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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불안해 하는가-시 42:1~5

어찌하여 불안해 하는가-시 42:1~5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 해부터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는데 4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얼마나 전쟁이 비참했는지, 전사자만 해도 북군 36, 남군 25,  60만이 넘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처음에는 북군이 계속 밀렸습니다. 나중에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되자 링컨은 체중이 83Kg에서 57Kg으로 떨어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앤티텀 전투(Battle of Antietam)에서 처음으로 북군이 이겼다는 소식이 백악관에 전해졌습니다. 옆에 있던 참모가 링컨에게 축하하며 말합니다. “각하, 이제부터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북군 편입니다.” 그러자 링컨이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하나님 편에 바로 서 있는가? 서 있지 않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에 서 있을 때 나는 걱정을 안 합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으면, 하나님은 항상 내 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내게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참모들은 링컨의 평안함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러한 링컨에게 평안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항상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또 노예 해방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평안하였으며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시기만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먼저 하나님 편이 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해야 우리의 불안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본 시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길에 있던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이 되어도, 절기가 되어도 시온의 성막에서 예배드릴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시로 읊은 내용입니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라고 표제가 붙은 이유는 후대에 찬양대 지휘자였던 고라 자손이 곡을 붙여 노래하였기 때문입니다. 절망 가운데도 하나님을 통해 극복하는 다윗의 모습이 하나님 백성들에게 합당한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마스길-교훈이라 이름하였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라고 시인은 자신의 심경을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의 불안 하마라는 원어인데 중얼거리다, 용기를 잃다라는 뜻입니다. 깊은 절망으로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속으로 소리를 삼키면서 땅에 엎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동시에 시인은 절망과 불안의 구렁텅이에서 속히 나와야 한다면서 자기 격려와 동시에 자기 책망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어떠한 태도로 자신의 불안을 극복하였습니까?
 

 

첫째로 갈급함으로

토미 테니 (Tommy Tenney)의 저서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교회를 빵집에 빵이 없는 곳으로 비유하였습니다. 빵집에 빵이 없다면 빵집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얼굴을 상징하는 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도 없습니다. 성경에 누구든지 목마르고 주린 자는 와서 먹고 마시라고 했는데 와서 보니 먹을 빵이 없다는 것입니다. 빵을 놓아두었던 진열장은 비어 있고 빵을 굽는 오븐은 먼지가 쌓여 있고 사무실에는 빵 제조법 책자만 가득하고 하나님의 전에는 전에 있던 빵 찌꺼기 즉 사라진 하나님 영광의 흔적밖에 없습니다. 결국 교회에 왔다가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사람들만 보고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피 흘려 값주고 세우신 당신의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갈급함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임재의 빵이 회복될 때 사람들이 다시 교회를 향하여 나올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교회를 찾아올 것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처럼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여기의 갈급함 타아로그라는 원어로서 부르짖다, 헐떡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갈급함이 얼마나 강렬한지 목마름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부르짖고 헐떡이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대적들에게 쫓기는 불안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마치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사슴과 같다고 자신을 묘사하였습니다.

영혼의 갈급함이 없는 자가 어찌 바른 신앙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갈망하며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될 때 비로소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바울도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잡기 위해 갈급함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목마름과 불안을 해결하기 원하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더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모든 불안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회복함으로

이슬람국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아혹(Basuki Tjahaja Purnama)이라는 크리스천 주지사가 외로운 법정 투쟁을 벌였습니다. 자카르타 시민들의 70%의 지지를 받는 주지사인데 유대인과 기독교도를 지도자로 삼지 말라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구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에게 속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신성모독 논란에 휘말려 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법정에서 당당하게 V자 손을 흔들고 증언하였습니다. “저는 주지사 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제 삶에서 한 번도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주지사 자리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주님이 기회를 주신다면 다시 여러분의 주지사가 될 것입니다.” 얼마나 당당합니까? 아혹은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아니면 어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안에 있는 자에게는 딴 근심이 없습니다. 딴 불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일시적으로 즐거워하는 세상적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적인 것이나 자극적인 것으로 즐거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기도의 즐거움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찬송의 즐거움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섬김의 즐거움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4절입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여기의 기억하다는 원어로 자카르인데, ‘회상하다의 뜻으로 자신의 뇌리에 새겨져 있는 생생한 과거의 기억을 말하고 있습니다. 미완료 연장형으로 사용되어 일시적인 기억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절기에 성소를 순례하던 모습을 연상하며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며 춤을 추고 즐거워하였던 일을 기억한 것입니다. 또한 시인은 주도적으로 다른 이들을 인도하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하나님 전에 가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여 고통스럽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때는 은혜의 풍성함으로 기쁨과 찬송이 나오지만, 하나님과 멀어져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다면 탄식과 절망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을 회복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불안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부디 근신하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기쁨과 감사로 예배하는 믿음이 회복될 때 모든 불안이 곧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바라봄으로

제임스 어윈(James Irwin)은 아폴로 15호를 타고 인류역사상 네 번째로 달에 착륙한 우주인입니다. 최초로 라버(Rover)라는 월면차를 타고 반경 10km의 넓은 달 표면을 두루 탐사했던 인물입니다. 아폴로 15호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구로 귀환할 때였습니다. 지구에 가까워질수록 우주선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는데 지구의 중력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주선을 지구에 안전하게 착륙시키기 위해 대형낙하산이 펼쳐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윈은 정해진 지점에서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세 개의 낙하산 가운데 두 개만 펴지고 하나가 펴지지 않습니다. 나사(NASA)에 연락하여 비상조치를 취했지만 펼쳐지지 않는 겁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아폴로 15호가 곧 박살 날 것이라는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어윈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리석고 연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하나님 손에 맡깁니다.” 다급한 순간에도 어윈은 우주선에서 하나님을 바라며 기도한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기도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땅에서 회오리바람이 올라왔습니다. 대형낙하산 한 개를 편 것과 같은 효과가 일어났습니다. 아폴로 15호는 무사히 지구에 안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일을 계기로 어윈은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1972년 우리나라에도 방문하여 간증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든지 간에 그때 그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셔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에서도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모든 문제 해결은 하나님께 있음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여기의 소망을 두라는 원어는 호힐리인데, ‘기다리다, 바라다의 뜻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고 계신 것처럼 불안하였지만 문제 해결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말은 하나님을 바라는 것을 뜻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hope in God’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두는 자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불안은 외부적인 환경보다도 믿음이 약해진 데서 비롯됩니다. 믿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밀착되어 있다면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자신에게 명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나님만 바라라고 엄히 자신을 일깨우며 크게 외쳐야 합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John Weslesy)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단순하게 기도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생전에 썼던 웨슬리의 일기를 보면 잘 나타납니다. “4 24일 목요일, 우리는 볼턴에서 류엘 하이까지 8마일을 말을 타고 달렸는데 거의 4시간이나 걸렸다. 내가 설교를 막 시작했을 때 햇빛이 내 옆머리에 어찌나 뜨겁게 비치었던지 설교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구름으로 해를 가려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했다. 잠시 후에 구름이 와서 해를 가리어서 설교 끝날 때까지 그늘 속에서 설교할 수 있었다. 4 25일 금요일, 나는 10시경에 티드몰튼 근처에서 설교하였다. 오후 3시경에는 햅튼 스톨에 가서 산등성이에서 설교하였다. 그런데 설교를 시작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 설교를 마칠 때까지 비를 멈추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는데 실제로 비가 멎었고 설교를 끝마칠 때까지 비가 오지 않다가 설교를 마치고 나니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걱정한다고 불안이 없어집니까? 영혼이 잘되려면 불안을 물리쳐야 합니다. 불안을 그냥 내 버려두면 모든 것을 태우는 불씨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불안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삶 가운데 불안한 일이 있습니까? 어찌하여 불안해하십니까?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태도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은혜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하나님만 바라는 믿음으로 모든 불안을 물리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