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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26~38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26~38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교회에서 한 남자가 흉기를 숨긴 채 들어와 성직자를 해치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교회 내부 CCTV에 흉기를 든 남자의 모습이 정확하게 찍혔는데 교회 맨 앞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 교회를 방문한 듯 교회 앞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안내자가 말을 걸고 교회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맨 앞자리에 앉혔습니다. 잠시 후 남자는 예배 도중 갑자기 나와 품에 숨겼던 커다란 흉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흉기를 쥔 채 두리번거리더니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 티셔츠의 모자를 끄집어내리고 강단 앞에 있던 성직자에게 다가갑니다. 성직자는 흉기를 든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에게 예수 이름 능력 있도다(There is power in the name of Jesus)”라는 말을 같은 톤으로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흉기를 든 남자가 갑자기 거대한 힘에 사로잡힌 듯 멈추어 서더니 뒤로 넘어졌습니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당황한 교인들이 뛰쳐나와 넘어진 남자에게서 흉기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넘어져 있는 남자의 주변에 둘러서서 예수 이름 큰 능력 있도다를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교회는 예배 도중에 발생했던 사건 영상을 교회 웹사이트에 후드를 입은 남자가 성직자를 공격하려 했지만 예수 이름의 힘에 압도 당하다라는 제목과 함께 올렸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교회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연출한 모습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당교회 페드로 파블로 마틴(Pedro Pablo Martin) 목사는 인터뷰에서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었으며 영상은 사실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예수 이름에 큰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본서는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내용입니다. 본문 31절입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천사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고지하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인류의 구세주 메시아가 나실 것이 선포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구세주로 나실 자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직접 알려주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말로 여호수아  하나님은 구원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헬라식으로 불러 예수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이름입니다. 인간의 머리로나 이 땅에서 비롯된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친히 그 뜻을 말씀해 주신 이름입니다.

다같이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을 부릅니다.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언제나 기도 들으사 오 예수 나의 손 잡아주시는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예수 찬양하기 원하네 예수 처음과 나중 되시는 오 예수 날 위해 고통당하신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예수 왕의 왕이 되신 주 예수 당신의 끝없는 사랑 오 예수 목소리 높여 찬양해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예수의 이름은 가장 귀합니다. 설교가 버나드는 예수의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깨달은 자의 입속에는 꿀 송이처럼 달콤함이 있고, 예수의 이름을 듣는 귀에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울리고, 그 마음속에는 기쁨이 솟아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의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로 구원을 주시는 예수

인도의 성자 선다 싱(Sundar Singh)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신학 교수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힌두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는데 힌두교가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선다 싱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수는 이 대답에 만족할 수 없어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는 당신이 이전에 갖고 있던 종교와 다른 특별한 가르침이나 교리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가르침이나 교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개종시킨 것은 바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교수는 두 번째 대답에도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선다 싱 선생님, 내가 질문하려는 의도가 당신에게 충분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군요. 내가 묻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교 가운데 힌두교와 다른 철학, 즉 당신을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신봉하도록 만든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다 싱은 이 질문에도 역시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사람을 변화시켜 새사람 되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조도 교리도 철학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인격적인 교감과 임재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구원의 능력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 21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예수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 즉 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사실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사망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은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의자녀로 허락된 것은 우리의 선함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 때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답답하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능력을 주시는 예수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집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먹은 대로 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몸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방에 틀어박혀 살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 라디오를 통하여 예수의 이름을 들었고, 그 이름이 그녀의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만난 감격으로 지은 찬송시 가운데 그 이름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새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그 이름을 부를 때 놀라운 능력이 임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물질이든, 병을 고치는 것이든, 문제이건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고쳐지고 해결되는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마가복음 16 17절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문처럼 그 이름 자체가 능력이 아닙니다. 그 이름이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까닭은 이름의 주인인 예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살아 역사하시는 이름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표적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는 사용할수록 능력이 있습니다. 사용하면 할수록 능력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의 능력을 믿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 이름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을 믿는 구체적 행동이어야 합니다.
 

셋째로 응답을 주시는 예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라는 책의 저자 마를린 힉키(Marilyn Hickey) 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43세의 전기기사였는데, 귀신에 사로잡혀 난폭하게 아내를 때리고 학대했습니다. 어머니는 고통스러워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교회에 나가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죽을 각오를 하고 교회에 나갔으며, 그러던 어느 날 들키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오더니 죽이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가 아버지를 향해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칼을 떨어뜨릴지어다!” 그 순간  아버지는 칼을 떨어뜨리고 뒤로 자빠지더니 벌벌 떨면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하면 일어날 수 있다고 하자 아버지가 용서를 구했습니다. 겨우 일어났는데, 그 뒤로 증세가 심해져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날마다 하나님, 남편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남편을 구원하여 주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기도가 응답되어 아버지는 병원에서 나오게 되었고,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간구할 때 응답이 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 13절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이름을 통해 기도할 떼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죄인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갈 수 없기에 예수를 통해 죄 사함 받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불가능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게 하는 문제일지라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기도가 하늘 보좌에 상달 되어 응답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예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그냥 기도를 끝내면 기도가 상달 되지 않아 응답이 임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응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세 교회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가 교황청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황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마차가 교황청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아퀴나스에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 사도는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금과 은을 풍성하게 가졌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보내오는 저 금은보화를 보십시오. 놀라운 교회 건물과 장식을 보십시오.” 그러자 아퀴나스가 교황에게 말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령할 수 있는 예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교회를 지었습니다. 금으로 기둥을 만들었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꾸몄습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땅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건물도 있고,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은과 금은 우리에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가졌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있습니까?” 은과 금과 화려한 건물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이 없는 교회는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건물이 화려하고 큰 교회에 다닌다고 신앙이 큰 신앙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 그리고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재를 영적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화려한 건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편리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초대교회는 화려한 건물이 없었고 편리한 시설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이름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 이름만이 변화되는 역사를 가져옵니다. 초대교인들의 변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주께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은과 금을 구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지식이나 명예를 자랑하는 곳도 아닙니다. 진정한 교회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가득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탄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으로 다시 임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어떠하든지 우리에게 오신 예수의 이름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구원을 베푸시는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능력을 주시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응답을 주시는 예수의 이름을 믿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