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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 : 11 - 19 아홉 명보다 귀한 한사람의 감사

누가복음 17 : 11 - 19
제  목 : 아홉 명보다 귀한 한사람의 감사
찬  양 : <새>301, 393, 587, 588.

 

       오늘은 11월 둘째 주일입니다. 11월은 감사의 달이고, 우리교회를 비롯하여 전국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다음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진정한 감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아 멘!>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전도를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던 중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도중에서 문둥이 열 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열 명의 문둥이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음을 입었으나 그들은 너무나 기뻐서 다 제갈 길로 가버리고 오직 한사람 사마리아인만이 예수님께 다시 와서 사례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고 탄식하시면서 그들의 배은망덕함을 개탄하시었습니다.

 

       여기서 문둥병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문둥병은 독특한 병으로써 특성이 있는데 
       ①자기도 모르게 병에 걸립니다.
       ②병이 외형상 너무 흉측스럽고 추합니다. 온 몸이 곪아터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끊겨나가고 눈썹이 빠지고 코와 입이 비틀어지며 모든 형상이 어그러집니다.
       ③감각 신경이 다 죽어서 아무리 꼬집고 불에 데어도 통증을 모릅니다.
       ④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그래서 이 병은 마치 죄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여러분! 욥의 참상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눅16장의 부잣집 문전에서 구걸하는 거지 나사로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예나 지금이나 일반인들과 같이 살수가 없어서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 격리 수용을 합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나라도 문둥병자들은 동리밖에 격리하여 살게 하고 성한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면 멀리서 “우리는 부정하다” “우리는 부정하다”라고 소리를 질러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게 합니다. 이와 같은 문둥병자가 깨끗이 나았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눈섭이 다 빠지고, 코가 문드러지고, 손은 조막손이 되고,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주님을 만나서 고침을 받았으니 그 감격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잊고 살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들은 문둥이보다 더 더럽고 절망적인 죄에 빠져서 그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새로운 피조물로 주안에서 거듭나게 된 것을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감격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울어도 울어도 눈물로는 갚을 길이 없고 만입이 있어서 그 입 가지고 찬송을 드린다 해도 어찌 다 찬송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찬141장5절>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의 은총에 사로 잡혀 평생을 주님을 위해 일했으나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부족한 것뿐이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열 사람의 문둥이가 주님 앞에서 똑같이 고침을 받았으나 주님께 다시 돌아와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주변을 돌아다보면 은혜를 받는 사람은 많은데 감사를 하는 사람은 적다는 것이 마음 아픈 일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 중에, 감사하는 생활은 너무나 인색하고 메말라 버렸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우리들은 몇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1. 감사의 조건을 발견해야 합니다.

 

       열 명의 문둥이가 다 고침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 단 한 명 사마리아 출신의 문둥이만이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였습니다.
       열 명의 문둥이가 똑같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예수님께 감사한 사람은 오직 한사람뿐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교인은 많은데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기는 많이 받는데 하나님께 감사가 부족합니다.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당시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마리아 출신의 문둥이 였습니다. 그는 몸이 성할 때도 그랬지만 문둥이가 되어서도 같은 문둥이 중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아오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했던 귀중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즉, 그는 제일 먼저 자기의 몸이 깨끗해 진 것을 발견하였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2012년도 추수감사절이 다음 주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한량없으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남이 하니까 마지못해서 체면치레로 하는 그런 감사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 앞에 받은바 은혜를 깨닫고 진정한 감사를 하는 그런 감사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 사마리아 출신의 문둥이는 지금까지 그 더럽고 추하던 손이, 다 빠져버린 눈썹, 일그러진 얼굴, 남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몸, 집안 식구들에게서조차 쫓겨나야 했던 슬픔, 그 모든 것이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깨끗하게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불치의 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할 때 훌륭한 의사를 만나서 고침을 받았다면 비록 돈 주고 치료받아서 고쳤을지라도 그 병원 그 의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도 하고 훌륭한 의사라고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수많은 환난을 겪으면서도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만신창이가 되어서 죄악의 고름들이 흐르던 이 육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 어찌 주님 앞에 엎드려 사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할렐루야!

 


2. 그는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도 예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냥 집으로 갔다면 그도 다른 아홉 명과 똑같은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다른 아홉 명은 기뻐서 제갈 길에 바빴으나 이 사마리아 사람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그리운 가족이며, 얼마나 가고 싶은 고향집입니까? 지금까지 수많은 멸시와 천대 속에 죽지 못해 살아 왔고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고통 속에서 벗어난 그 즐거움은 하늘을 나를 듯 했을 것입니다.
        다른 아홉 명은 단숨에 고향집으로 달려가는데 가지 않고 되돌아서 예수님께로 향하는 이 사람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또 한 번 비웃었을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 앞에 와서 꿇어 엎드렸습니다. 주님 앞에 달려오긴 하였으나 바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어 경배하고 찬양으로 그 은혜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할렐루야!!

 


3. 이 사람은 주변에서 오는 많은 유혹을 이겼습니다.

 

        다른 아홉 명이 제집으로 달려갈 때 이 사람도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두고 온 부모님, 형제들, 그리고 처자식을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뒤돌아서 예수님께로 오는 것을 보며 다른 아홉 명이 비웃을 때 얼마나 그의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삶의 우선순위를 감사에 먼저 두었습니다. 우리들도 은혜 받고 믿음생활 열심히 하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유혹과 조롱과 시험이 옵니까?
        한참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번기에 책가방 들고 교회 오는 모습을 보고 불신자들이 얼마나 우리를 보고 멸시합니까? 그리고 주일날마다 어김없이 생기는 잔치에 참석하지 않으면 또 얼마나 조롱을 합니까? 그러나 우리들은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 제일주의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같이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는 신앙고백과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길, 믿음의 길은 외로운 길입니다. 좁은 길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외면하는 길을 가야 하기에 슬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습니다. 
       “아홉 명은 다 제갈 길로 가도 나는 오직 주님께로 가겠노라”
       “다른 사람 모두다 세상길로 향한다 해도 나는 오직 저 천성을 바라보며 주님만을 따르리라”는 신앙적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의 길, 충성의 길, 헌신의 길은 고독한 길입니다. 마음의 갈등을 제거하고 모든 유혹도 이기고 벧세메스로 향하는 법궤 실은 수레를 끄는 소처럼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앞만 보고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릴 때까지 가야 합니다.

 


4. 이 사람은 지체하지 않고 감사를 하였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 문둥이는 깨끗함을 받았을 때 당장 주님 앞으로 달려왔습니다. 보고 싶은 부모 형제, 처자식, 그리고 이웃집 동네 사람들, 얼마나 꿈에도 그리던 고향입니까? 그러니까 우선 고향에 가서 그립던 가족을 만나보고 다음에 기회 있을 때 주님을 찾아와서 감사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미루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몸이 깨끗해졌음을 깨닫고 그 즉시 주님 앞으로 달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미루면 뜨거운 감사의 열정이 식어버립니다. 감사의 열정이 식어지면 순수한 감사의 마음이 변질됩니다. 사탄이 유혹하고 시험하여 감사를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고 깨달음이 오면 식기 전에 즉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늘 새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새로운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새로운 만나를 받을 때마다 감사를 해야 합니다.
       은혜는 한 번 받고 마는 1회용이 아닙니다. 아울러서 감사도 한 번하고 마는 1회용이 아닙니다. 날마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주신 은혜와 오늘 주시는 은혜가 다릅니다. 또 다음 주일에 주시는 은혜도 다릅니다. 오늘 하루쯤이야 하면서 한 주일을 빠지게 되면 그날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심령이 메말라집니다. 심령이 메말라지면 점점 황폐되어 가는 사막처럼 강퍅하고, 목이 곧고, 교만한 심령이 되어 마지막에는 사탄의 이용물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받은 은혜는 오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뜨거운 감사의 열정이 식어지기 전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십시오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밭을 팔아서라도 감사를 해야겠다는 감동을 받았으나 그 뜨거운 감동, 감격, 열정이 식어지니까 그만 유혹이 오고, 그러니까 안 할 수도 없고 해서 절반만 하였더니, 오히려 성령을 속인 죄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5. 이 사람은 주님께로 돌아와 감사하고 변화되어 영적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눅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의 인생을 저주하고, 남을 저주하고, 원망과, 불평과, 욕설로서 살아오던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은혜를 받으면 이와 같이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고침 받고서는 찬미하며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바로 이분이 내 눈을 보게 하였다” 고 증거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2)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 앞에 올 수가 없었습니다. 아까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할 때에도 멀리 서서 소리를 질러 고쳐주기를 간구 하였을 뿐 예수 앞에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둥이가 깨끗함을 입은 후에는 예수 앞에 올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문둥이보다 더 추했던 우리들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깨끗함을 입고서 예수 앞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3) 참된 감사는 영적 축복이 따릅니다.

 

       예수 앞에 달려와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예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문둥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영혼 구원까지 받은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먼저 집으로 돌아간 아홉 명은 문둥병은 고쳤지만 구원은 받지를 못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았지만 구원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은 천국과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결과가 얼마나 큽니까? 오늘의 우리들도 주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네 감사가 너를 복되게 하였느니라” <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한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고, 예수 앞에 나와 감사하며, 영광을 돌림으로, 구원받은 한 가지 사건을 통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런데 왜 너만 왔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와 아홉」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와서 고생 끝에 가데스 바네아까지 왔습니다. 가나안 땅이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그 땅을 탐지하여 오라고 12명을 보냈는데 돌아와서는 둘과 열 명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둘과, 열 명」 「하나와, 아홉」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열 명!
        보고 싶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달려간 아홉 명!
        아니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신앙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
        예수 앞에 나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여 영혼 구원까지 받은 사마리아 출신 문둥이였던 사람!  어느 편을 택하시렵니까?

 

        주여!!  아홉은 모두 제갈 길로 갔지만 오직 나는 이 길을 가겠습니다.
        오직 나는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오직 나는 감사의 생활을 하겠나이다.
        이와 같은 믿음의 결단이 이 시간 여러분 심령마다 뜨겁게!  뜨겁게!  역사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