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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그러하나이다-요 21:15~18

주님, 그러하나이다-요 21:15~18

일러스트 작가 구경선의 이야기입니다
. 그녀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베니를 만들어 유명해졌습니다. 베니는 귀가 큰 토끼 캐릭터입니다. 두 살 때 열병을 앓다가 청력을 잃어버린 그녀는 듣지도 못하고 말하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 말이 어눌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잘 듣지를 못해 학교를 중퇴하였습니다. 그 후 친구를 따라 교회 수련회에 가서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하였습니다. 취직을 한 친구들이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십일조를 낼 수 없으니 어떻게 할까?”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는 재능의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라고 결단합니다. 그림으로 십일조를 하겠다는 믿음으로 교회의 주보를 그리고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미니홈피 싸이월드의 일러스트 작가가 되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들으라고, 큰 귀가 있는 토끼를 그렸습니다. 자기가 듣지 못하니까 귀를 크게 만들어 더 많이 들을 수 있도록 표현한 자화상의 의미였습니다. 어느 날 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의사는 희귀병으로 점점 더 눈이 멀게 된다 고 말하였습니다. 잘 듣지 못하고 잘 보이지 않게 된 그녀는 무척 실망하였습니다. “주님, 제 인생이 이렇게 끝납니까?”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다 안다. 내가 너의 고통을 안다.” 자기보다 더 불행한 아이들, 버림받은 아이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라는 사명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필리핀 단기선교를 가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한 아이가 말합니다. “언니, 난 꿈이 있어요. 세계를 다니며 사진 찍는 작가가 될 거예요.” 그녀는 사진작가가 된 토끼를 그려 그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아이는 좋아하며 그림을 안고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내게 주신 사명이로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듣지 못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헐벗고 굶주리고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고백합니다. “제가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볼 수 있을 때 아이들을 위해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싶어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은 게 많아요. 나의 약함과 관계없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은 항상 선하신 분이라고 믿어요. 저 역시 하나님의 작품이지요.” 그녀의 꿈은 여러 나라를 순회하면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그려서 주는 것입니다. 구경선 작가, 그녀는 듣지 못하고 앞을 잘 보지 못하지만, 예수 사랑을 사명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 복음 전파의 소명을 새롭게 하시고,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와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목양의 사명을 다시 부여하여 베드로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시켜 주시는 내용입니다. 요한은 세 번에 걸쳐 주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주님과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어떻게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기둥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던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여기의 주님, 그러하나이다는 원어로 퀴리에 나이입니다. 이 말은 예수께서 신적 지식으로 베드로 자신이 예수를 사랑하는 줄을 아실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베드로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이라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이는 동시에 부활의 주님을 만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향한 베드로가 다짐하는 고백의 내용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더 사랑하리라
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한완상(韓完相) 교수는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친 학자입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전공 분야인 사회학책보다 신학책을 더 많이 읽었습니다. 한완상 교수는 자신이 예수를 믿고 예수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말을 10번 하셨다면 삶으로 100번 이상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어느 종교 창시자가 자신이 말한 것보다 삶으로 더 많은 것을 실천하였습니까? 대체적으로 말은 100가지를 하면서 실천은 10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죽이면서 사랑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사랑을 가르치기보다 사랑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좋아하고 그 분을 나의 주님으로 믿습니다.” 사랑은 말이 아닌 실천입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닌 동사입니다. 사랑의 말이 많은 곳이 행복한 곳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곳이 행복한 곳입니다. 예수를 본받아 삶으로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여기의 주님을 사랑하는 줄에 나타난 사랑이라는 원어는 필레오입니다. 주님은 아가파오 즉 무조건적인 신적 사랑으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뜨거운 감정이 뒷받침되는 필레오라는 사랑의 단어를 통해 주님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을 고백하였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필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의 시제가 현재형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물론 과거에 베드로를 향한 책망과 새 출발에 대한 당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확인하시려는 것은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찾아오신 목적은 복음을 위탁하고 가르칠 사명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사명을 맡기기 전에 진정한 사랑을 확인코자 하십니다. 그 이유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보다 우선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주님을 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더 충성하리라
어느 동네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사람이 새로 이사 오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이 동네는 사람이 살 곳이 못 됩니다. 사람들이 너무 예절도 모르고 이기적이고 싸움만 일삼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이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이사 온 사람이 그 말을 듣더니 이렇게 한 마디 합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이 동네 사람들이 가난하고 또 병에 자주 걸려 무척 고생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웃이 되려고 이사오기로 결심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내가 다른 사람들의 좋은 이웃이 되려 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기를 바라느냐의 차이입니다. 이 차이에 따라 삶은 달라집니다. 자신은 좋은 이웃이 되려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만 내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소위 나쁜 이웃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 먼저 좋은 이웃이 되려는 사람은 언제나 나에게 호감을 가진 좋은 이웃들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의 삶을 살면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해 줄 때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그리고 교회가 나에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과 교회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정이 들고 사랑스럽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곧 주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교회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내 양을 치라는 원어로 포이마이네입니다. 그런데 15절은 양을 먹이라 보스케로 표현하였습니다. 목양의 대상자가 처음에는 어리지만 나중에 점점 더 성숙하여 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먹이라는 명령이나 치라는 명령은 기본적으로 목양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을 배신한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신뢰하신다는 표시로 양무리를 맡기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제 충성을 다하리라고 다짐한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사랑의 분량과 크기를 재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주님께 대한 사랑을 재는 유일한 잣대는 바로 충성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사랑하는 만큼 충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충성합니다. 반대로 적게 충성하는 사람은 주를 사랑함이 적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전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를 향한 사랑의 질문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내게 충성할 수 있느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주님께 더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더 희생하리라
1798,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는 천연두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젖소에서 천연두의 면역성을 가진 우두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을 사람에게 주사하면 천연두 면역성이 생긴다는 것을 학회에 보고하였습니다. 학회에서 마지막 실험단계에 들어갔을 때 당시에 유명한 영국 학계의 권위있는 의사들을 위시해서 많은 동료 의사들은 질투와 시기로 그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시골뜨기 의사가 하나님과 의학을 모독한다고 했습니다. 동물과 사람을 구별할 줄도 모르고 동물에게 실험한 결과가 사람에게 적용이 되겠느냐고 조롱하면서 그것을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만일 학회에서 부결이 되면 당시는 인체실험이 매우 어려운 때였기에 다시 빛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너는 몇 달 전에 천연두에 걸린 사람에게 주사를 해보았더니 약효가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학자들이 한 사람의 임상실험을 가지고 되느냐?”며 비난합니다. 그때 제너는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저는 23명을 실험했고 낳은 지 열 하루밖에 되지 않은 제 아들에게도 실험을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장내가 숙연해졌습니다. 그것은 아들의 희생을 각오한 실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너의 희생이 있었기에 인류가 천연두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는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에 발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여기의 네 팔을 벌리리니는 원어로 엑케니이스 타스 케이라스 수인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실제 베드로는 젊어서 활발하게 복음을 전하며 초대교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네로 황제의 박해 당시 바티칸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순교를 당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작은 일, 특별한 희생이 요구되지 않는 일에는 참여하지만 희생이 요구되는 일은 소극적이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주를 사랑한다는 고백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하는 모습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주님을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일하기 전에 먼저 이해득실을 따지고 주를 위한 일일지라도 손해가 돌아온다고 뒤로 물러선다면 결코 주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거짓으로 주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주께 더 희생하시기 바랍니다.
찰스 콜슨(Charles Colson) 누가 하나님을 대변하는가(Who speaks for GOD)’라는 저서에서 윌리엄 본트레이저(William Bontrager) 법관의 이야기를 소개하였습니다. 본트레이저는 늦게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 감격 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날 죄질이 나쁜 해리 팔머의 재판을 맡게 되었습니다. 팔머는 악독한 강도질을 한 범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감옥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진심으로 회개하여 변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돕고 싶었습니다. 정상적인 판결은 10년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한 주간의 금식과 기도 후에 파격적으로 징역 1년을 언도하였습니다. 부당한 판결이라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러자 본트레이저는 사표를 내고 법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1년 후 ,팔머가 출감하는 날 만나러 갔습니다. 본트레이저는 팔머를 끌어안았습니다. 팔머는 눈물을 흘리며 판사님,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왜 그러셨어요?” 라고 하자 본트레이져가 대답합니다. “이렇게 까지라니요. 주님은 형제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까지 주셨는데요. 그것은 값비싼 은혜입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그는 지금도 약속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자는 반드시 변화됩니다. 그리고 희생으로 그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시몬 베드로처럼 이제 더 주님을 사랑하리라’, ‘이제 더 주님께 충성하리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더 주님께 희생하며 살리라고 다짐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