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에베소서 1:3-14)
설교 : 문성욱 목사
사람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그 사람의 세계관과 신앙관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과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어떻게 생각하고 사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달라집니다.
어느 집 정원에 예쁘게 핀 꽃들에게 주인이 물도 주고 다듬어 주는 모습을 본 개구리가 너무 부러운 나머지 꽃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주인이 물도 주고, 잘 보살펴 주니 참 행복하겠다. 나는 목이 말라도 물을 주는 사람도 없고, 뱀이 나를 잡아먹으려 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가끔은 사람들이 나를 잡아먹으려 해서 어디를 가나 항상 두려움에 사로 잡혀 살 수 밖에 없는데 말이야.” 그러자 꽃이 말합니다. “그것은 네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우리는 너처럼 발이 없어서 목이 말라도 물을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해, 또 아이들이 정원에 들어와 밟으면 밟혀야 되고, 꺾으면 꺾여야 해, 하지만 너는 발이 있어 목이 마르면 물을 찾아가 먹을 수도 있고, 위험이 닥치면 도망도 갈 수 있잖니?” 이 말은 들은 개구리가 자기에게는 꽃들에게 없는 다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행복해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복을 헤아리면서 기뻐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복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의 복을 헤아리며 부러워 하다가 자신의 복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인생을 낭비해 버립니다.
사람의 일생을 근본적으로 깊이 살펴보면 사람마다의 그 일생은 별로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 크게 차이가 있는 것처럼, 아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이 누리게 될 복, 영적인 복, 하늘의 신령한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3절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땅에 속한 육신적인 축복은 불완전하고, 상대적이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썩고, 부패하고 없어질 것들입니다. 땅에 속한 육신의 복이 지금 당장 나에게 아무리 절실하다고 해도 그것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땅에 속한 모든 육신적인 복은 허무하게 우리의 곁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은 땅엣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고 영광스럽고 참으로 소중한 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참된 축복은 바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땅의 복, 세상의 복은 바닷물 같아서 잠시 시원함을 느끼지만 조금 있으면 더욱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애굽의 바로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피라미드를 건설하도록 하였고,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건설한 임금이지만 또 화려한 궁궐인 아방궁을 지었습니다. 중국의 황제가 죽으면 큰 구슬을 입에 넣어주는데 이는 용이 되어 신령한 복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임금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서 신령한 복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복은 인간이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수고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누려야할 복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입니다.(4-5절)
축복의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땅에 속한 복이든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든지 다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비와 공기와 햇빛은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땅에 속한 보편적인 복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만, 하늘의 신령한 축복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은 가장 큰 은혜입니다. 가장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결단할 때 그 형편이나 나의 장래의 가능성을 보시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하나님은 이미 나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적인 축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고 살았다면 이제라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인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을 가지고 언제나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속량 곧 죄사함을 받는 복입니다.(7절)
죄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마치 암세포와 같습니다. 암세포가 들어오면 암에 걸린 그 사람 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까지도 어려움에 처하게 합니다. 이러한 우리 죄를 용서함 받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였습니다. 죄로 인한 영원한 사형선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면할 길이 없습니다. 속량 곧 죄사함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믿을 때에 받는 신령한 복입니다.(예:우리가 설거지를 할 때에 그냥 하면 아무리 닦아도 기름이 닦이지 않지만 세제를 사용하면 깨끗하게 닦이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영원한 기업이 되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11절)
세상 사람들이 상속 받는 것들은 잠깐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은 영원한 상속의 축복입니다. 이 영원한 하늘나라는 근심도 없고, 눈물도 없고, 이별도 없고, 아픈 것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함 같이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집이 바로 우리의 영원한 상속을 받을 곳입니다. 이와 같이 놀라운 축복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이 땅의 복이란 모두가 시간이 흐르면 낡아지고, 없어지고, 부패하고, 일시적인 것이지만 하늘의 신령한 복이라 영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하늘이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창세전에 여러분과 저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친히 피를 흘려 우리를 씻어 깨끗하게 하시고 구원의 옷, 의의 옷 세마포를 입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나도 놀랍고 감격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하늘의 속한 신령한 복을 받게 하신 하나님을 날마다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름에 우는 매미는 여름에 불과 15일에서 20일을 살겠다고 땅 속에서 무려 7년에서 17년을 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매미가 되면, 15일에서 20일을 사는데도 그것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워 산천이 떠나가라고 밤낮 부르다가 죽습니다. 이것이 매이의 운명이라고 합니다.
하물며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리며 영원히 살게 된 성도들은 항상 찬송하며 감사하며,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기뻐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아 라이케가 쓴 ‘사막의 신비’라는 책을 보면 페루 평원에 있는 고대 나지아 족속에 의해 기원전 약 200년 전쯤에 만들어진 이상한 일련의 선에 관한 묘사가 나옵니다. 그 선은 60킬로미터 이상 지역에 걸쳐져 있어서 사람들은 그 선을 대략 관개수로라고 추정했습니다. 그러다가 1939년 롱아일랜드 대학의 폴 코속 박사가 비행기를 타고 그 지역을 연구하다 그 선이 이상한 심벌과 70개의 동식물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그림은 거미, 새, 원숭이, 그리고 300미터나 되는 펠리칸 등의 그림이었고, 어떤 심벌은 15킬로미터에 걸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처럼 공중의 높은 곳에서 보자 비로소 마구 그려진 그 선들이 거대한 예술작품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시각으로만 어떤 사건과 사물을 보니까 그 사물과 사건을 의미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거기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다 질서와 설계가 있고 모든 사건과 사물은 다 하나님의 예술작품입니다. 그 엄청난 예술작품을 현재의 우리 눈으로는 다 볼 수 없지만 언젠가 우리가 이 땅을 떠나 천국에 가면 그 하나님의 작품의 신비가 우리에게 명쾌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의 삶에 흑암과 골짜기와 같았던 순간도 하나님의 설계였음을 알고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아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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