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道)-고전 1:18~25
장경철 교수의 ‘축복을 유통하는 삶’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 하늘나라의 현관에서 심문을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천사장이 물을 것입니다. ‘당신은 죄인입니까? 아니면 의인입니까?’ 그때 죄인인 것 같다고 대답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러면 천사장은 지체없이 ‘당신은 지옥으로 가시오. 죄인이 가는 곳은 지옥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나는 의인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천사장은 계속 심문할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를 대주십시오.” 그때 당신은 어리석게 당신의 일기장을 뒤적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이런 착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보다 기억력이 탁월한 천사장은 당신이 잊어버린 추한 사실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낼 것이며, 당신은 그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아마 그는 당신의 선행 뒤에 숨어 있는 추한 동기도 끄집어낼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때 당신은 행위가 아니라 골고다의 십자가를 가리켜야 합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내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이 흘리신 피로 인하여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할 때 천사장이 당신을 영접하면서 하늘나라로 인도할 것입니다. 혹시 당신이 만나게 될 천사장이 짓궂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더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당신을 의롭게 한다는 표징이 있습니까?’ 그때 담대히 말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는데 무엇이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겠습니까? 당신이 무엇이 관대 그것을 문제 삼습니까? 십자가는 나의 구원이며, 나의 의로움이며, 나의 생명입니다.’ 그러면 천사장은 당신을 수종 들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옳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당신을 수종드는 천사일뿐입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책망하며 조속히 하나될 것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교회가 신앙의 본질인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특정한 사역자를 추종하는 인맥에 집착하여 분파주의에 빠짐으로 분열된 사실을 지적하고 이어 교회의 설립과 통합의 유일한 기반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그릇된 태도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대다수가 출신 성분으로 볼 때 자랑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누구도 육체로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고 오직 예수만을 참된 자랑으로 여기도록 하는 하나님 섭리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도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하였다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원어로 ‘호 로고스 가르 호 투 스타우르’인데 ‘그 십자가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말의 지혜 곧 철학적 논증에 치우쳐있는 고린도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십자가의 도가 진리인 것을 강조합니다. 철학사상이 만연했던 고린도에서 바울은 고상한 도덕과 철학에 대해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철학이나 도덕으로 장식된다면 효력이 없어질 것이라 믿었던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도(道)야말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강조하였던 ‘십자가의 도(道)’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이라
1963년 10월 19일 새벽 2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론리에서 이득주 중령 일가족 6명을 도끼로 몰살시킨 잔인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범인은 고재봉이었습니다. 그는 부대장 박중령 관사에서 당번병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서재에서 작은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본 가정부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도끼로 위협을 하였던 고재봉은 살인미수 혐의로 육군 형무소에서 7개월을 복역하였습니다. 복수의 일념으로 석방되자마자 부대장 관사를 찾아가 가족을 도끼로 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노린 박중령은 전속 되어갔고 억울하게 다른 부대장이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안선국 집사는 사명감을 느끼며 고재봉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수인번호 5000번, 고재봉을 처음 면회하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형제여, 당신도 죽고 나도 죽고, 당신도 죄인, 나도 죄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라며 십자가의 도를 전하며 성경을 넣어주었습니다. 성경을 뒤척이던 고재봉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 눈이 닿았습니다. 그때 ‘구원이 무엇이냐?’를 생각하며 성경을 다섯 번이나 읽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도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아, 내가 성경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내 인생이 변했을 것이다.” 그는 새벽 종소리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큰소리로 외치며 회개하였습니다. 고재봉이 전도하면서 감옥이 변하였습니다. 그에게 소망이 생겼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형 집행 전 날, 감옥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죄수들에게 감옥에서 나가면 꼭 교회에 가라고 당부합니다. 검찰관이 마지막 할 말을 물었습니다. 고재봉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말하면서 “제가 웃을 때 방아쇠를 당겨 주세요” 부탁하고 ‘인애하신 구세주여’ 찬송을 불렀습니다. 헌병들은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지만 그가 원하는대로 찬송을 끝내고 웃을 때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고재봉 같은 살인마를 변화시켰던 능력은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들어가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근심이 평안으로, 증오가 사랑으로, 다툼이 평화로 변화되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의 ‘능력’은 원어로 ‘뒤나미스’인데 ‘신체적, 지적, 영적 능력을 포함한 총체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는 구원이 말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초월적이며 생명력 있는 능력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이 말의 지혜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던 까닭은 십자가의 도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 해도 십자가를 조롱한다면 실상 살았다 하나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비록 낮고 천한 자 같으나 십자가를 귀히 여기면 장차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구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은 미래에 관련된 중요한 사실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이라
미우라 아야꼬 (三浦綾子)의 소설 ‘양치는 언덕’의 주인공은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목사의 딸입니다. 바람둥이 료오이찌의 유혹에 빠져 부모를 버리고 도망쳐 동거를 합니다. 2년을 살던 그녀는 견딜 수 없어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료오이찌도 폐병에 걸려 나오미를 찾아옵니다. 받아 주기 싫었으나 목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받아들였습니다. 요양 생활을 하던 료오이찌는 처가집 식구들의 믿음에 감동을 받고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하얀 천으로 덮어 놓았습니다. 나오미가 ‘무슨 그림이냐’ 물었더니 ‘크리스마스 때 주려고 그리는 그림’이라고 대답합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전 날에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료오이찌는 전에 사귀던 여자의 연락을 받고 밖에서 만났습니다. 여자가 술을 권하였지만 마시지 않았고 자고 가라는 유혹도 받았지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술에 수면제를 탄 후 한 잔만 마시라는 여자의 꼬임에 속아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놀라 깨어난 그는 집을 나섰다가 동사하고 말았습니다. 나오미는 그가 그린 그림을 열어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는 예수의 그림이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 한 청년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예수의 피 흘리시는 발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청년의 손등 위로 예수의 피가 떨어져 있습니다. 그 청년은 바로 료오이찌 자신이었습니다. 십자가로 구원받은 모습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도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여기의 ‘구원하시기를’은 원어로 ‘소사이’인데, 십자가가 하나님의 탁월한 지혜의 핵심인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구원의 진리는 세상적 기준에서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지는 십자가를 통해 드러납니다. 십자가 자체가 미련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겉모양만 화려하게 보이는 철학이나 지혜에 비교해볼 때 그렇게 보이는 것일뿐 사실 십자가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최상의 방편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자 비록 인간이 보기에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최상의 도인 십자가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야말로 구원을 위해 예비하신 가장 은혜로운 도(道) 인 것을 기억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통해 올바른 구원의 길을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지혜니라
가뭄이 들어 농부들이 물싸움을 하는 판에 한 성도가 밤을 새워가며 논에 물을 대었습니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 눈을 붙이고 나와 보니 아래 논 임자가 물을 도둑질하여 자기 논에 대놓은 것입니다. 그는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참아야지”하고 그 날도 자정이 넘도록 논에 물을 댔습니다. 새벽에 들어와 자고 나가보니 또 물을 빼갔습니다. 당장 쫓아가 분풀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참고 목사님을 찾아가 호소하였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전에 당신도 살고 그 사람도 사는 길을 찾아보세요. 두 번이나 속았으니 한 번 더 속는 셈 치고 아래 논에 먼저 물을 대고 당신 논에 물을 대세요”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성도는 울분을 달래며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래 논 임자가 찾아와서 “내가 그렇게 잘못했는데도 내 논에 물을 대주셨습니까? 저도 당신을 따라 예수를 믿겠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십자가의 지혜가 세상의 지혜를 이겼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체험하게 하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더 얻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지혜’는 ‘데우 소피안’인데, 여기서 바울은 통상 소유격을 수식하고자 하는 명사의 뒤에 배치하는 헬라어 구조에 파격을 시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즉 ‘데우 소피안’의 어순을 통해 지혜가 하나님께 속하였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십자가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 즉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부르신' 자들에게만 절대 착오 없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의 생각으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짧은 인간의 지혜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고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지혜인 것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 미련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지혜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지혜임을 믿고 더욱 십자가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미생물이 발효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광견병, 탄저병, 닭 콜레라에 대한 백신을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그로 인해 파스퇴르는 많은 재물과 명예를 얻었고 많은 생명도 구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임종을 맞았을 때, 한 손은 아내의 손을 붙잡고 다른 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꼭 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명한 과학자도 죽음 앞에서 십자가가 필요했습니다. 과학적인 지식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어도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십자가 없이 설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에게는 마땅히 십자가의 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순절은 신앙을 점검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진정으로 십자가의 도로 사는가 확인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믿고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합니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비웃고 거절하는 십자가야말로 최고의 지혜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씻고 정결한 눈을 열어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디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구원이 됨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지혜임을 깨달아 십자가의 도를 증거 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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