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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강용규목사

참된 예배2009.07.16강용규목사▒▒▒ 요한복음 4:19~26

참된 예배2009.07.16강용규목사▒▒▒ 요한복음 4:19~26



이스라엘 역사에는 여로보암 왕이 두 명 나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오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 왕 사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진 북이스라엘 왕입니다. 당시 예언자는 아히야로 그가 새 옷을 입고 길을 가다가 여로보암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아히야는 갑자기 새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그것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지 않고 시돈의 여신인 아스다롯와 암몬의 신인 그모스와 모압신인 밀곰을 ***았습니다. 그 결과 나라는 둘로 나뉘었고 하나님께서는 열두 지파 중 열 지파를 당신에게 주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왕을 축복하시며 자손 대대로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자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이 아닌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이스라엘을 맡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된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서 하나는 단에 다른 하나는 벧엘에 두고 그 금송아지가 “우리 조상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신이다”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레위 지파를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다른 지파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절기를 때에 따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날짜를 자기 마음대로 변경해서 지켰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신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나를 자기 등 뒤에서 버렸다.”고 말씀하시면서 “앞으로 여로보암 가문의 남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신에게 예배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수가성 여인에 관한 말씀으로 이 여인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여인은 수에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마리아 여인으로 유대인들에게 개처럼 취급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인은 다섯 번째 남편과도 헤어지고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여인이었지만 그 여인은 믿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예배에 관해 예수님께 처음으로 질문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려야 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려야 하는데 선지자이신 선생님 과연 어디에서 예배드려야 합니까? 이 여인의 물음처럼 우리도 늘 예배의 장소에 관해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심산도 아닌 예루살렘도 아닌 그것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다고 대답하십니다. 신명기 12장 말씀처럼 ”내가 너희에게 번제드릴 곳을 지적해 주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리는 장소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듣도록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경배했습니다. 또한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사의 음성을 듣고 베들레헴 마굿간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께 무릎을 꿇고 경배했습니다. 여기에서 경배는 예배와 같은 단어를 씁니다. 지금 우리가 무릎을 끓고 예배를 드리지는 않지만 우리는 예수님께 무릎을 끓는 마음으로 주님을 높여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영적으로는 성령과 교통하는 신비스러운 예배 객관적으로 는 말씀에 순종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l장에 하나님이 받지 않는 제물은 마음이 없이 보이려고만 하는 제물들이었습니다. 이사야 58장에서 여러 날 금식하면서도 서로 다투고 죄를 짓는 그런 금식은 하나님이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산 제물로 우리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권리를 주 앞에 내어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순종할 때 그 안에서 참된 자유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리스도가 누구시길래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종으로 바쳐야 합니까? 영어로 예배는 worship입니다. worship은 'worth'와 'ship'의 합성어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칠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야말로 예배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동네에 가서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그 분이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칠 만큼 가치 있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때로 부모님과 대화할 때 부모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는 무조건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은 부모님이 죄짓는 일을 시키지 않는 한 부모님은 우리를 낳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하는 이유는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수가성 여인은 여자 사마리아인 남편을 다섯 명 두었다가 헤어지고 여섯 번째 사는 남자와 살고 있는데 그 남자하고도 곧 헤어질 것 같은 약점을 지닌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사람들을 피해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공개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예배는 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거룩한 피조물이 되었음을 깨닫고 기억하는 사람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내어맡기며 올바른 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