔어요. 내 병명이 무엇인지 아세요?” “당신 어머니가 망신 사는 일만 저지르고 사니 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수밖에요날이 가면서 소년의 어머니는 할머니를 보면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소년의 아버지도 할머니방 앞을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어느 날, 또 죽는다는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시퍼렇게 되어서 외쳤습니다. “나를 택하든지, 어머니를 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말해요!” 마침내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합의를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묵을 방을 하나 얻어서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낙엽이 우수수 지는 날, 온 식구가 달려들어서 할머니의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아버지는 상자를 묶었고, 어머니는 고무장갑을 끼고 거들었습니다. 소년은 종이와 연필을 꺼내와서 적었습니다. “헌 옷장 1, 전기장판 1, 담요 1, 밥통 1...”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 왜 그런 것을 쓰니?” 소년이 대답하였습니다. “다음에 어머니를 내 보낼 때 내가 챙겨드릴 품목이에요.” 정채봉 작가는 고려시대에 고려장(高麗葬)이 있었다면 현대에는 현대장(現代葬)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생각하며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닙니까?

부모는 자식의 생명을 마치 자기 생명같이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달게 받으십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많고 늙어도 자식을 어린애처럼 생각하고 위하는 그 마음에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러한 부모의 사랑에 보답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식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은혜를 왕왕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버이의 은혜와 사랑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표현으로 오로지 부모 공경에 힘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하여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길이 되기에 더욱 부모를 공경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