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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에-벧전 5:7~11

 한 해의 마지막에-벧전 5:7~11

일본의 작가 히스이 고타로(非水孝太郎) 내일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습니다. “내일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단 한 번도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지금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 저자는 5분간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은 것처럼 있어 보라고 서문에 제시합니다. “지금 당신이 죽는다면 또는 죽음 직전이라면 후회가 없느냐고, 만약 후회가 남는다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나중에 죽음을 맞이할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지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대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잊고 지냅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후회할 일들을 쉽게 저지르며, 자기다움을 잊은 채 무언지도 모르는 것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히스이 고타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일이 당신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그리고 말합니다. ‘죽기 전에 가슴 치며 후회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이며, 그 불행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죽음을 미리 상상해보아야 한다. 생애 마지막 불행을 이기기 위하여 죽음을 미리 생각하도록 28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책에 나오는 질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임종이라고 생각하면 후회되는 것은 없을까? 죽을 때까지 잃고 싶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을 100점 만점에 몇 점이라고 평가하는가? 꿈을 갖고 있다면 손에 잡힐 듯이 구체화해 보았는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10가지 목록을 작성해 보아라.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원하는가? 묘비에 어떤 글을 남기고 싶은가? 화해한다면 누구와 해야 하는가? 목숨을 바쳐 최선을 다할 사람이 있는가?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표현하는가?” 그는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내면의 소리를 듣고 온전히 자기답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웃으며 맞이하기 위한 비법이라고 말합니다. 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제대로 살 수가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본문을 통해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밥 받는 상황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의 첫마디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 속에는 행동할 시간은 있으나 낭비할 시간은 없다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즉 이 때가 마지막이 가까운 때이니 게으른 마음을 품지 말고 차분하게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따라 본분과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믿음의 정도를 걸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 세상 끝이 온다고 해도,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2017년의 마지막 주일이며 마지막 날입니다. 지나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회고와 반성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한 해를 주셨는데 마지막 날에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특히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떻게 행하였는지 반성하며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 해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첫째로 깨어서 기도했는가

윌리엄 캐리 (William Carey)의 전기를 쓴 작가는 어떻게 윌리엄 캐리가 열정을 가지고 인도의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조사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캐리에게는 몸이 약한 누나가 있었습니다. 누나는 캐리가 인도로 선교를 떠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캐리야,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구나. 누나는 병상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몸이라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구나.” 작가는 윌리엄 캐리의 사역 배후에 기도밖에 할 수 없는 한 여인,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여인, 기도 외에는 자기 존재를 발견할 수 없는 여인에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누나의 기도 속에 윌리엄 캐리가 사역을 이루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음을 놓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캐리의 누나는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잘 몰랐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왜 나약한 모습으로 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헛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위대한 일과 위대한 사람 배후에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여기의 정신을 차리고는 원어로 소프로네사테인데 분별력을 가지라, 마음을 추스리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근신하여 넵사테인데 근실한 마음을 가지다, 정신을 맑게 하다로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환경에 따라 요동치 말고 냉정하게 깨어 기도하며 자신의 믿음을 지키라고 교훈하였습니다.

마귀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가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한 해 동안 영적으로 깨어 있었습니까? 깨어 항상 기도하셨습니까?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깨어 기도하면 승리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분주한 가운데도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육신의 향락에 빠지는 대신 더욱 근신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뜨겁게 사랑했는가

국민일보에 실린 어느 부인의 9일간 천국 만들기라는 글입니다. 어느 부인이 자신의 생활을 비관하다가 간절히 빌었습니다. “하나님!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요. 정말 힘들어요.”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살기 힘들지? 네 마음을 이해한다. 너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몇 가지 조건을 들어야 한다.” 부인이 하고 대답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집 안이 지저분한 것 같은데 네가 죽은 후 정리를 잘 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 안 청소 좀 할래?” 그녀는 열심히 집 안 청소를 했습니다. 3일 후, 하나님이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애들이 맘에 걸리지? 네가 죽은 후 아이들이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3일 동안 최대한 사랑을 애들에게 주어 볼래?” 그 후 3일 동안 자식들을 사랑으로 품어주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다시 3일 후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갈 때가 됐다.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그동안 남편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고 미웠지? 그래도 장례식 때 ‘'참 좋은 아내였는데...’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3일 동안 최대한 남편에게 친절하게 대해 줘보라.” 마음에 내키지 않았으나 천국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3일 동안 남편에게 최대한 친절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다시 3일 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천국으로 가자! 그런데 가기 전에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그래서 집안을 돌아보니 깨끗한 집에서 오랜만에 애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남편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던 그녀는 천국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고,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집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인이 말합니다. “하나님! 갑자기 이 행복이 어디서 왔죠?”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9일 동안 네가 만든 거란다!” 그때 부인이 말했습니다. “정말이에요? 그러면 이제부터 여기서 천국을 만들어가며 행복하게 살아볼래요!” 사랑이 만든 기적이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여기의 뜨겁게는 원어로 엑테네인데 열렬한, 깊게라는 의미입니다. 성도 상호 간에 열렬하게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된 성도들은 어떤 것보다 사랑을 최우선으로 행해야 합니다. 형식적이 아니라 뜨겁고 진지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이기만 하면 아무리 하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할 이유는 마지막 심판 때,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가리움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해 동안 서로 사랑하셨습니까?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최선의 길은 정상적인 생활을 버리고 신비한 능력을 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와 사랑, 섬김과 봉사와 같은 평범한 곳에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가까운 성도와 이웃을 섬기며 소외된 곳을 찾아 뜨겁게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사랑을 행함으로 사람들을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사랑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셋째로 은사로 봉사했는가

나이팅게일 ((Florence Nightingale)은 러시아와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 사이에 벌어졌던 크리미아 전쟁의 참상에 관한 보도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육군 대신 허버트의 위촉을 받아 34명의 간호사들과 함께 전선으로 갔습니다. 야전병원마다 돌아다니며 그녀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부상당한 군인들을 먼저 돌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녀의 이름이 병사들의 가슴에 새겨지고 광명 부인(The lady with the lamp)’이라는 이름까지 주어졌습니다. 보도진은 저마다 그녀에게 달려와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은 거절하고 자기를 잊어버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녀가 한 일의 당연한 주인인 것을 알아주기를 원했습니다. 나이팅게일, 그녀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통해 진심으로 봉사하였던 사람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여기의 은사 카리스마인데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해서 백성에게 주어진 영적 선물을 나타냅니다. 예언이나 방언같은 은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 가르치는 것, 자선을 베푸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섬기는데 유익한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은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단지 청지기에 불과하며 은사의 목적은 봉사하고 섬기는데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청지기로서 서로 유익을 위해 봉사하고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 하려기에 억지로나 체면으로 하며 또한 자기를 드러내려고 애씁니다. 그러다가 여의치 않게 되면 불평이 앞서게 됩니다. 한 해 동안 어떻게 봉사하셨습니까? 사람의 힘으로 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자랑할 만한 은사가 있다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며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성도의 마땅한 삶을 권면하며 서로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사랑과 섬김에 일방적이란 있을 수 없고 서로를 향한 쌍방적인 섬김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상호 섬김은 교회를 지탱하는 대들보와 같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조직처럼 법이나 강제적인 힘이 아니라 자발적인 섬김과 사랑을 통해 유지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섬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높이며 세워줌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서로 함께 높아지는 성숙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人生不過二十年 有時善用勝百年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20년을 잘 사용하여 100년을 산 것처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누에는 전통적으로 중요한 벌레였습니다. 요즘은 옷감이 발달하였지만 예전에는 누에에 의존하였습니다. 누에를 한자로 ()’이라고 합니다. 잠은 천충(天蟲)’,  하늘이 내려준 벌레라는 의미인데 하늘 천() 아래 벌레 충()’을 쓴 약자로 표기합니다. 누에는 종일 먹고 자는 것 외에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 비단 실을 내어 고치를 치고 죽습니다. 최후, 마지막이 좋아 귀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마지막을 잘 장식해야 합니다.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지금 한 해의 마지막에 서 있습니다. 각자의 모습을 진지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깨어서 기도하였습니까? 뜨겁게 사랑하였습니까? 그리고 은사로 봉사하였습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