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는 삶의 비결
(누가복음17:11-19)
설교 : 문성욱 목사
얼마전 ‘행복전도사’로 잘 알려진 작가 겸 방송인 최윤희씨가 일산 백석동의 한 모텔에서 남편과 함께 숨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2년 전부터 폐, 심장질환으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한 남편과 함께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다고 유서를 남겼습니다. 본인도 비참하지만 그의 남편은 살인죄까지 덧붙여지고 만 것입니다. 왜 이런 불상사가 발생했습니까? 남이 갖지 못한 많은 것에 대한 감사보다는 나에게 있는 어려움, 고통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의 저자 레나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양손이 없었고, 한쪽 발도 짧았지만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발로 글을 쓰고, 발로 밥을 먹고,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고, 십자수도 놓았습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수영과 운전도 하게 되었고 장애인 올림픽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특히 얼마나 노래를 잘 하는지 아름다운 찬양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녀는 자기를 장애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다르게 사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천사의 표정을 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없는 것만 생각하면 불평불만이지만,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그 사건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자살”, 그것을 생각하면 갑자기 어둡고 침울하고 소름이 끼치지만 생각을 바꾸어서 거꾸로 보면 “살자”가 됩니다. 시인 김지하는 “죽으려면 차라리 그 죽을힘으로 살지”라고 시를 썼습니다.
<살면서 시련도 있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어려움 때문에 우리가 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됩니다. 편하고, 일이 잘 풀리고, 자녀가 잘 나가면 잘 믿을 것 같지만 더 못 믿게 됩니다. 대개 망하는 사람을 보면 환난 때문에 망하기보다 잘 되는 것 때문에 더 망합니다. 잘 된다고 흥청망청 살고, 음란하고, 안일하게 사니까 내 안에서 망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어려움이 없으면 정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외적도 있고, 내적도 있고, 힘든 상황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기도하고, 바로 살고, 겸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 17장에는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겨달라는 그들의 간청을 들으시고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습니다. 이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러 떠났습니다. 나병이 낫지 않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순종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제사장에게 가다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꿈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뻐하면서 가족들 만날 부푼 꿈을 안고 계속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한 명은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가다가 발길을 돌려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면 그런 행동을 ‘하나님께 영광 돌린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원한다는 고백을 많이 하고,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인지를 잘 모릅니다. 자기가 믿는 자로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믿는 자로서 실패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하는 사람들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란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감사하면 더 큰 감사거리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러 온 사람에게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그 한 사람에게 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두 가지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인정이었습니다. “너밖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없구나!”(18절) 이 세상 살면서 가장 큰 축복은 남에게 인정받는 것, 특히 주님에게 인정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절) 감사를 표현한 한 명의 나병 환자는 결국 ‘주님의 인정’과 ‘구원의 은혜’까지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비하면 나병이 나은 은혜는 오히려 작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감사할 것에 대해 감사하면 반드시 높은 이자와 함께 축복이 돌아오게 됩니다. ‘감사의 문’이 열리면 ‘하늘 문’이 열리고, ‘행복의 문’도 반드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한 일이 있으면 바로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그렇다면 나머지 아홉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마 그들 중에는 제사장에게 보여 완치 판정을 받고 가족들을 만난 후, 가족들과 함께 감사하러 오겠다는 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일을 미루면 대개 감사하지 못하고 다시 자기 욕망대로 살게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 요구하는 모습은 많아 보여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은 적습니다. 육체가 무감각해지는 나병보다, 은혜에 무감각해지는 영적 나병이 더 문제입니다. 은혜에 무감각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때는 행복이 끝장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는 성령님께서 거하지만 불평하는 마음속에는 마귀가 거하게 됩니다.
< 참으로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 루터는 “선한 사람은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악인은 없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항상 ‘있는 것’을 생각하는 선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나처럼 모자란 사람과 기쁘게 살아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도 배워야 합니다. 모르면 남이 하는 것을 보고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요새 아이들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최대한 잘해주고, 학교에도 자가용으로 모셔다줍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 감사하는 삶을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힘써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아이들에게 계속적으로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감사, 부모님께도 감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 분에게도 감사하는 것을 가르치면 그것이 내 자녀가 잘 되게 하는 길이고, 자녀가 복 받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을 보면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 아홉 명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이 제사장으로부터 완전하다는 판정을 받자마자 예수께로 달려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9명은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족에게로 달려가고 동네에 가서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사마리아 사람이 달려가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들도 달려가서 마땅히 감사를 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모르면 옆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우기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하찮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마음이 감사 쪽으로 방향이 잡히면 그때부터 사람은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사도 배워야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곳에, 감사하는 마음에, 감사하는 생활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회복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고침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성령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은혜를, 받은 복을 일회용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받은 은혜와 복이 디딤돌 되어서 더 큰 복을 받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게 베푸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하루에 천원도 안 되겠습니까?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우리 가정에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되 한 가정이 하루에 천 원씩, 일 년 365일을 곱해서 하나님께 감사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더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복을 받는 비결을 깨달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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