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문성욱목사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누가복음 14:15-24)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누가복음 14:15-24)

설교 : 문성욱 목사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무슨 재미로 살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가 보면 예수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그렇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하늘의 비밀을 모르고 사는 저들이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교회 오면 초상집에 온 사람처럼 웃지도 말고 엄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거룩이라고 깨닫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거룩이 아니라 거북한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은 행복이 얼굴에 표현되어지는 웃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에 보면,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기록하고, 마태복음 25장에는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는 잔치로 묘사하고, 시편 23편에서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 즉 잔치상을 베푸신다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천국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기독교는 ‘잔치하는 종교’입니다.

신앙생활은 잔치하는 삶입니다. 교회는 잔치하는 곳입니다. 기쁨의 잔치, 은혜의 잔치, 말씀의 축제, 넘치는 성령의 잔치, 이 땅을 살아갈 축복을 받는 축복의 잔치가 있는 곳입니다. 교회가 잔치하는 곳이라면 잔치의 컨셉은 무엇입니까? 기뻐하는 것입니다. 은혜란 헬라어로 카리스,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 기쁨, 이것이 교회생활입니다.

잔치란 그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그 격조가 결정되어집니다. 주인이 사장님이면 사장님 잔치라 부릅니다. 주인이 대감이면 대감 잔치라 부릅니다. 주인이 왕이면 왕의 잔치가 됩니다. 오늘 본문의 잔치는 하나님 잔치, 하늘나라 잔치입니다. 이 잔치는 하나님 나라 잔치입니다. 하나님 나라 잔치는 당연히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다. 흥분이 넘치고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잔치에 가장 큰 특징은 많은 사람,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잔치의 생명은 많은 손님이 참석하는데 있습니다. 손님이 많아 와야 잔치는 신이 납니다. 잔치의 분위기는 손님이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아니 모든 사람이 구원 받고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길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집을 채우라!’ 우리가 섬기는 교회, 예배의 자리를 채우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예배당이 크든 작든 관계없이 채우지 못하는 교회는 쓸쓸함이 있습니다. 외롭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교회는 은혜도 넘쳐야 하고 사람도 넘쳐야 합니다. 기도도 은혜도 성령도 넘치고 사람들도 북적북적 넘치는 곳, 이것을 이름하여 ‘부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넘치는 곳에 임재하십니다. 기도가 넘치고 은혜가 넘치고 믿음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교회, 충성과 헌신이 넘치는 교회, 그 교회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작은 물에는 작은 고기가 삽니다. 그러나 큰 물에는 큰 고기가 삽니다. 어항 속에는 금붕어 정도가 살지만 태평양 바다엔 상어 떼, 고래 떼가 삽니다. 강 같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성도들은 큰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바다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사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산명성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태평양 같은 은혜의 바다 한 가운데 살아가는 신앙 큰 인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예배와 교육, 선교와 친교, 봉사가 균형 잡힌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니 아버지는 잃은 영혼들을 바라볼 때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리라. 그래서 균형이 아니라 초점,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에게 있습니다. 전도는 잃은 영혼을 찾아내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사탄에게 빼앗긴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병들 때 생기는 첫 번째 증상이 무엇입니까? 잃은 영혼을 향한 아버지 마음을 상실하고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살게 됩니다.

초점이 회복되어질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늘의 태양도 볼록렌즈로 초점을 모아 보면 종이를 태울 수 있고 쇠도 녹일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초점을 아버지의 마음에 맞추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뜨거움을 회복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이것이 부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 특별히 한국교회는 지금이야말로 부흥을 경험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교회 부흥이 이 도시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그날을 우리는 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을 찾기 위해 마을로, 거리로 달려 나갔을 때, 이 일은 금방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핑계꾼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일차적인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품은 태신자를 의미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밭을 샀으니 나가 봐야겠다고 하고, 두 번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해 봐야겠다고 하고, 세 번째는 장가들었으므로 가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핑계의 고수들이었습니다. 문제는 땅의 욕망에 사로잡히면 결국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게끔 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뒤틀리고 나면, 영원한 세계,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도 이러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초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오라! 오라! 오라!’는 말이 1900번 이상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일차 초대에 응하지 않을 때에 개울가로, 산가로 나가 많은 사람들을 채우라 말씀하시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절하자 이방인들을 통하여 채워가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그토록 중요한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했을까요? 이 엄청난 실수, 무례를 범하는 배짱이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 길은 영원한 멸망의 길인데 말입니다. 선교와 복음을 심리학적으로 살펴본 사람들의 설명에 의하면 프로그래밍이 잘못되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나 나를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에 기쁨으로 응답하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시 짜야 합니다. 시간 배정의 우선순위를 하나님 중심으로 짜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가치관이란 프로그램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매일같이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내게 뭐라 말씀하시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 중심으로 프로그래밍된 사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라, 오라 우리를 초대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당신의 가족을 찾고 싶어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잔치입니다. 구원 잔치입니다. 최고의 천국잔치입니다.

그러면 잔치하는 교회, 그 잔치가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인물이 있습니다. 잔치집의 종입니다. 본문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잔치 집에 사람들이 꽉꽉 채워질 때까지 주인은 종들을 보내고 또 보냅니다. 그때마다 가고 또 갑니다. 마치 입이 없는 사람처럼 한 마디 불평도 없습니다.

여기 종들은 어디로 가라고 하시든지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입니다. 긍정적인 순종 외에 아무런 핑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잔치하는 교회, 거기서 우리 성도들의 배역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이 땅의 선교사로 보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병이 든 것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이 세상을 정복하는 비밀을 우리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을 정복하길 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상실했기 때문에! 오늘 교회가 병들고 성도들이 병들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 우리의 왕이시니 하나님께서 잔치 집에 손님 채우길 얼마나 원하시는가를 표현하는 한 단어가 본문에 나옵니다. “강권하여”라는 말입니다. 물리적인 힘을 써서라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슬랭영어에서는 “팔을 비틀어서라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그래서 전도엔 시간이 무시되어집니다. 장소가 무시되어집니다. 방법이 무시되어집니다. 대상이 무시되어집니다. 무조건 데려다 천국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강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핑계꾼들 앞에서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동참하는 잔치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짊어주신 사명을 이루는 사명의 잔치입니다. 내 목숨이 온 천하보다 귀중하지만 이 목숨 역시 사명을 감당할 때만이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이웃을 구원하고 도시를 구원하는 잔치입니다.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우리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냉랭하게 식어진 심령들마다 성령의 불,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부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