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문성욱목사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요한복음 12:9-19)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
(요한복음 12:9-19)
설교 : 문성욱 목사


오늘 우리의 시대는 기적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난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보여주는 것은 기적의 신앙입니다. 물론 성경은 이성과 상식을 존중하지만 이성과 상식을 초월하여 이성과 상식이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복음입니다. 오늘의 세상은 단순한 기적정도가 아닌 큰 기적, 위대한 기적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생각지 못한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복음서에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을 하시던 예수님께서 벳바게라는 동리에 이르자 갑자기 이상한 명령을 하십니다. 마가복음 11:2-3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돈을 주면서 시키신 것도 아니고 남의 나귀를 무조건 끌고 오라고 하니 황당하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순종하고 나귀를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에 올라 타셨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 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비로서 제자들이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2:16절에 “제자들이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을 생각났더라.” 결국 나중에는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이유를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주님께서 어린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의미를 깨달아 항상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겉옷을 벗어 예수께서 타신 나귀새끼가 지나는 길에 깔았습니다. 어떤 이는 종려나무가지를 꺾어 길에 깔았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시자 온 성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함께 환호하며 왕 되신 주님을 향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까지 따라와 계속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분을 내며 예수님께 “왜 저들의 외침을 자제시키지 않느냐?”고 원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셨을까요?
1.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일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언을 성취하시려 하셨습니다. 또한 예언의 성취를 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당신께서 보내신 구세주이심을 믿을 수 있도록 입증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지고 계신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었지만, 예수님의 방법은 그런 쉽고 간단한 강제적인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되는 것을 확인하고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깨달아 스스로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래서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지적으로 깨닫고 이해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정서적으로 느끼며 의지적으로 결단하여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의 예언들을 알고 기다리는 사람의 눈에만 띄도록 작고 초라한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알아보고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이라 할지라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향하여 분을 낸 이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지식은 있었으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성경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사람만이 우리 주변에 가까이 찾아오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환영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찬양하고 경배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이 성경말씀을 온전히 성취하신 구세주이심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의 멍에를 메기 위해 오심을 암시하기 위함입니다.
나귀는 멍에를 메고 일을 하는 짐승입니다. 본문에서도 나귀를 멍에를 메는 짐승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사야 53:4절 이하에서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의 죄와 그로 인해 따라 붙는 우리의 무거운 형벌이 실려 있습니다. 주님은 자원하여 그런 멍에를 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처럼 무거운 짐을 지시러 예수살렘에 올라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귀처럼 저와 여러분의 죄악을 짊어지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질고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고통도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슬픔도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이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하여 다 감당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마다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짐이 벗겨지고 날아갈 듯한 가벼움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혹 여러분의 어깨에 아직도 벗겨지지 않은 무거운 짐이 여러분을 누르고 있습니까? 그것이 용서받지 못한 죄입니까? 고통과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질병입니까? 인생의 복잡하고 괴로운 문제입니까? 멍에 메는 나귀를 타신 예수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주님께서는 기꺼이 여러분의 짐을 감당해 주십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왜 어린나귀를 타시고 가셨는지를 깨닫고 주님의 모습을 묵상하시면서 더욱 더 겸손하며, 우리의 멍에를 메신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