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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문성욱목사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신명기 8:11-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명기 8:11-18)

설교 : 문성욱 목사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항상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속히 잊어버려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곧잘 잊어버리고, 속히 잊어버려야 하는 것들은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하여 평생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억해야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나도 모든 사이에 어려움과 슬픔이 다가옵니다.

열왕기상 2장에 보면 베냐민 지파의 시므이는 다윗 왕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할 때 저주했다가 다윗 왕이 왕권을 회복하여 돌아올 때 용서해 받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 때에 “네 생전에 예루살렘을 떠나면 죽이겠다”는 명령을 잊어버리고, 도망간 두 종을 찾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시므이는 죽을 위험에서 솔로몬 왕의 긍휼로 살았으면 예루살렘 안에서만 살면 죽이지 않겠다는 명령을 기억하고 지켜야만 했는데, 잊어서는 안 될 명령을 잊고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그만 죽임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해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18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어떤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14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이나 종살이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셔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감사의 이유는 출애굽의 은혜였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는 사탄의 권세에 얽매여 사는 죄의 종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장차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 되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영원히 누리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305장을 보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1절),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네(3절)’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것도,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절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식었습니까? 구원의 기쁨,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다시 한 번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뜨겁게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는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12-14상)

사람이 배가 고프면 코가 예민해집니다. 그러나 배가 부르면 자동적으로 코가 무디어지기 마련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절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형통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을 때, 별것도 아니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러한 말이 마치 겸손한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것을 겸손이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될 때,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는 것을 바로 교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축하합니다.”라고 인사한다면,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형통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라 백향목 궁에 평안히 거하면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궁전보다 훨씬 더 좋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서 그 속에 하나님의 궤를 보관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은 너무너무 기뻐하셨습니다.

다윗은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아름답게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시고, 그와 그의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형통할 때에,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하다못해 숨을 쉬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가 없었으면 우리는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형통할 때에,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15-16절)

우리는 형통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되지만,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은 불뱀과 전갈이 있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물이 없는 건조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농사도 목축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는 선하신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에서도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전체를 책임지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 윌리엄 캐리 > 영국에서 구두 수선을 하던 그는 하나님께 헌신하여 25세에 목사가 되고 31살에 인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후 그는 깊은 감격 속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인도에 도착한지 1년 만에 5살짜리 아들을 잃었고, 그 충격으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던 아내도 죽었습니다. 그는 7년 동안 한 사람도 제자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인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주셔서 인도에 도착한 지 20년 만에 인도 사람을 위한 뱅갈어 성경번역을 마쳤습니다. 선교부에서 보내준 종이와 잉크와 인쇄기로 성경인쇄작업을 하던 중 인쇄공의 실수로 20년의 수고가 물거품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번역한 원본과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었던 뱅갈어 문법책과 사전이 타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는 잿더미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의 20년 수고를 거두어 가셨군요. 그래도 제가 다실 할 수 있는 믿음을 거두어가지 않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 뒤 그는 더욱 훌륭한 뱅갈어 성경을 이전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는 언제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 편에 섰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걸림돌은 반드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생과 헌신은 반드시 열매 맺는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행복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한 단어! 그것은 바로 감사라는 단어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하고 곧 축복이 따라옵니다. 기복주의는 기원은 있으나 감사가 없고 축복은 바라지만 희생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바른 신앙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에벤에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그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은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감사로 말미암아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받아들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실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것처럼, 감사가 기적을 낳습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감사는 고백할 때 능력을 발휘합니다. 감사를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감사는 넘치는 하나님을 우리 삶 속에서 만나게 하는 촉매의 역할을 해 줍니다.

금번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우리 모두가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을 다시 한 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형통할 때도 감사하지만, 곤고할 때도 변함없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