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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는 자들-고전 9:14~23

복음을 전하는 자들-고전 9:14~23

한국 오엠(Operation MobiliZation) 1989년에 창립되어 150명의 선교사들이 세계 60여개국에서 사역하는 선교단체입니다. 오엠의 한국 대표는 최현미 선교사입니다. 그녀는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 한 번만이라도 복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소망은 각자가 속한 사회와 나라에서 땅끝의 증인으로 살아갈 때에 실현될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기독학생회(IVF) 기도 모임을 인도하면서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선교사들이 보내온 기도편지를 받고 지속적으로 기도하였지만 선교사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선교 포스터에 누가 당신의 삶의 고삐를 쥐고 있습니까?’라고 적힌 글귀가 그녀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그동안 삶의 주인이 당연히 자신이라고 생각하였는데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선교집회에 참석하였는데 패트릭 존스턴 선교사가 한 여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이 여인에게 갈 단 한 사람을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전신을 검은색 부르카로 가린 무슬림 여성의 모습인데 가슴 부분에 동그란 눈동자 두 개가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안고 있는 아기의 눈동자였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그들을 안아 줄 수 있겠니?’ 저는 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그 순간 삶의 고삐를 쥐고 계시는 하나님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무릎을 꿇은 그녀는 고백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저 여인에게 갈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면 가겠습니다.” 처음으로 선교를 간 곳은 공산권 장벽이 막 무너진 루마니아였습니다. 그 후 유럽에 있는 다양한 무슬림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7년 동안 중동지역의 선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베드윈족을 포함하여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하였고,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한번은 에디오피아와 소말리아에서 온 크리스천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그들의 기도를 듣고 감동을 받았어요. 가사도우미, 건물 청소부로 힘든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을 고용한 주인의 구원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매 순간마다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시장 거리에서 무슬림이 얼굴에 침을 뱉고 지나갔어요. 모멸감을 느끼고 한동안 힘들었어요.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채찍에 맞으며 침 뱉음과 조롱을 당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 분이 저의 마음까지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녀는 힘이 들 때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방향을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탁합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전도 종족만이 아니라, 복음을 접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도 교회가 안고 가야 할 과제입니다.” 최현미 선교사, 그녀야말로 진정 복음을 전하는 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을 통해서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절제함은 물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자유를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는 열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을 섬기는 희생과 그에 따른 복음 전도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비록 죽임을 당할지라도 주를 위한 희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희생이 없다면 교회를 위한 사랑이 없는 증거이며, 육체의 본성대로 행하는 거짓된 신앙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과연 어떻게 행하여야 합니까?
 

첫째로 자랑하지 말아야

소명이라는 영화는 강명관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인구가 100여 명밖에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바나와 부족과 함께 사는 강 선교사는 90년대 초 외국어 고등학교 국어교사였습니다. 문자가 없어 제대로 교육조차 받을 수 없다는 바나와 부족의 소식을 접하고 그들을 위해 선교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아마존에 들어가서 바나와 부족의 문자를 만들어 교육을 시켰고, 성경의 보급을 위해 번역도 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5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 가운데 독충과 독사에 속수무책으로 방치된 그들에게 유일한 의사가 되었고 여러 가지 역할을 도왔습니다. 부족들은 밀림을 헤치며 야생 들쥐나 거북이를 잡아먹었습니다. 마을에는 전기와 전화가 없었고 시간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약을 처방할 때마다 해뜰 때 한 알, 해질 때 한 알로 약 먹을 시간을 정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바나와 부족들은 우리에게 약을 주고 치료해 주는 것에 너무도 고맙게 생각한다.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문명의 이기 속에 사는 우리의 눈에 강명관 선교사의 삶이 안타깝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 때문입니다. 복음이 바나와 부족까지 변화시키리라고 믿는 강선교사는 복음 전하는 일을 자랑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부득불 하여야 할 일로 고백하면서 힘껏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여기의 자랑할 것이 없음은은 원어로 우크 에스틴 모이 카우케마 입니다. 바울은 에스틴이라는 직설법 동사를 사용하여 자랑할 것이 없는 모습이 지속적이며 변함이 없는 상태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시 전도자들이 복음 전하는 것을 명예나 공적으로 과시하였기에 사도바울은 절대로 그렇지 아니한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도자에게 자랑이 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 직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전파는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사명입니다. 전도를 부득불 행하지 않는다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바울은 생각하였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도는 자신을 내세우는 자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사명이요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전도는 스스로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기에 복음 전하는 것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사명으로 받아야

월리엄 부스 (William Booth)는 복음 전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구세군 창시자입니다. 영국 여왕을 만나고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평생 잃어버린 자를 찾아 복음을 전하며 살리라.’ 그러자 여왕이 물었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이 그렇게 좋으십니까?” 부스가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물구나무를 서서 걷고, 발바닥으로 탬버린을 치면서라도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한 영혼이 돌아오기만 하면 사람들이 저를 보고 미쳤다고 해도 좋습니다. 조롱해도 좋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며 살겠습니다.” 부스는 복음 전도 사명으로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 삶의 우선순위였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사명으로 받았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여기의 사명을 받았노라는 원어로 오이코노미안 페피스튜마이입니다. ‘자유인과 상반되는 노예에 속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복음의 청지기가 된 것은 자의와 상관없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를 통해 주어진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예수께서 주인이 되어 주셨고 바울은 예수를 주인으로 모신 청지기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다하지 않는 전도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전도자를 세워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복음 전하는 자가 그 사명을 소홀히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십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복음 전하는 사명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복음 전도의 사명을 결코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구원으로 여겨야

라인하르트 본케 (Reinhard Bonnke)는 독일 출신 아프리카 선교사입니다. 본케는 160만 명이 참석하는 집회를 개최하였고 단 6일간의 집회에서 345만명이 그리스도를 향해 결단하게 만든 강력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11 59-시간이 다가오고 있다'에서 구원 열차를 전복시키려는 사탄의 몸부림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교회와 성도를 공격하는 최고의 무기는 영혼 구원하는 일보다 교회의 다른 일을 더 중요시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 구원보다 더 중요하거나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본케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 치유와 이적이 나타나고, 영혼을 구원하면 다시 세상에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불신자들은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해야만 불신의 영혼이 구원받고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 전하는 자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여기의 구원하고자 함이니는 원어로 하나 소스인데 한 사람이라도 더 얻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나가야 한다는 바울의 각오를 의미합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바울은 영혼에 대한 사랑을 더 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이웃을 섬기는 자세와 희생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거만한 사람은 사람을 얻지 못합니다. 불신자들이 우리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야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십니까? 섬기는 자로 사십니까? 섬김받는 자로 사십니까? 다른 영혼에 대한 처지를 이해하지 않고서야 어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접근해야 전도의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구원을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스펄전 (Charles H. Spurgeon) 목사는 전도는 거지가 다른 거지에게 빵을 얻어먹을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거지에게 차이가 있다면 앞의 거지는 이미 빵을 얻었고, 그 빵을 제공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들은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가면 예외 없이 받는 질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은 혼자 오셨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두 번째 질문은 더 심각합니다. “어떻게 혼자 올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추궁을 당하기 전에 이 땅에서 복음을 열심히 전하여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엄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복음 전하는 일을 자랑이 아니라 부득불 할 일로 여기시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받고 힘을 댜해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