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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믿는 자마다-요 3:16~21

그를 믿는 자마다-요 3:16~21

백범 김구(金九)선생의 이야기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인물입니다. 조선말 개화기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집의 종들을 모두 풀어주고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김구는 독립을 위해 힘썼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알고자 애쓰던 구도자였습니다. 한때 동학에 깊이 심취해 동학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고 또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902년 의병 운동가 우종서를 통해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의 복음을 전해 들은 김구 선생은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야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예수야말로 우리를 구원해주실 구세주이시다. 조선 민족의 의식을 깨우고 계몽하려면 먼저 성경을 가르치고 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김구 선생은 헌트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후 사경회에 참석하였고 다음 해 평양에서 열린 교사 강습회에 참석하여 신앙 훈련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도와 계몽 사업에 힘썼습니다. 1949년 암살당하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글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 인고로 거짓 없는 내 양심은 죽음을 초월하고 나라를 사랑하였다. 내가 만일 다른 사람의 총에 맞아 죽는다면 그것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듯이 이 나라에 많은 애국자를 일으킬 것이다. 눈물과 피로 우리가 갈망하는 조선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 봅시다.” 그의 아들 김신은 중국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후 공군 장교가 되어 조국의 하늘을 수호하다가 공군참모총장이 되었습니다. 김구 선생은 예수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은 거듭남의 본질과 거듭남의 선행 요건으로서의 믿음을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아들에 대한 믿음 여부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결정됨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정수인 구원의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또한 모든 성경 말씀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6절의 믿는 자마다는 원어로 파스 호 피스튜온입니다. 여기의 피스튜온은 현재시제로 동작의 계속이나 반복을 뜻합니다. 즉 구원에 이르는 진실한 믿음은 매일 매 순간 삶의 전 과정에서 연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며 그를 믿지 않는 자는 영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의 길과 영생의 방편으로 하나님이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마다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그를 믿는 자에게 어떠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까?
 

첫째로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인도의 알리아(Alila)라는 여인이 6개월 된 아들을 안고 갠지스 강변에 서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강으로 들어가서 허리쯤 차는 곳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녀는 아기를 꼭 안고 있다가 갑자기 물에 던졌습니다. 그 날 갠지스강변에서 바르게스(M. V. Varghese) 선교사는 울고 있던 이 여인을 만났습니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그녀가 대답합니다. “우리 집에 문제가 많고 죄가 무겁습니다. 그래서 제게 가장 좋은 것, 아들을 갠지스강 여신에게 바쳤습니다.” 선교사는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외아들 예수를 통해서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있던 여인은 이상하다는 듯이 선교사를 쳐다보며 말합니다. “전에 듣지 못한 얘기인데요. 더 일찍 오셔서 그 말씀을 해 주셨다면 제 아이를 바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하나님은 인생이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런데 영생은 우리가 노력하거나 선을 행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를 믿을 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의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원어로 에케 조엔 아이오니온입니다. 영생을 단순히 시간적 측면으로 이해하여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이란 개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영생은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질을 의미합니다. 영생을 얻으면 천국에서 예수와 함께 무한한 영광을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은 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새 생명을 얻고 동시에 마지막 날 영원한 하나님과의 친교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영생은 하나님과 교제의 단절을 의미하는 죽음과 반대 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믿는 자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디 영생을 얻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고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샌프란시스코만 가까이에 알카트라즈(Alcatraz)섬이 있습니다. 현재 형무소 역사 전시관으로 되어 있으나 전에는 흉악한 죄수들을 수감하던 장소였습니다. 그 곳에서 10년 동안 수감이 되었던 짐 퀼런(Jim Quillen)의 이야기입니다. 유아 납치와 강도죄로 수감 되었던 퀼런은 출소 후 X-Ray 기술자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감옥 생활을 회상하면서 안으로부터의 알카트라즈’ (Alcatraz from inside)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흉악한 죄수였지만 순한 어린양이 된 과정을 고백한 내용입니다. 퀼런은 알카트라즈 역사관에서 관광객들을 안내하며 자신이 믿음으로 변화된 사실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희망이 없는 저의 수감생활이 변화된 것은 전적으로 예수 믿는 믿음과 그가 베푸신 은혜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았고 사회에서 이렇게 유용하고 생산적인 일까지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서 천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난날 흉악한 죄수였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원은 지옥갈 사람을 천국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구원은 절망의 사람을 희망의 사람으로, 무익한 자를 유익한 자로 변화시켜 줍니다.

본문 17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의 구원을 받게의 원어인 소테 구원하다, 구출하다, 보전하다의 의미입니다. 수동태로 사용하여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표현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드러납니다. 구원은 불의의 삶으로부터 야기된 불안과 죄책 그리고 심판에서 벗어나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통해 평강의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빠진 인생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의 영혼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의 행위가 악하다고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멸망의 길로 가는 영혼에 관심이 있습니까? 먼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어둠을 벗게 하려 하심이라

윌리엄 윌버포스 (William Wilberforce)는 영국의 정치가로 예수를 믿고 회심하였습니다. 그는 타락한 정치적 현실을 보고 정치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정치를 포기할 것인가 고민하였습니다. 그런데 영국 국회가 바로 당신의 사역지이다라고 말하는 존 뉴턴 목사의 조언을 듣고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사회의 악습을 개혁하는 일에 헌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노예제도는 영국 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으며 노예제도 지지파들은 상인, 재벌, 군인, 왕족, 귀족들을 망라한 거대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왜소한 체격의 윌버포스는 무려 150번이나 국회 논쟁을 그들과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영국이 위대한 나라가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 노예제도는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는 일이다. 기독교 국가를 자처하는 영국이 황금에 눈이 멀어 노예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고도 살아남은 제국은 역사에 없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이후 영국 국회는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믿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둠의 세력을 이겼습니다. 영국 국민들은 윌버포스를 영국의 양심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영향으로 국회의원 3분의 1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음으로 어둠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원하십니다.

본문 19절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여기에서 어둠은 원어로 스코토스인데 빛이 차단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요한은 메시야에 의하여 선포된 복음을 빛으로, 죄와 불신앙의 상태를 어두움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범죄한 이후 타락한 인간들은 빛보다 죄와 불신앙의 어둠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어둠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문제를 감추려고 하는 어둠에 속한 자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거짓으로 위장하여 눈을 속이는 사탄과 같이 행동해서도 안 됩니다. 어둠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속히 어둠의 세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행한 믿음의 행위를 드러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빛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죄악이 성령의 조명에 의해 드러날 때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어둠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1900년대초 전라도에서 화순의 성자라고 불리었던 이세종(李世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머슴을 거느리고 살았던 큰 부자였습니다. 부인이 아기를 잉태하지 못하자 좋은 약을 다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약 부작용으로 부인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머슴살이할 때 부자들을 부러워했지만 막상 부자가 되고 나니 별개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아내가 아이도 낳지 못하고 죽게 되자 그만 홧병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한 여인이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어야 삽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계속 귀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책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혼자서 읽다가 은혜를 받고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너무도 기뻐 껑충껑충 뛰면서 내 죄를 사함 받고 구원 받았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그는 빚진 사람들의 부채를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마을에서 그에게 빚 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모든 빚을 탕감해 주고, 곡식 창고도 열어 가난한 사람은 누구든지 쌀을 퍼가도록 하였습니다. 이세종, 그는 예수 믿는 믿음으로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야 합니다. 옛 생활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확실하게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를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둠을 이겼습니다. 부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통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