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7-10) 설교 : 문성욱 목사 많은 사람들이 외적인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외형적으로 큰 집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죄지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그 집은 일명 큰 집, 교도소에 불과합니다. 겉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이 중요합니다. 금으로 만든 통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쓰레기가 들어있으면 쓰레기통에 불과합니다. 보잘 것 없는 나무로 만든 함일지라도 그 안에 보석이 들어있으면 보석함이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깁니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 대통령으로 모든 권력의 핵심입니다. 그분이 사는 곳이 백악관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비행기를 타면 그 곳이 백악관이 되고 에어포스 원이라 부릅니다. 대통령이 안 타고 있으면 똑같은 비행기에 불과합니다. 대통령이 배 위에 가면 배 위로 백악관이 옮겨지는 것입니다. 애리조나로 가면 애리조나에, 샌프란시스코로 가면 샌프란시스코에, 달라스로 가면 달라스가 백악관이 되는 것입니다. 권력은 그가 있는 곳으로 옮겨집니다. 그가 있는 곳에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가 있는 곳에 수많은 조직들과 정보원들이 그 주변을 지키고 보호해 줍니다. 왜입니까? 높은 분이니까, 백악관의 주인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일산에 오면 일산이 청와대가 되고, 파주에 오면 파주가 청와대가 됩니다. 철원에 가면 철원이 청와대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힘은 그가 움직이는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하므로 우리는 머리털 하나 상함이 없고, 아무도 우리를 해칠 자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자, 부요한 자가 누구입니까? 주님을 모신 사람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이 바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왜 귀합니까?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람 속에는 그런 영적인, 무한한, 거룩한 공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우리 안에 오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실 집이 우리 인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속에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우리의 행복과 기쁨은 주님이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동물은 아무리 귀해도 하나님이 그 안에 가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 거하실 수도, 예수님을 모실 수도 없습니다. 코끼리나 독수리가 예수님을 모실 수 있습니까? 얼룩말이나 소나 기린이 예수님을 모실 수 있습니까?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계실 공간이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실 집이 우리 인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속에 주님이 오셔야 됩니다. 우리의 행복과 기쁨은 주님이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집에 주님이 오셨을 때, 그는 기뻐하며 감격했습니다. 최고의 기쁨, 최고의 행복은 주님이 오심으로 얻게 됩니다. 우리는 이 한 가지를 믿고, 이 한 가지를 자랑합니다. 천하를 다 얻어도 예수님이 나를 떠나가면 나는 헛된 것입니다. 그 순간 성경이 있는 대로 일곱 귀신이 쳐들어옵니다. 그러나 주님이 거하심으로 모든 저주는 우리를 떠나가게 되고, 모든 축복은 주님이 거하심으로 찾아옵니다. 왕의 왕이신 주님이 거하실 때, 모든 좋은 것들이 주님 때문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벌통에 여왕벌이 있으면 수많은 벌들이 꿀을 가져오는데, 여왕벌이 가버리면 벌레의 집이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모든 좋은 것들이 나의 심령을 찾아오고, 나의 가정을 찾아오고, 나를 다스려, 나의 삶이 질서 있고, 건강하고 영생한 삶이 되게 하십니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천국을 주님 밖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물질로, 지식으로, 이 세상에 천국을 만들려고 하고, 천국을 몸부림치고 찾고 있습니다. 어디 좋은 것이 없을까? 좋은 것을 입고, 먹고 마시고, 좋은 곳에서 살면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밖에서는 무엇을 먹으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국에서는 10만원, 우리나라에서도 5만원씩에 판매하는 ‘루왁’이라는 커피나 상어 지느러미로 만든 샥스핀이라는 요리나 중국에서 한 끼에 2천 5백만 원까지 원숭이 눈, 개미허리, 모기 간 등으로 만든 요리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한 분이 계심으로 부요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그 한 분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나는 존귀하며, 영생하며, 자유합니다. 이 평안은 주님이 주신 평안입니다. 우리는 주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4장 7절 이하를 보면,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질그릇 속에 왕의 왕이신 주님이 거하십니다. 나는 비천하지만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은 능력이 많으시기에 나도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때문에 스스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귀한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나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도말하여 주신 줄로 믿습니다. < 미국의 1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존스 > 앤드류 존스는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가난한 농촌에서 나고 자라면서 이 세상에 험하고 험한 일을 가장 많이 했었는데, 예수를 잘 믿는 구두수선공의 딸과 결혼을 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아내를 통해 글씨를 배우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잘하고 연설을 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지사가 되고, 상원의원이 되었고, 링컨의 런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되었다가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720만 불에 사들인 것입니다. 학벌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놀라운 기적이 오늘도 우리들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아동문학가 정채봉 씨가 쓴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동화”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화를 가진 값진 존재이지만 결코 교만하거나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옷걸이가 귀중하게 여김 받는 것은 아름다운 옷이 걸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귀중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보화가 값지기에 우리가 값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일산명성교회가 15년 동안 이렇게 놀랍게 성장하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저와 우리 장로님들이 뛰어나서 이렇게 성장한 것 아닙니다. 조건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아신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셔서 여러분처럼 좋은 성도 만나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늘 겸손하며 충성하는 모습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 일본의 유명한 물리학자인 마치부 > 그는 제국대학을 졸업할 때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학장님이 그를 대학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그는 실력이 부족한 자기가 교수가 된 것이 너무 영광스럽고 고마워 남보다 배나 더 노력했고 마침내 학자로 대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교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교수였던 니토베 박사의 처가 여름날 부채를 들고 영어 수업을 하다가 부채를 떨어뜨렸을 때, 조용히 나와 부채를 주워서 내 처에게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의 실력이 참 중합니다. 우리는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쟁쟁하고 모든 여건을 다 갖추고 배경이 좋아도, 삶의 태도와 인품이 좋지 않은 사람은 실패합니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하고 배경이나 여건이 좋지 않아도 삶의 자세와 태도가 귀하고 인품이 향기로운 사람은 어디에서나 사랑을 받고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보잘 것 없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귀케 됨을 깨닫고 더욱 겸손하고 감사하고 충성함으로 더더욱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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