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강용규목사

진정한 나의 도움은? 2009.07.01>>> 시편 121편 1~8절


진정한 나의 도움은? 2009.07.01
>>> 시편 121편 1~8절


제가 잘 아는 분 중에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아마도 우리나라 남쪽에 있는 산들은 거의 다 올라보았을 것입니다. 과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여타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높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와서 “강목사님 아무개가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태극기를 꽂았다고 합니다.”고 말한다면 저는 속으로 ‘야 그 사람 참 대단하다. 8848m를 올라 태극기를 꽂다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마음 한편에선 ‘그것은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 1708m의 대청봉도 올라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인 롱펠로우는 “최고의 삶을 산 사람은 오늘 평범한 우리에게 최상의 삶을 살도록 꿈을 준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한편으로 맞는 듯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틀리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유명한 사람의 자서전을 읽으면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반면 주눅 드는 느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에게 도움은 무엇일까요? 정말 높은 산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는 하는 것일까요? 시편 시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그리고 그는 나의 도움이 “산이 아니라 산을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로다.” 고백합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높은 산 최고의 권력자 최고의 부자 그 분이 진정 나의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실까요?

이사야 20장을 보면 선지자 이사야가 3년 동안 벌거벗은 몸으로 지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최고의 산인 애굽을 의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최고의 산인 애굽을 의지하고 그 옆에 있는 구스 즉 에디오피아를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를 의지하기보다 당시 최고의 나라인 애굽과 에디오피아를 의지하는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의지하는 그 나라들이 벌거벗은 채 앗시리아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주님을 의지하고 살면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님이 너희를 지켜주실 것이고 네가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계몽주의 시대가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인간의 교육이 즉 인간의 이성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믿던 때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계몽주의 시대가 끝나자마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요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대부분은 무식한 사람보다 지능범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모세는 애굽 궁중에서 40년 동안 교육을받았습니다. 애굽은 당시 최고의 부와 권력을 지닌 나라였습니다. 40년 동안 애굽에서 교육을 받은 모세를 가리켜서 성서는 “말과 글에 능하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동족들이 일하는 노역장에 나갔다가 동족을 괴롭히는 이집트인을 죽이게 되고 미디안 광야로 피신합니다. 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 제가 무엇이관대 그 일을 합니까?”고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마.” 고 대답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귀한 일을 감당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출애굽할 수 있었던 것은 40년 동안 배운 궁중 교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당동에서 살다가 잠원동에 와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교육열이 높은 이유는 자녀들을 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스라엘에 갈 때마다 부러운 것이 있는데 공항 법무부 직원들이 이태리 사람에게는 이태리어로 프랑스 사람에게는 불어로 스웨덴 사람에게는 스웨덴어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영어는 기본입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지 혹시 외국에 나간 경험이 있는 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아니오” 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거기에서 자랐는데도 외국어에 능통한 것은 태어나자마자 외국어 조기교육을 받아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받는 교육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노벨상의 1/4을 차지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중요합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절로 과실을 맺느니라.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질 수 있는 것은 세제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빨아서가 아닙니다. 무공해 지역에서 100일 동안 지낸다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100일 동안 산에 올라 금식하고 기도한다고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길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 그것만이 주홍같이 붉은 우리의 죄를 흰 눈같이 씻어줍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보혈이고 깨끗해진 마음에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베드로는 높은 산인 다볼산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같이 희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높은 산에 올라가 영광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같이 올라가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우리의 죄는 씻어지고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귀한 아들 딸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주안에 거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베풀어주시고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더럽고 추한 것들을 모두 씻어버림으로 성령의 능력이 임해 여러분이 베드로와 같은 높은 산 다윗과 같은 높은 산 기드온과 같은 높은 산이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