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롬 10:9~15
황수관(黃樹寬) 박사의 “박사님, 아멘약 주세요”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려갔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년은 과거 대신 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영접하는 천상 과거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먼 길에서 돌아오던 날, 동구 밖까지 마중 나온 부모가 과거 시험을 잘 보았는지 물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세상의 과거도 중요하지만 천상 과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왔습니다.” “아니, 천상과거가 더 중요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얼마 후 청년의 집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과거 시험 보라고 보냈더니 예수 귀신이 붙어 왔다고 동네에 소문이 흉흉해졌고 청년은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집안이 다시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때부터 한약을 달인다, 무당을 부른다며 난리가 났습니다. 멀쩡한 아들을 벙어리로 만들고 말았으니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부모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입만 떼면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주겠다.” 그렇게 3년이 지나서 청년이 입을 열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예수 믿으셔야 됩니다.” 그는 벙어리가 된 것이 아니라 3년 동안 벙어리 행세를 했던 것입니다. 가족들의 반가움과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 길래 그토록 네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네가 믿는 예수 우리도 믿어 보자.” 마침내 온 가족이 선교사를 찾아가 세례 받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황수관 박사의 할아버지였다고 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가문에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황수관 박사는 3대 째 예수를 믿는 가문에서 자라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문이야말로 ‘예수 이름으로 복 받은 가문’이 되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비즈니스 위크지 발표에 의하면 ‘코카콜라’ 이름에 84조의 가치가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77조, IBM은 61조나 된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지는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영화 감독 이름에 2조 4천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영화 제작에 그의 이름만 들어가도 그만큼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사람이나, 기업을 대표하기에 힘이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이름입니다. 사람이나 기업, 브랜드의 이름도 가치가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야말로 얼마나 가치가 있겠습니까?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이 세상의 역사 속에 새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가치 있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에는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동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첫째로 구원을 받으리라
미국 테네시 주의 작은 마을에, 벤 후퍼(Ben W. Hooper)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날 때부터 작은 체구였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생아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녀들이 벤 후퍼와 어울려 노는 것을 원치 않았고, 아이들도 놀리며 멸시했습니다. 동네에서 따돌림과 멸시를 받으며 소년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후퍼가 12살이 되었을 때, 마을 교회에 젊은 목사가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사람을 그대로 잘 받아주는 목사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후퍼는 목사가 어떤 분일까 호기심에 교회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늦게 가서 뒷자리에 앉았다가 축도할 때 살짝 나와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의 설교에 감명을 받고 있다가 나오는 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벌써 교인들이 늘어서 있었고, 담임목사와 악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는 후퍼를 보고 “네가 누구 아들이더라?”며 아는 체 하였습니다. 순간 주변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이때 목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더니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 나는 네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겠다.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지!” 목사의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은 더욱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목사는 후퍼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거든!” 목사의 말을 뒤로 한 채 후퍼는 급하게 빠져 나가는데, 목사가 다시 그의 등을 향해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아들답게 훌륭하게 살아야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 벤 후퍼는 테네시 주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후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날, 젊은 목사를 만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던 바로 그 날이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은 구원을 받는 것이며 구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구절입니다. 어떤 죄인이든 상관이 없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옆에 달린 오른편 십자가의 강도는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는데 차별이 없습니다.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므로 당연히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에 구원 받지 못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증거합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차별없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통하여 예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구원에는 연령의 차별도 없습니다. 빈부의 차이도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예수가 주되심을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의 절대조건은 마음으로 예수를 주로 믿고 입술을 통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를 부를 때 간절한 소망과 진실한 신앙으로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주를 만날 것이요, 주의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수치가 없으리라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자였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다니지 못할 뿐 아니라 몸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부끄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학교도 못가고 방에 틀어박혀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라디오를 통하여 예수의 이름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때부터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만난 감격으로 지은 시가 바로 ‘그 이름’입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예수의 이름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물리치십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수치가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송명희 시인이나 믿음의 선배들처럼 예수 이름으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본서가 기록된 로마황제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이 감행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잡아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면 죽이고, 신앙고백을 하지 않으면 풀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예수를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로마로부터 수치를 당하지만 최후 심판 때 하나님으로부터 그 믿음으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때때로 범죄 하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과 동일하게 취급을 받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수치를 이미 다 받으셨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할 때 부끄러움이나 모욕을 당하지 않습니다.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부요를 이루리라
구세군 창설자 윌리암 부스(William Booth)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자녀 중에 한 사람이 부스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아버지, 힘드시겠지만 여기 서류에 서명해 주시면 재산 정리의 어려움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자 부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앞에 펼쳐진 서류에 가까스로 힘을 내어 서명한 후 서류는 봉해졌습니다. 나중에 부스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들이 서류를 열었을 때 놀라운 사실을 직면해야 했습니다. 부스가 남긴 마지막 서류의 사인에 부스의 이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대신 그 서류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부스가 마지막까지 남기고 싶었던 이름, 세상을 떠나가는 순간까지 붙들고 있었던 이름, 자녀들이 붙들고 살기를 기대했던 이름, 아니 그가 가족들에게 남길 수 있었던 최대의 유산은 바로 돈이 아닌 예수의 이름이었습니다. 부요의 근원이 예수의 이름이라는 것을 교훈한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구원의 풍성함에 대한 증거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주를 믿는 자를 얼마든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는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시고도 남음이 있을 만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부요케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은혜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정도의 차원이 아닙니다. 믿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늘의 기업을 나누고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하게 하십니다. 구원의 은혜는 타락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부요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초대 로마교회는 7%의 성도가 있었지만 로마정부를 굴복시키고 국교가 되었던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확실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성적으로 문란한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을 며느리로 삼으면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고관집은 그리스도인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시작이 되어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고관 집에서 태어나게 되었고 로마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해리 포스딕(Harry E. Fosdick) 목사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였습니다. 심미적 그리스도인과 윤리적 그리스도인입니다. 심미적 그리스도인은 감상하고 즐기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즐기고 설교를 통해 위로 받고 흐뭇한 감정에 젖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에 반하여 윤리적 그리스도인은 예배와 말씀을 접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절감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문제는 윤리적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심미적 그리스도인으로 그치는데 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어 모든 수치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어 부요한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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