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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목마름 시42:1~2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             시42: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시42:1~2.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고, 그 물을 찾으려는 ‘갈급함’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생의 문제가 이 세상의 자원에만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채워지므로 말미암아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육신의 것들이 있는데도..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사실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오늘 우리가 겪는 곤고함은

떡이 없어서가 아니라 영혼의 곤고함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의 현실입니다.

 

광야에서 물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쓰러져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가는 사슴에게

한 모금의 물만 있으면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한 번의 하나님과의 만남은

죽을 것 같은 우리의 영혼을 다시 살리고

우리 인간의 존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때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갈망으로 간절했었고,

그 갈망은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로 채워졌는데,

오늘은 모든 풍부한 물질로 채워진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이상한 공허감을 느낍니다.

공허하면서도.. 그 공허한 이유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물질을 더 가지지 못해서 그려려니... 하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핵심 문제 - <갈망>이 사라져버렸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간절히 갈망하는 마음 안에서 가장 영광을 받으십니다.

도덕적으로 큰 흠 없이 살아왔다면서 깨뜨려지지 않은 마음보다는

죄 가운데 살아왔다 할지라도 주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상하고 깨뜨려진 마음 안에서.. 주님은 더 큰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위대한 업적을 향하여 시선을 두지 아니하시고,

오늘도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눈길을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주님의 사랑의 경험이 말라버렸다면...

진리가 힘차게 다가와 내 영혼을 흔들어 놓는 은혜의 감격이 사라진 시대에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여러분 속에 간절하게 떠올랐던 적이 언제입니까?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이었습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욕심 말고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간절한 욕망,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같이 주님이 나를 만나주시도록,

 

이 비천한 인생의 마음에 주님 자신이 찾아와 주셔서 나를 어루만져 주시고

나의 빈 심령을 주님 자신으로 충만케 채워주시길 바라는 그런 목마름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어린아이처럼 내 마음에 오시도록 구해본 적이

언제냐고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는, 당신과 사람 속에서 교통하기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시고

또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시는 것만큼.. 하나님에게 기쁜 일은 없습니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이 당신을 사랑하길 원하시고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셔서 사랑가운데서 누리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해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멸시와 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십자가)이 바로 하나님이 얼마나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꼭 필요한 사람

오늘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이 큰 사랑, 주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며

그 힘으로 고난도 이기고, 역경도 이기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소수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죄가 많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비록 명백한 죄인이었으나

하나님과 다시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그 사랑 안에서 살고 싶어 하는

즉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했던 세리(눅18장)와 같이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갈망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365일 교회를 드나들어도 한 번도 가슴이 무너져 본 적이 없는 사람,

매주 예배를 드려도 주님의 은혜에 목말라 한 적이 없는 사람,

매번 기도해도 마음속에 자신의 죄와 강퍅함을 위해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 마음속에 어찌 주님이 오시겠습니까?

 

육체는 병들지 않는 한 음식을 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은 병들지 않는 한 하나님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 속에서 일어나는 갈증이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세상의 쾌락과 향락을 쫓아 죄짓고 사는 것입니다.

영혼은 그런 것들로는 결코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을 목마름 대신에.. 세상(축복)을 목말라하는 오늘날의 신자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고백록 첫 장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품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내 영혼이 안식을 누릴 수가 없었다’

고백합니다. 영혼은 하나님을 끊임없이 갈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하고 은혜 아래서 살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배 시간은 항상 기다려졌고, 주님과의 만남은 내 영혼에 만족을 주었지만

더 큰 주님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나를 이끌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 기도하든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에 사무친 기도였고,

우리 마음으로 섬기는 그 섬김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섬김이었습니다.

 

섬기면 섬길수록 주님은 더 귀하고,

깨뜨려지면 깨뜨려질수록 우리 안에 뿌리 내린 무한한 죄를 버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혼이 죄와 무지 가운데 있게 되면 이런 감각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차가운 의무로 바뀌어졌고,

주님을 향한 목마름은 이 세상에 대한 탐욕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 주님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입니다.

사랑은 샘솟듯 솟아나는 그리움이고

사랑하는 대상과 완전히 하나 될 때까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체험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

오늘 이 시인이 그리워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습니까?

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이다. 42:2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인생의 문제가, 참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어려움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뵈옵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에워싼 원수, 에워싸는 많은 환경과 두려운 이 벽들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셔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위기 가운데 건져주시고,

고난 가운데서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던 이 위대한 능력의 하나님,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지금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목마름이 우리 안에 간절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합시다.

우리 안에 있던 하나님을 향한 생생하고 간절한 그리움들이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 이외에 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생각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

결코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에 목마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묵상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없이 살아갔던 인생의 곤고했던 날들,

그 인생의 위기 가운데 나타나셔서 나를 그 곤고함 가운데 건져주신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사랑,

 

주님께 돌아갔을 때 주님이 내게 베푸시던 그 은혜와 자비,

이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에 마음을 고정시키고, 특별히 그 일을 많이 생각하고 묵상함으로써

그것이 머리에서 가슴 속으로 내려오게 하여야 합니다.

 

이런 저런 인생의 많은 자원들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해결책은 오직 하나,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심령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성도의 마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몰라주고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고

사람들은 나를 정죄할지라도

주님의 은혜에 목마른 마음, 인생의 소망을 세상 자체에 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보좌와 그 영광에 둔 성도의 그리움,

 

시간과 공간 속에 묶여 살면서도

어찌하든지 영혼으로 이것을 넘어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사귀고자 하는 사람,

그분이 있음으로 행복하고

자신이 이 땅에 사는 이유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갈망으로

꽉 차 있는 마음.., 오늘날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절실하게 부족한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을,

주님은 아마 그의 그런 마음보다 몇 배로 더 뜨겁게

그를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이 시는 다윗 시대에 쓰여 진 시입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 왕이 측근들을 데리고

요단강 건너로 망명생활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에 다윗을 수종하였던 충성스런 신하 가운데

고라의 자손 한사람이 쓴 시로 여겨집니다.

 

..................................... 이 설교문의 서두를 맨 아래에 배치함.........................................

 

▲시42편은, 고라자손의 시

원래 고라의 자손은 저주 받은 이름의 대명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던 시절에, 고라는 모세에 대해서 반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비방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전대미문의 심판을 내리셨는데,

그들이 서있던 땅이 꺼지면서,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모두 삼키고

다시 땅이 닫혀져버린 사건이었습니다.

 

이후로부터 고라 자손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종에 대해서 반역을 일으켰다가

하나님께 천벌을 받은 족속’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이 항상 따라 다녔습니다.

이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다윗이 나라를 세울 때였습니다.

 

다윗이 다시 나라를 세울 때, 그는 상처받은 자, 원한이 있는 사람, 빚진 자,

가난하고 병든 자 등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하층 사람들을

모두 끓어 안고 그들과 함께 새 나라를 건설하였습니다.

 

이때 고라의 자손도 다윗의 수하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고라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전을 섬기는 특별한 사명을 주었습니다.

 

이러던 중에 압살롬의 반란이 일어났고, 나라는 악한 자들 수중에 떨어졌으며

기름 부은 받은 왕, 다윗은 백성들에게 수치와 멸시를 받으며

요단강 건너편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이 시가 ‘고라 자손의 시’인 것은, 시42편의 표제어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가 특별히 ‘압살롬의 모반 때 피난가면서 지은 시’로 보는 이유는,

 

4절,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 지금 피난 와중인 것을 의미합니다.

 

6절,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 이 지명이 다윗이 압살롬에게서 도피한 지역과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시42편의 저자는, 지금 객지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따라) 도피 중인 시인의 마음속에는, 많은 기도의 제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모든 것을 밀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과, 사모함의 처절한 갈망을.. 하나님 앞에 토해놓고 있습니다.

 

1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향한 견딜 수 없는 갈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러한 갈망을,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슴의 갈증

팔레스타인에서는 가을이 사슴들의 교미 철입니다.

교미기가 되면 사슴의 몸에 변화가 찾아오는데, 타는 것 같은 목마름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짝짓기를 위해서 광야로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엄습하는 목마름을 이기지 못해서 물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광야에 무슨 물이 있겠습니까?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매다가 죽어간다고 합니다.

시인은, 도피 중에 광야에서 이렇게 쓰러져 죽어가는 수많은 사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 모금의 물은 곧 생명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목마른 사슴에게 한 모금의 물이 생명이었던 것처럼

시인 또한 하나님을 갈망하는 그 마음은,

물을 찾아 헤매다가 곧 쓰러져 죽을 것 같은 사슴의 갈망이었던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