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것-시 27:1~6
플로이드 맥클랑(Floyd McClung)의 ‘제자도의 본질 (Follow)’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시몬 자오(Simon Zhao)라는 중국 그리스도인이 1940년 ‘백 투 예루살렘’비전을 품고 예루살렘으로 향한 도보여행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25명으로 구성된 시몬과 일행은 중국의 변방 북서지역을 향해 출발했고, 1948년 중국 국경을 넘으려던 찰나에 공산주의 철권통치가 시작되었고 국경은 폐쇄되었습니다. 시몬과 일행은 국경을 건너려는 반역자로 체포되어 감옥에 감금되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나 마찬가지였던 감옥에서 배식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악취가 나는 음식이 주어졌습니다. 하루 14시간씩 중노동에 시달렸고. 찌는 듯한 더위와 혹독한 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매일 고문이 가해져 6개월 안에 대다수가 사망하였습니다. 시몬의 일행도 감옥에서 죽고 시몬만 살아남았습니다. 이렇듯 낙심할만한 상황에도 시몬은 여전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예루살렘으로 갈 수는 없지만 비전을 완수할 중국의 성도들을 일으켜 주소서.” 사명을 위한 한 가지 소원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한번은 죄수들이 맹추위 가운데 시몬을 밖에 세워두고 하나님이 도와주시는가 보자고 했습니다. 시몬이 기도하자 갑자기 몸에 온기가 돌았습니다. 죄수들은 그의 몸에서 김이 나고 주위의 눈이 녹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번은 혹독한 매질을 당하여 두개골에 금이 갔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에서 주님이 “내 아들아.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널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식을 되찾은 시몬이 맞은 부분을 보았더니 피는 말라 붙었고 상처들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있었습니다. 복역한 지 40년이 지나 풀려났지만 72세의 병든 노구가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하나님께 바라는 한 가지를 실천했습니다. 작은 방을 찾아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중국의 신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후 믿음 때문에 감옥에서 40년을 살다가 나온 형제가 왔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소식을 들은 중국 그리스도인들이 회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시몬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중국에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수 만명의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 세계의 추수 밭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열정에 당신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당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결국 주저하던 시몬은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그때부터 다니며 간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시는 능력으로 복음화에 대한 비전을 전하였습니다. 2001년 12월 7일 시몬 자오는 세상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13년이라는 사역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비록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였지만 중국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과 힌두교와 불교인들에게 다가서는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사역은 변방의 촌락 몇 개를 찾아가는 수준이 아니었으며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바라며 소원하느냐가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시편 27편은 다윗이 인본주의 세력과 악한 세력의 부당한 도전 가운데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함으로 위기를 극복하리라는 소원에 대하여 기록한 시입니다. 우리는 본 시를 통해 무수한 대적들과의 갈등과 대립 가운데서 다윗이 어떻게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여기의 ‘한 가지 일’의 ‘아하트’는 목적어에 해당하는 표현인데 ‘오직 한 가지만’이라는 뜻입니다. 평생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선하심, 자애, 긍휼을 가리킵니다. 결국 다윗의 한 가지 소원은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소원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당장의 유익과 관련된 재물을 소유하는 것, 명예를 얻는 것, 권력을 갖는 것, 장수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면서 정작 하나님은 안중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구하는 것이 전부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과의 영속적인 교제를 누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머무는 것이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다같이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를 부릅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다윗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하나님께 바라는 소원, 그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태연하리로다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실비아 마틴(Civilla Durfee Martin)이 작시하고 월터 스틸맨 마틴(Walter Stillman Martin) 목사가 작곡하였습니다. 마틴 목사는 쇠약한 부인의 병상을 떠날 수 없어 약속된 교회의 설교를 거절하고자 했습니다. 전화를 걸려는데 아홉 살 난 아들이 “아빠! 하나님이 아빠가 오늘 밤 그 교회에서 설교하시길 원하신다면 아빠가 안 계시는 동안 하나님이 엄마를 돌보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이 말을 들은 마틴은 하나님께 맡기고 흔쾌히 설교를 하러 떠났습니다. 그 순간 병상에 누워있던 실비아는 어린 아들의 말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렇다! 근심,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돌보시는데!” 영감을 얻은 그녀는 병상에 누운 채, 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아내가 염려되어 설교를 마치고 급히 돌아온 마틴 목사는 머리맡에 시를 써 놓고 태연하게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보고 올갠으로 달려가 시를 보며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곡을 마치고 그날 밤 가족들은 병상에 둘러앉아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를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여기의 ‘태연하리로다’의 원어는 ‘보테아흐’인데 ‘안전함을 확신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여전히’로 번역된 ‘빼조트’를 사용함으로 다윗은 전쟁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평안함을 주시며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도움에 대하여 강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삶의 위기가 닥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기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가운데 기다려야 합니다. 더 담대해야 합니다. 진정한 성도의 여부는 위기에 처하였을 때의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모름지기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위기의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태연한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태연한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사모하리로다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isi)는 수도회를 창설하여 쓰러져 가는 이탈리아의 종교를 회복시켰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성자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청빈한 생활방식과 사랑의 실천을 본받기 원하며 수도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프란체스코가 선한 일을 하는데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온 삶을 통해 예수를 만나고 예수만 사모하였습니다. 그의 제자는 프란체스코에 대해 “걸을 때나 앉아있을 때, 집에 있을 때나 나가 있을 때, 일할 때나 쉴 때나 언제나 하나님께 마음과 몸뿐 아니라 시간까지 바치며 사모하는 것을 보았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하루 중 기도할 시간을 따로 정해두고 ‘하나님과의 약속’이라고 말하면서 한 번도 지키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심각한 병이 있을 때에도 기도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일에 열심을 다한 그는 주님의 흔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보고(Borgo) 마을을 지나 여행할 때 프란체스코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옷이라도 만져보기 위해 사방에서 모여들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프란체스코는 기도에 열중해 있던 나머지 그곳을 지나쳐왔음도 알지 못한 채 언제 도착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모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체면이나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만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4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기의 ‘사모하는’은 원어로 ‘울레박케르다’인데 ‘묻다, 문의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행위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리고 묵상했습니다. 심령이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지기를 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기를 소원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묵상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생활의 분주함에 쫓겨 하나님을 향한 묵상과 사모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일을 더욱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말씀 듣는 일에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영혼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진리를 사모할 때 하나님은 커지고 나는 점점 작아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찬송하리로다
19세기의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었습니다. 영국에 밤이 오더라도 영국의 식민지 중 한 곳 이상은 낮이기에 이런 별명이 붙은 것입니다. 빅토리아 시대는 1837년부터 1901년까지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통치하던 64년의 기간이었는데 전무후무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어느 날 빅토리아 여왕이 헨델의 ‘메시아’ 연주회에 참석했습니다. 함께 수행하던 시녀가 말합니다. “폐하께서는 대영 제국의 여왕이시므로 신분을 생각하셔서 연주 중에 백성들이 일어서더라도 그대로 앉아 계셔야 합니다.” 여왕은 그 말을 기억하고 마지막 곡 "할렐루야"의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선율 속에도 앉아서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곡의 클라이막스인 “왕의 왕,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라는 대목에 이르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왕관을 벗어 두 손으로 받들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고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기의 ‘찬송하리로다’는 원어로 ‘와아잠메라’인데 ‘손가락으로 튕기다’라는 뜻으로 현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다윗이 ‘노래하여’와 ‘찬송하리로다’의 유사한 표현을 반복한 이유는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증거하고 싶었던 열의를 분명하게 보이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얼마나 기뻐하고 감격하고 있는지 잘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급박한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찬송을 소원으로 삼았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이미 구원의 기쁨을 맛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 다윗에게 위기는 이미 위기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숨기심과 보호 그리고 승리하게 하심을 찬송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 힘있게 찬송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것이 여러분의 소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는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3중의 고통을 이겨낸 인물입니다. ‘3일 동안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은 그녀의 간절한 소원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을 찾아가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들의 모습을 기억하겠습니다. 산에 올라 아름다운 꽃과 풀 그리고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뉴욕 시내의 번화가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진열된 멋진 작품들을 감상하겠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들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에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어두워지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상가에 진열된 상품들을 구경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들어와서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생활이지만, 헬렌 켈러에게는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바라는 중요한 소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아니하십니다. 이 사실을 확신한다면 결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태연한 신앙을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욱 사모하는 소원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원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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