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경배하고-마 2:9~12 저명한 기독교 작가 브레넌 매닝 (Brennan Manning)은 미국 경제 대공황 시절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깊은 신앙이나 헌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젊은이였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다가 해병대에 입대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이후 젊은 시절, 세상적 성취를 좇던 삶에서 좀 더 깊은 영적 실재를 추구하기 위해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의 길에 들어서서 가난한 자들의 뒷골목에서 함께하며 긍휼의 사역을 펼쳤습니다. 가난한 자들 속에서 낮에는 육체노동을 하고 밤에는 기도와 묵상에 잠겼습니다. 매닝은 ‘사자와 어린양 (He Relentless Tenderness of Jesus)’라는 책에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 회자되는 이야기를 소개하였습니다. 그 지방에 아기 예수를 만나러 베들레헴으로 간 네 사람의 목자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목자는 달걀을, 두 번째 목자는 빵과 치즈를, 세 번째 목자는 포도주를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목자는 빈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매혹당했다’는 뜻인 앙샹떼(L’Enchante)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를 만난 세 사람의 목자는 ‘마리아가 아름답다’ ‘마구간이 참 아늑하다’ ‘요셉이 그 곳을 잘 골랐다’ ‘별빛이 아름다운 밤이다’ 라며 마리아와 요셉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수의 부모를 축하하고 선물을 건네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목자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앙샹떼는 어디 간 거지?” 목자들은 이곳저곳, 안과 밖을 찾아보다가 바람막이로 쳐놓은 담요를 슬쩍 젖히고 구유가 있는 곳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구유 앞에 앙샹떼, 예수에게 매혹당한 그가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바람의 방향을 가리키는 깃발이나 불꽃처럼 그는 사랑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앙샹떼는 그 날 밤 내내 엎드려 경배하며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예수, 예수, 예수, 예수.” 그렇습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예수이시고, 우리의 관심과 사랑은 오직 예수를 향하는 경배로 나타나야 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경배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됩니다. 동방 박사들은 이미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탄생하셨음을 뜻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예수를 높여 엎드려 경배함은 마땅한 일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예수께 경배하는 장면이 본문에 나옵니다. 박사들은 천문학자들이었습니다. 이상한 별 하나를 발견하고, 메시아 왕이 태어날 징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물을 준비하여 별을 따라 유대 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대 왕 헤롯을 찾아가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태어났느냐고 물었습니다. 헤롯은 그 말을 듣고 소동하며 서기관과 제사장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예언대로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아기 예수가 나신 곳곳에 이르러 구유에 누이신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제 곧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동방 박사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였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오신 구주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는 성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과연 동방 박사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엎드려 경배하였습니까? 첫째로 기뻐하는 마음으로 2011년 부활절을 맞아 국내 탈북자교회들이 ‘북한의 지하교회와 성도’들이라는 동영상을 통해 북한 지하교회에 관한 자료들을 소개하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손으로 쓴 찬송가입니다. 찬송가를 구할 수 없어 가사를 손으로 적은 것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얼마나 뜨겁고 목이 메이도록 불렀던지 닳아 해어진 종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눈물로 얼룩져 번진 글씨는 얼마나 찬송을 간절하게 불렀는지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이불 속에서 소곤거리며 기도하는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 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를 외치는 간절한 절규는 우리의 가슴을 헤집고 하나님의 가슴도 헤집는 것 같습니다. 지하교인들은 발각되기만 하면 처형당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떻게 이와 같은 신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까? 그들 안에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쁨, 고달픈 인생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기쁨을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편하게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위해 고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이 들지만 새벽 제단을 쌓을 때, 힘이 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힘이 들지만 전도하려고 노력할 때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신 아기 예수로 말미암은 기쁨이 넘칠 때 진정한 성탄을 보내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나신 기쁨을 가지고 더 기뻐하는 마음으로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여기의 ‘기뻐하고 기뻐하더라’의 원어는 ‘에카레산 카란’인데 ‘그들이 기쁨으로 기뻐함을 입었다’는 기교적 표현입니다. 기쁨을 최상급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박사들의 기쁨은 어두움에 있던 자가 빛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며, 미로를 헤매이던 자가 바른 길을 찾았을 때의 기쁨과 유사한 것으로 인류를 구속하신 메시야를 찾게 된 데 대해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넘치는 기쁨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실로 인해 기뻐하십니까? 정녕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박사들은 메시야를 나타내는 별만 보고도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물며 예수로 말미암아 영생과 구원을 받은 사실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최고의 기쁨으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육신으로 오신 구주 성탄에 기뻐하는 마음으로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드리려는 마음으로 레이몬드 맥도날드 알덴(Raymond McDonald Alden)의 글입니다. 어느 마을에 오래된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예배당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이 있었는데 높은 탑에 달려있어 사람의 힘으로는 종을 쳐서 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종은 크리스마스날 밤, 아기 예수께 귀한 예물을 바치는 사람이 있을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 종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저녁에도 마을 사람들은 종소리를 듣고자 저마다 귀한 예물을 가지고 예배당에 모여들었습니다. 피터와 동생도 예수께 경배하고자 예배당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눈이 쌓인 길을 걸어가는데 누군가 쓰러져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피터가 뛰어가 보니 아주머니가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피터는 동생에게 예물로 바칠 은전 한 닢을 주며 먼저 교회로 가라고 보냈습니다. 피터도 예배드리고 싶었지만, 예배를 마치면 아주머니가 얼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예배당에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피터의 동생은 예배가 끝날 때쯤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예물을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마다 예물을 들고 나옵니다. 부자는 금화를, 학자는 자기가 쓴 책을, 농부는 추수한 곡식 단을 안고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임금이 나와 왕관을 벗어 제단에 올려놓았습니다. 여전히 종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종소리를 포기하고 일어섰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아름답고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놀라서 제단을 바라보았습니다. 제단 앞에는 조용히 은전 한 닢을 올려놓은 피터의 동생이 서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께 가장 귀한 선물을 바치는 그 마음에 종이 울린 것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여기에 보니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자 온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빈손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귀중한 예물을 준비하였습니다. 보배합을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귀하고 값진 것이며 상징적인 예물이었습니다. 황금은 예수가 왕이시라는 고백이며 유향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몰약을 드림으로 예수께서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예물을 드리려는 마음은 하나님을 경배함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믿음으로 준비하여 보배합을 열어 바치는 마음으로 경배하십니까? 정성 없이 되는 대로 드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도 아낌없이 주신 예수께 정성이 담긴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주님을 위해 어떤 보배합을 준비하였습니까? 진실한 사랑으로 가장 귀한 것을 드리려는 마음으로 엎드려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높은 뜻 정의교회 오대식 목사가 일본에서 목회할 때 일화입니다. 다른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중에 특별 찬송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는 찬양하러 나온 세 명의 남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야쿠자들이었습니다. 큰 체구에 걸어 나오는 모습, 입고 있는 티 셔츠, 팔과 목에 있는 문신들이 보기에도 위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찬양을 부르는 그들의 목소리에 놀랐습니다.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찬양을 부른 후 그들 중 한 사람이 간증을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야쿠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아내들이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내들은 예수 잘 믿는 교인들이었고, 남편인 우리를 위하여 밤낮 기도하고 금식하여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 하며 세 사람이 왼손을 앞으로 펼치는데 모두 새끼손가락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아는 교인들은 갑자기 숙연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 믿고나서 야쿠자의 간부로 더 이상 조직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두목을 찾아가 조직을 떠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새끼 손가락을 자르고서야 조직에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오 목사는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기 위하여 무엇을 잘라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돈입니까? 아닙니다. 건강입니까? 아닙니다. 생명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12절입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함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헤롯은 박사들에게 아기를 찾거든 돌아와서 보고하라는 임무를 주었습니다. 자기도 경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죽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헤롯의 속셈을 아시고 박사들에게 헤롯에게 가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때 박사들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른 길로 돌아 고국에 갔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지시를 따른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진정한 경배는 순종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아무리 예배를 잘 드렸어도 순종의 열매가 없다면 헛된 예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헤롯의 말을 거역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다짐했습니다. 순종이 있는 태도, 이것이 바로 진정한 경배자의 모습입니다. 내 방법을 버리고 내 성격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야 합니다.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가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기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속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엎드려 경배하는 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문학가 모임 중에 토의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세계적 문인들이 다 모였는데 이 자리에 실낙원을 지은 밀턴이 들어온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맞이할까요?” 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위대한 문인이 온다면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맞이해야 합니다”라고 모두 대답합니다. 다른 사람이 “만약 위대한 셰익스피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어떻게 대할까요?”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그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고, 찬사를 돌릴 것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또 한 사람이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방문을 열고 들어오신다면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그때 모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분의 발아래 엎드려 경배하여야 할 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경배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몸과 마음을 낮추어 엎드려 경배하여야 합니다. 오직 예수를 높이는 마음으로 경배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하시렵니까? 우리를 위해 나신 구주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는 성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뻐하는 마음으로 엎드려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바치려는 마음으로 엎드려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추천 설교 > 김광일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교회-창 1:4, 빌 1:3~7 (0) | 2021.12.22 |
---|---|
한 해의 마지막에-벧전 5:7~11 (0) | 2021.12.22 |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26~38 (0) | 2021.12.22 |
우리 하나님 앞에서-살전 3:9~13 (2) | 2021.12.22 |
하나님께 속하라-요일 3:7-12 (2) | 2021.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