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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히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벧전 2:24~25

친히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벧전 2:24~25

2014
 4월 미국 CNN이 보도한 내용입니다. 뱃속의 태아를 위해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택하여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던 뉴욕에 사는 36세 엘리자베스 조이스 (Elizabeth Joice)에 대한 기사입니다. 그녀는 항암치료를 받던 중 기적처럼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였습니다. 임신한 지 한 달 만에 허리에 암이 재발하여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암 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받는 전신 스캔이 복중의 태아에게 치명적이기에 태아를 지워야 한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고민을 하던 조이스는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아이의 생명을 택하기로 결단하고 항암치료마저 중단했습니다. 그때가 임신 3개월째였습니다. 그 후 그녀는 암이 빨리 퍼지고 있음을 직감하였습니다. 폐에 종양이 생겨 숨쉬기조차 힘든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복중의 태아를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출산 예정일을 두 달 앞두고 인공분만으로 딸을 낳았습니다. 그 사이 암은 심장과 뼈까지 전이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출산 6주 후 조이스는 딸을 안은 남편의 곁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를 지켜보던 남편 맥스웰은 삶에 대한 아내의 낙관적 태도와 용기는 모든 이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고 눈물로 소감을 피력하였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낙태로 인해 수없는 생명이 죽어가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침없이 낙태를 자행하는 세태 가운데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입니까? 그러나 조이스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온몸으로 퍼지는 암의 공격을 받았고 숨조차 쉬기 힘든 고통마저 겪었습니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까지 극복해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인간들의 죄를 위해 이 길을 가시는데 인간들은 도리어 예수를 파는 배반을 행하였습니다. 예수를 죽이려고 간계를 꾸미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까지 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러한 모든 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들의 생명을 위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여기의 친히 나무에 달려 구절을 통해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사실을 언급하였습니다. ‘친히  아우토스라는 원어를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가 나무에 달린 사실이 자발적인 의지로 된 것임을 나타내었고, 십자가 대신 나무  크쉴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까닭은 그리스도가 죄인들이 받아야 할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친히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자발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어떠한 일이 생겼습니까? 주를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떠한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를 위해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첫째로 죄를 담당 하심이라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배를 타려고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노예 시장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흑인 여자와 아들이 경매에 나왔는데, 백인이 흑인 여자만 사겠다고 말합니다. 졸지에 여인은 아들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여인은 두 사람 몫의 일을 하겠으니 아들까지 같이 데려가 달라고 호소 하였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부둥켜안고 우는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하였지만 말을 듣지 않습니다. 여자를 산 사람이 아이를 향해 칼을 내리쳤습니다. 그때 선교사가 재빨리 손으로 칼날을 막고 아이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칼에 맞은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잠시 후 선교사는 흑인 여자와 이이를 비싼 값에 샀습니다. 두 사람을 풀어주며 자유롭게 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흑인 여자와 아이는 붙잡히면 다시 노예가 될 것이니 선교사를 따라가서 은혜를 갚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두 사람은 선교사를 따라 아프리카로 건너가 선교사역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생명뿐 아니라 자유까지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선교사역에 온갖 힘을 다 쏟았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인지라 힘이 들면 화를 내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교사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 아들 대신 칼에 맞았던 흉터를 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흉터를 보던 두 사람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선교사가 담당했던 일을 생각하며 다시 헌신을 다짐하였습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여기의 담당하셨으니는 원어로 아네넹켄인데 제단에 희생 제물을 두다라는 의미입니다. 제사장을 통해 구약의 희생 제사가 반복적으로 드려진 것과 달리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삼아 제단에 희생 제물로 바친 것은 단 한 번으로 그 효과가 완전하게 충족되었음을 암시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신 목적은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함이었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사 율법의 저주로부터 죄인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죄악의 저주를 그리스도가 몸으로 받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까지 당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사하시는 근거를 마련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죄의 올무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죄사함의 감격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을 다짐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의에 살게 하심이라
네가 내 딸이라 행복해의 김영주 작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첫 딸 해니가 자폐증 진단을 받자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딸을 고치기 위해 뉴질랜드로 이민까지 떠났습니다. 장애아를 둔 가족으로서 타지에서의 삶이 서럽고 외로운 나날이었지만 고난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예수 안에 있다는 자체가 기뻐할 이유임을 깨닫고 그녀는 고백하였습니다.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해니가 삶의 짐이요 커다란 부담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는 해니가 내 삶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해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이유가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영원한 형벌에 떨어질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종이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나아가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는 특권까지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살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의 죽고는 원어로 아포케노메노이인데 제거되다, 옮겨지다라는 의미입니다. 죄가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신 이유입니다. 구약의 희생 제사를 드릴 때 제물로 드려진 짐승에게 제사장이 안수하면 죄를 지은 사람의 죄가 제물에게 옮겨져 죄가 완전히 제거되었듯이 죄 범한 사람을 위해 예수께서 희생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모든 죄가 깨끗하게 제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사함 받은 자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합니다. ‘의에 대하여 산다는 말은 하나님께 대하여 산다는 의미요 오직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을 사는 태도입니다. 죄를 방치하거나 죄를 즐거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안다면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죄를 거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죄를 만지지도, 죄를 마음에 품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주를 위해 힘껏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나음 얻게 하심이라
오랫동안 콩고에서 선교 사역을 하던 월츠 버튼 (Waltz Burton)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선교사역 도중 간암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베드로전서 2 24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감격에 겨워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잠시 멈추었다가 계속 말씀을 읽어 나갔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 말씀을 보는 순간 성령의 음성을 깊이 듣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질병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그 무서운 형벌을 대신 감당하기 위해 무자비한 로마 병정들에게 등이 찢어지도록 채찍을 맞았다. 내가 너를 대신해서 질병의 형벌을 다 청산하였다. 너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하는 말을 믿느냐?” 그 순간 즉시로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입으로 시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월츠 버튼은 나았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았다!” 고 수천 번 반복하며 시인하였습니다. 월츠는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신의 병이 고침을 받았다는 확신으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말씀이 살아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아내를 불러 이 말씀을 보시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이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였소. 나는 이제 환자가 아니오.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정상인이라오. 정상인이 누워서 있을 수만 없지 않겠소. 힘을 입어 일어나 활동을 해야 하겠소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주의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월츠 버튼 선교사는 더 열심히 활동하며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질병에서 깨끗이 나음을 얻은 것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여기의 나음을 얻었나니는 원어로 이아데테인데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평안을 얻게 된다는 영적 의미입니다. 본 구절은 이사야 53 5절의 인용인데 이사야가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예언한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됨을 목도한 사람입니다. 예수의 채찍 맞으심도 현장에서 목격한 증인입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메시야로서 인간을 위해 채찍을 맞으셨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묘사하기 위해 베드로는 채찍을 언급하였습니다. 채찍은 쇳조각이 달린 가죽 채찍인데 맞을 때마다 맨살을 파고들어 살점을 뜯어내고, 가죽으로 맞은 자리는 금방 죽은 피가 고여 검게 만들어 버리는 가혹한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이러한 고초를 당하셨습니까? 영혼과 육체에 죄의 상처를 입은 우리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은 죄가 예수의 몸에 당시 노예들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죄인된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주님은 이러한 모진 고난을 다 참아내신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와 질병을 낫게하기 위해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으며, 피를 흘릴 만큼 맞아야 했고, 심지어 살점이 떨어져야 했습니다.
여수 애양병원 10대 원장 선교사 스탠리 토플 (Stanley C. Topple)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59 10 1일에 부임하여 1981 5 30일에 은퇴하였습니다.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 대학교 의과대학 학생이었던 그가 졸업반 때 학교 신문에 애양병원 원장 켈리 운거(Kelly Unger)의 후임을 구한다는 기사를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한국에 가서 나병 환자들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뜻을 가족과 약혼자에게 이야기했더니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포기하지 않고 졸업 후에 한국으로 왔습니다. 물론 약혼자와도 헤어졌습니다. 토플의 가족과 약혼자는 그들의 행복이 자신들의 요구를 그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목적과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려고 결단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짐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표식입니다.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친히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비록 힘이 들고 어려워도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